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상병 안대섭/051107) 
 
 
 
 
그런 나쁜습관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건 아무래도 대학에 입학한 후 부터이다.

객체가 듣지 못하는 장소에서의 음험한 입놀림은 아무래도 술과 여자 때문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항상 몽롱한 정신으로 좀비처럼 학교 주위를 배회하던 내게 강의 시간은 이런것만 남겨주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언젠가는 쨍하고 볕들날이 어쩌고 하는 말을 남긴 푸쉬킨은 안사람과 바람난 프랑스 제비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했다 상처를 입고 사흘동안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다. 그의 아내를 사랑한 or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황제의 음모라는 설도 있는데, 실제로 황제는 그를 오랫동안 자신의 시종 직책에 두고(관직이라지만, 보통 18세 정도의 아이가 맡는 성인인 그로써는 어쩌면 치욕적인 자리였다) 곁에 둔채 직접! 그의 작품을 검열했다. 그러한 사실도 그의 존재감 때문인지, 그의 아내의 미모 때문인지 말이 많은 대목이다. 예쁘긴 예뻤는듯.




주로 많은 단편으로 알려진 고골은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틀어박혀 '죽은 혼'이라는 장편을 집필하다, 자신은 완벽히 선한 인간상의 인물을 그려낼 수 없음을 통탄하며 책을 불태우고 단식하다 굶어 죽었다. 그의 어머니는 광신적인 신자였는데 항상 어린 고골에게 지옥과 연옥의 고통, 처벌에 대해 주입하였고 그는 평생 그러한 종교적 환영과 망상에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끝에 맞은 최후였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한 축인 톨스토이, 그는 좀 있는 집 자식으로 시골에서 적당한 장원을 운영하며 여유로운 작품 생활을 영위했다. 이런 혜택을 받으면서도 애초에 귀족들의 생활방식에 회의를 품고 있던 그는 말년에 아예 그의 이전 작품들을 '부정하다'며 불태워버리고 종교적인 작품들을 집필하는데 일념했다. 안나 까레니나와 같은 불륜소설(!)을 쓰던 톨스토이가, 고루하고 종교적인 민담 집필가가 되는 순간이었다.(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사상적 조류는 우리나라의 개화기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거대했다.) 




톨스토이의 반대편에 위치한 또다른 거대산맥 도스토옙스키. 모든 러시아인은 톨스토이의 신봉자 혹은 도스토옙스키의 신봉자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취향에 따른 작품 세계의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인데 그 생애 또한 판이했다. 집안도 별 볼일 없었던데다 도박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아직 집필도 안된책의 판권을 도박빚에 저당잡힌채 책을 써야했다. 덕분에 비싼 종이에 밑줄 팍팍 그어가며 퇴고하던 톨스토이와는 달리 그의 사전에 퇴고란 없었다. 얼른 써서 빚 갚아야 되니까...
그나마 여유가 생긴 말년에 종종 유럽 여행을 다니곤했는데, 결국 가는 곳은 또 도박장이었다. 바덴바덴에는 '도스토옙스키 놀다가다'라는 머릿돌이 있는 카지노도 있다한다.




단편과 희곡으로 유명한 안톤 체홉 또한 가난한 장사치 집안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한줄에 얼마, 하는 식으로 글을 써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려야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의대를 수료하고 의사가 된 그였지만 생활이 좀 펴진다, 싶자마자 40줄을 못넘긴채 과로로 사망한다. 




작품 제목이 날개였는지, 여자 주인공의 이름인 '아샤'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 작품의 역시 기억이 나지않는 이름의 작가는(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도 솔직히 헷갈리는 매우 불확실한 정보임을 미리 밝혀두자!) 평생 한 여자를 짝사랑했는데, 여자가 독일로 시집가자 거기까지 쫓아가서 옆에 집짓고 살다 늙어죽었다. 







고골의 외투를 해석하는 여덟가지 관점이니, 19세기 소설과 이전 소설과의 플롯의 차이점이니 하는 등등 여러 교수, 강사 분들이 유익한 내용을 충분히 많이, 흥미롭게 가르친건 확실한데 아쉽게도 나는 B급 학생이었던것 같다. (건실하게 경청했으면 더욱 좋았을것을 하는 후회도 많이 든다!)

러시아 문학관련 전공을 세개나 신청해서 듣고 서로서로 겹치는 커리큘럼을 이용 여기서 들은 내용으로 저기가서 발표하고, 레폿쓰고, 시험보던 버릇을 못버리고 예까지 와서 글줄 올린다는게 카피 앤 페이스트에 지나지 않으니 좀 그렇긴하다.


하지만 어쩌랴, 악마가 몰래 다가와 귀기울이더라도 나는 계속 수근거릴테다.

재밌거든!





병장 박상훈 (2005-11-07 11:38:24)  
전 안좋은습관이라 생각해서 늘 배제하려 하지만, 쉽게 안되더군요. 
완전 악마의유혹!  

상병 고계영 (2005-11-07 12:31:37)  
누군가를 다른 관점으로 보게되는 뒷담화.
한번빠져들면 자신이 알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그레도 욕하면서 배울 것이라고는 저렇게 적나라하게 파헤쳐지는 존재가 '나' 자신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 너무도 소심한지라.  

상병 김강록 (2005-11-07 20:02:06)  
뒷담화(저는 고3때까지 이 단어를 '뒷다마'인 줄 알았습니다)가 비판받는 이유는 이런 걸 겁니다. 비겁하다, 소심하다, 등등. 거기까진 좋은데, 뒷담화에 대한 비판의 결과는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이 되기보다는 그저 마냥 침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봅니다.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세상의 가능성을 좀먹어 왔습니다.

칸트는 양심을 일컬어 우리들 마음 속에 빛나는 별이라 했지만 기실 그것은 몸속에 설치된 CCTV의 전원 불빛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