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회의와 희망- 유럽에서의 기억 (상병 한상원/050912) 
 
 
 
 
"칼럼에 올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여행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파편에 불과한지라 내글내생각에 올립니다."

라고 12일 11시경에 고민하며 글을 올렸었는데, 결국 다시 칼럼에 올립니다. 쩝.

답글 달아주신 민수님께 특히 부끄럽네요.

어쨌든 제글 제생각일 뿐이지만, 지금은 여행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몇마디 더붙여, 그저 홀로 내지르는게 아니라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 정도면 칼럼의 요건을 갖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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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는 지금이, 현실이 싫다하여 그냥 떠나자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강박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쿨한 남자/여자 컴플렉스를 요구받고, 메트로섹슈얼 해지고자 하는 강박.
자격증을 따야하는 강박. 
그리고 사람들이 대체로 말하는 '멋지게' 살아야하는 강박.

주5일 근무제 혹은 주2일 휴무제의 시대, 떠나고자 하는 강박. 여행의 강박을 생각하며 글을 써봅니다.

그리고 군생활을 하면서 최소한 2년은 힘겨울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사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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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여행의 시절이 저물었다. 요즘의 주5일제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자 하는 욕구에 불타오른다. 그 중에서도 혈기왕성한 우리 20대의 청춘들은 한번쯤 유럽을 꿈꾼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만난 예술적 영혼의 정수들만이 모여 있고, 낭만과 풍류가 넘쳐흐르는 우리가 사는 이 땅과는 전혀 다를 것 같은 그런 꿈을 꾼다. 그리고 해마다 유럽으로 향하는 무수한 배낭들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두근두근하게 만든다.

여행은 매력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여행에 관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네버랜드를 끊없이 동경했던 웬디의 절실한 감정처럼 그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고픈 마음에 어깨죽지에 잃어버린 꿈의 날개가 다시 솟아오를 것만 같은 간질간질함을 느낀다. 이국의 풍경과 광활한 자유의 냄새가 솔솔 풍겨오르는 사진 한 장앞에서 우리는 끊없는 갈증을 느낀다. 그 갈증은 가지지 못한 경험에 대한 절실한 갈구에서, 혹은 쳇바퀴 돌 듯 같은 자리를 반복하지만 원망스럽게도 소진되기만 하는 부족한 나를 뼈저리게 느끼는 당혹감에서 비롯된다. 그럴때마다 혼자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자. 잠시라도 벗어나고파.”

2002년의 여름, 나는 서유럽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어딜가나 만날 수 있었던 낯선 세상의 얼굴은 낯섦과 동시에 신기함, 그리고 흥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 인간은 얼마나 싫증을 잘 내는 존재인가. 여정이 지속되면서 여행이 일상으로 수렴하는 첫 걸음을 딛는 순간,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고유한 풍경들이 반복되며 점차 낯설음이라는 커다란 범주로 한데 묶어져버리는 순간이 온다. 

나는 각 나라의 고유한 성당이나 교회들을 지나치며 점차 고딕 형식이든 로마네스크 형식이든, 분간할 나위 없이 그저 유명한 교회로 고개를 끄덕여버리는 불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고 있었고, 그 먼 유럽에서까지 너무나도 익숙하게 주변을 스쳐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내가 두고 온 나의 무던한 일상이 떠올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에 든 가이드 북은 여행까지 와서 내 일정을 규정하려는 학교 필수 수업 시간표인것만 같이 짜증스러워 결국 영국 어느 민박의 휴지통에 버려졌다. 국경을 넘는 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고,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흰 피부의 낯선 사람들은 마치 꽤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던 양 익숙해졌다. 아,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그들과의 대화도 흥미진진함을 잃어버렸다.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여행이 일상으로 함몰되는 순간, 모험은 끝이 나고 피터팬처럼 어린아이로 내내 머물 수 없는 웬디는 어른으로 향하는 삶의 시계를 다시 들여다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을 너무나도 갈구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아, 참 좋은 경험이었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자꾸 달랜다. 과연 여행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혼자만의 좋은 경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것? 나의 경우는 그저 남들이 유럽, 유럽, 하기에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해버린 떠나야만 한다는 강박을 스스로 해소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 이제 나도 유럽 물을 먹어본 사람으로서 어딜가나 자랑스럽게 나는 유럽을 다녀왔노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자신감의 이면에는 그 유럽을 가기위해 1년 가까이를 고생고생하며 돈을 모아야했던 나의 눈물나는 생활들이 괄호 열고, 괄호 닫고, 로 묶여 생략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여행이란 단어가 풍기는 냄새는 늘 우리를 유혹하지만, 결국 여행에서 남게 되는 것은 엄청난 예산을 소비해버렸다는 대차대조표와 여행비용으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괜히 한번 돌아보게 되는 후회 뿐이다. 거기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뒤에 남겨진 무거운 발걸음이나 길을 잃고 헤맸던 묵직한 일화들이 많다. 그것도 추억이라고? 맞다. 추억이긴 하다. 고생했으니 안 잊혀지겠지. 마이너스의 감정을 플러스의 감정으로 굳이 바꾸어내려는 노력을 격하시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사양하련다. 플러스를 그저 플러스로 담아가는 길을 없을까.

유럽에서의 나날들이 완전 헛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나의 동행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런저런 고생들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유럽의 문물들은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벨기에의 브뤼셀이나 프라하에서 마신 맥주의 알싸한 정취는 정말 좋은 기억이다. 하지만 나는 때론 그 기억을 의심한다. 나의 경험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제공해서 그 경험들을 내가 좋게끔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의 강박이 그 경험들을 이루어지지 못한 아련한 짝사랑의 추억처럼 계속 미화시키는지.

미안하지만, 한 가지 폭로할게 있다. 하나, 베네치아는 정말 물의 도시다. 둘, 그리고 오늘날의 사진이나 이미지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다. 정말이다. 유럽의 곳곳은 우리가 영화나 사진으로 본 것과 정말 똑같다. 에펠탑이나 개선문을 올려다보고, 바티칸 한 가운데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낀다. 왜냐, 의식, 무의식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보아왔던 것들이므로.

유럽을 다녀와서 내가 거둔 가장 커다란 수확은 나의 일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본 일이다. 내가 즐겼던 야경 속의 맥주나 동행과의 소소한 대화가 보다 소중했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그를 잃고 살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가 나의 하루를 설계하고, 나의 계획을 마음대로 바꾸고,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걷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걷다가 아무데나 주저앉아서 쉬기도 하고, 스쳐만나는 낯선 사람과 여행자라는 실낱같지만 결국은 본질적인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로와졌고, 내가 갖고 있던 습관적인 억압들에서 벗어났다. 나라는 이미지를 굳이 구성하지 않고 있어도 되는, 주변을 방황하는 유령 같은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 살아도 되지 않는 솔직하게 게으르고 나태한 나를 만난다. 그걸 유럽에서 돌아온 다음에야 겨우 깨달았다. 이런 소소한 자유도 없이 나는 살았던 것이다. 여행의 소중함은 바로 그런게 아닐까. 

무언가 특이한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막연히 동경하게 되는 것보다 내 일상 속에 숨어있던 내가 진정 원했던 고요한 평화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일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여행 속에서 느꼈던 소중한 것들을 일상에서 다시 회복하는 일이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커다란 행복이다. 

여행을 가자는 말이나,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아마 내가 지금 잊고 살고 있는 것을 떠남과 돌아옴의 과정 속에서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본능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래. 전역을 하면, 다들 어디론가 한 번은 떠나자. 향하는 곳이 거창한 문물들이 버티는 유럽의 어느 곳이 아니라 바로 이웃하는 마을이나 이름 없는 우리집 뒷산일지라도.

여행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일 뿐. 

여행으로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그간 살아온 배경을 다른 배경 속에서 멀찍이 들여다보는 것에 불과하다. 비싼 돈 들여 유럽을 간다해도, 결국 좋은 동행과 즐거운 마음, 소소한 자유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그 흥취 그 이상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어디서나 즐겁고 신날 수 있는 것을 굳이 멀리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못 가본 곳이라면 바로 주변에 멋진 세상들이 있는데.


어디로 가든. 내가 왜 떠나는지,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만 알게 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일병 박민수 (2005-09-13 00:47:30)  
여행을 갔을 때에 가장 뚜렸하게 남는 감상이 있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에 무수히 그렸던 그곳을, 상상으로 가슴 벅찬 기대를 하고, 설레임에 잠을 설치게 만들던 그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다는 것. 진실로 그곳의 사물을 대한다는 것. 
진실이 상상을 규제하면서 내가 꿈꿨던 모든 것을 사실로 확인하는 것. 그때의 감상. 
그로인해 어디를 가든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머리속, 마음속에서만 살아있던 그것을 사실로 확인하는 순간 그 감정 또한 정화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여행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진실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 만날 수 있는 갖가지 감상들. 과연 언어라는 도구를 빌려 하나같이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통해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하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감정을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틀림없이 의미있는 시간일 것입니다.  

상병 김영서 (2005-09-13 12:41:25)  
멋진 경험 멋진 경험담.
늘 잘 읽고 있습니다.  

병장 구태우 (2005-09-14 23:42:11)  
칼럼 잘 읽었습니다. 상원씨. 아직 한반도를 한번도 벗어나본적 없는 저에게는 외국이란 것은 
아직도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 곳을 나간다면 학기동안 조금씩 돈을 모아 
방학때 마다 배낭여행을 다니고자 하고픈 소망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남기고자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버리는 것이 여행이겠지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한 번 자유인이 되어보고싶어요..  

병장 한승훈 (2005-09-16 18:35:21)  
칼럼 잘 읽었습니다. 일상으로 부터의 일탈인 여행속에서, 다시 일상속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무서운지적...
앞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면, 하루 하루 새로울 수 있도록, 많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가져봅니다. 
왜냐면, 시오노나나미는 로마 시대의 조각물 하나 속에서도 새로운 생각 무궁 무진하게 하니까요.(웃음)  

상병 채종국 (2005-09-23 07:55:43)  
제가 생각하는 여행과는 다른 이야기네요. 칼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