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병장 한상원/051118) 
 
 
 
 
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거리를 걷는 일이 소름끼치도록 좋다. 그 비가 그치면 아주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희뿌연 적막한 습기를 띈 거리의 모습에, 그제서야 내 마음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묵직하게 심연으로 내려앉아 비로소 무언가를 생각해볼만한 상념의 시간을 가지곤 한다. 그 외에도 하늘색이라는 그 애매한 말이 잘 어울리는 눈이 시린 맑은 하늘을 짝사랑한다. 그리고 맘이 절로 놓이는 친구와의 멋진 술자리나 추억을 재구성 해보는 일 등등을 나는 너무나 좋아한다. 내가 무슨 낭만고양이의 은밀한 기질이 있어 분위기타는 걸 즐긴다기보다는 그저 대책없는 한량의 기질이 좀 있다. 영국에서도 괜히 구경은 안하고 런던탑 입장료 아껴 템즈 강변의 야경에 묻혀 맥주나 질펀나게 먹었드랬다. 술병이 쌓여갈수록 좀 부끄럽긴 했지만. 주정을 한다던지, 추태를 부린건 아니니 다들 그냥 웃어 넘겨주길 바란다. 

어쨌든 좋아하는 것들은 당장 기억나는 것만해도 수만가지다. 사소한 것부터 거창한 소망까지 모두 손꼽아 세다보면 적고 적어도 이루 다 적어낼 수가 없을지도 몰라 넘치는 마음을 겨우 꾹꾹 눌러 수습한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조금은 붉어지고, 마음이 벅차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만드는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든지, 좋아하는 작가라든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들을 가까이 하는 하루하루를 살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충만하다. 왜? 머릿속으로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자. 좋아하는 것을 생각만해도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떠오른다. 아, 요즘 같은 겨울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 손에는 만화책을 들고, 다른 한 손은 과자봉지에 구겨 넣은 채 마음껏 게으름을 피는 나의 어느 오후를 생각하는 것은 왜 이리도 즐거운지. 이렇게 아무리 힘들더라도 마음이 이끄는 소중한 것들은 오늘을 꿋꿋이 살아가게 한다. 실업난이니 경제가 어렵다느니 우는 소리를 매일 해도 그래도  살아야 그 좋은 것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은 그래도 살아야 좋은 일 있을거라는 나직한 격려의 한마디가 아니던가.

그러나 요즘은 ‘젊어서 고생’은 이태백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도록 하는 대학 1학년의 교양필수 대학국어와도 같은 것인지, 좋아하는 것에 한 발 다가서려면 그 이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나도 많아 보인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곧 사회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은 그야말로 취미에 가까운 딜레탕트적인 것으로 남아버릴 수도 있고, 자신이 생에서 담아가야 할 직업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한 기반으로 삼아야되는 숙명과도 같은 무게로 내 어깨에 떡하니 올라타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성인이자 사회인의 문턱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우리는 고민한다.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두고. 

유명 사립대 경제학과 학부생이자 현역 대한민국 군미필자 고시생인 내 절친한 친구 A는 아주 예전부터 좋아하는 일과 직업으로 해야하는 일의 근본적인 불일치점을 그 날카로운 본능으로 직감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줄곧 나는 일단 안정된 직장을 얻어 그 바탕으로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거야라는 별 감흥도 없는 건조한 리듬의 노래를 흥얼거렸드랬다. 

뭐, 그의 생각을 힐난하거나 비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고시를 보고, 취직을 하고, 수능을 다시 봐서 의사가 되곤 하더라. 결국 그 놈의 “좋아하는 것”이 문제다.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를 꿀꺽 삼키게 한 악마의 유혹처럼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은 때론 우리로 하여금 눈 앞의 고통과 난관은 잠시 잊고 계속 그에 달려들도록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인생을 건 한판의 도박일 수도 있고, 무모한 모험일수도 있다. 좋아한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안정된 직업 뒤에 좋아하는 일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드넓은 파라다이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그럼 세상의 무수한 중년들의 한숨은 젊은이들을 기만하기 위한 고도의 기만술인걸까. 

인생은 정해진 시간의 범주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영역을 넓혀가고자 하는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이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와같은 구절이 나온다. 책이 바로 옆에 있지 않아 정확한 인용이 아쉽긴 하지만, 대강의 맥락은 들어맞으리라 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냥 열심히 살면 만년 꼴지, 허리가 부러지도록 죽도록 열심히 살아야 겨우 1위다. 그냥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태한 것도 아닌 보통 인생은 전체 순위에서 4,5위 정도면 정상일 것 같지만, 그냥 열심히 살아도 최하위인 것이다.”

과연 그렇다. 자격증이란 녀석이 이제는 다들 갖고 있어서 겨우 자격증 따봤자 또 겨우 본전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삶이 대체로 이런 마당에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바쁜 와중에 어이없는 사치일까. 따로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하는 오락과는 다르다. 오락은 자신의 시간을 단순히 즐겁게 소비하는 행위지만,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즐기는 행위로부터 새로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분명한 그 삶의 일부인 흐름을 그저 즐기는 것이다.  

무언가를 단순히 오락삼아 즐기는 것은 그저 유희와 향락일 뿐이다.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라는 만화가 있다. 이는 혼자인 개인이 소박한 일상에서 보내는 아담한 생활들의 편린을 재미있게 다룬 만화인데, 이 만화가 공감을 얻고 스노우 캣의 혼자놀기 방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제 말 그대로 혼자놀기를 하지만, 서로의 혼자놀기 비법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같이 놀게 되었다. 이 “따로 또 같이”의 모습에서 나는 생활 속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우리 삶은 초등학교 방학이 다가오면 선생님께 제출하는 큰 원을 시간별로 조각내어 놓은 일과표와 같이 굴러가지 않는다. 여덟시부터 열시까지의 공부와 열시부터 열두시까지의 휴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과 그 시간 속을 헤엄치는 나는 무수히 많은 영역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스치기 마련이다. 

이토록 역동적인 삶 속에서 -‘나중에’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라는 말은 공허한 소비를 지향하는 빛을 잃은 언사일 뿐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자신이 쓰는 시간에 어떠한 영수증도, 애프터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소비자 보호원이 따로 있어 우리가 무분별하게 향락 속에서 소비해버린 시간을 보상해주진 않는다. 

소비만으론 홀로 당당해질 수 없다. 물질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모두 즐겨보려는 딜레탕트적인 취향은 고상해보이지만, 결코 나의 범주를 넘어선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생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내 삶의 맥락에서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통해 보다 오늘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때문이다.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삶을 가리키는 화살표 끝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기위한 가장 행복한 수단이다. 삶의 목적이 즐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삶을 사는 것이 맞는 순서인 것이다. 

문학을 즐기되, 굳이 작가나 시인이 되지 않아도 좋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평론가적 숙명을 홀연히 느끼며 비평에 몰두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지 않아도 좋다. 다만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즐기되, 소비하지말고 계속 해서 생산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가가 창작으로 예술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관객이나 관중은 열렬한 감상과 비판으로 다른 한축을 담당한다. 한마디 말없는 한 조각의 웃음이나 환호성, 또는 거부의 몸짓이나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도 소통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그 소통은 나를 기점으로 나에게 의미있는 부분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삶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은 삶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자꾸만 발견하려는 노력이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그 이후의 것을 나로부터 만들어내려는 마음가짐에 있다. 그로부터 인생은 더욱 즐거워진다.





병장 이창민 (2005-11-18 08:02:14)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산다는것...쉬운건 아닌것 같네요. 하지만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꼭 그렇게 힘든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바로 지금 이순간 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가 두달정도 남은 지금에서야 그런걸 많이 느낍니다. 항상 고달픈 현실을 피하려고만 했지 그 현실을 받아들이려고는 안했거든요. 즉,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할때..그 과정속에서 혹은 그로인해 느낄수 있는 즐거움이란 생각보단 크더군요.  

병장 최세훈 (2005-11-18 10:37:54)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상원씨처럼 분위기에 파묻힐 수 있는 소소한 풍경들을 참 좋아한답니다. 같은 맥락에서, 싫어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생산적인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를 들자면 군생활 같은 것?)
참, 스노우캣 너무 좋아요  

상병 엄보운 (2005-11-18 13:14:31)  
chic!!  

상병 최성호 (2005-11-18 16:53:29)  
좋아하는것을 마음껏 할수 있다는 자유가 날개가 달린 자유같은 느낌이네요.
요즘 책읽기와 영화보기에 재미를 들였는데, 책읽기는 조금씩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영화보기는 참 애매 하거든요. 비디오를 빌려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통 못해서 말이죠.
이번에 밖에 잠시 나갑니다.4시간 후면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심야영화를 보고있겠죠
지금 입이 귀에 걸리는것 같네요.
우리모두 좋아하는 일을 향해 달리는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상병 오재환 (2005-11-18 17:02:38)  
제 맘속에 있던 것들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좋아요 참.  

병장 전유길 (2005-11-19 00:49:07)  
이 글을 읽으니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꿈이 있건 없건,, 즐겁게 사는 녀석이 최고!!" Love&Free中
즐겁게 산다는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모든일이 그렇듯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상병 박민수 (2005-11-19 01:28:53)  
각자의 입장에서 생산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대목에서 시선이 자꾸 멈추네요.
아주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요즘엔 어떠한 것을 즐기는 것조차 트랜드화 되어가는 것만 같거든요.
읽어야 할 책들과 해보아야 할 일들이 쌓이고, 대중들은 그것을 문화의 한 부분 그대로로 거부감 없이 인식하는. 음.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또는 의무감에서- 그것을 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순수한 형태로서의 즐기는 행위는 찾아보기가 힘들어 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도 한 몫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데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들을 기억하고,
떠오르는 상념들을 발전시켜 나갈 때 비로소 서로 간에 진실된 소통이라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요.
만들어 진 것에 대한 일방적인 소비가 아닌, 
-비록 개인의 범주에 머무를지라도- 그것을 통해 다시금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면,
더 즐거워 질 거라고 믿습니다.  

일병 박준수 (2005-11-20 09:31:11)  
쾌청한 하늘이 계속되는 요즘 사념에 곧잘 빠지곤 하는데 제 머릿속을 시원하게 정리해주는 글같습니다.
"세상의 무수한 중년들의 한숨은 젊은이들을 기만하기 위한 고도의 기만술인걸까" 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대학에 붙기만 하면, 제대만 하면, 고시만 패스하면 하고 벼르면서 거기에만 매달리는 삶은 후에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얻어냈더라도 공허함과 허탈감에 빠지게 되겠지요. (실제로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사회와 문화가 대중에게 추천하고 강요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서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 한번뿐인 우리네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상병 정광 (2005-11-20 13:45:31)  
대개는
지금 행복할 수 없으면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병장 김동환 (2005-11-21 09:02:40)  
평소 상원님 글보다 더욱 참신해서 맘에 드는 글이에요.
글쎄 같은 말을 하셔도 설득력있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다니깐요.(웃음)  

상병 김상희 (2005-11-21 10:24:22)  
스노우캣을 처음 알았을 때, TV박스로 눈구멍 두개 뚫어서 덮어쓰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게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냥 즐기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그냥 열심히 살렵니다. 최하위의 삶일지라도... 너무 피곤해요..  

병장 한상원 (2005-11-21 18:01:19)  
동환씨,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글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면 그건 동환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의 훌륭한 글들을 잘 읽고 있기 때문이에요. 호호.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이 <삶의 한가운데>에서 <너 외롭구나>라고 말해줘서 글에 많은 참조가 되었던듯.

상희씨, 저랑 비슷한 일을 해보셨군요. 하하. 스노우캣 이쁘죠. 저는 탁자밑에 들어갔었는데.  

일병 이영준 (2005-11-22 13:45:25)  
왠지 이 글의 BGM은 전람회의 "그 그랬지"를 깔면 좋을꺼 같습니다.
고생 끝 행복이다. 이젠 내 세상이다. 그땐 그랬지~  

병장 정치훈 (2005-11-22 20:01:32)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