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베스트-독서후기] 희망하지 않는 나는 멈추지 않는다.  
병장 고은호   2009-02-04 10:56:08, 조회: 238, 추천:0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1.

어느새 입궁하고 배터리에 풀 파워 충전 완료한지도 제법 되었다.

충전 완료 당시 이미 내 선배들보다 후배들이 많아진지 오래였고, 더 이상 우리 동네 내에서는 지나가던 광부님들을 제외하고는 나를 건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언터쳐블-. 나의 행동을 제동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내 멋대로 살아갔었다. 
그런 나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주로 이랬었다. ‘요즘 후배들은 나 때 같지 않아. 게을러빠지고, 무능하고, 한심하고, 개념도 없고, 그저 놀 생각만으로 가득하지.’ 라는 생각. ‘내가 후배였을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 ‘요즘 젊은 녀석들은 예의가 없어.’ 라는 말이 고대 이집트에 낙서가 되어 있다고 하던가. 내 심정이 딱 그랬다.
내가 후배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저 관물대 정리 정도 잘하고, 청소 열심히 하고, 일과시간 준수하고, 휴식시간에 딴 짓 하지 말고, 인사 잘하고, 일 열심히 하고, 신발 정리 잘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고, 다른 후배들에게도 잘해주고, 항상 센스 있게 행동하고, 어쩌구저쩌구.. 궁시렁.. 궁시렁.. 삐약 삐약.. 꿀꿀.. 멍멍.. 왈왈..... 그런 정도?
궁밥을 먹어 가면 먹어갈수록 후배들에게 바라는 희망은 늘어 가면 늘어갔지, 줄지는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불만 역시 커져만 갔다. 입에 달린 말이 ‘요즘 후배들은...’ 이었고, 그게 내 맘처럼 안 되면 또 야단치고, 쌓여서 화도 내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입궁한 녀석들하고 한탄도 하고... 그러다가 ‘이 녀석들은 도저히 안 돼’ 라며 절망하기도 하고...

2.

어느 날 ‘희망을 위한 찬가’라는 책을 읽었다. 희망을 위한 찬가. 결국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만이 진정 희망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다. 희망을 위한다면서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또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써 갈겼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저 책을 덮었다. 그냥저냥 괜찮은 책 한 권 읽었다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의 불만에 터질 듯이 끓어오르다 못해 식어가고 있었다. 그 분노는 후배 녀석들이 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는지, 왜 내 희망처럼 움직이지 않는지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덮었던 책이 생각났다. 책에서 뭐라고 했더라.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희망을 위한 찬가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 희망을 버리면 그 녀석들은 더욱 더 제멋대로 하고 다닐 텐데? 후배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하지만 그 희망이라는 게 뭐지? 그게 정말 후배들을 위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뱅 돌다가 ‘후배들이 내 맘처럼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결국 ‘나의’ 희망 사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라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정의를 그들에게 강요한게 아닐까? 그러다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고, 불평하고, 힘들어하며, 절망하지 않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후배들에게 희망을 버렸다. 내가 바라며 녀석들에게 투영시켰던 ‘이상적인 후배’라는 희망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건, 옳게 보이건, 그르게 보이건, 잘하건, 못하건 간에 그 행동 자체만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였다. 굳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에 그들을 비교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후배들의 행동이 예전처럼 못마땅하거나 화나지 않았다. 나름 그들의 행동이 납득이 가기 시작했고, 설혹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내 기준을 강요하기 보다는 서로 대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면서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 라고 넌덜머리 내며 포기하는 일도 없어졌다. ‘꼭 내 희망대로 돼야 한다.’ 라는 마음을 버리고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며 조금씩 바꾸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녀석들과 나의 ‘진짜’ 관계는 시작 되었고, 나의 희망은 그를 버림으로써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3.

‘삶은 고해苦海’.

나는 이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삶이 고해라는 거지? 누구나 다 살아가고 있는 세상. 힘들다고 인정하는 것은 패배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잖아? 틀림없이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듯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런 세상을 나는 힘들게 허덕거린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잖아? 그건 결국 세상 고난 앞에 절망하는 패배자에 불과 하잖아? 진정 승리자라면 힘들더라도 그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며 웃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설혹 남들이 어렵다 힘들다 하더라도 나는 ‘고해苦海’ 를 부정해야만 했다. 그것이 나의 자신自信 이었다. 세상은 조금만 뛰어 오르면 넘을 수 있는 벽이었고, 내가 희망한 목적지는 달려가면 조만간 도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을 희망했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희망 같은 곳이 아니었다.

우물 밖의 세상은 그렇게 낮은 벽이 아니었고, 가까이 있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나름의 세상을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싸우고, 화해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며 살아가는 각축장이었다. 사랑을 희망했다가 그 사랑 때문에 아파했고, 성공을 희망했다가 그 성공에게 좌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 거대한 혼란 속에서 나의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극히 미약했다. 

4.

삶은 고해라고 인정하는 것이 절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고통스럽다는 것이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고통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 
나는 삶의 고통을 인정할 것이다. 삶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희망하기 않을 것이다. 어설픈 희망을 세상에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과 현실과의 괴리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인내하다가 결국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고통 그 자체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통스럽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고 세상을 걸어 나갈 것이다. 

희망하지 않는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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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아.
                                             희망하지 않는 나는 절망하지 않아.
                                             절망하지 않는 나는 멈추지 않아.
                                                                          <희망을 위한 찬가 中>


뱀 발 - 호랑이를 그리고 싶었는데 고양이도 안 되네요.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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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22:23 

 

병장 정병훈 
  이거, 하고싶은 얘기가 많은 글인데, 오늘은 좀 바쁩니다. 시간날때 댓글이라도 남겨야겠어요. 클클클- 잘 봤습니다. 2009-02-04
11:47:56
  

 

상병 김형태 
  잘봤습니다. 

그래요 삶은 고해라는 것보다 그렇지 않기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조금은 낙관적으로 사는게, 좋을 것 같아요. 모든게 본인 성에 차고 넘칠 수는 없으니까,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야겠죠. 

타협이 고해이지, 그 후에는 좀 무책임할 정도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게 더 좋다면 그렇게 하는게 좋은것같아요 2009-02-04
11:56:44
  

 

상병 김형태 
  앗, 그리고 
‘요즘 후배들은 나 때 갔지 않아'를 '같지'로 바꾸는게 어떨까요? 

크흑, 2009-02-04
11:57:59
  

 

병장 김형진 
  잘 봤습니다, 

그동안 왜 내 여자친구는 이효리 구혜선 등등 연예인들과 비슷하지 않은걸까.. 

희망하고 갈망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지는 글이였습니다.. 

그 자체를 사랑하고 만족하며 살아야겠습니다...흐흐.. 2009-02-04
12:36:25
  

 

병장 고은호 
  형태/ 오타. 
꾸엑~ 창피해라.. 수정할께요. 부끄 부끄~ 

형태/ 
세상에는 타협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으니까요. 
나름 이런 저런 노력을 해봐도 결국에는 악폐습이 사라지지 않는 여기에서, 
무엇인가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무엇인지조차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진솔한 소통을 하고자 해도 오해와 곡해와 무관심으로 소통 자체가 안되는 현실에서, 

약하디 약한 저로써는 절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기 위해서는 
희망하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형진/ 
크윽...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라... 는게 아니에요. 

자신의 희망과 현실이 다름에 고뇌하기보다는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되 거기에 절망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에요. 
역시 많이 부족하네요. 이 놈의 글 솜씨. 에효... 2009-02-04
14:27:05
  

 

병장 김민규 
  허무는 초극에서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하죠. 이 삶의 고통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 그러니까 여기에서 누리는 행복이 결국은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식의 그런 것일 수 있다는, 그런 절망감을 함께 섞어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뭐랄까. 아프게 희망하는것보다는, 희망을 내려놓되 현실을 긍정하는, ? 

그럼에도 부정하고싶지 않은 것은 사랑이고 기쁨입니다. 때문에 아픔이 스며들고 마음 한켠이 계속 영영 불편할테지만, 그때문에 행복한 것을요. 
결론. 보고싶네요. 2009-02-05
09:39:39
  

 

상병 이동열 
  최근 저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더 은호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오신분(맞으시죠?)인 만큼 뭔가 저 자신이 얻을 것이 있을 것같기도 해서...(삐질) 아무튼 저의 결론도 보고싶네요(?) 2009-02-05
10:23:37
  

 

상병 이동열 
  은호님 댓글이 있었던 듯 한데- 제가 댓글을 달려고 하니 사라져있네요?(울음) 
아쉽습니다. 제가 좀 더 빨리 확인했어야하는데... 기회를 잃었군요(땀) 2009-02-06
13:59:54
  

 

병장 고은호 
  동열/ 실은 댓글을 달았다가 아무래도 중언 부언의 느낌이라서.. 
부끄러워 삭제했었습니다. 에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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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희망은 수동적인 표현이다. 
'2. 좋은 일을 기대하는 마음, 또는 밝은 전망.' 이라는 한컴사전 뜻처럼, 
희망이란 기대하는 마음이고, 바라는 마음이다. 

김영하씨의 소설 <퀴즈쇼>에 보면 
어느 취업 면접에서 면접관이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하는 민수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는 대목이 있다. 

'사회는 그런거에요. 여자라서 밀리고, 나이가 많아서 잘리고,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가고, 한국이라서 차별 받고, 그런거에요. 
그걸 인정해야, 그래야 길이 보일 거에요.' 

인정하기 싫지만, 책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옳다. 
현실은 그렇다. 

도서관과 집,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백수로 낙인찍혀 수 십만 '청년실업자' 범주에 속해버린 된 내 친구들이 그렇고, 

아직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으시다고 말씀하시지만,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정리해고 되신 내 아버지가 그렇고, 

이십오년 넘게 서예에 매진하시며 노력해오셨지만, 
결국 학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변변한 상 하나 못 받아보신 내 어머니가 그렇고, 

그러한 내 주위 사람들을 옆에 두고도, 
결국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그렇다. 

현실은 나의 희망과 닿아있지 않다. 
현실은 나의 기대를 부수고 마음을 찢고 환상을 깨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희망하지 않겠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겠다. 
다만,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걸음 걸이들이 바로 나의 삶이 될 것이다. 2009-02-07
10:07:25
  

 

상병 진수유 
  잘 읽었습니다. 2009-03-31
14:4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