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환상 속의 그대
상병 김예찬 2009-04-30 14:20:46, 조회: 192, 추천:0
점심을 먹다가 TV를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 조사와 관련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TV뉴스는 봉하 마을에서 서울지검까지, 몇 대의 차량이 동원되고 몇 명의 취재진이 따라 붙으며, 심지어 저녁은 곰탕이나 설렁탕이 나올 예정이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알려준다. 어제 있었던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한 뉴스도 나온다. 선거 결과에 따라 각 당 대표들의 거처가 어찌 될 것인지, 무소속으로 당선된 몇몇 정치인들이 과연 복당할 것인지. 친박계가 친이계를 압박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든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뉴스를 보면서 점심을 먹던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을까? 정치권의 자금 흐름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 <남자 이야기>처럼 리얼한 부패와 비리의 장면들을 파헤쳐보고 싶다, 는 등의 이야기다. 모 정당이 5 - 0 대패를 당했다느니, 모 당은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나왔다는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정치는 부패와 비리의 영역이며, 마치 삼국지 게임의 땅따먹기처럼 의석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나와 유리된 가상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논해진다.
이처럼 언론 매체의 정치 보도와 이에 영향 받는 사람들의 '정치 이야기'는 '정치의 풍경spectacle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는 정당 정치는 마치 폭력 조직들의 세력 다툼처럼 여겨진다. 각 정당은 각자의 지역적 기반(나와바리)를 토대로 국회(전국구) 의석을 획득한다. 그리고 5년에 한번씩 대통령(통합 보스)을 선출한다. 각 정당(조직)들의 정책과 이념들은 단순히 세 다툼을 위한 도구(사업)로 쓰여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유독 비리와 부패를 선정적으로 보도해대는 언론 매체들은 정치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환상을 심어준다. 정치는 곧 권력과 돈을 향한 지난한 투쟁과 다를 바 없다.
(사실 현실 정치의 실체가 그와 다를 바 없을지라도) 정치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에 강렬한 위기를 불러온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그러나 국민들 스스로 이러한 '권력 행사'를 단순히 자신들과 유리된 '정치'의 영역으로 생각할 때, 그리고 그 정치를 권력과 돈, 부패와 비리라는 이미지로 어둡게 매듭 지어 놓을 때 '현실 정치'는 그때야말로 자신들의 속성을 마음껏 풀어헤쳐놓는다. 대의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수단이어야할 선거는 정치적 시나리오를 갖춘 쇼로 전락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선거권을 행사하는 '주체'의 위치보다는 선거를 바라보는 관객의 위치를 선택한다는 것은 이러한 '쇼'를 묵인한다는 뜻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천자가 아닌, '쇼'의 연기자 역을 맡는 정치인들은 더 자극적인 '작품'을 통한 스타의 길을 걷는다. (가끔 스스로가 정말로 조폭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착각하는 사람들은 조폭 영화보다 더 자극적인 액션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것은 단지 '현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를, 사회를, 역사를 단지 나와 유리된 풍경으로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유리된 인식 속에서 정치와, 사회와, 역사에 대한 탄식은 다만 탄식에 그칠 뿐, 정치와, 사회와, 역사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 해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의지의 결여 속에 정치와 사회와 역사는 (남은 몰라도) 나에게는 유무형의 위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주고, 세상이라는 풍경은 소비 사회의 다원화된 이미지, 환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 바로 '그대'가 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5-15
13:38:20
상병 김정민
그리고 그대도 있죠. 2009-04-30
14:36:54
상병 김국한
政治는 靖侈가 되어버렸지요.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발을 담그기 전 품었던 청운의 꿈들은 막상 발을 들여놓고 나면 어디로들 그렇게 가버리는건지... 2009-04-30
14:38:45
상병 진수유
주체적 인식이 결여된 사회에서의 주체들의 문제군요. 2009-04-30
15:13:22
상병 이기범
현대 사회에서 대중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대중 매체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사건을 바라볼 때 대중매체가 크게 취급해야만 중요한 사건인 양 인식하고 대중 매체가 취급하지 않으면 하찮은 사건인 양 생각하기 쉽지요. 대부분의 언론은 정치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는' 열심히 보고하여 중요한 사건인 양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건 다른것인데 말입니다 2009-04-30
15:51:39
일병 김소망
정치와 우리가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둔 정치에 대한 풍자나 비판, 문제제기는 정치적 허무주의로 귀결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이 밑도 끝도 없는 상대주의로 흐르거나 허무주의로 흐르는 것보다는 그것을 변화의 동력, 실천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09-05-01
06:40:50
일병 김소망
요즘 같을 때일수록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2009-05-01
06:41:44
병장 김형태
뉴스를 보는데 어떤 남자분이 이러덥디다 "요샌 검찰이 정치를 해" 2009-05-01
07:31:04
상병 김지호
기성 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건 아니다 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현 우리 정치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투표하시오 투표하시오 그래야 바뀝니다 떠들어 대도
막상 투표하러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찍을 사람이 없다, 이게 참....
그나저나 한국정치는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2009-05-01
14:54:42
상병 김태완
막연하다는 생각만 드네요.
정치에 대한 의식은 하고 있고 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정치 얘기들을 듣고 나면 그냥 그런 일이 있나보다란 생각밖에 할 수 없군요.
이러한 태도는 일반적으로 나태하고 안일하다 판단됩니다.
나태함은 일상생활에서 배제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태도로 분류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 내가 선구자를 자처하여 나서서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할까요?
말로써 글로써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집회 하나 결성하면 될까요. 정치인이나 높은사람이 되면 가능할까요. 이러한 실천적 노력으로 현 정치판에 영향력이나 행사할 수 있을까요.
과연 안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물론 결과가 없더라도 한번 행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죠.
그러나 정치에 관련된 일이면 우린 대부분이 회의적으로 변합니다.
누구도 선구자가 되긴 싫어합니다.
귀찮아 하거나 두려워 합니다.
정치판은 늘 권력싸움이 피터지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거기에 제재를 걸기에 우리의 힘은 너무 나약합니다.
단결력도 약합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다시한번 정치판은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나약한 인간이라 나를 손가락질 해 보지만 그저 고개만 숙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속으로는 훗날에는 한번 생각해 보겠다 의지를 다집니다. 그러나 이것도 실상으론 미루기일 뿐입니다. 2009-05-01
17:44:33
일병 김강현
윗 댓글을 보니 "오바마 이야기"에서 읽은 그의 질긴 희망이 생각나는군요. 2009-05-02
12:2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