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희망사항 - 사슴벌레의 죽음에 부쳐 




야 S야 이 것 봐라. 너 벌레 잘 잡냐

투광등이 비치고 있는 땅 위로, 집게 손가락 만큼 큰 사슴벌레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한창 곤충채집을 한답시고 잠자리채를 들고 쏘다니던 그 때, 잠시 사슴벌레를 잡겠노라고 혈안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곤충도감에서 발견한 그 사슴벌레의 사진이 어찌나 그리 위풍당당하고 멋있던지, 실제로 꼭 잡아다가 봐야 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단지였고, 비록 환경 조성이 잘 된 거주구역이라고는 해도 방아깨비나 메뚜기, 잠자리, 기껏해야 사마귀 이상의 벌레를 보기에는 조건이 열악했다. 며칠동안 나무를 들쑤시고 다니던 내가 다시 잠자리나 잡게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추억이라면 추억일 수 있는 벌레 한마리가 가진 나의 유년 시절에 힘입어, 그 그리움까지 머금은 사슴벌레가 내 앞을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열망했는데, 지금와서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 생각만큼의 희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가 먹은 탓일까, 원하는 것이 변한 탓일까. 하여간, 달라진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라서, 나는 징그러운 마음에 쉬이 벌레를 잡을 수 없는 성인이 된 것이었다.

잡고는 싶으나, 잡을 수는 없고, 나는 기어코 후임을 시켜 사슴벌레를 잡게 하였다. 생각 외로 반항 없이 쉽게 잡히는 그 녀석은 잡고보니 그 위용이 더욱 대단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무실에 데리고 들어가 이녀석의 모습을 자랑시켜 줘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다. 내가 발견한 나의 어릴적 동심이 내무실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와! X발! 이게 뭐야!

아니나 다를까, 고참들도 그 짬이라는 기간동안 이런 것을 보기가 드물었던 모양인지, 아주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삼삼오오 모여 나의 동심이 어린 반반한 사슴벌레의 등짝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전혀 그런 일을 기대 한 것이 아니었다.



고참 한 명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슴벌레를 발로 걷어 찼다. 사슴벌레는 청소시간을 앞두고 깔끔한 침상 바닥을 주루루룩 미끄러져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돌아다녔다. 광기라는 분위기는 순식간에 상승하는 탓이라, 사태는 더욱 심각해 졌다. 라이타를 꺼내기도 하고, 커터칼로 배를 자르려고도 했다.


나는 전혀 그런 일을 기대 한 것이 아니었다.

소위 짬도 안되면서, 나는 그 일들을 막아보려고 장난스레 웃으면서 으아 으아 소리를 질렀지만, 실제로는 기분이 엉망이었다. 장난스레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30cm정도 위에서 커터칼을 떨어뜨려도 끄떡없는 사슴벌레의 위력에 고참들은 매료되었고, 이러한 매혹은 오히려 더욱더 강력한 가혹행위의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마루타 처럼 처참히 실험당하고 있는 나의 동심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나는 전혀 그런 일을 기대 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사슴벌레는 한쪽 다리가 라이타에 지져져 불구가 된체로 내무실 바닥에서 뒹굴었다. 불구가 된 사슴벌레는 더이상 놀이감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차가운 바닥에 버려졌다. 나는 사슴벌레를 얼른 이 바닥에서 구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찌만 그 상황에서도 잡을 수 없는 징그러움에 슬리퍼로 녀석을 질질 끌고 나갔다.


내무실 바깥으로 녀석을 끌고 와 지켜보니 이자식은 아프다 소리 한 번 하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걸어보려 애를 썼다. 소리는 내지 않아도 아픈 것이 눈에 한 가득 들어왔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고통이 실려있었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절름발이 발걸음이 느껴졌다

제발 살아라. 제발 살아라. 내가 가져와서 이렇게 됬잖아. 제발 살아줘.

나는 비겁하게 녀석의 죽음을 회피하고 있었다. 비겁한 희망이었다. 녀석은 다리가 녹아 균형을 잃어 자꾸만 뒤집어 졌다. 

영화 화이트스콜의 한 장면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돌고래를 장난으로 사냥해놓고는, 갑판위에서 죽어가는 돌고래를 죽이지 못하는 비겁한 청년의 모습,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하는 비겁한 모습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그 녀석을 속으로 무던 비난했었다.

비난했었다. 비난했었다.

결국 나는 비겁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녀석을 수풀로 던져줬다. 살아날거야, 이녀석은 기어코 살아날거야. 자 이제 네 고향에 왔으니 가 보렴. 가 보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겁한 가슴만을 가진 채 내무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내무실 안의 흥분은 가라앉아있었다.


다음 날 그 녀석은 발랑 까 뒤집힌체 개미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미동의 까만 껍데기가 되어있었다.
비겁한 희망은 죽어버렸다. 내가 회피한 책임을 비난이라도 하는 듯이 개미들이 물어 뜯고 있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착해지려는 위선을 떨며, 미안해 미안해 하며,
솔잎을 모아다 불을 지펴 화장이라도 해준답시고 감정을 앞세웠다. 녀석을 화장시켰던 건지, 나의 감성에 불을 지폈던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은, 개미보다 조금 더 눈알이며 다리며 배때기가 큰 탓에 선명하다고 해서, 내가 개미 죽일때와는 다른 죄책감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같은 미물이면 미물이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통일 될 것이면 될 것이지, 나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차별성을 두고, 너의 시신을 물어뜯는 개미들 곁에 불을 놓았던 것일까. 이 오만함은 대체 무엇일까.

끝까지 나는 비겁해지고 있었다.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750) 

  
 
 
 
상병 송희석 (20060619 194737)

그래요. 전 이런 지민님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어느누구보다 말이죠. 설사 비겁하더라도 그것을 고백할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언젠가 지민님이 자신의 글을 출판할 생각이 있다면 전 제 환경능력을 이용해 도와드릴 마음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 정말로 잘 읽고 갑니다.    
 
 
병장 고계영 (20060620 063121)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참 사람 가슴 찌-잉하게 만드시는데는 뭔가 있으시네요. 
어릴적 개미를 좋아했던 제 모습도 생각나고, 식충식물 키우겠다고 곤충들 잡아오던 것도 생각나고, 영화 화이트스콜도 생각나는. 이것저것 생각나고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계속 '이런 좋은글'많이 부탁드립니다.    
 
 
병장 정치훈 (20060620 075353)

전 그런일을 종종 겪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생명을 너무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몇일전 비가 온 뒤 달팽이가 지나가고 있길래 어! 달팽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옆으로 옮기려고 하는 순간 뒤따라오던 후임이 찍! 군화발에 뭉개지는 그 모습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임은 물론 달팽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 했지만 안타깝더군요. 매일 근무장으로 향할 때마다 그 생각이 납니다. 저 같은 경우 길을 다닐 때도 개미나 기타 곤충들이 발밑에 있나 보면서 다닐 때가 많습니다. 사소한 부주의가 생명을 앗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어제는 정확히 이름이 생각 나지 않는데 좀 큰 풍댕이 처럼 생긴 곤충이 내무실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그럴 경우 잡아 죽이려는 것이 다반사라 애들한테 죽이지 말라고 놔두라고 했습니다(병장 9호봉이라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차피 해충이 아니라고. 하지만 곤충을 무서워 하던 제 동기놈이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제가 잡아서 밖으로 날려 주었습니다. 
보통 곤충을 죽이는 사람들을 보면 두가지 경우인 것 같습니다. 한가지는 호기심, 또 한가지는 두려움. 아 하나가 더 있군요. 모기와 같이 해가 되는 경우. 이 경우가 참 애매 한 것 같습니다. 왠만하면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모기가 너무 많은 경우 잠도 못자고. 이것을 이중적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이기적이라고 해야 되는건지.    
 
 
병장 정치훈 (20060620 075752)

아 그리고 김일병님께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경우로 느끼셨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경우 곤충을 잡지 않으시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달팽이, 개미 등을 키운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입장일 뿐 그냥 놔두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상병 권영욱 (20060620 135011)

저도 그래서 하찮은 벌레도 쉽게 대하지 않아요. 
곤충이나 벌레, 넓게는 주위에 꽃이나 풀조차 우리가 함부러 대하기에 너무 약한존재일뿐. 
단. 바퀴벌레는 예외    
 
 
병장 박형주 (20060620 192954)

이쪽 짬 고양이의 수난사가 생각나네요.    
 
 
병장 이은호 (20060620 214744)

글 잘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사람마다 곤충 뿐 아니라 다른 동물에 대한 기준도 다르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곤충을 배척하는 존재인지라 보이는대로 제거합니다. 
연민은 느끼지만, 이도 생명인데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아직은 제거합니다    
 
 
 병장 박진우 (20060622 141837)

우와.... 
지민님의 글중에 제일 가슴으로 확 와닿는 글인걸요... 
이런건 가지로 가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기존의 글보다 유독 지민님의 본심에 가장 닿아있는 감성의 극을 달리는 글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병장 조혁장 (20060623 173428)

어허라....제가 쓰려고 했던 글과 똑같은 제목이네요.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