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A와 얘기를 하다가 군대에서 자주 나오는 말을 들었다. 
"B는 밖에서 만났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신발, 계급장 떼고 한번 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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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힘을 준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소위 '짬밥'이라고 하는 권력의 피라미드 속에 위치한다.
난 너보다 일년 빨리 들어왔으니까. 난 너보다 한달 빨리 들어왔으니까.
절대 변하지 않는 이 고정된 권력을 빌어 이것을 힘으로 쓸 때 누군가는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은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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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B보다 '짬'이 안되는 A는 이 권력 관계가 해체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권력 관계를 바란다. 바로 육체의 힘이고, 근력의 힘. 가장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권력 관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권력 관계 속에서라면, 난 너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어. 보복할꺼야. 이 권력관계가 아닌 새로운 권력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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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짬밥'이 높은 A가 있다. B는 그 사람보다 싸움을 잘한다. B는 일대일로 그 사람을 팰 수 있다. A는 그저 본인의 힘이 아닌 짬의 힘을 빌어사는 껍데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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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이고 내재적인 힘의 행사는 정당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미화하고, 다른 폭력에 비해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인의 폭력을 증오하고 조폭의 힘에 향수를 느낀다. 폭력의 문제는 그것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의 문제는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그것은 결코 폭력을 정당화 시켜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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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관계는 불평등하게 조직되어 있다. 평등한 관계라는 것은 아름답고 이상적이지만 현존하지 않는, 그래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미리 전제하는 것은 불평등이 야기하는 현재의 질곡에 대한 문제의식의 반사적 투영이라고 보는 게 옳다. 


상병 구본성 
  청소년기를 거쳐오면서, 남학생들 사이에서 '육체적힘'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네요. 대학에 들어가선, 이런저런 자본의 힘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점점 그냥 그 불평등한 관계를 수용하고 그 관계가 원활히 혹은 인간답게 작동하기 위한 '윤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 관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윤리가 충분히 성숙한다면, 관계자체도 변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08-03   
 
일병 정한성 
  계급, 원초적 힘 등을 떠나서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단순 power일 수도 있고), 남에게서 빌려오는 권력으로 나눠서 볼 수 있겠군요. 사회로부터, 지인으로부터, 각종 구조로부터 얻어다 쓰는 권력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지식등으로부터 나오는 권력..... 어느 힘이든 상대방에게 행사하다보면 어느새 그것이 폭력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08-03   
 
상병 이기중 
  사회와 관계없는, 개인에 속한 것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간사회에서 만들어진 법칙과 권력은 인공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요. 사실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는 이상, 그가 만든 사회 또한 그의 본성과 모순되는 점이 있다 하여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개미집을 개미의 본성으로 본다면, 사회적 권력관계는 육체적 힘에 따른 권력관계만큼이나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지요. 

모든 권력관계에서 불평등을 읽어내는 시선을 접한 뒤로, 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두려워졌어요. '이건 내가 상대방보다 권력의 우위에 있기 때문에 저지르는 폭력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사실 뭐만 하면 폭력이라고 이야기하는 예민한 심성의 소유자들에 대한 불만도 생기긴 했지만(이런 담론은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운동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죠.) 
학교선배이고 나이가 많은 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공감했기 때문에 갈 수록 소심해졌지요. 선임이 후임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학교 선후배 사이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군대에 와서, 저는 더 소심해졌답니다. 08-03   
 
상병 박준연 
  기중 / 학교에 관한 것이라면 기중씨보다는 못하겠지만 저 역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땀땀) 학교에서의 관계는 상대방을 범주화하고 편견을 고착화하는 경향을 띄고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생면부지의 존재와의 만남이 심화되는, 즉 관계의 비대면성이 급속도로 높아져 오면서 '내적 울타리'라는 범주를 통해 존재를 유형화하고 자신과 동일하게 분류된 범주 내의 '낯설음'을 친숙함으로 대체하는 것, 그리고 범주의 외부의 '낯설음'을 '궁극적인 낯설음'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불안을 범주화를 통해 해소해보려는 노력의 결과로 보입니다. 

뭐 결론은 저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인지 무척이나 기중씨가 친숙하게 느껴진답니다.(웃음) 08-03 * 
 
상병 이기중 
  소속감이지요(웃음) 08-03   
 
상병 장윤호 
  몇 달 전에 한나 아렌트의 <폭력의 세기>(원제는 On violence '폭력에 관하여')를 읽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 읽기를 그만 둔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얼핏 본 아렌트의 문제의식들이 이 글과 답글들에 모두 녹아 있네요! 다들 대단하십니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네요. 
지금 기억 나는 건 아렌트가 폭력과 권력을 구분지으려 했다는 것. 폭력으로는 진정한 권력의 획득이 불가능하고, 권력은 무엇보다도 남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라는 내용, 여기서 민주주의를 도출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에요. 
이정도 유사성이라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도 있죠. 옛날에 읽어보려다가 몇 장 읽고 덮었던 책인데, 기중씨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 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도 듭니다.(웃음) 08-03   
 
상병 김원상 
  군대에서 폭력의 독점은 군대외의 사회와는 다소 다른 법칙을 따르고 있는거 같아요. 군대내에서의 폭력은 '짬밥'이라는 굴레에서 그 독점이 이루어지고 사회에서는 이른바 '상류계층'에 들어가면서 사회의 조정자 위치에 입성하면 그 독점이 가능한 거 같고요, 문제는 폭력의 독점자체가 잘못되었느냐 옳게 되었느냐 보다는 폭력의 행사를 얼마나 정당하게 사용하느냐인거 같아요, 

결국 폭력에 지배되느냐 폭력을 지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08-03   
 
병장 최현성 
  제 생각은 군대에서의 권력은 사회에서 느끼는 권력과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들어 사회에서의 권력은 자유라는 것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지만, 
군에서의 권력이란 강제적 수단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그 의미하는 바가 틀리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이곳 군대로 들어올땐 이미 사회에 대한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서 
군에서의 생활이 적응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때 우리는 순응하기보단 
자의적인 합리성에 자신의 생각을 좀더 맏겨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곤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초적인 힘으로써 결론을 내놓는 것은 자신의 고름을 손으로 짜려고 하지만 
나중에 생길 상처는 생각을 안하는 지금의 자신의 권력이 높다는것을 표현하려고 
하는거 같아요. 누구든 권력을 갖는자는 자신의 이성보단 감정을 더욱 신뢰하는거 같습니다. 
그러기에 밑에 있는 사람에게 원망을 사기도 하지만 때론 신뢰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연적 본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군대에서 얼마나 인지도를 높일수있을까 하는 질문이 제가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불평등한 관계를 좀더 체계적으로 바꿀수 있을까요? 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