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에 관하여 
 병장 이승일 05-13 14:17 | HIT : 207 



IVY 는 립싱크를 하고 있는가, 라이브를 하고 있는가. 

< 라이브의 경우>
--------------------- IVY의 입모양, 표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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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에서 나오는 노래소리


< 립싱크의 경우>
----------------------IVY 의 입모양, 표정 등
( 단순한 일치)
----------------------TV 에서 나오는 노래소리



< 립싱크의 경우> 와 <라이브의 경우> 는 각 경우에 TV에서 나오는 소리와 IVY 입모양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경우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지금 들리고 있는 음성이 아이비의 성대로부터 나온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TV에서 나오는 노래소리" 와 "IVY 입모양, 표정 등" 뿐이다. 우리는 그 사이의 <관계> 를 직접 볼 수 없다. 
 그러나 직접 볼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판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한 근거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충분한' 근거가 주어질 수는 있다. 우리는 IVY 의 입모양과 노래 사이의 싱크로율을 관찰한다. 자세히 관찰하면 관찰할 수록 우리의 판단은 더 신뢰할 만 할 것이다. 노래 전체가 흘러나오는 동안 단 한번도 불일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랑스러운 그녀가 노래실력까지 뛰어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화면 상단에 "LIVE" 라는 글자가 뜬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방송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진짜 라이브다" 라고 말해준다면 더욱 더 좋을 것이다. 심지어 IVY 가 내 누나여서, 집에 돌아온 후 "라이브 맞어~" 라고 한다면 더욱 더 확실해 질 것이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전한' 것은 아니다. 방송사도, 친구도, 심지어 누나도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련된 회의주의자들은 이것이 결코 완전히 확인 될 수 없는 것이며, <말할 수 없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침묵해야한다고 시끄럽게 외친다. 100% 확실한 근거가 결여되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과연 어떤 근거가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자.  IVY 가 라이브를 한다고 믿었는데, IVY 자신의 고백을 통해 립싱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해보자. 이 경우 우리는 어쨌건 새롭게 진실을 알게된 것이다. 물론 이 마저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것은 단지 <상상>에 의해 얻어진 판단일 뿐이다. '립싱크를 하고 있다' 라는 새로운 판단에는, 완전하진 않지만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거짓일 수도 있다' 라는 주장은 단지 상상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물과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해선 안된다는 사람, 어떤 것도 완전한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는 사람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 자신의 주장 속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단지 "이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는 상황" 에 대한 상상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만약 단지 상상이 아닌,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면 -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 우리는 그 근거에 의해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근거에 의해 무언가를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무언가를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를 공허함으로, 모든 진실의 결핍으로 이끄는 근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공허함과 진실의 결핍으로 이끄는 모든 주장은 자세히 보면 근거가 전혀 없다. 

 객관적인 진실과 사실에 대한 반발심은 지금 당장 그것이 손에 쥐어져있지 않는 불만과 조급함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목표에 도저히 도달하지 못하겠기에, 그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진실이 없거나 상대적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은 어쨌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자기 주장조차 진실이 아니고 뭐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의미 속으로 스스로를 침잠시킨다. 세상이 자신과 함께 침잠하길 바라면서. 그러나 무의미 속으로 침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이 이 처럼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모순을 도리어 심오함으로 간주하고 신봉한다. 그 심오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순은 단지 거짓이며, 무언가가 빠져있기 때문에 모순일 수밖에 없음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심오함은 결코 사람을 무의미와 모순으로 이끌지 않는다. 



* 글의 제목은 비트겐슈타인의 책 제목에서 빌어온 것임을 밝혀둡니다.  


 병장 홍연택 
 이런 탁월한 글에 댓글이 하루종일 방치되다니... 

 사려깊은 승일씨의 생각과는 별개로 
 아이비는 라이브가수입니다.(발그레) 05-14   

 병장 우석제 
 아이비는 이쁘다 05-14   

 병장 진규언 
 생각의 확장을 개인의 발전이라고 보았을때, 시시껄렁한 자기계발서 100권보다 승일님의 짧은글 1편이 훨씬 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05-14   

 상병 구본성 
// 규언 요즘, 승일씨와 태식씨 논쟁의 의미 한자락이 저에게도 다가오더군요...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이요. 회의주의자라고 하면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실증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05-14   

 병장 김지민 
 재밌다, 역시 이승일 이란 말밖에 못하는 나는 (.) 킁 05-14   

 상병 박수영 
 개인적으로 괴수라는 용어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승일씨는 역시 괴수... (후다닥) 05-14   

 병장 김청하 
 끝에서 좀 갸우뚱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마지막 문장은 진실이라기보다 바람 혹은 기대 아닐까요? 05-14   

 병장 이승일 
 청하 / 청하씨는 참인 명제나 형식체계가 모순을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심오함이 참이 아닌 거짓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05-14 * 

 병장 이시인 
 이승일 병장님의 '상상' 과 '근거'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이성의 논리에 맞으면 '시질적인 근거'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상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근거'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진실'과 이를 부인함으로써 생기는 '진실의 결핍'마저도 저에게는 동일하게 생각됩니다. 진실의 결핍이 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보기에는 이 둘의 차이는 인간의 이성에대한 저희의 믿음 또는 신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05-15   

 병장 최현성 
 맞습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한채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진실은 때론 외곡되어진 그러나 모두가 받아들여져 진실로 되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모든것의 진실이란 없다'라는것은 근거도 없이 이뤄진다고 보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발견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느 개인이든 어떤 주장을 펼칠때는 그 사람이 아는 정도 까지의 지식을 보여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감정에 입각해서 그러할수도, 어떤 근거로 입각할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와 갈릴레이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