원영씨를,아니,사실 스스로를 위한 변명-애정을 갖고 바라보기 
 
 
 
 
제 이야기를 잠깐 하면서 글을 시작해야겠네요. 원영씨를 위한 변명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실은 제 자신에 대해 스스로 준비하는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사람 사귐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는 나의 편견에 가까운 판단으로 그 친구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권하는 편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집적거린다고나 할까요. 어릴 때는 가만있는 녀석을 불러다 앞으로 뭐하지 이러면서 괜한 고민을 같이 하곤 했었구요, 요즘에는 책을 권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전화로 들들 볶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친구들 더러 귀찮게 합니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공교롭게도 주변의 친구들이 이과가 많아서 저는 주로 그들이 놓칠 수도 있는 좋은 책들이나, 정치, 경제 이야기를 하곤 한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이 친숙한 그 쪽 이야기를 더러더러 듣기도 하죠. 어쨌든 저는 친구들에 대한 저의 이러한 집적거림을 감히 ‘애정’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우리는 친구끼리 술을 먹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라 해봤자 알코올이 알싸하게 돌고나면 그게 이야기인지, 비명인지, 넋두린지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리지만요. 사실, 너는 이런 이런 면만 아니면 더 좋을텐데. 예전에 니가 이러이러 했을 때 정말 기분 더러웠었어. 등등..시시콜콜히도 진솔한 이야기들은 서로를 보다 잘 알게 해주고,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사람들이 되도록 서로를 독려합니다. 네. 이건 우정의 힘, 애정입니다. 

저는 원영씨를 가운데 두고 나타나는 일련의 반응들이 그런 애정임을 느낍니다. 영준씨의 글은 원영씨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거듭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괜히 부끄러웠습니다.(웃음) 그 사람이 이런 글을 쓰든, 저런 글을 쓰거나 쓰지 않건 애정이 없고 관심이 멀어지면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공감(共感)은 언제나 우리의 사이를 벌어지지 않게 이어주는 실타래입니다. 우람씨의 너를 보여줘!와 같은 예전의 공개구애도 그런거겠죠.

사실, 저는 처음에 원영씨의 글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꽤 의아했습니다. 원영씨가 한 일이라곤 스스로의 책임의식에 기반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기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글들을 피 땀흘려 써서 열심히 올린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글들은 많은 이들에게 세상을 다시 생각해 볼, 몰랐거나 모르려 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저는 그걸로 세상에 태어난 원영씨의 글들은 글의 탈을 쓴 유사한 다른 자음과 모음의 조합들보다 훌륭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아닌가하며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기성작가의 경우에, 영준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비평처럼 ‘이 작가라면’ 식의 어떠한 기대치가 있어 비평이라는 매개를 통해 A라는 시도 보다 B라는 시도가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혹은 예전에는 V라는 면에서 이 작가의 감각이 돋보였는데, X라는 면을 내세우다니 예전에 비해 너무 진부해졌는데 등등으로 그 작가를 저울질하곤 합니다. 

그럼 인정받는 기성작가와 원영씨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둘다 글을, 그것도 훌륭한 글을 써온 사람이라는 점이고,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은 것을 창조해내리라 예상된다는 점에서 둘은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서 자신의 지반을 굳히고 있지만, 원영씨나 혹은 이곳의 다른 누구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영준씨 스스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얕고 무딘 지반 위에서의 칼놀림은 괜히 옷깃을 스치기는커녕 괜한 허공만 휘휘 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지반위에서는 원영씨의 글 내용 자체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영씨에 대한 애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영준씨의 저 글은 원영씨를 향한 강력한 애정으로 보입니다만, 저 애정에 대해 원영씨가 저는 군인인데요, 혹은 그건 전술이에요, 라고 대답해버린다면 야릇한 분위기가 흐르게 되리라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그것도 원영씨의 글이 주로 Ex-Libris-(출전)出典의 형태로 독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생각들을 적고 있는 마당에는 허원영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우리는 죄다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살살 원영씨를 꼬드길 수는 있겠죠. 원영씨, 학교 다닐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고등학교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렇게요. 그건 애정어린 분들 끼리의 문제긴해도요.

여기서부터는 되게 뜬금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왕 지르기 시작한건 마저 질러야겠죠. 저는 우리가 여전히 많은 변화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람씨던가, 그 어느 분의 글 내용처럼 그런 말하다 변절한 사람이 한 트럭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정말 말만하다 결국 행동으로 옮아가는 교차점을 찾지 못해 죽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을겁니다. 한편으로 무수한 경험을 쌓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나의 길은 이러이러한 것이라 확신에 가까운 판단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냥 무난한 대학생활 끝에 군에 와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바람에 몸을 실은 누군가도 있을 것이고, 스쳐가는 글들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어렴풋이 잡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삶입니다. 그럼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서 어설프게 든 작가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지반이 아직 다져지지 않았다고 판단되기에 그런 말씀을 드리노라 변명하겠습니다. 그래서 원영씨의 지반이, 우리가 함께 설 수 있는 지반이 다져질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서로에게 허락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지반은 누군가 다져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져가는 것이어야 하겠죠. 원영씨가 하고 있는 글쓰기는 아마 우리 스스로가 바로 설 수 있는 지반을 다져나가게끔 북돋는 호각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강록군은 과연 어떤 답글을 달까하는 궁금증이 입니다. 예전 희석씨가 강록씨에게 필진으로서 더 멋진 글을 달라는 식의 글이 미묘하게 영준씨가 원영씨에게 날리는 칼질에 오버랩되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지요. 그래서 저는 그때 희석씨의 글이 섬뜩했던 것과 유사하게 영준씨의 <당신이 지르지 않는 것은 당신의 역량에 대한 기만이며, 당신의 논리에 대한 방기입니다> 라는 글이 무서웠습니다. 

글쓰기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보기 좋게 늘어놓는 것만이 아니라면, 글쓰기는 상당한 정도로 자유롭고, 정말 많은 부분 자신의 삶을 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서 피어나는 많은 생각들이 글로 되고, 그 글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가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삶을 정한다는 말도 안되도록 진부한 소리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주어지는 조그마한 강요들일지라도 저는 그것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가는 것이고, 혹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그저 가볍게 등을 떠밀어주는 정도이거나 길을 보여주는 정도여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저마다 누리고자 하는 이러한 자유의 사이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를 빈 공허를 채우고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공감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애정입니다. 그 애정이 서로를 더 북돋워주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합니다. 이는 내가 모르는 무수한 익명의 사회 성원들에게 까지 이어집니다. 애정을 가지면 그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됩니다. 애정은 언제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고, 애정은 손해라는 단어를 머리에서 지워냅니다. 애정은 꾸준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우람씨와 같이, 저도 기다립니다. 각자의 작은 행위들이 큰 꿈을 꾸어나가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고이 품어나가는 그 시간들을요. 보채고, 강요하고, 부추기고, 한 곳으로 몰거나 구분하기보다는, 서로를 품으며 바라보고, 기다리고, 권하고,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p.s 
저는 순발력이 떨어져서 글을 참 오래쓰는 편입니다. 최소 2,3일은 잡고 쓰는 편인데, 논란이 되고 오해살만한 글을 너무도 급하고 조잡스럽게 올려버리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이 심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오해는 다음 근무에, 글을 좀 다듬으면서 꼭 풀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강록군이나 원영씨의 답변이 있기 전에 그저 저의 생각으로만 저 스스로를 위해 매듭을 지어보고 싶었거든요. 원영씨나 영준씨에게 본의 아닌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래요. 흑. 
 

  
 
 
 
병장 노지훈 (2006/03/16 04:12:33)

이럴 땐 그냥 기러기 두개 이모티콘 한번 쓰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 정모만 가면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가고 싶다~ 흑흑    
 
 
상병 송희석 (2006/03/16 06:39:34)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지훈님의견에 동의하고 싶어요! 
어제 동석님하고 밤에 잠깐 이야기했는데,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싶은 열망을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어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러한 분들이 아직 남아있다는것 자체만으로 저도 마음의 불꽃이 
활활타오르네요! 한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뵈요!    
 
 
병장 김형진 (2006/03/16 06:41:11)

희석 // 저도 이번주말에 동석님 만날거에요. 훗훗    
 
 
상병 송희석 (2006/03/16 07:23:55)

형진 // 쳇! 저도 4월 1일 만날분들 많다구요!!!!!!!!!!!!!!!!!!!!! 
제가 4월1일날 나가서 만나는분은 행복한줄 아세요! 3차까지 가시는분한테 한해서 회를 살까 생각중이니!!(형진님 메롱!)    
 
 
병장 박형주 (2006/03/16 07:38:57)

흐음. 언젠가 전해듣기로 상원씨는 한명 건너서 아는사람인거같아요 아하하.    
 
 
 병장 김동환 (2006/03/16 07:57:39)

이분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에요. 핵심은 그게 아니에요. 
상원님 저에게도 상원님의 애정을 부어주세요.(퍼퍼벅 퍽)    
 
 
병장 김강록 (2006/03/16 08:10:15)

답이 나왔소이다. 슬럼프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