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답글을 다는 일에 대하여 (병장 허원영/051201) 
 
 
 
 
나는 밖에 있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라든가 게시판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읽는 곳은 주로 나의 홈페이지 뿐이었다. 그렇기에 인터넷 게시판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그 세부적인 메커니즘까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인터넷 게시판이 정말로 다양한, 어떤 의미에서는 잡다한 종류의 게시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요즘의 책마을 게시판을 보고 있으면, 여느 인터넷 포탈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 그리고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차피 흘러가는 군생활, 짬 나는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면서 스트레스와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게 뭐 나쁘겠나.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국방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초점을 맞추는 게 쉬울 리 없다. 쉬이 짬이 나지 않는 군인이다보니 심도 있고 연속성 있는 논의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다종다양한 글들이 올라오는 현상 자체는 그다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도 갖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필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작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기에 큰 불평은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곳의 게시물에 답글이 달리는 과정과 형태다.

  거칠게 말하자. 게시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1) 정보를 요구하는 게시물, 2) 정보를 제공하는 게시물, 3) 자신의 의견/느낌을 표현하는 게시물. 이 중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3번이다. 이 게시물에 달리는 답글의 종류도 세 가지다. 1) 본문과 상관없는 답글, 2) 본문의 내용에 동감하는 답글, 3) 본문의 내용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답글. 이 중에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3번이다. 내 논의는 어디까지나 '3번 형태의 게시물에 달린 3번 형태의 답글'에 한정된다.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이 답글의 대부분이 구체적인 목표점을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결국 (논지 면에서는) 1번 형태의 답글로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논의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피곤해진다. 자꾸 어긋나는 퍼즐을 바라보는 것 마냥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형태의 답글은 대부분 "논리를 부정하기 위한 논리"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을 읽고 작성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본 뒤 생산성 있는 논의를 위해 답글을 다는 것이 아니라, 읽어봤을 때 직관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게시물의 논리구조 속에 들어가 문제점을 파악하고 논의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밖에서 전혀 다른 논리구조로 이야기한다. 공격할 성(城)은 이쪽에 있는데, 저쪽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고, 논의는 흐지부지하게 된다.
  게시물이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따져서 충고나 조언을 하려 한다. 이것 역시 번지수를 잘못 찾은 답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답글이 얼마나 논리적인가를 떠나서, 그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오아시스를 찾는 이에게 메마른 건빵을 던져 주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잔인한 일이다. 차라리 답글을 달지 않는 것만 못하다.
  다른 작은 불만들도 많지만, 합쳐서 요약하면 이렇다. 책마을의 분위기는 '어떤 말을 했을 때 총알이 날아오는' 그런 분위기다. 그 총알이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 게시물의 허술한 논리구조를 허문다거나 의미있는 결론을 향해 날아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땅 속에 묻혀버릴 불발탄도 있지만, 목표를 잃은 오발탄이 대부분이다. 어떤 게시자는 맞대응을 했을 때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그냥 숨어버리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이라도 위협받는 양 즉각 대응 사격을 실시한다. 그리하여 오발탄은 더 많아지고, 결국 전장에는 총성만 들리다가 끝난다. 남는 것은 게시물과, 오발탄들과, 불발탄들과, 상처받은 마음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답글을 다는 성급함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글에 달린 답글을 최소한 세 번에서 네 번은 읽어본 뒤에 답변한다. 자랑은 아니다. 머리가 둔한 게 자랑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들도 조금 둔해지기를 바란다. 좀 더 생각한 뒤에 천천히 답글을 달기를 바란다. 안 달 거면 모르지만, 달 거라면 천천히 달아도 괜찮다. 만일 천천히 다는 것이 힘들다면 게시물을 여러 번 읽어본 뒤에 다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한다면 불필요한 논쟁과 시비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급작 사격해서 괜히 엄한 사람 잡지 말자는 이야기다. 모두 명사수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쏘지 않을 것이면 모르되, 쏠 거면 제대로 쏘자는 이야기다. 어깨에 견착 확실히 하고, 조준선 정렬 잘 하고, 신중하게 정조준해서 쏘자는 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야,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간에 무언가 남기는 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만 참으로 진지한 논의와 쓸 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병장 전영훈 (2005-12-01 09:42:26)  
공감합니다.(두번 생각했음)  

상병 김동석 (2005-12-01 09:43:51)  
음, 제가 다는 덧글(저는 나름대로 "답글=리플, 덧글=코멘트" 라고 분류하고 있습니다)은 보통 4번이군요.

4) 본문의 내용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나 일화를 제시하여 글의 보충교재로 쓸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답글

개인적으로 덧글의 기능은 4번이 가장 알맞고, 답글의 기능은 3번이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병장 김동환 (2005-12-01 09:46:28)  
빙고~
저도 같은생각입니다.  

상병 오재환 (2005-12-01 11:15:15)  
성급함. 맞아요.  

병장 장정환 (2005-12-01 11:26:39)  
저는 2번 동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걸 알리고 싶네요.

그런데 연습 사격 같은건 안되나요?
그런 것도 다 받아 줄 수 있는 있는 아량이란 것은 좋은 덕목 중에 하나죠.
연습을 좀 해야 늘겠지요. 그래야 원영님 같은 코치도 들을수 있고요.
가볍게 해 본 말입니다. (대화하듯)  

상병 엄보운 (2005-12-01 12:46:39)  
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글입니다. 담아두겠습니다. and. 진급 축하드립니다.  

병장 한상천 (2005-12-01 13:03:19)  
인터넷 시대의 소통이라는 상원님의 글과 같이 읽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담이지만, 원영씨 개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발자취를 남기고 왔어요..
사진이 없어서 조금은 섭섭 하더군요.  

병장 한상원 (2005-12-01 17:45:04)  
저는 서로의 의사가 댓글을 사이에 두고 왜곡될까봐 정말 하고 싶은 말 말고는 댓글 잘 안쓰게 되는 것 같아요. 오발탄이나 불발탄은 처리를 하도록 노력하면 명중률을 높일 수 있지만, 상처받은 마음이란 그게 아닌거 같거든요. 익명의 아이디(ID)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한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무성의가 가해에 대한 불감증을 가져올 것 같아서요. 느리지만, 진중하게 갔음 좋겠어요.  

일병 김현윤 (2005-12-02 19:59:08)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가끔은 답글이 무서워서 글을 쓰기 싫다는 느낌이들 때도 있죠
그런데 아마도 성급함의 가장 큰이유는 모두들 군인이라 그런것 같습니다. 저도 솔직히말해
글을 몇번 정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고참들의 눈치와 간부들 때문에
급히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쓴글에 낙서를 해서는
안되겠죠. 앞으로 제 스스로도 조심하겠습니다.  

상병 유인호 (2005-12-02 23:35:24)  
저같은 경우는 시간이 넉넉치 않아 길게 써져 있는 글을 숙독을 잘 못합니다.
김현윤씨 처럼 눈치때문에 말이죠
날새는 날에는 글하나를 잡고 읽을수 있는데 가끔씩 들어와 조금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어느새 마우스는 다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