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비판 (상병 김강록/050909) 
 
 
 
 
53. 수학 비판 :

오랫동안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야심차게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북쪽 하늘의 별들을 연구해놓아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허나, 저녁에 본청에서 청소(!)하고 내려오며 바라본 하늘은 화창했다. 한동안 그 간단한 북두칠성도 찾을 수 없었다. 허나, 오늘은 보인다. 이따 있을 새벽 근무가 기대된다. 비록 안타깝게도 부사수이지만 말이다. 제기랄 부사수라니! 아무튼, 말이다.

별 하나, 별 둘……. 헌데, 사람들은 왜 별을 셀까. 무식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별자리의 전설을 곱씹는 것에 비하면, 현저히 단순하고 저차원적이며 미학적으로도 볼품이 없다. 왜, 셀까. 잠이 들고 싶어서라면 너무나 기능주의적 견해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심심해서라면, 도매가에 너무 값싼 방법을 택한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싼 게 비지떡인데 말이다. 너무 셀 수 없이 많아서, 그게 불안해서 세는 거라면 당신의 편집증을 의심하고 싶다. 마침내 별의 수를 알아내어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면, 그것은 별을 정복하고자 함이 아닌가. 정복욕은 남성의 편집증이다. 다시 말해 남성의 성 질환이다.

여기 짜장면 세 그릇이요! 우리는 짜장면을 주문할 때도, '센다'. 돈도 '센다'. 백인들도 흑인 노예들을 사냥해서는, 역시 세었을 것이다. 센다는 행위는 어디서든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언가를 수의 질서로 편입시키는 것,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분류하고 관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센다는 행위의 의미이다. 그러니 누구의 수학인고? 라고 묻는다면, 수학은 정복자의 윤리이고 남성의 윤리이다. 일종의 성 질환인데, 과연 피타고라스는 남자였다. 요새도 사이비 교단은 대다수가 남성 교주를 모신다.

병세, 혹은 교세는 융성하여 수학은 이제 학교에서도 중요한 과목이다. 모든 입시생들의 명운은 수학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학은 우생학과도 관련이 있으며, 심지어는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영어 잘 하는 학생은 집에 돈이 많은 아이라며 비난받아도 수학 잘 하는 학생은 도무지 신성불가침이다. 수학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고귀함 그 자체이다.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말라비틀어지도록 다짜고짜 내리쬐는 태양과도 같이 찬란하며, 그래서일까. 높은 남아출산률은 말이다.

예수보다, 마호메트보다 위대한 건 기실 피타고라스였다. 르네상스는 묵은 고대 종교의 재발견이었고 그리하여 피타고라스의 후예들은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종교보다도 거대하고 무차별적인 교단을 이 땅에 건설했다. 과연 주말에 교회를 한번이나 나갈까말까 하는 학생들은 주중 내내 책상머리에서 그들의 진정한 믿음을 향해 경배한다.

이 지상 최대의 종교가 바로 지상 최대의 전염병을 퍼뜨리는 온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인류의 이 꼴을 보라! TV를 보면 덧셈뺄셈을 하는 돼지가 나온다. 그 돼지는 수학을 온전히 이해했을까? 그래도 인류 수준의 정도는 이해했다고 본다. 여전히 세계는 암흑이고, 르네상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허나 이제 우리는 실마리를 잡았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뛰쳐나갈 때는 바로 지금이다.

* 이날 밤 다시 구름이 몰려들었다. 별은 물론 보이지 않았고, 일기 쓰느라 무리한 나는 비몽사몽,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스러워 했다.



2005. 9. 7. 水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병장 박근범 (2005-09-09 10:04:42)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이를수 있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들은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만은 논리만 잘 정립하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수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가장 많이 닮아있습니다. 수학은 그래서 배우는게 아닐까요.  

상병 김강록 (2005-09-09 10:09:38)  
진리라는 게 있다면 그건 해석의 문제일 겁니다. 기왕이면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해보는 게 도달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에 보다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수학은, 제가 보기엔 일종의 편식입니다.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사고하는, 사고의 편식.  

일병 이기영 (2005-09-09 10:54:41)  
수학.... 진리에 이른다... 사고의 편식이다... 으음.... 뭐 틀린말은 아닌거 같에요
'1 + 1 = 2' 라는건 누구나 아는 '진리' 일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1 + 1 = 11'.. 2라는 편견을 버리고 이렇게 생각하는게 어쩌면 김강록님의 의견이 아닐까..  

상병 한상원 (2005-09-09 11:19:34)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데로 나아간다고. 그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욕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제에의 욕구는 소유욕을 포함하는 더 큰 범주의 것이니까요. 

수학은 인간의 학문 중에 가장 인간의 성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을 추상적인 기호로 환원하여 체계화하니까요. 영화 <매트릭스>의 녹색 부호들로 이루어진 수학적 세상은 그 극단을 그려냅니다. 우리네 삶은 수학적 매트릭스를 향해 느부갓네살 호 처럼 날아갑니다. 우리의 가치는 듀오라는 스미스 요원의 후예에 의해 100을 기준으로 각각 몇 점으로 매겨지고, 연봉의 부등호에 따라 선호가 결정됩니다. 인격의 원만한 곡선은 가차없이 미분되어 한쪽으로 질주하는 직선으로 날카로워집니다. 오직 분명한게 좋으니까요.  

일병 안대섭 (2005-09-09 11:23:00)  
질서정연하게 열중셔 하고 있는 논리야말로 정신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독이죠.


백설공주를 위해 왕비는 얼마나 윤기 흐르는 사과를 정성들여 골라냈을까요.  

상병 김동환 (2005-09-09 11:57:19)  
수학 내지는 논리학이 강조되는 것은
통합성 내지는 통일성이라는 다분히 사회적인 이유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좀더 복잡한 소통을 위한 기호적인 문제.
사실 살면서 꼭 써먹어야 하는 숫자를 세거나 덧셈 뺄셈을 하는쪽은 
수학이 아니라 인식의 영역이거든요. 복잡한 소통이 요구되지 않는다면 수학은 별 필요가 없죠. 

하지만 현재의 세계는 그 '복잡한 소통'의 결과라는 점.
수학비판은 복잡한 소통이 가져다 준 여유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요.
그래서 딜레마입니다. 인간이 지금껏 자기를 보호해준 사회에서 탈주하는 순간. 
논리와 수학이라는 공동의 언어를 거부하는 순간.
수학비판을 할 수있는 여유는 증발해 버릴테니까요.  

상병 이천용 (2005-09-09 12:00:09)  
고등학교때 싫어하던 수학에 짜증내면서 피타코라스부터 뉴턴, 가우스 페르마, 기타등등을 저주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일단 가우스 부터 없애버리겠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웃음)
그치만, 수학 없는 세상을 생각하긴 더 싫은걸요.  

일병 강승민 (2005-09-09 13:21:29)  
결국은 근대 이후의 수학을 말하는것 같네요
근대 이전의 수학은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언어, 로고스적 도상에 가까웠다면 측
량을 중심으로 한 근대 이후의 수학은 권력자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는 메타포로서 존재하지 않았나 싶네요
모의 고사 문제지에 고대 철학자의 이데아가 '객관식'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수잔 손탁의 말처럼 근대성의 유령들이 결코 소크라테스의 좀비얼굴과 다름없음을 일깨우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병장 정진홍 (2005-09-09 14:18:36)  
수학은 단지 재미있어서 하는 겁니다. 응용수학의 경우는 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하기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고요.제 생각  

상병 유기봉 (2005-09-09 14:47:17)  
요즘 '물질,정신 그리고 수학'이라는 책을 보면,생물학자하고 수학자가 논쟁을 벌이는데 주된 내용이 수학이란 절대적인 진리인가 아닌가이죠.한번 읽어보심도 좋을듯 하네요....

요즘 읽고 있는데 내용이 꽤 빡세서 잘 머리속에 안들어오내요.경문 수학산책 시리즈는 읽고 싶은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상병 신재연 (2005-09-09 19:53:24)  
여러분들중에 막연하고 불확실한 무엇 때문에 고민하신분들 계십니까? 혹은, 그것때문에 짜증이 나신 분 계십니까? 저것을 표현해야겠는데 뭔가 표현할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신선한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날때... 비유가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막연한 답답함을 주고 고민을 안겨줄 때가 있죠. 이런 고민들 때문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계승해 발전시켜 사용해 가는 것이겠죠.
수학은, '언어'라고 불리우는 수많은 형태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정확히는 수학에서의 숫자를 말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수학은 불확실하고 연속적인 무언가를 확실하게 끊어주는 도구라 봅니다. 예를들어, 어떤 책꽂이에 책이 3권이 있었다고 합시다. 여기에 5권의 책을 누군가 갖다놔서 책의 갯수가 늘어났습니다. 만약, 수를 모르고 수학을 모른다면 이런 개념은 그냥 "어? 책이 많아졌다"까지만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이라는 마법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음... 처음에는 책이 3권 꽂혀있었는데 5권이 더 늘어났네. 그러면 3+5는 8... 총 8권의 책이 저기에 있구나"라는 식의 사고가 가능해지죠. 수학은, 불확실성을 참지못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훌륭한 창조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병장 문형섭 (2005-09-10 21:45:12)  
수학만큼 상상력을 펼칠수 있는 학문도 드물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그런 답을 찾는 수학이 아니라, 정해진 공식대로 수를 집어넣는 그런 수학이 아니라.
정말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에서 만큼이나 수학에서도 상상력은 중요하답니다.  
  
상병 한상원 (2005-09-11 07:15:04)  
다들 말씀이 다 옳으십니다. 언어로서, 그리고 합리적인 세계를 사고하는 수단으로서의 수학은 인류가 가진 찬란한 재능 중 하나구요. 

허나, 강록군이 사용하는 '상징'으로서의 수학은, 진리에 대한 획일화된 잣대만을 사용하고자 하는 독단과 편협한 사고를 비판하고자 하는데 사용된 것 같네요. 하나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평가는 그 존재가 지니는 그 자체의 가치와 함께 그 존재가 속해있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판단되어야 하니까요. 

일제치하의 우리 사회의 지식인 개개인은 걸출한 문인이거나 비평가, 사업가였으나 시대의 맥락에서는 그렇지 못했죠. 르네상스기를 거쳐 근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학은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경계 너머의 것들을 기호로 형상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기제였으나, 특히 오늘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는 강록군이 가하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상병 손동철 (2005-09-11 15:59:16)  
요새 기호논리학을 조금 공부했더랬죠. 사람의 언어가 인공기호화되어 분배법칙, 결합법칙, 드모르간법칙 등등 여러 수학의 공식으로 정리되는데. 거 신기하더라구요. 복잡한 논증이나 주장도 기호화되면 인수분해하는 기분으로 간결하고도 경쾌하게 그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논리적 과정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언어 아니 사람의 주장마저도 기호화하여 확실성으로 만들려는 수학의 성질에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질이 니체가 보면 폭력으로 보이겠죠? 광학의지, 수학에 대한 맹신 그것은 우상숭배, 판단의 포기, 노예로의 전락 뭐 그런 표현으로.  
  
병장 박성용 (2005-09-12 11:35:25)  
절대화 할 수 없는 것을 절대화 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수학비판은 그러한 인식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지만 피타고라스에 대한 부분은 좀 인식이 달라요. 피타고라스는 기실 신비주의자에 더, 상대주의자에 더 가까웠으니까요. 피타고라스의 잘못이 아니라 피타고라스를 잘못 이해한 우리네 근대 수학의 잘못일테니.  

상병 김강록 (2005-09-12 13:39:15)  
재연님 / 언어는, 그러한 점으로 인해 인류의 가장 오랜 도그마 중의 하나가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참을 수 없는 결정불가능성'이란 기실 뒤집어보면 언어가 낳은 하나의 강박관념입니다.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언어의 질서에 편입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언어의 질서라는 것은 대체로 남/녀 공/사 문화/야만 등의 이항대립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때문에 언어에만 집착해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공도 사도 아닌 것, 문화도 야만도 아닌 것, 등 '사이에 있는 것'들을 결코 온전히 설명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굳이 인식의 틀로서 언어만을 고집하여 사물을 이항대립 구조 속에 가두고 말았어요. 이것이 바로 언어가 낳은 폭압이죠.

비트겐슈타인─전기의─은 이러한 언어의 한계야말로 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인간은 온갖 의문들을 풀기 위해 씨름해왔습니다만, 그간의 철학은 과연 성공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왔을까요? 철학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더 많은 문제들에 맞딱뜨리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커져가고만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역시 전기의─은 이를, 인간이 언어로 사고 가능한 범위 너머까지 그 언어로써 사고하려 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 말하며, 우리가 사고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명제가 바로 그 유명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이죠.

수학 역시 하나의 관념적인 질서를 통해 사물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언어의 일부, 내지는 일종의 특화된 언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수학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인 위치─'일반성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에 달한─에 자리한 언어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이제 그 강박증이 온당한 것이었는지를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뭐든 지나치면 해로운 법이지요. 다른 건 제쳐두고서라도, 우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병장 김남식 (2005-09-12 15:17:30)  
아니! 온당한 거 둘째치고 수학이 얼마나 판타스틱한데!!! 
그 유명한 홍싱대 옹도 이야기했듯이 수학은 논리입니다. 셈은 다른 경제라든지 공학에 더 많죠.  

상병 김강록 (2005-09-12 15:37:46)  
남식님 / 말씀대로, 수학은 논리입니다. 논리적인 것은 논리적이지만─물론!─'논리적인 것은 비논리적인 것보다 우월하다'라는 믿음은 신앙적인 게 아닐까요? 논리를 통해서는 논리를 증명해낼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서 스스로의 무게를 달아볼 수 없듯이 말이에요.  

병장 김남식 (2005-09-12 15:45:23)  
그리고 1+1=2라는 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공리axiom 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수학은 이 세계의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간단한 정리와 공리 하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냥 게임같이요.  

병장 김남식 (2005-09-12 15:47:35)  
엥, 리플달다가 바쁜 사이 중간에 리플이 올라왔네요. 저는 수학이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학 자체가 그런 가치판단에 무관하다는 거죠.  

병장 임지훈 (2005-09-12 16:09:28)  
수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수학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학문으로서 의문에 대해 인간을 초월하는 해답이 없죠. 모든걸 대답할수 있죠.거기서 인간은 안정감을 느낄수 있겠고요...수학은 모든 학문의 도구 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 자체는 목적이 되지 않아요..그 수학의 근원은 언어라고 볼수 있고요.. 왜냐?? 수학도 일종의 약속의 학문이고 논리와 추측이 결합되어 있죠. 언어를 이해하는데 직관이 필요하죠? 수학도 그렇잖아요...전 수학을 그렇게 이해해요.. 수학이 철학적이라고도 할수 있겠네요. limit 라는 것에서 인간이 어느 한 정점으로 가는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존재라고도 말할수 있겠고...(절대 그 정점에 도달하지 않죠.)허허~ 수학이 숫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 정말 재밌게 공부할수 있을꺼에요  

상병 김강록 (2005-09-12 16:42:58)  
남식님 / 그저 편의상의 수사가 아닌 엄격한 의미에서─라는 말도 사실은 애매합니다만─'수학 자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남식님이 말하는 '게임같은 수학', 외부로 뻗어나가지 않는 '수학 내부에서의 수학'이라면, 저 역시 남식님과 의견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표상으로서의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아이가 미끄럼틀을 타며 노는 듯한 그 '강철같은 명랑함'을 간직한 생성의 유희로서의 수학이라면, 저로서도 환영할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꿈꾸는 새로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의미는 사용에 있는 법"입니다. ('법'이란 말이 써놓고 보니 다소 거북합니다만, 일단은.) '수학 외부의 수학'을 생각한다면, 이런 점들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수학적 사고는 인간이 채택 가능한 여타의 무수한 사고 방식들 중에서 어떤 특권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는 않았나? 그러면서 다른 사고 방식들에 대한 어떤 억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았나? 완벽한 '수학 내부의 세계'를 무리하게 현실 세계에 강요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그것은, 수학이 적절한─이란 다분히 윤리적인 의미의─선을 넘어서 너무 월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류가 저 위대한 수학을 저 수천년 묵은 피타고라스의 신전에서 끌어내렸을 때, 오히려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혹시 인류 앞에 또 한번의 르네상스가 펼쳐질 여지가 저 위대한 수학의 뒤켠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  

일병 안대섭 (2005-09-12 16:49:53)  
이 세상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학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구로써의 수학 자체는 가치판단과 무관할지 모르지만, 그 수학이 아우터 플레인이
아닌 우리네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 이미 매우 정치성을 띄게 될 밖에요.


그런 의미에서 수학은 너무 멀리온듯 합니다. 
애꿎은 피타고라스옹이 그 희생자가 되더라도 별 수 없죠...읍참마속일 수도 있구요. 


니 킥으로 확 분질러버린다고, 수학의 위상이 사라진다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학이
사리지지는 않을테니까 한번 과감해지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병장 김남식 (2005-09-12 16:53:13)  
음 그런 의미였군요.

전 오히려 수학이 불쌍했는데..지구인의 절대다수가 수학을 미워하잖아요.  

상병 김강록 (2005-09-12 16:57:14)  
남식님 / 불행하게도, 지구인들의 역사를 통틀어 절대다수는 늘 힘이 없었습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병 김진호 (2005-09-15 09:30:23)  
전 수학을 진리를 알게되는 과정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데 왜 이렇게 되는가?? 물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이라는 규칙에 의해서 풀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수학이 아닌 다른 도구로(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면 수학이 필요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간들이 언어가 아닌 초능력(?텔레파시?)을 통해 막연한 느낌을 타인에게 그대로 그리고 생각을 전할 수 있으면 수학이나 언어는 필요없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자기 나름의 언어로 소화를 하던지 아님 그 느낌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어떤 느낌을 수신했는데 아!! 할수도 있겠죠..인간의 이런 한계성 때문에 서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 수학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야 수학의 신봉은 줄어들수 있지 않을까요??  

상병 김강록 (2005-09-15 11:17:41)  
진호님 / 우선 '진리'란 과연 무엇이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진리란 사물 자체라기보다는 사물에 대한 해석이며 또한 발견물이라기보다는 발명품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사물을 인간이 만든 어떤 정형화된─플라톤이나 칸트 류의 군상이 즐겨 애용한 방법으로서, 허나 다분히 자의적인─범주 안으로 포획하는 것, 그런 식으로 미지의 무언가를 인간이 통제 가능한 곳에 묶어둠으로써 정서적인 안정을 꾀하는 겁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본문에서는 주로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진리의지'란 기실 남성적인 정복욕에 의해 추동된 일종의 강박관념이란 것을. 데카르트가 바로 그 전형이지요.)

수학은 그러한 '진리'와 사물을 엮어주는 여러가지 관계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허나 수학은 그것이 전면으로 표방하고 있는 절대성 덕분에 다른 관계들 사이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수학적 근거'를 내세운 주장은 다른 어떤 주장보다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윤리를 담고 있고 누구를 위한 담론인지와는 별개로 말이죠. 수학으로 인해 우리에게 보다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가능해진 듯도 하지만, 완전히 그 반대이기도 합니다. 수학이 담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무방비 상태이기 십상이거든요.

따라서 수학을 통해 인류가 얻은 많은 것들만큼이나 수학의 장막에 가려져 인류가 잃어버려야 했던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정작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은 아니었을까요? 인류의 가장 오랜 '도구'─물론 단지 도구일 뿐이라고 수학의 범위를 협소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 근대의 수학을 놓고 보자면─인 수학으로부터 인간은 사실 소외된 채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어 수학적 가치가 도리어 인간을 규율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단지 '착각'하며 위안을 얻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상병 한상천 (2005-09-15 15:05:21)  
전 항상 숫자와 방정식 논리가 인간의 이성을 이끌어 간다고 믿었죠
하지만 평생동안 그것을 추구하고 나서 물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논리인지?
누가 이성을 결정하는지를?
제가 그걸 탐구하는 동안 육체와 정신 환상들이 반복되어 나타났죠
저의 연구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신비로운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거기엔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 깨달았습니다. 바로 당신때문에
당신은 내 존재의 이유이고
나의 모든 이유는 당신입니다.

감사합니다.

뷰리풀 마인드의 마지막에 존네쉬 박사가 했던 연설문중 하나입니다.
칼럼과는 안맞지만 숫자의 논리에 대해 말하기에 한번 적어봅니다.  

상병 김진호 (2005-09-15 18:07:32)  
김강록님 / 진리를 수학으로 통제하면서 수학에 중독(??)되고 그것이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강록님과 비슷한 생각인지 아닌지... 수학적 생각을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 얽매이는 것은 아닌가?? 수학적 잣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건 당연하고 어쩔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어떤 형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이기는 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진리는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래서 진리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진리는 있되 그것을 느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진리 사물에 대한 해석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가정을 두고 그 가정을 운용하면서 오류(2*4=8인데 2*4=6이라고 생각하지 않는..2*4=8이라는 것도 가정에 의한 결과입니다)가 나오지 않는 깨끗한 답이 진리인 경우를 해석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학적이 아닌 다른 가정으로 진리를 구할 수도 있겠죠... 저는 이러한 다른 가정이 진리추구의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극소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학이 절대적이 되는 이유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수학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논리전개를 담당할 수 있는, 지금까지 나온 수단중에 최선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숫자와 정해진 다양한 기호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수학이 지금까지 남아 건재하고 교육의 대상이 되는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수학을 배우지만 다른 면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김강록님의 말씀처럼 수학으로만 판단하면 뭐든걸 논리적으로 메마른 인간의 모습을 나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꽃을 들자 부처님 제자가 웃었던 것도 예가 될 수 있는거 같은데 작은 신호로도 뭔가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크나큰 바램이겠지만요... 그러면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는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글을 쓰다가 3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저녁먹고 싶은데...(땀)... 업무때문에...그래서 뒤엔 주절주절 되었는데... 원래 깊이 생각하는 체질도 아니고 깊이 생각도 못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생각이란걸 조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병 박영민 (2005-11-12 14:05:15)  
1 + 1 = 2 라는 사실을 위하여 수학이 학문이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수학의 필요성은

'상상의 증명' 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피타고라스의 정리에서

현재 연구되는 초끈이론까지...

자신의 상상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수학자임과 동시에 물리학자 등 여러가지 학문을 동시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