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5 이상문학상 수상집-김훈 '화장' 외/김훈 외/6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특별 수상작이었던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님의 향기'. '화장'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은 특별히 눈에 차는 것이 없었다. 박민규의 단편을 볼 수 있었다는 건 나름대로 희망이었을까. '발칸의 장미를 네게 주었네'라거나 '칵테일 슈가'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 같은 작품을 보며 든 감상은, 이쯤이라면 나도 금새 등단할 수 있겠구나.
2.시인의 여자들/찰스 부코스키/9
번역 안 되기로 유명한 '비트닉 문학'의 얼마 되지 않는 번역 작품. 인류 마지막 펑크 찰스 부코스키의 자전적 장편소설. '무슨 일이 생기면 술을 마신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게 하려고 술을 마신다'라거나 '책이 잘 팔리는 작가는 쓰레기다. 책이 잘 팔리지 않지만 스스로 훌륭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놈은 더 쓰레기다. 하지만 역시 최악은, 아무도 인쇄해주지 않는 글을 쓰며 자위하는 나 같은 놈이다'. 기타 등등의 엄청난 인용구로 가득 찬 아포리즘 서적.
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카타야마 쿄이치/2
이런 걸 읽다니 내가 미쳤었나 보다. 그렇고 그런 일본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몇몇 scene의 비주얼적 묘사를 제외하고는 볼 것이 전혀 없다. 그 묘사들마저도 글쎄, 영화적 영상미는 그럴싸하다만 단지 그뿐이다. 에쿠니 가오리 이후로 유행하는 제 3기의 번역 일본 소설들-개인적으로 하루키 이전이 1기, 하루키/류/다자이의 2기, 그리고 이후를 3기로 구분한다-은 역시, 되도록 읽을 필요가 없다.
4.선물/??/3
처세술 책도 읽은 걸 보면, 아마 참 책이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냥 그럭저럭 읽을 만 했고, 그럭저럭 까먹을 만 했던 책.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풀어가는 것도 나름 재능이라고 생각하기에 3점 씩이나 부여한다.
5.체호프 단편집/안톤 체홉/9
단편이라면 모름지기 이정도는 되어야 된다! 라고 지르자니 내 수준이 너무 얕음에 슬퍼진다. 오헨리나 에드가 앨런 포 급의, 그야말로 단편의 완벽한 왕도를 보여주는 작품. 년초에 읽었으니 개개의 제목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버릴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기억된다. 단편 습작이 너무 잘 되는 것 같아요, 하고 자만에 빠진 미등단 작가에게 절망을 줄 수 있는 책. 역시, 단편이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된다. 이런 인물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부조리를 연출함이 지나치게 조리에 맞다.
6.톨스토이 단편집/레오 톨스토이/9
진중문고로 이런 위험한(?) 책이 나옴에 굉장히 감동했다. 민중적 희망과 삶을 소박하고 강인한 문체로 끌어가는 작가의 위대함이 놀랍다. 체호프 단편집과 함께, 단편 습작기에 있는 미등단 작가들에게 아주 위험한 책.
7.그리스 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스키/9
올 한 해 무수한 추천이 있었기에, 특별히 더 이상 부언하고 싶지는 않다. 10점을 주지 못한 이유는 도입부의 그 엄청난, 흐린 새벽 안개 가득한 항구의 바에 앉아 독한 술을 마시며 독서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환각을 경험케해주는 '흐린 새벽 안개 가득한 항구의 바'scene을 비롯한, 때로는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의 묘사들의 압박 때문. 어쩌면 이런 묘사들의 감각에 작품 자체가 더 살아난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글쎄. 9.5점 주고 싶은 책이다.
8.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9
내가 읽은 박민규의 첫 작품은 '지구영웅전설'이었고, 그렇기에 박민규라는 작가를 과소평가했었고, '이런 놈도 소설 쓰는데 나라고 못 쓰겠는가'하는 자신감을 얻은 적도 있었지만, 이 '삼미'란 놈은 굉장하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필적하는 감정 우롱술을 자유자재로 구성하며, '사요나라 갱들이여'에 필적하는 정치를 휘두르고, 이외수에 필적하는 어처구니없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마스터피스. 강력히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9.페다고지-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파울루 프레이리/7
세미나 교재로는 세 번쯤 읽었으되,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읽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교육학도인데, 제대로 교육학 책 한 권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익숙한 책장을 뒤적거리고 말았다. 남미의 해방신학자이자 민중교육가, 문맹퇴치운동가인 프레이리의 명저. '세계를 둘러싼 인간들 간의 대화, 그 변증' 이라거나 '억압자 구조의 내면화를 떨쳐내는, 해방 실천으로의 대화적 교육론'등의 수사로 이루어진 관념적이지만 변혁적인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다거나, 나와 함께 교육학 한 길을 걸어가고픈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다만 역시 관념론이나 휴머니즘적 수사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거칠게 읽힐 수 있는 단점이 있다.
10.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1부)/피에르 부르디외/9
정치경제학도임에도 불구하고, '취향을 가지고 논쟁할 수는 없다' 식의 아리스토텔레스적 헛소리를 지껄이는 친구가 있다면 꼭 읽어볼만한 책. 문화와 취향의 계층/계급구조에 대한 분석을 다룬 사회학적 논고. 뭐, 그래서 읽은 것은 아니다만. 프랑스와 한국의 상이한 계층/계급의 판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본적인 명제들은 그야말로 명석 판명하다. 어렵지 않은 구성, 구체와 일반을 아우르는 범주, 논리적 전개, 잘 첨부된 실증적 자료 등은 기든스가 베버에 감탄한 것과 똑같은 구조로 본인을 감탄시키고 말았다. 다만, 2부를 읽기에는 조금 피곤한 분량이 문제.
11.꿈의 해석/지그문트 프로이트/8
어처구니없게도, 근대 철학의 정점에 섰다는 베버/니체/프로이트 중 본인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프로이트였다. 중학교 때였나, 심리학에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프로이트 심리학 입문'을 읽은 것이 본인과 근대 철학의 역사적인 첫 조우이고 말았으니. 그리고 꿈의 해석을 읽음으로서 그 세 사람의 원전을 다 한권 쯤은 읽어 봤다고 잘난 척 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이 기반하고 있는 학문은 기본적으로 심리학이지만, 일반적인 해석처럼 당연히 철학의 영역에서도 많은 사고를 해 볼 수 있고, '꿈의 작용' 챕터와 관련해서는 문학창작론/표현론/비유론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해 볼 수 있다(물론 본인처럼 철저한 오독을 했을 경우만 가능할런지도 모른다).
12. 인간/베르나르 베르베르/4
예전에는 굉장히 좋아했지만, 이나이를 처먹어서는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 작가의 작품. 역시, 안 읽는 편이 좋았다. 이전의 작품 '나무'와 이 작품 '인간'은 지나치게 식상한 상상력, 그에 절대로 걸맞기 힘든 건조하고 유쾌한 문체로 인해 조금 최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나 '타나토노트'쯤에서 불가사리한 죽음을 맞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덧. 본인은 아직 '개미'는 안 읽어봤다. 다만 평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13.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3
휴가를 나갔는데 내 침대에 뒹굴고 있었다는 이유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작품-문학 자체를 소재로 하고, 유머러스하며 적당히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은 극도로 식상하며 고정되고 책 팔아먹기에 안정적인 컨셉을 반동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그런-을 혐오하는 덕에, 1점쯤 주고 싶었으나 처음으로 읽어 본 아멜리 노통의 작품이기에 3점씩이나 되는 후한 점수를 준다. 현대 프랑스 문학은 현대 프랑스 철학 이상으로 내게 경기를 일으키는 듯 하다.
14.일식/히라노 게이치로/7
아쿠다가와 수상집은 절대로 읽고 만다, 는 필살의 신념으로 읽은 책. 역시, 아쿠다가와. 후회는 없다. 하지만 아쿠다가와 신인상 수상작 특유의 무엇-'신인상'의 타이틀과 관련한-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지나치게 잘 짜여진 소설의 구조는 오히려 독자를 질식시키려고 덤비는 것 같고, 잘난 척 지껄이는 작가의 헛소리는 방구를 유발한다. 고딕적 묘사와 적당히 어려운 한자의 적절한 사용 등은 나름대로 굉장하다는 느낌이지만, 역시 그래도 아쿠다가와 수상작이라는 이름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어쨌거나 받았으므로 그래도 7점은 준다.
15.코인로커 베이비즈/무라카미 류/8
존경해 마지않았던 류의 초기작이자, 얼마 안 되는 류의 수상작(류는 소설 외에 다른 분야에서, 일테면 쿠바 문화부장관의 쿠바 문화 공헌상이라거나,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이라거나 하는 데서 상을 받는 것을 더 즐기는 것 처럼 보인다). 노마문학상 수상으로 기억한다. 뭐랄까, 무라카미 류의 서로 상이한 소설들-69, 교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오 분 뒤의 세계, 이비사, 라인은 전혀 소설적 공통점이 없다-을 이어주는 일종의 연결 고리라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가장 류다운 그런 작품. 코인로커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세계를 향하여, 노래를 터뜨린다. '들어라, 나의, 새로운, 노래를'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떠오른다. 아. 참고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아네모네'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성 혐오증에 걸린 어떤 내 친구를 매혹시킬 수 있을정도로.
16.루이스 헬만의 건축이야기/루이스 헬만/?
책은 없고, 근무처는 시설대대다. 책을 빌리자니 이런 책이 잡혀서 읽은 책. 적당한 만화로 쉽게 풀어냈다는 것이 장점. 건축에 기초가 전혀 없는 나도 읽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건축에 기초가 전혀 없기에 점수 판단 불가.
17.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연을 품은 공간디자이너/서수경/?
'구겐하임 미술관' '텔리에신'으로 유명한 미국인 건축가-라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알았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가볍게 다룬 책. 말 그대로 가볍게 다룬 책이다. 건축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분량 조절을 꽤 잘 했기에, 건축 전공자가 보아도 비전공자가 보아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느낌이다. 역시 점수 판단 불가.
18.건축의 르네상스/시공디스커버리총서/?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을 다룬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뭐랄까, 대뜸 주석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몇 몇 건축 용어들-플라잉 버트레스, 파사드, 고린토 양식 등-이 조금 괴롭지만 뭐랄까, 저런 단어들의 의미를 추적하며 읽는, 추리 소설적 재미가 쏠쏠한 그런 책이었다. 그렇게 추리를 진행하다 보면 대충 내용도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고딕에 대한 소개가 좀 무성의하다. 르네상스를 고딕 없이 설명할 수는 없다구-
19.사요나라 갱들이여/다카하시 겐이치로/10
멋진 정치 소설을 많이 읽은 한 해였다. 글쎄. 대충 읽으면 소위 '포스트모던'한 유머소설이라고 읽힐 수 있겠지만, 전공투 시대에 바치는 진혼곡으로 읽어본다면 글쎄, 눈물나게 웃으며 슬프게 묵념할 수 있는 그런 책. '눈을 가린 채로 기관총을 들 수는 없습니다' 라거나 '우리가 가한 모든 피해는 이동중 손괴, 보관중 파손 등으로 미리 예견된 손실액 내의 피해였습니다. 우리는 수치상으로 사회에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등의 갱들의 발언이나, '이로써, 이상은 현실에 KO패 당했습니다'라고 노교수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고 득의양양 웃어제끼는 뉴스캐스터의 모습에 아픈 묵념을.
20.일본 정신의 기원/가라타니 고진/9
국가. 민족. 자본의 축으로 분석한 일본론. 아니 어쩌면 동아시아론. 아니 어쩌면 단지 국가. 민족. 자본의 이야기. 그리고 또 몇 이야기가 더 있었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결정적으로 쉽다. '가장 확실하게 좋은 지도자를 뽑는 방법은 제비뽑기다'라는 것을 김강록적 진지함으로 고찰하는 과정은, 굉장하다. 하나의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런 논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지하게 그러한 논의를 제시하는 고진은, 멋지다. 뒤에 실린 세 편인가 되는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도 의외로 좋다. 특히 기쿠치 칸의 작품은 굉장히.
21. 시지프 신화/알베르 까뮈/10
말 할 필요가 없는 책. 20여 페이지 읽고 gg를 선언한 무수한 패배의 역사를 넘어, 혹은 중간 중간 발췌독의 질곡을 넘어, 드디어 최초로 한 번에 완독(실은 내가 좀 학습연령이 낮은 편이다).
22.서양미술 400년, 푸생에서 마티스까지(화보집)/4
어디선가 한 꽤 큰 규모의 전시회 도록. 도록을 보며 감탄할 수 있을 정도로 심미안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메뉴판만 보고 배부를 수 있는 신선이 아니기에. 즐. 설명이 잘 된 것도 아니고, 색감이 좋은 것도 아니고, 팔아먹기 위한 도록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은.
23.전락/알베르 까뮈/5
두통으로 고생하던 시절 읽어서, 까뮈에게 미안하지만 대충 읽었다. 꼭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작품이다. 되도록이면 김화영 번역으로. 다시 읽게 되면 점수가 상향 조절될 것이 확실하다.
24.사회학 (3판)/앤터니 기든스/10
2005년 읽은 최고의 책 3권. 긴 말 안하겠다. 혹여 내가 교육부장관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기든스를 사회교과 교과서 편찬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일이다(받아줄지 모르겠지만).
25.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1,2,3,4,5/9
마찬가지로 2005년 읽은 최고의 책 3권. 혹 이 책을 읽다가 바쿠닌이나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나부랭이를 느꼈다면 당신은 나만큼 가라로 공부한 것이 틀림없다. 때로 좀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꾹 참고 5권까지 읽으면 당신은 우주적 소설이 주는 위대함은 어쩌면 까뮈의 '시지프 신화'보다도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26.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6
프랑스주의자 홍세화가 있다면, 독일주의자에는 전혜린이 있다. 열정. 소녀적 감수성. 삶에의 에너지. 자유와 인식에 대한 치열한 갈망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만 역시 독일주의자임 드러나 점수를 대략 깍아먹었다. 자유와 인식에 대한 치열한 갈망도 어쩌면 그저 무념무상의 광신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질문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모르겠다. 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책.
27.심판/카프카/?
백문이 불여일견. 이런 책에 점수를 다는 것 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28.반짝반짝 빛나는/에쿠니 가오리/3
쿨한 감성에 짜증이 버럭 난다. 하루키의 단편들처럼 댄디한 쿨함이라면 나름대로 인정할 만 하다.더구나 하루키는 빵가게 재습격이라거나, 한밤중의 기적 소리/대화의 효용에 관하여, 혹은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고도자본주의 前史같은, 댄디하고 쿨하며 뛰어나기까지 한 작품을 썼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모르겠다. 동성애자 의사에 우울증에 걸린 아가씨. 순정 만화라면 비쥬얼적 매력이라도 있지만 이건 대체. 역시 일본 소설은 가려 읽어야 한다는 지론을 강화시켜준 탓에 3점 준다.
29.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로맹 가리/7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도 나름대로 괜찮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뛰어난 '몰락'이나 '벽-어느 크리스마스의 이야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해 읽은 최고의 단편으로 꼽는 데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지상의 사람들'은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표제작이 표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제목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후까시와 통속적 설정으로 인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뭐 그런데로 봐줄 만 하지만. 7.5점쯤 주고 싶은 작품집이다.
30.선생님의 가방/가와카미 히토미/8
나이스 미들스런 할아버지와 아가씨스런 중년 아줌마의, 옛 스승과 제자 간에 벌어지는 가을 빛 물씬 나는 로맨스. 귀엽고 따뜻한, 그러나 현실 감각이 잘 살아있는 이야기. 내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의 표현도, 소재도, 이야기도 아니기에 함부로 뭐라고 이야기하기 좀 그렇다. 음, 어떤 느낌이랄까. 에에. 모르겠다. 아무튼, 좋아요. 좋아. '우리는 그 날 격렬하게 껴안았다' 식의 묘하게 발그레한 표현들도 귀엽고. 음. 응. 좋아. 좋다구요.
31.일그러진 근대/기억나지 않음/1
선임장교님의 책장에 꽂혀 있어, 점심 시간 틈틈히 보다보니 다 봐 버린 책. 역사에 문외한이며 문화인류학의 얼치기, 사회학의 무뢰한인 내가 써도 이 보단 낫게 쓸 수 있겠다. 근대 제국 열광과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다룬 이 책은, 일반론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무식하고, 특수론으로 보자면 아무 내용이 없다. 즐.
32.페미니즘 사상/로즈마리 퍼트남 통/9
소유자는 많아도, 세미나 교재로 발췌는 많이 되어도, 완독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믿고 싶은 두꺼운 페미니즘 이론서. 고등학교 때 쓰던 노트의 반을 써가며 요약하고 문제제기하고 정리해가면서 힘들게 힘들게 혼자 세미나 하는 기분으로 읽어나가, 겨우 다 읽었다. '사회학' '철학과 굴뚝청소부'와 함께,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반드시 관물함에 한 권쯤 비치해야 할 그런 책. 이라지만 다 읽고 다시 애인이 가져가버렸다. 추가적인 공부를 위한 리퍼런스도 많이 실려 있고. 뭐. 감수성/라이프스타일/운동론을 넘어 이론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위한 입문서로 적당한 것 같다.
33.채승우의 사진이야기/채승우/4
맞고참님께서 모대학 사진부 회장 출신인지라, 맞고참님께 빌린 책. 사진에 대한 짧은 글들과 적당한 사진이 실려있다. 비록 사진 찍는 것은 바보지만 보는 눈만은 지혼자 높은 덕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겠다.
34.뉴욕 3부작/폴 오스터/2
이거 읽고 친한 친구에게 '드디어 처음으로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었는데, 별로더라' 라고 말하니 친구 曰 '뭐 읽었는데?'. 뉴욕 3부작이라 대답하니 다시금 친구 曰 '생활을 위해 끄적댄 글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매도하면 안되지. 소멸이라거나 뭐 다른 거 읽어 봐. 나름대로 괜찮은 작가니까'라고 하였음. 음. 생활을 위해 끄적댄 글이라. 하기사. '공생충'을 읽고 무라카미 류를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별로 재미 없는 소설, 이라는 말로 평가를 끝낸다.
35.트레인스포팅/어빈 웰시/10
또 10점짜리.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원작소설. 발악하는 아이리시 펑크들의 섬멸하는 젊음을 위한 진혼곡. 본인과 매우 문학적 취향이 극도로 판이한 애인에게 추천했었는데, 애인마저도 극찬한 그런 작품. 영화보다 정확히 231,324배 뛰어남. 영국식 유머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음. '스퍼드가 그녀의 성욕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냉동 완두콩 세 봉지로 아프리카의 기아를 구제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발상이다.' '양복을 입고 으시대면서, 숲을 없애고 아이들을 백혈병에 걸리게 하는 원자력 발전소 따위를 짓기 위한 땅을 사고 파는 그런 놈이 되겠지' '귀족의 아들들이 뱃속에 있을 때 부터 고급 학교의 입학 명부에 이름을 올리듯, 준의 뱃속에 있는 벡비의 자식의 이름은 이미 국립 교도소의 재소자 명단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보다 훨씬 유려한 문체의 냉소가 가득. 그러나 이 작품의 진가는 그런 소소한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니...읽어봐서 재미 없으면 나를 때려도 좋다. 아. 이 책을 위한 bgm은 당연히 이기 팝의 Lust for life다.
36.알고나면 미술박사/가나아트센터편집부/7
정말 쉽고, 유익하다. 쉽고 유익함이 거의 실용서적 급이다. 굳이 구해서 볼 필요는 절대 없으나, 우연히 길에서 보게 된다면 한 권 슬쩍하기를 권한다. 미술 상식에 대한 단편적인-그러나 쓸데없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 찬 책.
37.디오니소스 송가/니체/7
니체의 잠언시집. '빙판은 천국이다. 춤출 수 있는 자에게는'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퀄리티가 별로였다기보단 그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에에. 잘 모르겠다. 양이 너무 적다.
38.한 권으로 읽는 니체/기억 안남/4
즐. 영미권 학자가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제가 아마 이거였다. '니체가 정말로 말한 것이 무엇인가?' 저술 의도가 확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제목이다. '광기'라는 오해에 둘러쌓인 니체에 대해 일상적으로 편안히 접근하면서 니체에 대한 이상한 오해-친 나찌주의자였다거나. 뭐 그런 소소한 것들-를 벗겨주겠다는 그런 책인데, 저자가 오해를 벗겨낸 니체가 내게는 오독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서는 역자인 고병권도 상당히 불만스러운 듯 하다. 비추. 단, 상당히 쉽게 읽힌다는 점은 나름대로 강점. 그러나 '그들이 읽은 니체'를 받아들일 가능성 때문에 니체 입문자에게 추천하기는 좀 그렇고. 니체에 대해 이것저것 읽어본 이들에게는 또 지나치게 쉽고. 이래저래 애매한 책이다.
39.칼의 노래/김훈/10
작가 지망생들에게 무한의 패닉을 선사한다. 사실 올해의 책 이거 하면서 높은 점수를 준 책들은 대체로 그야말로 '내 취향의 책'인데, 김훈의 '칼의 노래'는 내 취향은 절대로 아님에도 내게 10점을 강요한다. 제목이나 소재, 혹은 김훈에의 실망(솔직히 단편 '화장'이나 그의 에세이집은 별로였다), 아니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읽힌' 것 등등에 대한 편견은 절대로 다 집어치우고 일단 책을 펼쳐보시길. 첫 페이지부터 얼어붙고 말 테니.
40.05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함정임 외/함정임 외/5
이상문학상 수상집보다 한 단계 재미없게 읽었던 책. 수상자도 수상작도 까먹었고, 함정임의 '소금 한 줌'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기에 함정임 외라고 써버렸다. 한국 문학의 희망은 동인문학상에만 있다. 고 헛소리를 지르고 싶어지게 하는 책. 덧. 창비신인상에도 한국 문학의 희망은 없다. 결코 내가 입선도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41. 악의 꽃/보들레르/9
42. 랭보 시선/랭보/6
무얼 말하리요. 단. '랭보 시선'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보다 번역이 별로임. (안타깝게도 두 권 다 출판사가 기억나지 않는구나-)
43.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M 베버/8
나중에 감상문 올리겠습니다. 20여페이지짜리 레포트를 만든지고로
44.피아노 치는 여자/엘프리데 엘리넥/9
애인의 추천으로 읽은 책. 역시 애인과 나의 문학 취향은 많이 다르다. 어려운 소설이 나는 싫다. 다행히 그냥 소설로 읽을 수도 있으니까, 그럭저럭 읽었지만 역시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읽으면서 순간 순간 떠오른 생각들을 한계치로 드라이브했더라면 10점도 줄 수 있었을 듯도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함에 9점 준다.
45.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6
올해는 유난히도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다. 라고 할 정도니 얼마나 내가 한국 소설을 안 읽는지에 대해 모두들 잘 알게 될 듯 하다. 저 위에, 폴 오스터가지고 내게 뭐라고 했던 친구의 미니홈피서 우연히 보고 읽었다. 뭐랄까, 최영미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싫다. 80년대를 싸우지 않고 90년대를 절망하는 것은 21세기 키드가 할 짓이 되지 못한다.
46.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10
하루키가 좋게 봐 준 작가였는데 과연. 그럴 만 하다. 시대적 상황이 제법 옛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읽히지 않는 이 작품은 도대체. 물론 특별히 뛰어난 부분은 없다. 아니 하나 있다. 나이 서른에 대한 표현. 서른이란 나이는,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가방은 해야 할 일의 목록으로 가득차고...어쩌고 한 표현이었는데. 뭐.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웰메이드. 웰메이드. 단순한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할 지라도 이정도로 잘 만들면 10점이다.
47.도망치는 자의 노래/마루야마 겐지/10
'한 사람쯤 죽여보지 않고, 어찌 인간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어지러운 세계에서, 단 한 번이라도 무엇에 목숨을 걸어보고 싶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인생의 공허, 그것의 의미는 그것을 자기 멋대로 채워버리라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스런. 그런 작품. 두 권이 지나치게 짧게 느껴진다. 강추.
48.제5도살장/커트 보네거트/5
이곳저곳의 추천으로 인하여 읽게 되었는데, 기대가 컸던 것인지 많이 실망스러웠다. 포스트모던한 분위기의 정치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사요나라 갱들이여'에 굉장히 못 미치며, 섬뜩한 면에서는 1984에 뒤진다. 펑키한 면은 찰스 부코스키에 턱없다. 그냥 그럭저럭 읽어줄 만 한 정도지만...딱 그 정도다. 못 읽을 정도는 아니란 점에서 5점.
49.살아간다는 것/위화/7
허삼관 매혈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게 된 중국 작가 위화의 장편. 실로 엄청난 번역을 자랑하던 허삼관 매혈기에 필적하는, 안 좋은 방향으로 실로 엄청난 번역을 자랑하기에 안타깝게도 7점이다. 당췌 문화혁명기 중국 시골의 꼬마가 다급한 상황에서 내뱉는 '여기에 유숙의 아버지가 있습니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대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역시 위화이기에 그런 엄청난 번역으로 읽었음에도 7점이다. 슬픔. 어처구니없음. 부조리. 웃음. 삶. 사회. 개인이 묘하게 버무려진 평온한 미소를 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읽어보시길. 단, 그런 작품을 읽고 싶다면 허삼관 매혈기 먼저.
50.퍼레이드/요시다 슈이치/6
한번쯤 읽고 싶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 구성이나 소재, 인물 구성 면에서 소위 '일본 팝 문학'의 큰 궤를 벗어나지 않는 안타까운 작품이지만, 나름대로의 재기발랄함과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럭저럭 최악은 면했다. 한 방을 같이 사용하는, 세상에 씨댕하고 서로에 씨댕한 젊은이들의 이야기.
51.장외인간 1,2/이외수/5
군대 오기 전, 춘천에서 이외수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정말이다!). 정말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는데, 그런 그의 비교적 최근 작품이다. 드는 생각은 하나 뿐. '이나이를 쳐먹어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중고등학생적인 냉소와 휴머니즘을, 리니지라든지 어처구니없는 언어 유희, B급 꽁트에서 볼 수 있는 유쾌함으로 그려낸 그런 작품. 개인적으로 예전 내가 습작때 써먹었던 컨셉-지구 자전이 느려짐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표절한 듯한 설정-달이 사라지는데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에 조금 슬펐다.
52.저기 한 송이 꽃잎이 소리없이 지고/최윤/8
역시 한국 문학의 희망은 동인문학상에만 있다.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최윤의 수상작 '회색 눈사람'과, 영화 '꽃잎'의 원작 '저기 한 송이 꽃잎이 소리없이 지고'가 수록된 단편집. 사실 저 두 편 빼고 나머지 작품들은 글쎄 꽤나 별로입니다, 지만 역시 저 두 작품이 너무 뛰어나다. 이런 식의 리얼리즘도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게 하는, 80년대를 위한 발라드. 올 한 해, 정말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다.
53.1984/죠지 오웰/9
인용까지 해 댈 정도로 잘 아는 내용이라지만, 역시 안 읽었다는 건 안 읽었다는 거다. 해서 우연한 기회에 구한 이 작품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읽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작품. 영국식 유머에 점점 반하는 작년이었다.
54.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5
내게 시를 가르쳐준 어떤 친구 때문에 읽게 된 작품. 몇몇 수록 작품들을 읽다 보면 망치로 강타당하고 있는 심장을 느낄 수 있지만. 판단보류다. 80년대를 완벽하게 그려낸 작가는 아직 내게 '유하'밖에는 존재하지가 않는다. 요즘도 계속 자주 읽고 있지만, 이 작품에는 아직 판단 보류다. 나쁘지는 않음에 일단 기본점수 5점을 준다.
55.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이이화/7
친구 아버님 되시는 이이화씨의 역사에세이. 물론 공짜로 뜯어낸 책이다. '인물, 지리, 시간을 바탕으로 한 역사에세이'라는 점에서 역사에 문외한인 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지리산'과 관련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의 어머니, 반역의 핏줄, 강인한 삶의 터전이 되어왔던 지리산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저자의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사관이 꽤나 거슬린다.
56.니체, 천 개의 문 천 개의 길/고병권/8
괜찮은 니체 입문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원전의 출처가 잘 받쳐져있고, 단지 '니체'가 아닌, 니체의 시공간적 상황에 대해서도 잘 서술되어있는 책인지라, 역시 인문학도의 관물대에 한 권은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