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Libris] 스무 살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11122) 
 
 
 
 

[……]그 시절 나는 스무 살이었고, 사상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었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느끼며 묘하게 아파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자신감은 어떤 문제를 만나기 무섭게 사라져 버렸고, 실제 현실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능은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것이다. 나는 음울하고 부박하며 외모는 단조롭고,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고, 경멸을 할 때는 극단적으로 경멸하고 또 감동할 때는 무조건 감동하고, 밑도 끝도 없이 쉽게 인상을 받고, 더구나 어느 누구도 내 의견을 바꾸어 놓지 못했던 것이다.[……]

- 폴 발레리,「'유레카'에 관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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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스무 살인들 저렇지 않겠는가! 이 글에는 스무 살의 핵심 같은 것이 들어있다. 강한 자의식과 그것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한 유산(遺産). 뜨거운 자신감과 차가운 현실 사이의 괴리. 몰아치는 비바람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청년의 감정.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또래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혹은 겪었을 그런 시기의 핵심 말이다. 물론 그때, 나이는 중요치 않다. 누구는 열 여덟에 이미 저 '스무 살'을 지났을수도 있다. 혹은 스물 두 살에 저 '스무 살'을 지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영원히 저 '스무 살'을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에게 달렸다. 그러나 핵심은 같다. 하나의 알맹이가 다른 껍질을 쓰고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스무 살을 읽으며 위안을 느낀다. 그도 그랬구나, 하는 동질감에서 오는 위안이다.
  그럼에도 발레리쯤 되는 인물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안을 느끼기도 전에 치를 떨게 된다. 삶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공평하게 힘겨운가. 그 천재적인 발레리조차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다니.
  물론 그의 무능과 나의 무능 사이에는 깊디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중요한 건 '무능의 질'이 아니다. 핵심은 '무능' 그 자체에 있다. 삶은 이런 면에서 구토가 나올 정도로 평등하다. 그리고 그 평등함 속에는 치명적인 절망감이 내포되어 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차라리 그 어떤 누군가가 이런 인간의 숙명적인 무능함을 벗어나 초인의 영역에 도달하고(니체의 초인은 아닙니다), 그리하여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으니, 그건 흔히 말하듯 '완벽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무능함은 인간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불치의 병이다. 신의 영역에 닿을 수 없도록 세워진 거대한 벽. 누구도 그것을 넘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능의 벽'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며 울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스무 살'의 나는 그 벽 앞에 서서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은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근거가 아닌가.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그리고 신이 될 수 있는 성자(聖子)도 아니기에, 서로를 서로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손을 잡고, 이해하고, 함께 웃으며,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 아닌가.





상병 허원영 (2005-11-22 23:24:16)  
수요일과 목요일에 자리를 잠시 비우기에 미리 칼럼을 올립니다. 목요일 저녁에 뵙죠.  

일병 이강혁 (2005-11-22 23:27:06)  
스무살은 마치, 확실한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있는 나이 같다.

- 신경림, <나비> 中  

병장 장성운 (2005-11-23 07:56:44)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체 해야하는 여든살보다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기에 노력하는 스무살이 저에게 더 어울리는것 같네요.  

상병 엄보운 (2005-11-23 08:07:11)  
끄덕 끄덕.  

병장 김동환 (2005-11-23 08:23:24)  
계속 스무살에 머무른다는게 무척 힘든가봐요. 
제 주변 사람들도 다들 스무살에 머물고 싶어했지만
저도모르게 나이들을 먹더라구요.  

일병 이영준 (2005-11-23 08:42:06)  
스무살이 되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이제 나도 당당히 술도 마실 수 있고, 영화도 보고, 기타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늦게 스무살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무살이라는 단어는 왠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같네요...  

상병 김강록 (2005-11-23 09:21:02)  
알다마같이 탱클탱클했던 나의 스무살이여. 내 스무살의 당구여.  

상병 강재훈 (2005-11-23 09:24:00)  
오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날이네요
그것이 끝나면 곧 시험을 치른 학생들도 스무살이 되겠네요
아침에 뉴스볼때 시험치르러 가는 남학생들이 나오자 이런생각이 드네요
저학생들도 시험이 끝나면 좋아 마셔~ 하다가 새내기가 되고 새내기가 되면
선배들이 좋아 마셔~ 해서 또 마시고 한학기가 지나면 아...이게 스물...대학생의 모습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져 또 마셔~ 하고 그래서 2학년이 되면 공부좀 해볼까 했는데
귀여운 신입생들을 보며 또다시 좋아 마셔~ 하고 그렇게 또 한학기가 흐르고 
아 진짜 공부해야지 하다보니 어라 슬슬 주변에서 입대하고 내 입대일도 다가오네
에이 곧 입대인데 하긴 뭘해 하고 휴학하고 또다시 마셔~ 하고...
이런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메이더군요
너무도 아름다운 스무살이 그렇게 흐르니...  

병장 장성운 (2005-11-23 09:59:51)  
마시는 풍습.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낭만이 사라진 교육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축제로서의 스무살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해칩니다.  

병장 박대열 (2005-11-23 11:26:25)  
나의 스무살은 스물세살의 후회다  

병장 공태영 (2005-11-23 13:40:39)  
전 대학생활때 매번 죽도록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것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술 말고 다른곳에도 많잖아요..전 그중에 동아리에 푹빠졌었죠.(저도 술 좋아합니다만 매번 만나면 술마시는 사람들을 보면..흠..안타깝죠..)  

상병 엄보운 (2005-11-23 16:17:21)  
술이 낭만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은 긍정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어린왕자의 우화처럼 술을 마시는 동료들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술이 도피처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똑바로 응시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술에 전 채로 술을 마시지 않고 취업준비만 한다고 자신의 자아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까지 욕을 하지요.

결국 어디서나 극단이 극단을 보고 욕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과도한 음주는 (정신) 건강을 해칩니다.  

병장 장성운 (2005-11-23 17:20:56)  
기쁘네요. 
제가 말한 건강이란 정신까지도 포함한 뜻이었는데
엄보운님이 정확히 꿰뚫어 보셨군요.

술을 즐기는 자는 술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땀을 위한 축제란
얼마나 디오니소스적인지.

젊은 날은 무릇 자기수양에 철저해야 한다는 팍팍한 인심이 너무 흔해서
즐기는 젊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드리고자 그런 얘기를 썼습니다.

놀때는 제대로 놀아야겠죠?  

하사 김용섭 (2005-11-23 18:33:08)  
잘 읽었습니다.  

상병 이규민 (2005-11-24 11:00:21)  
↑에 글을 쓰진 상병 강재훈님의 글...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저도 입대 전 대학생활을 생각하면 즐겁고 후회스럽기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시기['무능의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지낸 어린 날보다도...  

병장 남정현 (2005-11-24 12:05:12)  
감동스러운 글이었습니다. 스무살이라고 한 것은 물리적인 1년의 시간이라기 보다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사회, 혹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시기 즈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무한한 가능성(자신감)과 현실적인 한계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대결방식을 펼치기도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결국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말이네요. 
"우리는 신, 신이 될 수 있는 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어구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상병 최성호 (2005-11-24 16:39:18)  
지금 22의 나이로 군생활을 하고 있지만, 입대 후 시간이 정지한 듯 한 느낌에 언제나 스무살 같네요.
스무살이 되면 모든것이 새로워 보이는 환상.
모든것을 할 수 있을것 같은 용기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는 인내.

이 모든게 인생이 끝날때까지 함께 하고 싶네요.
언제나 마음속에 스무살의 열정을 가지며..  

일병 배종진 (2005-11-25 12:53:09)  
20살... 많은 경험과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20살 이제 수능이라는 압박감에 벗어나 좀더 자유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곳 저곳 20살이라는 벽에 붙이쳐 가지 못했던곳 할수 없었던 것들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 조차 현실이라는 벽에 붙이쳐 할수 없었던게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절감에 차있던 20살 후반 또다시 군입대라는 또다른 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에 갈꺼 조금더 놀자고 또 다시 여기 저기 갈 곳을 못찾고 그저
흘러 가고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벌써 20살이 넘어 22살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방황이 
새로운 전환 점이 되어
남아 있는 긴 인생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20살을 즐거움과 방황이 절 성숙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