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특집] 하지연님과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병장 한상천/051103) 
 
 
 
 
오랜만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기쁜 소식을 뒤늦게 알려드리게 되어서 참 죄송하네요.

9월 말에 시작한 것 같은데 이미 한달을 넘게 질질 끌어오다가 결국 제대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 지어봅니다. 기다리셨던 분들이 꽤 많으셨을텐데 사실 저도 하지연님이 주신 답변을 스무날 이상 확인 못했었습니다. 

뭐 어쨌든 게을러터진 저를 탓하시고 회원특집 내용을 봐서라도 좀 용서해주십시오. 하하하. 

(그나저나 한상원씨 인터뷰는 언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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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김영웅
1. 하지연님이 어떤 색깔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실 수 있는지

☞ 사실 본인의 색깔은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글에서 묻어나오는 아우라 같은 것인데 굳이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색깔을 말하라면 “즐거운 카키”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태생이 핑크는 되지 못하리란 것을 알아 버리고 나니 뭐 카키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다만 즐겁게 인정하고 나면 자발적 선언이 조금은 위안이 되지요 뭐 어쨌던 같은 말이라도 국방색 보단 훨 낫지 않나요?

2. 독서(본격적인 독서의 시작)를 하게 된 계기는?

☞독서를 하게 된 계기는 친구가 없었던 시절 외로운 왕따의 유일한 소일거리 였답니다.

교사이신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학교를 자주 옮기다보니 친구를 사귈 틈도 없었고 또 나름대로 조숙(?)했던 탓인지 양지바른 곳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게 취미여서 사람이 적은 곳을 찾다보니 도서관이었고 자다 지치면 펼쳐든 것이 책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옷에 풀물들 듯이 젖어들었다는 편이 옳은 것 같네요

그러나 본격적으로 만개하게 된 것이 시골 학교로 전근가신 아버지를 따라 시골 방학의 긴긴 겨울을 지내면서 이웃집 서가에 꽂혀있던 10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문학전집과 추리소설 그리고 잡다한 읽을 쪼가리 였던 것 같네요. 그때는 벽에 붙어있는 간첩신고나 불법무기류 자진 신고기간 같은 벽보마저도 활자로 된 것이라면 붕어빵 봉투까지 뜯어서 읽을 정도로 읽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3. 글을 짜임새있게 쓰려면 어떤 방법론적인 접근이 있어야하는지.

☞ 아니 그런 방법이 있다니 저도 궁금합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리 썩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국민교육헌장에다 자연보호 헌장까지 외워야 했고 일주일에 책 두 권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햇고 계절별로 백일장을 하고 각종 기념일에는 반드시 글을 써야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슨 일제시대를 뚫고 온 독립투쟁같은 생각도 들지만 초등학교 3학년생의 어께에 일제시대를 거쳐 온 60년 역사라는 학교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 글쓰기에 시달리다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가자마자 자연보호의 날을 기념해 쓴 글 한편으로 수상을 하게 된 후 전교생이 이백명 남짓한 학교에서 거의 글짓기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혹 자는 아버지가 국어 선생님이라 소질을 타고 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절대로 이 자리를 빌어 그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사설이 좀 길었는데 일단 어떤 장르 이던지 써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이 써보고 비판도 달게 받는 겁니다. 비판을 받다보면 의기소침해 지거나 길길이 날뛰는 분노도 경험해보게 되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성찰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찰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매달렸던 부분이 소설이었는데 처음 시작이 너무 원색적이고 도발적이었던지 다듬고 다듬다 보니 너무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 절망적이었다는 슬픈 사연이...

오래 쓰다보니 저 자신이 짧은 글에 강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답니다. 일단 계속 쓰다보면 자신의 소질을 자신이 알게 된다는 뭐 그런 얘기가 아닐까요 자신의 소질에 조금 더 보태어 노력하다보면 좋은 글이...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 싫으시죠, 그냥 쨘 하고 잘쓰게 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아직도 찾아 헤매는 접니다.

아... 소설을 잘 쓰고 싶다. 소설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왕 쓰는 것 (사실 시나 소설이나 쓴다는 고통은 똑같다고 봅니다.) 상금이 제일 많기 때문입니다.(허걱)

상병 김성민
4.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장단점과...앞으로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세요.

☞ 흠... 짖궂은 질문은 삼가 달라고 했건만... 농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얘기 하고 싶지만 솔직히 국사와 역사의 차이점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없었던 관계로 음... 조금은 난해하군요

역사의 가장 중요한 틀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진실을 왜곡할수 없다고 버티던 사료학자들의 꼬장꼬장한 직업의식을 고려해보면 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이 아닐까요.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성찰과 반성없는 역사에 대한 왜곡 때문인데 흔히 독일과 비교하여 그들의 쉬임없는 반성과 사과를 예로 들지 않나요 

역사는 과거에 대한 자기성찰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거울과 같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게 되는군요 우리의 과거가 좋던 나쁘던 자기 성찰을 통해 우리의 미래에 대한 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역사의 긍정적인 힘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서서히 발전한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역사의식은 독도문제나 고구려 문제처럼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침범받을 때만 발휘되는 얄팍한 지식이어서는 곤란하며 자기옹호와 연민에서 한 발짝 나아가 우리 자신이 지키지 못해 핍박당한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과 우리가 일본에게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듯 베트남 파병에 대한 반성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힘, 진실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 그것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우리를 있게 하는 풀뿌리로 넓고 푸른 잔디밭을 위해 결국은 내가 심어야 하는 한포기의 잔디가 아닐까요.

상병 한상원

5. 인생의 선배님으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삶을 건강하게 사는 자신만의 비법이나 마음가짐 같은게 있으면 살짝 공개해주세요.

☞ 앗! 저 불량인데요(멀뚱) 

나이만 더 먹었지 정신연령은 한참 저만치 밑이고 아직도 만화에 열광하고 직장은 인생우선순위 저 아래에서 헤메고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수 있을까. 운동안하고 살 뺄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주말이 길어져 비자도 필요 없다는 일본에라도 갖다 오고 싶지만 여권신청하기가 너무 귀찮고, 주말에는 머리도 안 감고 지나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허걱)

그러나 세월 조금 더 산사람으로 굳이 느꼈던 점을 이야기 하라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을 빌어 생활의 발견 쯤... 사실 철이 좀 늦게 들어서 일상에 대한 성찰이 많이 늦었습니다. 항상 불만이 많았고 여기가 내자리가 아니라는 초조함 때문에 곁눈질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이 좌절하고 많이 실패하고나면 어지간한 충격에는 눈도 꿈쩍 않게 됩니다.(하하)

제가 원하는 건 세계평화나 남북통일, 세계기아해결 같은 거창한 대의적인 명분도 아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고 좀더 편해볼까 하는 것인데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좀 치사하게 사는 겁니다.

사실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걸 A4지 한 장에 죽 써놓고 보니 내가 노력해서 되는 건 몇 가지 없고 다 세상이 뒤집히던지 로또에 두 번쯤은 당첨 되어야 하는 것인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빼고 나면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더란 말이죠. 그렇다면 나머지는 운이나 뭐 그런건데 내가 원래 타고난 운도 없으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보다 내 손에 잡히는 몇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조금 치사하고 쪼잔해지긴 했지만 낙천적이 되더란 뭐 그런 얘기네요. 이도 저도 어쩔 도리가 없는 곤란한 경우가 닥치면 제가 잘 쓰는 방법이 있는데 가만히 ‘정말 이일이 10년 뒤에도 중요할까’ 하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제까지 그렇다라고 대답한 것이 정말 세손가락에 꼽힌 적이 없네요. 나머지는 6번 질문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넘깁니다.(패스)

6. 직업을 갖고 그걸 생활의 밑천으로 삼고 자신의 삶(여가?)을 참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 제 직업은 저도 생각지 못한 뜻밖의 일입니다. 제가 군무원이 되어 이일을 십년도 넘게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저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도 제가 이 일을 이렇게 오래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신기해합니다. 사실 바쁠때는 정말 많이 바쁘고 힘도 들고 또 그렇지 않을 때는 무사안일에다 철밥통이라고 욕하는 공직의 단맛도 가끔 맛보기도 합니다만 어떤 직업이든 밥벌이가 그리 녹록치는 않다는데 동의 합니다.

한자리에서 십년도 넘게 버티라면 절대로 못 넘어 왔을 산이지만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새로운 일을 배웠던 것이 무척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은 언제나 다른 얼굴이지만 같이 지냈던 병사 여러분들! 

처음엔 오빠였다가, 친구로, 후배로, 동생으로 조만간엔 조카로 하향 조정 되겠지만 도도하게 변하지 않는 여러분의 에너지가 저를 즐겁게 하는 또 하나의 밑천입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직업을 가지겠지요. 아마도 한동안은 더 나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0대는 뭐든 열심히 해야 후회가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네요 치열한 것은 젊음의 특권인 것 같습니다. 병사 여러분들과 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정말 훌륭한 여러분이 많다는 사실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직장생활의 보람이죠)

이제 저는 직업에 있어 어느 정도 안정궤도 들어섰기 때문에 제 인생에 있어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직업과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에 대한 투자 이 세부분에 대한 균형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정신이 건강해지고(너무 심취하면 오히려 이상해질 수도 있지요)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건강해지고 친구나 가족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아닐까요

7. '느낌'있게 읽으신 몇가지 나만의 베스트 소설을 추천해주세요.

☞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루이제 린저 - 생의 한가운데,
카를 R 포퍼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소설은 아니지만)
전혜란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병장 구자민
8. 무기력한 삶에 활력소를 넣어줄 그런 책은 없나요?

☞ 김용 - 영웅문, 화산논검, 서양골동과자점, 호텔 아프리카를 읽고 나면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병 박민수
9. 현재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있을까요?

☞
1. 같이 영화보고 밥먹고 TV보고 일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같이 하는 후배(영주야 고맙다)
2. 작년 겨울 큰 맘먹고 장만한 10피스 짜리 나이프 콜렉션
3. 내 서가와 DVD

10. '군에서 이것만은 꼭 얻어나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시는게 있다면?

☞ 군대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만. 정작 말은 안해도 아! 저사람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분 주변이나 

조금 멀리라도 꼭 있습니다. 그런 분을 꼭 찾아서 벤치마킹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을 잘해서?, 인간성이 좋아서? 그런분을 찾아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모델로 삼고 열심히 하면 꼭 무언가 얻어나갈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1. 마음을 송두리째 움직인, 훌륭하고 심원하고 명료한 물음은?

☞ 아무리 잘난놈도 결국은 죽는다. 공평하도다. 죽음이여!
빽도 통하지 않고 돈도 통하지 않으리니 때가 되면 누구든 데려가는 도다
그러니 한세상 사는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 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하나라도 못 견디게 사랑하고 볼일이다.


상병 강재훈
12. 이 책만큼은 꼭 사봐라! 하는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윌 듀란트 - 철학의 즐거움, 
시오노 나나미 - 남자들에게, 
유시민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앙드레 말로 - 인간조건, 
한젬마 - 그림읽어주는 여자, 
진중권 - 미학오딧세이. (너무 많네요)

병장 김승현
13. 글에 대한 아이템이나 기타 주제등은 어떻게 선정하고 어디서 얻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글쓰실 때 ‘나 만의 법칙’같은 같은게 있는지 알고 싶네요.

☞ 가끔 꿈에서 본 일이 생각나 쓸때도 있고 운전하다 문득 떠오르는 주제를 잽싸게 노트했다가 한번 써봅니다. 아이템이나 주제를 선정한다기보다 써놓은 글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췌해서 살을 덧 붙인다는게 맞겠네요. 제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은 주로 일기에서 나옵니다. 나만의 법칙은 음... 잘난 척 하지 말기, 나 스스로 재미있기 입니다.

병장 김석안
14.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어디인가요?

☞ 여행지는 아니고 작년 겨울에 다녀온 겨울산행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몸이 몹시 아팠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눈 덮인 겨울산이 너무 몽환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얼어 죽는것도 나쁘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15. 그녀와 그녀의 종족에서처럼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이 되는지...

☞ 사실 그녀와 그녀의 종족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하지 않은 분석입니다만 재미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가치관은 분류에 상관없이 여자로서 제 자신에 대한 존재의식과 존엄성이겠지요.

16.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인상 깊은 일이나 사건(장도리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만한)이 무엇인지요.

☞ 
첫째.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둘째. 제일 친했던 친구가 내 남자친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셋째. 나는 버스에 있고 그 사람은 정류장을 지나가는데 버스가 떠나며 엇갈려는 순간 왠지 내 운명이 내손아귀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딱 한번

17. 첫사랑은 언제 어떻게 하셨는지..

☞ 첫사랑의 기억은 소설로 풀자면 상중하 세권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보다 네 살 많은 선배였고 참 좋은 사람이었고, 나에게 오페라를 느끼게 해주었고 사진을 찍어 주었고 내 신발 끈을 잘 매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오마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노래하나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고 자주 만나던 은행 앞을(지금은 없어졌네요) 빙 둘러 지나는 거죠

왜 헤어졌는지는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첫사랑은 헤어진 이유보다 그때 누렸던 찬란한 기억이 더 큰 법이라...

18. 정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 학교 앞 작은 술집 - 안주는 니들이 가져오세요. 술만 팝니다, 멸치는 무한 제공


병장 백승철
19. B급을 저열하고 유치한 것으로 깍아내리는 시도에 맞서 적절한 예를 섞어 B급 취향을 옹호하신다면?

☞ 
술하면 오마르 하이얌이 떠오른다. 
B급이나 비주류는 정말로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저열하고 유치하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앤디워홀이나 주성치, 바스키아는 인간의 무엇을 저열하게 하였는가 

훌륭한 식탁은 설탕과 참기름과 미원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쓰고 맵고, 짜고, 신맛을 내는 것들 도 섞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빛과 웃음만의 인생이란 그 누구에게도 존재할 수가 없다. 어둠과 눈물도 항시 곁에 붙어 다닌다. 진실로 인간을 저열하게 하는 것은 비주류나 B이 아니라 이기주의다. 하지만 그놈의 주류나 비주류라는게 정말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지구상에 탈주류의 라는 것도 도래할지도 모른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20. 미친 듯이 화나는 사태에 대한 대처법(예전 ‘조금만 비겁하면’이란 글 때문에 드립니다)이 있나요?

☞ 완전 열 받아 있을 때 심호흡한번하고 제가 먼저 사과합니다. 거짓말처럼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도저히 안되겠으면 혼자 미친 듯이 욕하다가 잡니다. 자고 일어나면 멍해져서 아무생각도 안 납니다. 그래도 덜 풀리면 지르텍 한알(비염약) 먹고 또 잡니다.


일병 강승민
21. 지연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 제게 있어 가족은 시련이었습니다. 순탄치 않은 가정에서 유년기를 온몸으로 뚫고 지나오느라 많이 지쳤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과연 가족이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고통이건 괴로움이건 나를 거기 있으라 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담담하게 관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더없이 가엾게 여기고 가슴 한 켠에 서늘한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22. 지연님의 우상은요?

☞ 제인 구달

일병 안대섭
23. 연상연하 커버 가능범위는 어느 정도인가요?(이왕이면 B급)

☞ 흐흐흐... 아래로는 10살 위로는 두 살(제가 정신연령이 아래로 아래로만...)

상병 김동환
24. 제 인생의 목표는 ‘좋은아빠’ 좋은 남편‘ 좋은 사람인데요. 지연님의 인생목표와 그 설정배경은 무엇인가요?

☞ 죽을 때 미련 없기(정말 열심히 살았어 이제 쉬어도 좋아) 이런 생각을 하면 하기 싫은 일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그런...


일병 강경구
25. 꼭 가볼만한 여행지 한곳을 추천해 주세요.

☞ 11월 초겨울의 백양사, 눈 덮인 겨울산행

26. 좋아하는 음악장르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장르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제니스 조플린을 좋아하고, 뉴 트롤스, 헤리코닉 주니어, 빌리 할러데이, 허클베리핀, 아소토 유니언 생각해보니 소울을 편애하는군요

27. 아직 진행중인 목표(혹은 꿈)는 무엇인가요?

☞ 내 얼굴에 책임지기(잘 늙기) - 그래서 예쁜 노인네 되기


상병 이효철
28.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세요?

☞ 아니 그럼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요(그런 무서운 일이)
비는 뿌리고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을 주고 달라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상병 한상천
29. 소소한 주제의 글을 맛깔스럽게 쓰시는데 그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 음... 일기의 힘입니다. 91년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교환일기를 써보기도 했습니다.(동수야!)

일상에 대한 되새김질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30. 지연님의 글의 주제가 광범위하신데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어떤것이고 계획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 온갖 잡다한 분야지만 그래도 가장 알수도 없고 눈을 뗄수 없는 건, 사람입니다. 계획중인 프로젝트는 후배를 꼬셔서 술집을 차리고 저녁에 알바하는 겁니다.

병장 최강현
31. 지나간 시절에 즐겨 읽던 책이나 그 시절을 회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면요? 

☞ 
레마르크 - 개선문(이 책을 읽고 깔바도스를 마셨죠)
제인 오스틴 - 오만과 편견
루이자 올컷 - 작은 아씨들(책표지가 너덜너덜 할 정도로)
강석경 - 청색시대 (운동권이었던 친구와 함께)


병장 장성운
32. 위 질문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 19번이요(제대로 못한 죄책감 때문에 - 원래 자기변론에 약한지라)


병장 손영청
33.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 루 살로메

상병 이수도
34. 정말 훌륭하지만 도저히 읽을수가 없었다고 생각된 책이 있으신가요?

☞ 좀 부끄럽지만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랬습니다.(괴테가 미워요 흑흑)
사르트르의 구토,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자꾸 나온다. 그만해야지)

병장 이진상

35. 사랑, 인생, 돈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 사의 찬미 아시나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랑은 넘치지 않게, 인생은 초연하게, 돈은 나를 좋아하게 (음 하하)


상병 이천용
36. 좋아하는 음식 다섯가지와 그 요리법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 잠시 식은땀이 난다는... 좋아하는 음식을 다 요리할줄 알아야 하는 건가요. 제가 즐기는 음식 중 쉬운 거 몇 가지 골라드립니다. 재료 고유의 맛을 즐깁시다.

가. 안심스테이크 - 좋은 안심을 고르는 것으로 거의 50% 완성입니다. 

재료 : 안심 200g, 마늘, 올리브 오일, 브로콜리, 통후추, 빵, 양파, 버터

① 안심은 방망이로 다져서 통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해서 30분쯤 숙성시킨다.
② 팬에 버터 1큰술을 넣고 자른 양파를 넣어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준다.
③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슬라이스한 마늘이 갈색이 될 때 까지 볶다가, 마늘을 건져내고 안심을 넣어 타지않게 잘 익힌다. 
④ 브로콜리는 끓는물에 살짝 데쳐 먹기좋게 찢는다.
⑤ 커다란 접시에 안심과 브로콜리 볶은 양파, 안심위에 갈색이 나게 튀겨진 마늘을 올린다. 
⑥ 접시에 빵을 곁들여 내고 레드 와인을 곁들인다. 

나. 토마토-모차렐라치즈 샐러드

재료 - 토마토 1개,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 올리브 오일, 마늘, 발사믹 식초

① 팬에 올리브오일을 넣고 마늘향이 우러나도록 마늘을 볶는다. 소금과 발사믹 식초, 치킨 육수를 부어 소스를 만든다(귀찮으면 마트에서 파는 발사믹 샐러드 드레싱을 사용해도 무방)
② 토마토를 잘라 오븐에 5분쯤 굽는게 좋지만 귀찮다면 그냥 써도 된다.
③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를 깍둑썰기 하여 토마토와 함께 소스에 잘 섞는다. 
④ 파마산 치즈를 뿌리고, 바질이나 파슬리를 뿌려 오븐에 5분간 살짝 구워서 먹으면 맛있다.

다. 영양밥 + 미역국

재료 - 쌀, 흑미쌀, 밤, 은행, 말린 표고, 호박씨, 미역(청미역), 새우

① 쌀, 밤, 은행, 표고, 호박씨를 잘 씻어 밥물을 앉히고 압력밥솥에 밥을 짓는다.
② 미역은 물에 불려서 잘게 자르고 냄비에 참기름과 생새우를 넣어 잘볶다가 미역을 건져 같이 볶는다.
이때 물을 약간 부어 미역이 절반쯤익을때 까지 볶아준다. 
③ 물을 붓고 잘 끓이다가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방울 더

라. 김치 스팸 찌개

재료 - 스팸 1통, 김치 반포기(맛있게 익은 김치가 승패를 좌우함)

① 김치가 짜거나 속이 너무 많으면 조금 털어낸다. 뚝배기에 물을 붓고 김치를 넣어 끓인다. 
② 스팸을 뚝뚝 잘라 넣는다. 김치가 폭신폭신하게 익을때 까지 끓인다.
간은 소금으로 한다. 
뜨거운 하얀 밥과 함께 훌훌

마. 오징어회와 수제비

재료 - 오징어1마리, 호박 조금, 파 조금, 버섯 조금, 청양고추 1개, 밀가루 반죽

①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손질한 오징어를 넣는다.
② 오징어가 데쳐지면 건져놓고 다리부분과 귀 부분을 잘게 썰어 다시 넣는다
③ 호박과 버섯을 넣고 밀가루 반죽을 뚝뚝 얇게 떼어 넣는다. 간은 소금으로 한다.
④ 오징어 몸통은 잘 썰어서 초장에 찍어먹고, 수제비는 훌훌 마신다.
※ 오징어를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라면 끓여 먹을 때 넣어 먹으면 해물라면이 된다.


일병 박성우
37. 하지연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종족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혹시 그녀와 그녀의 종족에서 고르라고 뜻인지...

낙낙한 키에 아무리 아파도 혈색 좋은 얼굴, 성질은 가끔 불을 뿜는데다 칩거를 좋아하고 PC 앞에 앉아 끄적거리고, 심야영화를 즐기고, 호러 만화광 이며, 시끄러운 술집이 싫어서 집에서 맥주나 양주를 홀짝거리고 계절마다 비염을 앓고, 햄스터 1마리와 열대어 12마리를 기르며 후배 몇에 친구 두세명으로도 인간관계를 버거워하고 비누와 책 사 모으는 게 취미인 종족입니다.



상병 이천용
38. 살찌고 인상적으로 - 못생겼다는 말은 식상하니까. - 생겼으며, 가끔 입에서 튀어나오는 독설에 능력없음, 우유부단함과 잘난 척까지 겸비한 남자에게 해주고 싶은 연애조언이 있다면?

☞ 다 좋은데 우유부단함이 제일 맘에 걸리네요. 불평 불만을 줄이고 추진력을 같이 겸비하시죠, 단점이 장점으로 바뀔수 있을 것 같네요

39. 좋아하는 그림이나 화가 조각 같은 것들이 있으면 이야기 해 주세요.

☞ 그림은 판화를 좋아하고 화가는 이철수, 이중섭, 프리다 칼로, 클림트, 샤갈을 좋아합니다.

뭐든 복사화보다 실제로 그린그림을 선호하며 적금 들어 그림 하나씩 사 모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병 채종국

40. 여행과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 여행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게 떠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떠들썩하게 떠나는 여행은 관광에 가깝지요 좋은 여행은 장소와는 관계없이 스스로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자기를 가깝게 들여다보는 것이겠지요. 옛날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가을 날씨에는 경쾌한 산타나 음악이나,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도 어울리고, 윤도현의 라이브 음악도 제격입니다.(합천 가는길 추천) 비가 촐촐히 내리면 심수봉의 노래를 들어도 좋고 뿌연 창문에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장사익의 찔래꽃을 들어도 좋습니다.(남해가는길 추천) 캄캄한 밤의 드라이브는 달빛 푸르스름한 산길을 달리며 안개가 피는 호수를 내려다보며(하동 가는 길 추천) 빌리 할러데이나, 해리 코닉 쥬니어도 좋고, 노팅힐의 OST도 좋습니다.

41. 어떤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추가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 음악도 영화도 코드만 맞으면 다 좋아합니다. 
근래에 본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달콤한 인생, 씬 시티, 형사 굿 컴퍼니, 클로저 정도네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생각해 주세요
음악은 제니스 조플린, 장사익, 김윤아, 허클베리핀, 아소토 유니언, T(윤미래) 제일 좋아합니다.



병장 오재찬
42. 질문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일 어렵게 읽으셨던 책이 있다면?

☞ 단테 - 신곡, 볼테르 - 캉디드, 니체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로 철학책을 읽으며 절망했다는)

43.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증후군이 있습니까?

☞ 증후군은 잘 모르겠고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은 몇 가지 있습니다.
한겨울 한달 빼고 맨발로 다니기, 옷 두개이상 못 껴입는 것. 집에 똑딱거리는 시계 못 두는 것, 10시 이후로 집 전화 절대 안받기,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 미지근한 물 마시기, 충 잘 추는 남자한테 껌뻑죽기 등등 (양호하죠?)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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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북 클럽과 조우한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요. 또한 남자들만 있는 인트라넷 게시판에 어떻게 참여하실 용기를 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군무원이시면 인터넷에서 더욱 풍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데 굳이 인트라넷 북 클럽에 참여하시게 된 어떠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 처음 북클럽을 알게 된 건 굉장히 우연이었습니다. 제가 잘가는 싸이트에 ‘놀러오세요’란 글을 보고 호기심에 열어보게 되었는데 당시 엄청난 학구열을 뿜어내시던 승주님 민관님 상래님 우경님 금주님 글을 보고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전 별로 학구적이지도 않고 토론을 즐기지도 않았지만 그때 그분들 글은 정말 굉장했거든요. 틈나면 들러서 읽기를 즐기다가 아마 적당히 추웠을 때였으니 11월쯤 됐을 겁니다. 가을을 타서 그랬는지 갑자기 감상적으로 가입인사도 없이 갑자기 ‘선배에 대한 단상’ 이란 글을 올렸는데 당시 리장 이신 성범씨와 촌장이신 승준씨의 필진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가 스스로 즐기기 위해 글을 쓰는 편이라 용기라고 까지 할 건 없구요. 집에 있는 인터넷은 주로 인테리어 정보나 쇼핑에 이용하고 제가 가입한 유일한 동호회는 팍시 라고 조금 색깔 있는 싸이트라 주로 날리는 글도 여기에는 올리지 못하는 글들입니다. 일단은 우리 북 클럽 여러분들의 예의바름이 너무 좋고 우아한 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인터넷 어디를 통 털어도 가장 맘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가끔 부락이 폭파당하고 사람이 자주 바뀌는 당혹감도 있지만 제가 근무하는 날까지 계속 갔으면 하네요


2. 주신 답변들을 보다가 프리다 칼로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시고 몸이 멎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그녀의 그림에서 특별한 감동을 느꼈거든요. 과연 어떠한 종류의 전율이었는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무엇을 보셨는지에 대한 하지연님의 미학적인 해설이 매우 궁금합니다. 또한 그녀의 그림이 버지니아 울프 등의 여성 예술가들이 이야기하려 하는 가치와 비교해서 어떠한 특징을 지녔는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군요.


☞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게 된 건 아주 오래전입니다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다친 사슴’과 ‘프리다와 유산’ 이란 그림이었습니다. 

피 냄새나는 개인적인 슬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용기 없는 사람들은 얼굴을 돌리게 만드는 고통의 극한까지 체험한 듯한 슬픈 표정의 피 흘리는 자화상은 저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러니는 초현실주의 화집에서 그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프리다 자신은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겁니다. 너무 강렬한 색체였고(그녀가 멕시코인이고 아즈텍과 마야에 근간을 둔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여자의 고통이 너무 생생해 보고 있는 나 자신조차 괴로웠던 느낌입니다. 이후에 그녀가 소아마비였고 교통사고로 척추와 다리, 자궁을 다쳐 30번 이상의 대 수술을 받아 거의 일생을 침상에 누워 지냈다는 걸 알게 되고나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그녀가 페미니즘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그녀가 짧은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용감하게 자신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直視(직시)했으며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렸다는 것 이지요. 버지니아 울프나 까미유 끌로델처럼 자기 파괴적인 예술가 보다 자기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가 아우라를 만드는 프리다나 루 살로메같은 예술가를 좋아합니다. 




세번째 질문 보냅니다~

책마을 촌장을 하면서 책마을의 거의 모든 게시물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마을은 이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아닌것 같습니다. 

다들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사실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어눌하지만 농도짙게 표현하는 곳을 찾아보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라면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죠.

자신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군에서 어렵고 힘들다는 것에 토로를 많이 하곤 합니다. 군생활이 기본적으로 어렵고 힘든 생활이기 때문이죠.

인생의 선배인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면 자신의 청춘시절을 다시 떠올리셨을 수도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 하지연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러한 시기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나요.


☞ 저는 조금 복잡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데, 제가 독립한지 10년쯤 되니 그 나머지였던 시간 모두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절대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때는 항상 고슴도치처럼 저자신의 속도 내보이지 않고 다가오려는 사람에게조차 가시를 들이밀었지요. 이전에 한번 썼던 성장통에서 얼핏 얘기했는데 학교시절 교수님께 많이 사랑 받았던 것이 지금의 저를 그나마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긴 시간이었고 간간히 빛나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다시 돌아가 마주칠 용기가 없네요.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똑바로 쳐다본 프리다 칼로의 용기가 늘 부럽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므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기보다는 견디어 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그 시절에 대한 글을 써보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 담담한 시선을 줄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밉고 괴로운 것이 없을 때 긴 한숨처럼 써볼 생각입니다. 오겠지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그날이 저를 다시 거기 있게 하겠지. 그렇게 막연히 생각합니다. 





네번째 질문 드릴게요.

역시, 이번에도 다른 회원분들의 문답내용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회원분들과의 대화에서 하지연님의 취향이 상당부분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굉장히 훌륭한 책이나 예술작품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루이제 린저의 소설이나 전혜린의 수필집이라든지, 두번째 질문에서 이야기한 프리다 칼로라든지 말이죠.

괴테가 한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최고를 보면 절로 사물을 보는 눈이 생긴다. 중간 정도의 것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사물을 보는 눈은 달라지지 않는다."

라는데, 책마을의 회원들이 하지연님의 글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이유도 역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하지연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과정이 완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만큼 글쓴이의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뜻이며 그와 더불어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글쓴이가 인간적으로도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비록 우리가 항상 완성된 인격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포착한 놀라운 것을 글에서 표현하는 순간보다 더 자신의 내면과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은 없습니다. 

하지연님께서 여태까지 시도한 거의 모든 결과물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충분히 남다르게 사물을 보실 줄 아시며, 때로는 어질고 때로는 쿨하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처음 하지연님이 책마을에서 활동하실 때부터 저는 왜 하지연님이 B급이라며 스스로를 자평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존의 B급 결과물들은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방법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공식으로 하고 있지만 당최 하지연님의 성향과 기존의 B급 문화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 이래도 자신을 B급이라고 주장하실렵니까.

참고로 아카데믹한 주제나 철학, 정치와 관련된 담론에 몰두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일종의 자의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상태는 이러한 자의식을 잊고 나 자신마저도 잊는 상태이죠. 다만 사회가 이러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담론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카데믹함을 향한 자의식이 다른 어떤 소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상원씨 말씀을 듣고 나니 왠지 스스로 조금은 진지해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쩔 수 없이 숙연하게 저 자신을 고찰하게 됩니다. 

제 취향에 새로운 점이 있고 혹은 장점이 있다면 그건 세상을 조금 더 산사람으로의 미덕이겠지요. 전 TV에서 퀴즈를 즐겨봅니다만. 요즘에 느끼게 되는 것이 공부를 해서 알게 되는 지식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물을 보는 시력이 떨어지면 공평하게도 경험 치에 의한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고 모든 것이 다 훌륭하게 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좋은 것을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쯤은 더 있었으니 행운이었고 또 기꺼이 즐길 수 있었으니 지나온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것 이지요. 그것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기 전에 벌써 훌륭한 것들이었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 이지요. 고급한 취향을 얘기하라면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여성이 있는데 시오노 나나미랍니다. 그 여자의 글과 모습을 보면 어디 고급한 살롱에서 향기로운 중국차 한잔을 들고 화려한 나비무늬 의자에 몸을 파묻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부러워 죽을 지경입니다(이정도 인생이라야 제대로 즐긴다고 할만 하지 않을까요) 

글을 잘 쓴 이와 그 사람의 인간이 완성되어 있다는 상원님의 말씀에는 감히 동의하지 못 하여드립니다. 영혼을 건드리는 훌륭한 글을 쓴 작가 중에는 평생토록 자기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대인 기피증으로 고생한 사람도 많지 않나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는 쥐스킨트의 향수나 좀머씨, 콘트라베이스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도 에밀을 쓴 루소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또스또예프스키도(그냥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그리 완성된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점에서 훌륭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히 훌륭한 글은 재능의 극히 일부분과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인내, 그리고 탈고를 위해 버려진 원고의 양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사물을 남다르게 보는 시각이라 함은 여러분들이 그러하다고 하시니 그런 것이지 저 자신은 그것이 어떤 것 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얼핏 학교시절 친구들이 ‘넌 좀 이상해’ ‘특이해’ 라는 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제가 꾸준히 썼던 잡문들 역시 독자 없이 책장어디에 꽂혀 있으므로 평가를 받자면 책 마을 주민들이 읽어 주시는 게 남들에게 드러내는 전부라 볼 수 있겠네요. 어쨌건 제가 정통적이지도 않고 주류에는 한참 떨어진 사람이란 걸 안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보수도 아니요 정통도 아니요 주류도 아닌 사람을 달리 뭐라 불러야 할까요 그렇다고 진보라고 하기에도 비주류라고 하기에도 사실은 어떤 사조에도 편승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식객으로서 B급에 무임승차 해보려는 것이 간절한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노골적이고 원색적으로 저의 세속적인 욕망에 충실할 수 있다면 과연 얼마나 좋을까요 





병장 한상원 (2005-11-03 15:26:18)  
잘 읽었습니다! 생각에 잠기게 되네요. 하하.  

병장 한가인 (2005-11-03 15:27:29)  
후아~ 여기까지 읽는데 40분 시간이 걸렸군요(허걱)

정말 잘 읽었습니다. !  

병장 한상천 (2005-11-03 16:03:09)  
와우 상원님 그리고 지연님 모두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무엇인가 또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지만 그냥 한마디만 하려해요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무의미한 개인적인 취양의 차이인것 아닌가요?"라고 말이죠..

저도 촌장이 되서 가장 해보고 싶은것이 회원특집인데 역시나 상원님의 내공은 회원특집일때 가장 환하게 빛나는거 같아요.. 저도 지금부터 꾸준히 준비해서 회원님들 필진님들을 꼭 회원특집을 해야겠어요..

다시한번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너무나 웃음이 나는 회원특집입니다.  

병장 오규현 (2005-11-03 16:45:40)  
와. 잘 읽었습니다. 휘황찬란한 필력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내시는 글에서 아우라가 느껴진 건 저 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수고를 맡아 해주신 상원님께도 감사드리고, 역시나 모든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주신
지연님께 감사드립니다.(웃음)  

상병 박수홍 (2005-11-03 17:14:19)  
아아_ 강력한 포스  

일병 안대섭 (2005-11-03 17:18:44)  
아래로 10살! 아싸~  

상병 박민수 (2005-11-03 20:42:53)  
와.  

병장 박윤철 (2005-11-03 21:43:58)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20대의 저로서는, 불안하고 깜깜한 터널입니다. 관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다시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히곤 해요. 프리다 칼로 님의 그림, 꼭 찾아보겠습니다.  

병장 한상원 (2005-11-04 07:38:02)  
맞다. 영화 <프리다>도 참 인상깊게 봤었는데.  

병장 김동환 (2005-11-04 08:22:33)  
쉽지않아요. 쉽지가 않아.  

이선호 (2005-11-04 08:48:49)  
음 이참에 일기쓰기를 시작해봐야겠습니다. 잘봤습니다.  

병장 구태우 (2005-11-04 09:00:25)  
11월의 아침에 출근하여, 읽은 가장 첫 게시물이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하지연님 그리고 상원씨 고마워요~ 11월 아침은 푸근한 글과 생각할 거리가 주어졌군요. 
저는 그림을 볼 줄아는 눈도, 좋은 책을 저에게 흡수할 수 있는 능력도 이렇다 할 토대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도 저도 없지만, 취향 만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군요.
인터뷰를 보는 내내.. 질문에 저 나름대로 대답도 해보다 보니.. 나의 취향이란 단어가 입에서 맴도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하지연님의 글은 박완서 님의 글과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몇 편의 칼럼과 인터뷰를 보게되니, 지금까지 지연님께서 쓰신 글에는 즐거운 카키 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일병 강승민 (2005-11-04 09:02:58)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근데 지금 문득 갑작스럽게 떠오른 질문인데
하지연님도 아침에 일조행사를 하시나요?  

일병 김영웅 (2005-11-04 11:59:28)  
어제야 글을 보게 되어, 오늘 지금에야 다 읽어보았습니다

하지연님에 대한 질문과 답변들이 어떤 목적을 띈 글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암묵적으로 글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독서에 대한 진지함을
깨우쳐 주고 있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병장 박상훈 (2005-11-04 14:18:18)  
신기해요. 정말 가까워진 느낌인데요?  

7급 하지연 (2005-11-04 16:07:28)  
오늘 제가 유난히 바쁜듯... 상원씨와 주고 받은지 오래된 글이라 다시 읽어보니 많이 미흡하고 새삼스럽게 부끄럽네요. 좋은 질문에 턱없이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 또 제가 필력이 딸린건 어쩔수 없이 얼렁뚱땅 넘어간 티가 역력하네요. 이건 변명입니다만 시간은 우리편이니 서서히 알아가는 재미도 남겨 둬야하겠기에..
//승민씨 질문에 답변드립니다.
일조행사는 비오거나 휴가때 빼고 꼭 참석합니다. 하루 운동량을 채우려면 열심히 해야하거든요. 또 아침에 일조행사하고 들어오는 길에 쌀쌀한 가을날씨를 감상하며 따뜻한 커피한잔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병장 박상훈 (2005-11-04 16:38:12)  
으아, 꼭 질문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못했군요. 좀 늦었지만 해도될까요?  

상병 손동철 (2005-11-05 20:59:00)  
갑자기 책마을이 더 좋아졌어요.  

상병 백일선 (2005-11-07 12:53:34)  
와 저도 제인구달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우상이 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알고 싶습니다.  

상병 이경준 (2005-11-07 15:05:26)  
제 인생 앞으로 20년 안에 이런 글을 쓸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는 그때 하지연님 이름을 제 기억에서 끄집어내도 될런지요?
하지연님의 글을 보고 있자면 옛 여자친구 생각이 나네요..
그얘(연상이었지만)도 이런 감칠맛 나는 글을 잘 썼거든요  

병장 박상훈 (2005-11-08 08:42:13)  
김원순상병님은 이 곳 책마을의 회칙을 읽어보셨는지요? 
여긴 책을 매개로 모인사람들의 공간이지, 같은부대 사람들의 놀이공간이 아닙니다.  

병장 김지건 (2005-11-08 16:13:43)  
와악~!!! 여자분이셨군요~ 군무원이라서 30대 초반쯤의 남자분일거라 생각했었는데~ 난 왜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음...독재자의 등장이라... 쿠데타는 없나요? 하핫~ 뭐 저야 독재를 하시든 쿠데타가 나든 이제 상관없는 때가 되어서~ 수제 쪼꼬 한통에 맥주 3천 손수 땡겨주신다 해도 Now is the time to say goodbye입니닷~! 아유...고것 참 아쉽네요~ 책마을 처음 알게된게 병장달고도 한참 뒤였는데 처음 읽었던 글이 [핸드메이드]였지요. 그나저나 인트라넷에서 이런 대화는 어떻게 하신건지 궁금...아니 이제 궁금할 필요도 없네요. 염장염장.("유치한 장난이 제일 재밌다" - 05년 늦가을)  

병장 최성운 (2005-11-09 10:45:21)  
정말 잘 읽었습니다.  

병장 이영준 (2005-11-10 13:29:10)  
글을 읽고 있자니 참 괜찮은 분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열심히 살고 열린 마음을 가진 분인거 같아
부럽기도 하고 11번 물음은 진짜 멋지네요. 하하  

병장 안준원 (2005-11-20 12:47:47)  
오호, 뉴트롤스를 좋아하시는 군요.  

일병 김영웅 (2005-11-25 19:51:46)  
이 글을 읽은지 벌써 3주 정도가 되었네요..
문득 북클럽에 들어와보니, 있떤 [하지연님과 이야기해보았습니다]라는 글귀....
그리고 운좋게도, 맨 윗줄에 있던 제 질문....
하지연님께 뭘 구체적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습니다.

참 멋진 분, 멋진 세계,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병장 김동환 (2006/03/23 23:34:33)

경준님 댓글 이모티콘 사용으로 수정했습니다.    
 
 
 상병 조경동 (2006/05/02 12:37:06)

아무리 잘난놈도 결국은 죽는다.공평하도다.죽음이여! 
참 멋진 말이네요(웃음) 
그리고..전..가족간의 사랑말고는..다른 사랑은 믿지 않네요(웃음) 
아무튼..잘 읽었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