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구원사.
화장실 구원사
1.
어떤 사람은 화장실이 소비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화장실의 기존 이미지 그대로 더러움으로 대변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라는 속담으로 화장실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마려운 인간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듯한’ 갈급함으로 화장실을 갈망하고 원했다. 목마른 사슴이나, 마려운 인간이나 그 욕망추구의 깊이와 정도는 비견하였다. 사슴은 물을 발견하고 뛰어든 가시덤불에 온몸에 피를 흘리지만 괸 물을 마시기 위해 헐떡였다. 인간 또한 휴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하고 들입다 싸지르기에만 급했다. 욕망이 충족 되고나면 비로소 인간과 사슴은 자신을 돌아볼 틈을 갖았다. 피를 흘리는 자신에게서 고통을 느끼고, 휴지를 찾지 않았던 자신에게서 원망거리를 찾아냈다. 그러다 물에, 화장실에 침을 퉤 뱉고 돌아서 버렸다.
화장실은 마려울 때만 고마운 존재였다. 싸고 나면 끝이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화장실이 갖고 있는 구원의 이면은 절대 보지 못했다.
2.
전 지구상에서 인간의 오염도가 가장 낮은 화장실에서 인간은 모든 것과 차단된다. 역사와 국가의 찌꺼기들, 사회의 오염물을 떨어낸 인간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했을 당시, 아담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 희맑은 인간이 한줄기 구원의 빛을 보기위해서는 세 가지 단서. 즉, 종교적 계시, 고통의 문제, 혹은 철학적 문구 등이 존재해야했다.
화장실 낙서로 대표되는 철학적 문구는 화룡이 가장 즐겨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인간이 마치 신의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철학적 문구였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을 구원의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노력이 화장실 낙서라고 믿는 화룡이었다.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날,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선풍기만으론 방의 열기를 식히기에 턱없이 초름한 동아리방의 열악함 속에 자리하던 공용노트를 화룡은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노트들이 으레 그렇듯 잡담들이 주를 이뤘다. 어제 뭘 했고, 동아리 사람 누구를 우연히 영화관에서 마주쳤고, 선배가 술을 사줘서 고마웠고. 공용노트야말로 완벽한 소비용 공간이었다. 휘발성 강하고, 익명이 보장되고, 관음과 피관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스릴과 희열까지. 화룡은 소비만을 위한 공간이 구원의 공간으로 탈바꿈되기 위해 필요한 철학적 문구를 노트에 끄적거렸다.
오늘은 동아리 여름 정기 토론이 계획되어있었다. 안 그래도 남향이었던 동아리방은 뜨거운 여름햇살을 받아 달아올라있었고, 토론시간보다 일찍 등교한 몇몇의 학생들이 내뱉는 더운 날숨으로 인해 동아리방의 열기는 점점 더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화룡은 토론 진행을 준비하기위해 먼저 나와 있던 사회를 맡은 여후배와 함께 미리 예약했던 강의실 열쇠를 받으러 경비실로 향했다.
오늘 정말 덥다.
그러게요. 선배. 근데 일찍 나오셨네요.
응. 어제 철학적 사유를 하느라 밤을 샜거든.
선배.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시면 전 진짜로 믿어버려요.
하하하. 그렇게 무섭게 노려볼 필요는 없잖아.
열쇠를 받으러 찾아간 경비실은 문이 닫혀있었다. 경비아저씨는 학교 내 순찰을 나간 듯싶었다. 그동안 화룡은 후배와 함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고, 캔을 다섯 번 찌그러뜨렸고, 후배에게 오늘의 토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고, 후배와 번갈아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경비아저씨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선배. 아저씨 너무 안 오는 거 같은데 동아리방으로 돌아가죠.
그럴까.
돌아간 동아리방은 이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있었다. 그에 비례하여 동아리방 온도는 급상승되어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사우나를 옷 입고 들어가는 기분에 화룡의 불쾌지수는 점점 상승되었다. 앉을 자리가 없다보니 동아리방의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아까 끄적였던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동아리 노트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화룡은 딱히 어떤 반응을 바라고 노트에 철학적 문구를 쓴 건 아니었다. 그저 한번쯤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철학적 문구를 끄적였었다. 문구에 토를 달아도 좋았지만 그것은 화장실 구원론을 믿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화장실 구원론은 좋게 말하면 완전무결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논리 안에서 너무 확고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잡는다는 것은 중요했고 화장실 구원론은 그게 매력이었다.
화룡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도 한몫 거들었다. 일상에선 말수가 적었지만 토론에서만큼은 유독 말이 많아지는 그였다. 화룡이 한마디를 할라치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일관된 토론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불식시켰고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의 말이라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화룡이 무슨 말을 하건 절반부터 믿고 시작했다. 화장실 구원론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과 구원이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기나 하던가. 라는 생각을 하던 사람들도 일단 화룡의 이미지 때문에 믿었다. 그가 말하는 논리에 반박을 준비하며 듣기보다는 납득을 하며 들었다. 믿었기에 화장실 구원론은 힘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누구도 화장실 구원론을 적대시 하지 않았다. 간혹 있어온 반감은 화장실에 대한 것이었지, 구원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만인은 구원을 원한다.’ 화룡이 깔아놓은 기본 전제는 그것이었다. 구원. 즉 현실에의 긍정적 변화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믿었다. 그 변화의 갈망정도가 높은 시기가 바로 청춘이었고 현실에 안주하는 청춘 따윈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았다. 그래서 화룡은 일부러라도 그런 학생을 피하기 위해 인문학 동아리에 가입을 했던 것이고, 흔하디흔한 소개팅, 미팅을 피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구원이라면, 변화라면 치를 떠는 정체된 청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에 지극히 적응한 능글맞은 청년에게 화장실 구원론 따윈 쿨하지 못하니까 당장 버려야한다는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화룡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경구에 바로 리플이 달려있었다. 리플이라고 하는 표현이 정확했다. 꺾인 화살표, ‘re’ 로 대변되는 익명의 대답. 인문학 동아리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기호를 접하고부터 화룡은 짜증부터 났다.
└re구원 따윈 개나 줘버려. 인간에게 구원은 필요 없어졌고, 화장실은 소비일 뿐이니까.
며칠 전부터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아 선풍기만으론 방의 열기를 식히기에 턱없이 초름한 동아리방이었다. 당연히 불쾌지수는 높았다. 동아리 정기 여름토론을 위해 화룡은 미리 잡아둔 하루치 알바도 제쳐두고 온 그런 날이었다. 강의실 열쇠를 받으러 갔던 경비실 앞에선 경비가 오지 않아 짜증만 늘었었다. 돌아온 동아리 방에서도 생존의 열기를 뿜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은 늘으면 늘었지 줄어들진 않았다. 화룡은 짜증이 극에 달해 있었다.
거기다가 구원을 바라지 않는 반론자의 어투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엔 차분하고 관용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화룡이었지만 구원을 바라지 않는 사람 앞에선 지독하게 완고한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이 구원을 바란다는 확답을 들을 때까지 화룡은 부던히 구원에 관해 세뇌시켰다. 구원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거의 강제로 주입시켰다. 그만큼 구원에 대한 화룡의 믿음은 확고했다. 낙서를 보고 화룡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더운 날씨 탓에 그 수위가 좀 컸다는 게 문제되긴 했지만.
어떤 놈이야!
서로 방학 중 일어났던 이야기를 나누던 동성커플 둘. 피서계획에 들떠서 흥분해있던 남자 신입생 넷. 어제하던 논쟁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으나 논쟁점이 점점 더 광범위하게 커져버려 격해진 복학생 남녀 둘. 그 외 동아리 회원 몇. 동아리 방의 모든 눈이 화룡에게 집중되었다. 동아리 회원들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화룡을 바라보았다. 화룡같은 사람이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니 더 놀랄만했다. 금방 화룡과 같이 경비를 찾으러 갔던 여자후배가 나서며 화룡을 말렸다.
선배. 갑자기 왜 그래요
화룡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노트의 리플부분을 가리켰다. 화룡은 평상시 설명없이 단도직입적인 몸짓으로 말을 대체했다. 달변보다 신중한 몸짓에서 오는 신뢰가 더 크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는 화룡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갑자기 화를 낸 화룡의 행동만큼은 경솔했다. 무작정 화부터 내는 것은 화룡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자후배는 노트를 집어 들고 큰소리로 동아리방에 모인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화룡이 쓴 낙서를 낭독했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지금의 나’가 된다. 그곳엔 구원이 있다.
갑자기 화룡이
야! 너!
라고 소리치며 피서계획을 세우던 후배 한명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후배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짝.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방의 모든 사람들은 화룡을 말리지도 못하고 상황을 그저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대강의 상황파악을 한 복학생 선배가 화룡을 뜯어말렸다.
화룡아! 말로 해! 말로!
화룡은 선배의 말리려는 팔을 거부하며 순순히 물러났고 맞은 언저리가 붉게 물든 후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얼얼해진 뺨을 어루만지고, 흐르던 땀을 닦은 후배가 말했다.
화룡선배라고 했던가 화장실 구원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던 그 찌질이가 당신이었구만. 그러니까 이름도 화장실 ‘화’에 쓸 ‘용’이지. . 점잖고 상냥하다고 들었는데 방금 그 행동은 뭐지 전혀 아니구만. 주먹부터 나가는 이 태도는 도대체 뭐야
네 태도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 네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놈이냐!
화룡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내 태도가 어때서 그 전에 왜 하필 나지 왜 나한테 덤벼들었냐고.
왜냐고 노트에 적힌 낙서. 그 밑에 달린 리플의 범인을 잡으려고 경구를 읽게 했었어. 방의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너만 비웃고 있더군. 너만. 그래! 그 웃음! 당장 고치지 못해!
후배는 희희낙락하며 웃었다. 마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투로 코웃음을 한번 쳐준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좋습니다. 좋아요. 비웃는 건 그만두기로 하죠. 확실히 알아챈 것 같으니. 선배는 당신의 화장실 구원론에 대한 힐난으로 당황했고 화를 냈겠죠. 선배도 인간이니까요. 저도 선배가 이정도로 화를 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당신의 화장실 구원론을 직시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구요. 화장실 구원론을 객관적 위치로 내려놓는 작업의 방편으로 택한 도발의 가면은 이제 벗도록 하지요. 자, 우리의 위치는 평등해졌습니다. 전 대결하고 싶었습니다. 왜냐구요 그 고매하시고 고상한 이미지의 인물이 필요악의 존재인 화장실에서 구원이라는 성스러운 걸 찾는다는 걸 보고 싶었고, 그걸 깨부수고 싶었으니까.
뭐
화룡은 성급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 도발에 순순히 걸려든 것이다. 오늘의 사건은 동아리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모든 것을 논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머리로만 살 것 같은 ‘화룡선배의 이미지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룡이 구축해온 외부적 이미지가 후배의 말마따나 깡그리 걷어졌다. 불쾌지수가 원망스러워졌다. 화장실 낙서라고 생각하고 끄적인 화장실 구원론 경구가 원망스러워졌다. 구원을 거부하는 청춘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습관이 원망스러워졌다. 동아리 정기 토론이 원망스러워졌다. 눈앞에 당돌한 후배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보다도 가장 원망스러운 건 후배의 뻔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간 자신이었다.
전 논리를 중요시하는 선배가 정작 자신의 논리에는 감정적 숭배라는 종교적 아우라를 덧입혀 강제적으로 계몽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선배와 싸우기 위해 두 가지를 준비했어요. 하나는 선배의 논리에 대한 반론. 그리고 선배의 아우라를 걷기위해 준비한 도발. 다행히 도발에 걸려들으셨군요. 일단 하나는 성공했습니다. 선배의 응전으로 싸움은 시작됐고, 전 이 중요한 싸움을 이런 곳, 이런 시간에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학교 앞 동아리 단골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회장선배, 저 오늘 토론 빠질게요.
야, 어딜 가려고. 오늘은 정기토론이란 말이야.
일차 토론은 알아서들 하시고 이차 토론은 이따 화룡선배하고 이어서 하도록 할게요. 괜찮겠죠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던 회장이 떠나가는 당돌한 후배를 붙잡으려했다. 마음이 앞서던 회장은 좁은 동아리방에 수십 명이 가득 들어차있다는 것도 잊은 채 발 앞의 의자에 앉아있던 후배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화룡은 넘어진 회장을 일으켜주고 말했다.
선배. 저도 오늘 도저히 토론에 집중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죄송해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오늘 여러모로 실망만 시켜드리네요.
화룡은 다시 예의바르게 회장과 동아리 방의 모든 사람에게 꾸벅 인사하고 동아리 방을 빠져나왔다.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장은 공허히 중얼거렸다.
토론은 빠지더라도 회비는 내고 가야지.
3.
뜨거울 줄만 알았던 토론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나고 있었다. 완전무결의 화장실 구원론답게, 신임 있는 목사의 설교를 듣는 듯한 목소리의 화룡답게 후배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낮에 봤던 화룡의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격한 반응을 기대하고 모여든 회중들은 실망했고 자기들 이야기에 집중했다. 굳고 단단한 선배가 쓰러지는 것을 제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반영웅 시대의 인간들이어서였을까 모든 것이 낮은 자리로, 원래의 가치로 해체되어 부유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인간들이어서였을까
단순히 후배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대답게 혁명가적 가면을 썼을 뿐이었다. 후배의 목적은 실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존재에 대한 반항이었을지도 몰랐다. 화룡의 이미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쉬웠다. 그건 단지 방법론에 기인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화장실 구원론에 대적하기 위한 반론은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입생인 후배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잡아도 한 학기정도였다. 이십여 년 동안 화장실 구원론만을 고수해온 화룡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후배가. 화장실은 구원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난 인간들에게 구원을 얻어야한다. 그런 폐쇄적인 공간에서 구원을 바랄 거라면 차라리 깊은 산의 수도승이나, 절간의 스님들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라고 운을 떼면.
화룡은. 인간은 변한다. 고로 인간에게서 구원을 찾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절대적인 무언가를 반석삼아야 모래위에 지은 집과 달리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화장실은 일상에서의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인간에 바쁘게 치여 가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가깝고 쉬운 공간이 바로 화장실이다. 거기서 화장실과 산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라고 반박했다.
후배가. 화장실은 재생산을 위한 소비를 즉, 배설을 하는 곳이다. 라고 운을 떼면.
화룡은. 그럼 화장실에서 똥만 싸느냐 소비한 만큼 재생산, 재충전이 가능한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네 논리라면 인간은 백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이 나오겠지만, 재생산이 되어서 다시 백을 가지고 나온다면 그건 재생산을 위한 소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거다. 인간은 화장실에서 일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그것 자체가 재생산이고, 재생산은 곧 구원이다. 라고 반박했다.
후배는 자신이 준비해온 반론이 바닥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주된 반론은 화장실에 대한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구원을 찾는 것은 비약이다. 라는 논리를 가진 후배는 화룡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후배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낮에 성공적으로 선배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마지막 반론이었다. 화장실을 공격하던 후배는 이제 구원을 공격했다.
하지만 선배. 구원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요
후배와 화룡의 논쟁에서 예상했던 반론과 응전이 나오자, 시들해진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동아리 사람들은 맥주잔만 연거푸 비워대며 낮에 하던 토론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낮에 이뤄진 정기토론의 주제는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필요한건 변화를 위한 투쟁인가 현실순응인가” 였다. 무수한 논쟁거리가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은 시들하게 끝났다. 구원 전문가인 화룡이 낮의 토론시간에 없었다는 것이 동아리 회원들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었다. 대부분 회원들은 토론의 주제인 변화라는 개념과 구원이라는 개념이 맞닿아 있다는 내용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화와 구원을 구체적으로 이어줄 사람이 화룡밖에 없었고, 동아리 사람들은 토론을 흐지부지 끝내야만 했다.
화룡과 대적하던 후배의 한마디가 토론을 하던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화룡을 알던 사람들은 화룡이 구원이라는 테마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구원을 바라기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하는가 투쟁을 통해 획득하는 힘겨운 구원보다는 차라리 현실순응이 옳은가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화룡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낮의 정기토론 시간에 보일 반응들이었다.
그럴 거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버려. 가장 완벽한 정체됨은 이 시점에서의 죽음이니까. 늦게 죽을수록 넌 더 변하게 될 테니까 빨리 죽는 게 좋을 거야. 인간은 누구라도 변해.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지. 일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도 해. 완전한 정지는 없지만 완전한 변화는 가능하지. 왜냐하면 변화는 정지의 반대말이 아니라 정지의 상위개념이거든. 변화하기위해 정지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어. 우리가 차를 타면 정지한 듯 보이나 실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정지하기 위해 변화할 수는 없어. 러닝머신위에서 끊임없이 뜀박질을 하는 인간 또한 완전한 정지가 아니니까. 심장이 뛰는 한. 호흡을 하는 한. 인간은 완전한 정지를 이룰 수 없어. 억지로 역행해도 정지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난 차라리 흐름에 올라타 더 나은 변화를 꿈꿀 거야. 그것이 바로 구원에 나아가려는 인간 본성에 가장 솔직한 행동이거든. 정체는 느린 변화의 또 다른 지칭어일 뿐이야. 막힌 도로는 거북이 걸음이긴 해도 앞으로 나아가잖아.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 멈춰버리겠다는 말. 너 같은 젊음에겐 더 어울리지 않아.
화룡은 긴 말을 쏟아냈다. 설득력 있는 화룡의 대답에 푹 빠져있던 동아리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열광했다. 화룡을 도발했던 후배의 멍한 표정 뒤에 수긍한 눈치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후배는 화룡의 맥주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단숨에 들이켰다.
후. 화룡선배의 명성은 역시 헛게 아니었군요. 좋습니다. 좋아요. 전 더 이상 준비해둔 말이 없습니다. 선배의 화장실 구원론이 이겼습니다. 저를 납득시키셨으니 여기에 선배에게 납득당하기위해 모인 회중들에게도 뭔가 해줘야하지 않겠습니까
후배는 이제까지 견지해오던 진지한 표정을 싹 걷어내고 신입생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오늘 회비에서 모자란 술값은 화룡선배가 낸다고 합니다! 모두 마셔봅시다!
뭐라고 지금 뭐하는 거야
화룡선배의 카리스마에 매료당해 할 말 없는 후배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귀여운 복수라고 생각해주세요. 저 잔 좀 채워줘요.
후배는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용준이라고 밝혔다. 그날 저녁 용준은 큰 싸움 뒤의 술자리에서 몇 번의 잔을 주고받는 남자들이 그렇듯 화룡과 화해했고 의기투합했다. 적대는 또 다른 관심의 표현이라고 했던가. 그날이후 화룡은 화장실 구원론에 대한 열성적 동지 한명을 얻게 되었다.
용준은 화룡과 교제하며 서서히 화장실 구원론을 배워갔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방학동안 화룡은 용준과 두어 번의 술자리를 가졌고, 가을학기엔 용준이 억지로 화룡과 같은 수업을 신청하는 바람에 용준과 매일 얼굴을 보는 처지가 되었다. 용준은 반대했던 열정만큼 화룡을 긍정했으며 화장실 구원론의 전도자가 되어 오히려 화룡보다 더 열심내며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을 전파하고 다녔다. 과내에서도, 동아리 모임 중에서도, 심지어는 하릴없이 배회하는 캠퍼스의 무기력한 청춘에게도 화장실 구원론을 전했다. 의심의 찌끼가 사라지면 그보다 더 무서운 믿음은 없듯이 용준이 딱 그랬다. 용준은 화장실 구원론의 사도 바울이 되어 자신의 발이 닿는 모든 곳에 진리를 이야기했다.
화룡은 용준만큼은 못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서 나온 화장실 구원론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구원 또한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는 진리를 굳게 믿고 있었다. 인간은 변화하기 위해 제작된 존재라는 명제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애를 썼다. 모든 것을 바꾸려 사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화룡도 어느덧 때가 되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군대에 입대했다.
4.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은 한순간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끝없이 생각하고 화장실에 대해 사유하며 화장실에서 구원의 빛을 여러 번 본 것에서 얻게 된 깨달음의 정수였다. 그 빛의 기원은 화룡의 유치원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화룡은 어렸을 적 집만이 가장 편하고 아늑한 공간인줄 알았다. 집에선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밖은 모르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부모님도 어찌할 수 없는 화룡 스스로가 이겨내야 할 자기만의 문제였었다.
그러던 중 화룡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고 화룡의 부모님은 걱정부터 되었다. 걸음마를 뗀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걷는 것을 보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화룡이 유치원에서 잘 놀 수 있을까 백화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놀이방도,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도 싫어하는 아이였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서 머무르며 평생 살겠습니다. 하던 베드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화룡을 언제까지고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현실 부적응자가 되기 전에 미리부터 세상을 체험하게 하고 유치원을 다니며 홀로서는 법을 배워야했다.
화룡의 부모님은 간신히 찾아낸 동네에서 제일 꼼꼼하게 아이를 돌본다는 유치원에 아이를 등록시켰다. 그것도 부족해서 직접 유치원에 찾아가서 잘 좀 부탁드리노라고 했다. 화룡의 부모가 떠나고 난 뒤 유치원 선생들은 극성인 부모가 또 나타났다며 피곤해했다. 꼼꼼하게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은 맞았으나, 화룡을 꼼꼼하게 돌본다는 뜻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교사들은 모든 아이들을 꼼꼼하게 돌볼 방법만을 알고 있었다.
화룡의 유치원 적응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화룡에게 동네에서 제일 꼼꼼하게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에 다니기 위해 집에서 조금 먼 유치원을 다니는 건 곤욕이었다. 화룡의 아파트 친구들은 상가에 자리한 유치원을 즐겁게 다니고 있었지만 화룡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화룡의 소외감은 점점 늘어갔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화룡은 기어코 바지에 오줌이나 똥을 싸버리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화룡을 더러운 아이라며 멀리했다. 화룡은 의기소침해져갔고, 동네에서 제일 꼼꼼하게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무관심속에 화룡은 어린나이에 세상에 대한 즐거움보다 두려움을 더 빨리 배워버렸다. 그러나 아이였던 화룡이 세세한 것들을 깨달은 건 더 나중이었다. 그저 감정의 좋고 싫음, 바지에 똥을 싸기 때문에 아이들과 사귈 수 없다는 단순한 현실에서 절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나 유치원 안 갈래.
화룡의 이야기를 모두 전해들은 화룡의 부모님은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한참동안 화를 냈다. 동네에서 제일 꼼꼼하게 아이를 돌본다는 유치원이 왜 이 모양이냐, 아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뭐했냐, 내가 부탁했던 건 도대체 뭐로 들었던 거냐. 화룡의 부모님은 내일부터 화룡이는 유치원에 안 나가겠노라고 못을 박았다. 화룡의 부모는 화룡이 원하는 대로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아파트 상가의 유치원으로 옮겨주었고, 화룡은 다시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 들뜨며 좋아했다.
집을 벗어나면 낯을 심하게 가리는 화룡은 항상 집밖에 나갈 때면 두려워했다. 누가 자길 잡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동네 양아치 형들. 신호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자동차들. 친구가 많은 상가 유치원으로 옮겼어도 화룡의 피해망상증은 정도만 덜했을 뿐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저번 유치원 아이들처럼 유치원 친구들이 자길 싫어하면 어쩌나, 괜히 잘못해서 선생님한테 야단맞으면 어쩌나, 오줌이 마려우면 어쩌나. 화룡은 끊임없이 근심 중에 있었다.
선생님. 저 오줌 마려워요.
어머. 화룡어린이. 오줌 마려워요 그럼 화장실로 갈까요
유치원 선생은 친절하게도 화룡을 화장실 문 앞까지 데려다줬고, 주의사항을 읊어주었다.
화룡어린이. 집에서 오줌 싸봤죠 그래요. 어려운거 하나도 없어요.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싸면 되는거에요. 다 끝나면 변기에 물 내리는 것도 잊으면 안돼요. 알았죠 선생님은 화룡 어린이가 오줌을 다 싸고 나올 때까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 바로 불러야 돼요.
화룡이 새로운 유치원에 간 첫날. 화룡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집밖의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었다. 그때의 쾌감이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인간과의 접촉이 거의 완전하게 차단된 화장실의 칸에서 화룡은 자유를 느꼈다. 그리고 평안을 느꼈다. 화장실만 있다면 집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확신도 들었다. 화장실에선 소심한 화룡도 담대해질 수 있었다. 화장실은 사적인 공간이었기에 구원이었다.
화장실에서 구원의 빛을 본 화룡은 그날부터 유치원에서 피해망상이 들곤 할 때쯤 화장실로 도피하여 안정을 찾았다. 마치 천식환자가 호흡이 어려울 때 흡입기를 대는 것처럼 화룡은 화장실로 돌아가 자유와 평안을 느꼈다. 그러기를 몇 번, 화룡은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피해망상으로 바깥을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다. 물론 화장실의 위치가 파악된 곳으로만 제한되었지만 그것도 화룡의 입장에선 상당히 발전한 것이기도 했다.
5.
초등학교에 가서도 화룡은 화장실에서 구원을 만끽했다.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화룡에게 화장실이란 집보다는 덜한 사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화룡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사춘기를 맞게 되는 학생들은 으레 집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집을 떠나 밖으로 나돌아 다니게 되고, 친구들과 당구장, 피시방 등을 어울려 다니며 또래 집단과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보다는 친구를 더 중요시 하는 사춘기적 특성을 화룡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집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면서 화룡에게 화장실이 갖는 의의는 점점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을 거부하게 되자 화룡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선택은 화장실이었다. 집보다 화장실을 더 우선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화룡은 어느 음식점이나 상점을 가도 화장실의 위치부터 파악해야했고, 백화점이나 의류매장에 쇼핑을 가더라도 십 분에 한번 꼴로 화장실을 찾아야했다. 그런 화룡을 친구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화룡은 자신의 화장실 구원론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리고 밖에 나가면 화장실부터 찾는 자기가 봐도 이상한 자신 스스로를 납득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실 구원론이 체계가 잡혀갈 때쯤 화룡은 가장 친한 친구 한명에게 자신의 구원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 이유는. 으로 말을 시작한 화룡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감을 느끼며 속으로 환호했다. 그날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을 들은 친구는 화룡을 이해했고, 이후 화룡은 넌 왜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 가니 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답하며 화장실 구원론을 완성시켜갔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엔 아는 만큼 대답을 했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엔 그날 밤 머리를 싸매가며 그를, 그리고 자신을 납득할 수 있는 완벽한 대답을 만들어냈다. 질문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화룡은 자신의 논리가 옳음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은 풍성해져갔다.
그 질문들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화장실에 대한 것은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사적인 자유와 평안에 목매다는거냐던 친구의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수 없었다. 구원에 대한 갈망은 화룡의 본성에 대한 것이었고, 본성을 구체화하여 말로 내뱉는 일은 힘들기만 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룡은 생각이 많은 사춘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구원론까지도 완성시켰고 용준을 이해시킨 구원론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화룡의 사춘기는 화장실 구원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기가 되었다. 화장실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했던 집을 화장실 다음으로 미뤄놓게 되었으며, 화장실을 구원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인식하게 되었고, 화장실 구원론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속으로만 갖고 있던 구원론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따라서 화룡은 누가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시기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사춘기 때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화룡에게, 화장실 구원론에게 사춘기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6.
야! 화룡이. 어디 갔어
예. 이병 강두수. 찾아보겠습니다.
강두수는 주저 없이 내무대 화장실로 뛰어갔다. 닫힌 칸마다 문을 똑똑 두들겼다. 유독 대답 없이 잠겨있는 칸이 하나 있었다. 화룡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화장실에 처박히곤 했다. 그리고 문을 잠가놓고 묵묵부답이었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화룡을 손쉽게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강두수는 찾았다는 미소를 띠고 똑똑 거리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닫힌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화룡아! 천병장님이 찾으신다!
예! 알겠습니다!
화룡은 쭈그려 앉아서 읽고 있던 편지를 주머니에 급히 접어 넣었다.
군입대전 화룡은 화장실 구원론의 세 가지 단서인 종교적 계시, 고통의 문제, 철학적 문구 중에서 철학적 문구가 화장실에서 구원을 찾는데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단서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화룡 자신도 그 방법을 즐겨 쓸 정도로 좋아했다. 입대 전 용준과 다퉜던 논쟁의 촉발도 노트에 적었던 철학적 문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학적 문구는 환경에 심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약점이 있었다. 낙서를 쓰지 못하는 가정집의 화장실이나, 청결을 유지해야하는 군부대의 화장실에서 철학적 문구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철학적 문구라는 단서는 환경의 영향이 강한 군대에선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철학적 문구가 전혀 없는 군대에서도 역설적이게 화룡은 입대 전보다 더 강렬하게 화장실에서 구원의 빛을 보고 있었다. 철학적 문구가 빠진 화장실에서 화룡이 구원의 빛을 볼 수 있었던 단서는 바로 고통의 문제였다. 이병이라는 계급에서 오는 고통, 난생 처음 해보는 수만 가지의 작업에서 오는 고통, 사회에서보다 더 농도 짙은 시선에서 오는 고통, 물리적 제약에서 오는 고통. 무수한 고통이 화룡을 옭죄고 있었다. 엄청나게 가중된 고통의 크기로 화룡은 자연스레 구원을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화룡은 화장실에서 구원을 찾았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구원. 화룡은 난생 처음 화장실에서 구원을 봤던 유치원 때의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고통의 문제라는 단서로 대표되는 화룡의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의 발견이었다.
새로운 단서인 고통의 문제로 화장실에서 새롭게 구원을 찾은 화룡은 화장실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종교 활동에서 받아온 초코파이를 먹을 때도 화장실이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쓸 때도 화장실이었고, 군복의 단추가 떨어져 바느질을 할 때도 화장실이었고, 책을 읽을 때도 화장실이었고,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온 편지를 읽을 때도 화장실이었다. 누가 내무반에서 하지 말라고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화룡은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고통으로, 화룡에게 화장실은 단어 그대로 ‘구원’이었다.
필승! 천병장님! 부르셨습니까!
야, 귀청 떨어지겠다. 살살 얘기해도 들려. 화룡이. 너 또 화장실에 있었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두수가 다 불었어. 인마. 그래. 아직도 군 생활 힘드냐
아닙니다!
에이. 아니긴. 아,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피엑스가서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할래
괜찮습니다!
그만 빼셔요. 따라오기나 해. 이건 명령이야.
천병장은 내무반의 반원들을 관리하는 분대장답게 갓 들어온 화룡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병들은 군대에 오면 많이 맞고, 기합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짝 겁을 먹고 있었다. 천병장은 이병들과 면담을 가지며 그것들이 지레 겁먹은 이병들의 기우였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덕분에 천병장이 분대장을 맡은 기간에 들어온 이병들은 군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화장실에서 편지를 읽던 화룡을 불러온 강두수 역시 천병장의 면담과 관심으로 이제는 농담도 받아줄 정도로 사람들에게, 군대에 적응해있었다.
그렇지만 화룡은 달랐다. 전입 온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도 화룡의 화장실 도피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화룡이 늦깎이 이병이라 어린 이병들보다 철이 들어서 천병장은 쉬운 마음으로 화룡을 대했었다. 면담도 하는 둥 마는 둥, 적당히 해도 적응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화룡은 점점 화장실로 피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천병장은 초장부터 화룡의 기우를 불식시키지 못해 생긴 자신의 불찰이라고 생각했다.
맛있지
예! 쿨럭. 맛있습니다.
먹다 체하겠다. 먹을 땐 입안에 있는 거 삼키고 대답해도 돼. 녀석.
천병장은 주말을 이용해 화룡에게 먹을 것도 사주고 내무생활하면서 겪는 고민거리 같은 것들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한창 배고플 이병의 입을 열어주는 건 무한한 군것질거리라는 속설을 잘 알고 있는 천병장은 화룡의 입을 열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먹였다. 화룡은 더 이상 못 먹겠는지 탄산음료를 마시며 끄윽 끄윽 트림을 해댔고, 천병장은 화룡을 말렸다.
못 먹겠으면 먹지 마. 무슨 옛날 군대도 아니고. 그럼 배도 불렀겠다. 이젠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지 말할 수 있겠어
고민거리 같은 거 없습니다.
그럼 고민거리가 없으면서 왜 만날 화장실에 틀어박히는 거야 도대체 알 수가 없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제가 화장실에 자주 가는 이유는. 으로 시작된 성숙된 화장실 구원론은 사춘기 때부터 얻어진 화룡이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화장실 구원에 대한 화룡의 갈망은 군 입대를 통해 새롭게 확인된 화장실 구원의 단서인 고통의 문제로 더욱 깊어지고 커져있었다. 화룡의 화장실 예찬은 입대 전보다 더 뜨거워졌고 모든 단어와 문장이 화장실을 찬양하기위해 쓰였다. 화룡은 자신이 찬미할 수 있는 언어를 총동원해가며 화장실을 아름답게 수사했다.
천병장은 화룡의 화술에도 매료되었다. 중저음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 문장의 끝마디를 탁탁 끊어내는 절제된 말투, 단어의 강약조절, 한순간 밀어 치다가도 살짝 쉴 틈을 주었다가 다시 바짝 조여 오는 호흡의 흐름까지. 화장실 구원론도 아름다웠지만 화룡의 화술 또한 아름다웠다. 근 한 시간에 걸쳐 설명된 화룡의 설교로 천병장은 새로운 구원을 얻은 사람으로 계도되었다.
화룡이. 이 녀석! 그런 일이었으면 진즉에 얘기했어야지. 화장실에서 구원을 본다. 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이병 때 그랬거든. 화장실에서 부모님 편지를 읽다가 울어버린 기억도 나고. 아하하. 이제 알겠어.
천병장은 그 이후로 화룡을 가까이 두며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을 더 듣길 원했다. 천병장은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의 또 다른 열성적 지지자가 되었다. 천병장의 회심에 전도의 가능성을 엿본 화룡은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부대원들에게 고통의 문제에서 얻게 되는 화장실 구원론을 전했다.
그러나 천병장을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은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에 공감하지 못했다. 천병장처럼 관심을 갖고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을 듣지 않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다.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은 믿으려고 했던 자들에게나 유효한 것이었다. 입대전의 화룡의 이미지를 모르던 부대의 사람들에게 화룡의 신뢰감을 주는 아우라를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였다.
또, 개인주의적인 신세대 장병으로 지칭되는 그들은 일단 타인의 화장실 구원론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나 자신이었다. 따라서 전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화장실 구원론은 빛을 잃어갔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로는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이 입대전보다 개인화된 게 문제였다. 철학적 문구에서 고통의 문제로 화장실 구원론의 단서가 옮겨진 화룡에게 개인적인 경험이 중요한 것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화장실 구원에 대한 화룡의 갈망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화룡의 개인적 경험에 집중된 고통의 문제로 인해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은 화룡같은 경험을 하지 못한 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화장실 구원론의 보편성은 힘을 잃고 있었다.
7.
거꾸로 매달아놔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흘러 흘러 천병장은 민간인으로 변했고, 내무대의 명칭은 생활관으로 변했고, 만년 이병 계급일줄 알았던 강두수와 화룡도 어느덧 병장 계급으로 변했고, 천병장이 달았던 푸른 견장을 물려받아 분대장을 맡았다.
나름대로 끗발이 찬 강두수는 이제 이병 때와는 달리 생활반에서 눈치를 볼 일도 없었고, 이병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분대장도 맡았으니 좀 변할 줄 알았던 화룡은 강두수와 달리 여전했다. 화룡에게 거슬리던 타인의 시선은 말 그대로 타인의 시선이었다. 강두수에게처럼 선임의 시선이 아니었다. 화룡에게 선임의 시선이든, 후임의 시선이든 그것들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단어로 묶여 설명될 성질의 것이었다. 그래서 화룡은 여전히 고통의 문제로 화장실에서 구원을 찾았고, 성과가 전혀 없어 이제는 거의 포기한 듯 보이는 화장실 구원론 전도도 가끔씩 들어오는 신병들에게 지나가는 투로 말을 꺼내들며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놈. 내 살다 살다 너 같이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놈은 처음 본다.
강병장님 또 왜 이러십니까.
금방 화장실에서 편지를 쓰고 내무실로 들어오는 화룡을 보며 강두수가 혀를 끌끌 찼다. 입대 날짜가 한 달밖에 차이 안 나는 둘은 이병 때부터 같이 고생해왔고, 보일 꼴, 못 보일 꼴 다 보며 지내온 사이였다. 화룡은 여전히 자신의 구원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두수를 안타까워했고, 강두수 역시 병장을 달고, 분대장을 달았어도 갓 전입해온 이병처럼 화장실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는 화룡을 못마땅해 했다. 가장 친한 강두수를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은 신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억압이 강해질수록 자기애가 커지듯 화룡의 확신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강두수는 그런 화룡을 바라보며 화룡을 교주로 하는 화장실교가 창시될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했다.
야. 그러면 너네 종교로 가면 초코파이는 안주고 휴지나 나프탈렌 주는 거 아니냐 킥킥. 먹지도 못하는 걸로.
강병장님. 농담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이놈. 눈 치켜뜬 거 봐라. 어휴. 이병 땐 한 달 먼저 선임도 선임이라고 말도 못 걸던 놈이 이젠 화도 낼 줄 아네. 알았어. 인마. 그만할게.
평일 저녁.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던 두 명의 분대장 앞에 일병 한명이 쭈뼛거리며 와서는 경례를 올려붙이며 말했다.
필승! 신고합니다! 금일 새로 온 전입병. 휴게실에 대기중 입니다!
화룡이 근무하는 부대는 새로 전입병이 오면 그날 저녁 분대장에게 신고를 하게 되어 있었다. 화룡과 강두수는 전입병을 보러 일병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갔다. 훈련받은 티가 풀풀 나는 검게 탄 얼굴, 새로운 환경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되어 흐리멍덩해진 눈, 새로 받은 군복답게 빳빳한 군복, 뭘 그리도 가득 채워놨는지 잔뜩 부풀어있는 실백 등으로 대표되는 전입병이 기합이 바짝 든 자세로 앉아있었다.
강두수는 새로 들어온 전입병만 보면 샐쭉거렸다. 후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역이 가까워온다는 증거라고 웃음을 가득 띠며 말했었다. 화룡도 강두수만큼은 아니지만 전입병이 부대에 오게 되면 즐거워했다. 전입병은 아직 화장실 구원론을 듣지 않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대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화룡은 전입병과의 면담에서 화장실 구원론을 무시로 전파했다. 그러나 보편성을 잃은 화장실 구원론은 갓 전입해온 이병조차도 구원하기 힘들었다. 또한 고통의 문제라는 단서로 설명되어지는 화룡의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은 아직 고통의 문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이병들에게는 전혀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야. 반갑다. 우리 부대에 온 걸 환영한다. 그래. 어디 살아
서울 영등포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 화룡이도 서울 사는데. 야, 화룡아. 너네 고향친구 왔다. 얼레 야, 뭐해. 얼굴이 왜 그렇게 굳었어
화룡은 휴게실에 들어오고 전입병을 바라보면서부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특유의 짧은 머리와 검게 탄 얼굴로 이병들의 얼굴은 헷갈리기만 했다. 새로 들어온 전입병도 마찬가지였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화룡은 기억을 더듬으며 기억 속 전입병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강두수가 전입병에게 말을 걸었고, 전입병의 목소리를 들은 화룡은 그제야 전입병이 누군지 알아챘다. 특유의 건들거리는 목소리, 붙임성 있는 말투. 다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모든 것이 다 생각났다. 깝죽거리던 표정과 능글맞은 눈빛. 화룡의 화장실 구원론의 사도 바울. 용준이었다.
용준이 맞지 이름표 보니까 맞네. 얼굴이 하도 시커매져서 못 알아봤다. 입대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반갑다. 용준아. 정말 반갑다. 이런 우연이 다 있구나.
화장실 구원론에서 타인이 구원을 못 찾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화룡이었다. 화룡은 그럴수록 상황을 타개하기보다는 화장실로 도피하여 자기만족적인 구원을 찾았다. 그런 화룡에게 용준의 등장은 마치 조조가 관우를 얻은 것과 같이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용준이라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화장실 구원론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만 같았다.
선배. 좀 변했네요.
화룡의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을 다 들은 용준의 대답이었다.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평가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에게 듣는다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군대에서 가장 가까운 강두수는 화룡이 변하지 않는다고 평을 했다. 대학에서 가장 가까운 용준은 화룡이 변했다고 평을 했다. 화룡은 용준의 한마디에 벌컥 화부터 냈다.
내가 변했다고 뭐가 변했다는 거지 난 여전히 화장실 구원론에 나의 삶을 바치고 있어. 화장실은 여전히 나에게 구원이고. 물론 화장실 구원론이 설득력을 잃은 건 네가 말했던 것처럼 변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 그러나 나는 고통의 문제가 심화된 장소에서 새롭게 구원을 얻기 위해 또 다시 화장실을 택했어. 화장실에서 구원을 찾는다는 기본 전제는 전혀 변하지 않았고. 달라진 거라곤 화장실 구원에 접근하는 단서 외엔 달라진 게 전혀 없어. 화장실 구원론은 여전해. 변한 것은 절대로 없어.
처음에 용준은 화룡을 부대에서 보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두 번째 구원론을 들으면서 화룡이 변했다는 걸 알았다. 휴가때 화룡을 만났다던 동아리 선배도 화룡의 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남자는 군대가면 누구나 변하는 법이지. 라던 화룡이었다. 스스로도 변화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노라고 선포하던 그였다. 변했다는 가벼운 한마디였지만 화룡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상과 다른 화룡의 반응에 용준은 당황했다.
지금 선배가 전과는 다르게 감정적으로 화부터 내는 것도 그렇고. 화룡선배에게 있어서 화장실은 이제 소비를 위한 공간. 그 이상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네요.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한 것 같구요. 선배가 화장실 구원론이 여전하다고 느끼는 이상 우리의 논쟁은 평행선만을 그릴 겁니다. 전 식사당번 나가봐야돼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용준!
용준과 단 둘이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기 위해 앉았던 생활관 뒤쪽의 벤치에서 화룡은 떠나가는 용준을 붙잡지도 못했다. 용준의 말이 계속 거치적거렸다. 화장실이 소비를 위한 공간이 되어버렸다고 나의 화장실 구원론도, 나도 변했다고 나는 단지 화장실 구원론의 세 가지 단서 중 철학적 문구보다 열망을 깊게 만들어 주는 고통의 문제에 천착한 것뿐인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화룡은 저녁도 거른 채 용준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나 답은 한결같았다. 화룡은 변하지 않았고, 화장실 구원론은 여전하다. 라는 맹목적인 믿음. 과거 화룡은 화장실 구원론에 대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찾았었다. 그러나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을 체험한 화룡에게 용준의 말대로 믿음의 근거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기대있었다. 화룡은 바로 그런점 때문에 화장실 구원론이 설득력을 잃어간다는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용준의 물음에 내린 대답은 언제나 같았고, 똑같은 답을 구하려 미적대느니 화룡은 자신에게 향했던 질문의 방향을 틀어 용준을 설득시킬 틈을 찾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화룡이 새롭게 찾아낸 구원의 빛을 용준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힘든 훈련이 있고난 다음날 화룡은 더 친근하게 용준을 대했고, 용준이 일을 하다 실수를 하여 꾸중을 듣던 날에도 어김없이 용준을 살갑게 대했다.
그러나 고통의 문제라는 단서로 구원의 빛을 전혀 보지 못하는 용준에게 화룡이 제시하는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과거 화룡은 용준의 바로 한걸음 앞에 앞장서서 용준을 이끌었었다. 그때 화룡은 충분히 현실감이 있는 이야기를 주로 했었고, 용준이 마음만 먹으면 잡힐 듯한 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화룡은 너무 많이 변했다.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을 본 화룡은 지독한 개인적 구원론으로 심화되었고, 그 시야 역시 좁아졌다고 용준은 판단했다. 용준의 판단처럼 화룡은 실제로도 충분히 변해있었다.
8.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군인이 제일 좋아하는 날씨는 비라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부대의 모든 사람들은 환호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식당에 잠깐 밥 먹으러 다녀왔을 뿐인데도 신발과 바지가 푹 젖었다. 눅눅한 날씨 탓에 빨래가 마르지 않아 더 이상 신을 양말이 없는 부대원들은 어제 신었던 양말을 또 신었고, 젖은 양말에선 냄새가 가실 줄 몰랐다. 그래도 부대원들은 장마를 좋아했다. 무더운 여름날 외부작업으로 지쳐있던 부대원들에게 장마는 구원이었다.
모든 부대원들이 싱글거리고 있었지만 화룡에게는 말 못할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유인즉, 때 아닌 집중호우로 생활관 화장실의 하수관이 막혀 넘쳐흐른 게 발단이었다. 평소에도 물이 빠지는데 한참이 걸리던 노후한 하수도였다. 그런 하수도에 빗물이 차올랐고 급기야는 온갖 하수가 생활관 화장실까지 넘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화장실 정비를 담당하는 김중사가 생활관 화장실을 장마가 끝날 때까지 폐쇄한다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년의 군 생활동안 화장실에서 보낸 시간이 내무실에서 보낸 시간보다 많았던 화장실 구원론의 화룡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같이 무수히 산재된 고통의 문제에서 화룡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은 화장실이었다. 물론 부대에 화장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생활관 화장실이 고장나고나서 부대원들은 생활관에서 오 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식당의 화장실을 이용했다. 우의를 입고 잠깐 동안 밖을 걸어도 온몸이 흠뻑 젖는 장마기간이라 대변이 마려운 게 아니었으면 부대원들은 생활관 주변의 적당한 풀숲에 일을 보았다. 부대원들과는 달리 용변을 보는 것 이상의 존재감을 갖는 화장실은 화룡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편지더미와 일기와 책을 비닐 봉투에 넣고 식당의 화장실까지 냅다 달려갔었다. 그러나 화장실에 도착하면 편지더미와 일기와 책은 젖어서 서로 달라붙어있었고, 화룡은 아무것도 못한 채 다시 터덜터덜 생활관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깝지 않은 화장실은 영 불편하기만 했다. 날이 갈수록 촉촉하게 젖어들어 새 생명을 얻는 땅과는 달리 화룡의 속은 바짝 말라죽어갔다. 화룡에게 장마는 빨리 끝나야할 존재만큼의 가치를 지닌 불편한 것이었다.
화룡은 매일저녁 내일의 기상예보를 시청하며 장마가 끝나기만을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러나 화룡의 기대와는 다르게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내일도 장마가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라는 기상 캐스터의 낭랑한 목소리에 부대원들은 열광했고, 화룡만이 소외감을 느끼며 의기소침해졌다. 화룡은 신문을 펼쳐 다음 주 기상예보 또한 전부 확인했지만 장마는 지루하게도 계속되기만 했다. 비는 쉬지않고 내렸고, 생활관 화장실은 오물들의 역류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해졌다. 화룡의 마음 또한 황폐해져갔다.
화룡선배. 이럴게 아니라 차라리 화장실을 생활관 근처에 파는 건 어떻습니까 이대로 식당 화장실을 쓰기에는 너무 불편하니까 주임원사님한테 건의해서 구덩이 하나만 우리가 파겠다고 말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 본관 건물 뒤편에 방치되어있는 공중화장실을 세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라면 잠깐 동안만 사람들이 고생하면 장마 내내 편할 테고 장마가 그치면 구덩이는 흙으로 다시 메우면 되는 거고.
화장실을 가지 못해 아무것도 못하고 생활반에 널브러져 멍하니 땅바닥만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화룡을 불쌍하게 여기던 용준이 참다못해 꺼낸 한마디였다. 용준의 제안을 전해들은 화룡은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라는 자기 책망과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화장실이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었다. 시키는 일만 하던 습관이 남아, 구원을 받기만하는 수동적이었던 자세가 남아 용준과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던 화룡이었다. 구원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구원을 쟁취하면 되었다. 구원을 위해 산다는 것은 이미 이뤄진 구원을 체험한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이기도 했다. 화룡은 떠난 구원을 잡아보기로 결심했다.
화룡은 구원을 쟁취한다는 생각에도 기뻐했지만, 벤치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끝으로 화장실 구원론에 대해 변변찮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용준에게 그런 제안을 들은 것에 대해 더 기뻐했다. 입대 후 천병장 이후로 거의 처음 받아보는 화장실 구원론에 대한 관심이었다. 게다가 변심한 줄로만 알고 있던 용준에게 화장실 구원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화룡은 기뻐했다. 화룡은 이 기회야말로 용준에게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을 증거할 기회라고 믿었다. 용준이 두 번째 구원론을 보고 믿게 된다면 더 좋았겠지만, 화룡은 거기까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신앙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자족했다.
그날 저녁. 점호가 끝나고 화룡은 분대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 이런 불편이 있는데 우리 생활관 근처에 화장실을 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뭐 화장실에서 죽치고 사는 것도 부족해서 화장실을 만들자고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이야 화룡이. 너 드디어 미쳤구나. 가뜩이나 비도 오는데 애들 개고생 시킬 일 있어 난 절대 반대야.
강병장님. 그럼 우리끼리라도 화장실을 팔 테니 강병장님은 쓰시지 마십시오.
뭐, 이 자식아 참나. 그래. 내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안 쓴다. 안 써! 안 쓰면 될 거 아니야.
강두수는 회의를 하다말고 일어나서 생활반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강두수를 제외한 다른 분대장들도 서로 눈치만 보며 내빼려고 했다. 장마덕분에 외부과업이 없는 낙으로 살고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화룡은 모처럼 열정을 보이며 그들을 설득했다. 장마라 몇 주 동안 비를 맞으며 식당 화장실까지 가서 찝찝하게 용변을 보느니 차라리 다 같이 힘을 모아 하루만 고생해서 구덩이를 파면 멀리가지 않는 수고를 해서 좋고, 지금처럼 비를 맞으며 풀숲에 소변을 누지 않아서 좋다. 라는 논지를 펼치며 화룡은 나머지 분대장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주임원사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구덩이를 파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를 하니 주임원사는 뒷처리같은 제반사항과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보장해준다면 못할 것도 없지. 라는 말로써 허락했다. 주임원사의 허락을 받고 난 뒤, 강두수를 제외한 생활관 대원들은 삽 한 자루씩을 챙겨들고 우의를 걸쳐 입고 작업을 시작했다.
점심 전까지는 절반쯤 파 놓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화룡의 예상은 빗나갔다. 비가 오랫동안 내려서 땅은 갯벌처럼 푹푹 빠져들었고 안정적인 자세로 땅을 파기 힘들었다.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물먹은 흙은 너무 무거웠고, 몸이 무거워지는 습한 작업환경 탓에 부대원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좁고 깊게 파야하는 화장실 구덩이의 특성상 깊이 파내려가는 건 사람이 많다고 해서 빨리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원이 많은 탓에 안전사고가 줄을 이었고, 부대원의 절반가량이 다치거나 감기에 걸려 몸져눕게 되자 그날 저녁 화룡은 구덩이 파기를 금지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내일 하루만 하면 완전히 팔 수 있습니다.
안 돼. 작업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대원들이 다치는 건 반대야. 화룡이 넌 왜 이병 때부터 군 생활을 극성적으로 하는 거냐 화장실에 처박혀서 잠을 자다가 야간 인원 점검때 비상이 걸리게 하지 않나. 신병들에게 분대장이 화장실에 관한 사이비 종교를 전도한다고 건의가 들어오지 않나. 이제는 화장실을 만들겠다고 됐어. 제대도 얼마 안 남은 병장이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건 언제나 안 좋은 법이야. 여기서 그만했으면 한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제대해야지. 응
그랬다. 화룡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흔히 말하는 말년병장이었다. 다른 말년병장들은 조용히 생활하다가 전역하는 게 좋은 거라 여기고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몸을 사렸다. 그러나 화룡에게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은 생활관의 부대원들에게 화장실 구원론을 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과 동일했다. 화장실 구덩이를 파는 작업은 그런 촉박한 순간에 얻은 천운같은 기회였다. 두 번째 구원론의 핵심인 고통의 문제를 직접 경험하게 해줄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로써 그들이 고난에 참예하는 법을 알고, 구원을 바라보게 된다면 화룡에게 그보다 유익한 것은 없었다.
야. 우리 분대장 왜 그래
쉿쉿. 목소리 낮춰. 듣겠다.
됐어. 내가 아까 화장실 가는 거 봤거든. 그리고 뭐 들으면 어쩔 거야 이제 좀 있으면 완전히 얼굴 안볼 사람인데 뭐.
하긴 그건 그러네. 나도 이병 때부터 그 사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봤더니 완전 싸이코더라. 아. 귀찮게 무슨 화장실 구덩이를 파라고 그래가지고.
그 사람 때문에 다친 애들도 엄청 많고, 나도 감기에 걸렸고. 사람이 왜 그런다니
자기가 화장실을 좋아하면 남들도 다 화장실을 좋아해야 되는 줄 아나보지
누가 아니래. 말년에 작업을 더 하려는 사람은 군 생활동안 처음 본다. 남에게 피해를 줬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주던가. 약이라도 사다주던가.
식당 화장실은 너무 멀고,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비도 추적추적 내려서 화룡은 임시방편으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후레쉬를 비추는 것으로 구원의 장소인 화장실을 대신하고 있었다. 화룡은 자기를 욕하는 후임들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몽땅 듣고 있었다. 주임원사에게 작업중지명령을 듣고 안 그래도 심란해져 있던 화룡에게 후임들의 뒷담화를 고스란히 듣는 것은 곤욕이었다. 화장실 구원론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는 화룡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구덩이 파기 작업은 부대원들에게 화장실에 대한 거부감만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생활반이 조용해지고 모두가 잠이 든 자정이 넘어서도 잠은 오지 않았고, 화룡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실내화를 질질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마침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해 그리웠던 보름달이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보름달은 밤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밝히고 있었다. 담배 한가치가 달빛을 받아 밤을 태우는 동안 비는 점점 그 기세를 늦추었고 보름달은 자신의 위세를 젖은 땅위에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가 갑자기 생각난 화룡은 담배를 비벼 끄고 생활반으로 뛰어 내려갔다.
용준아. 일어나봐. 용준아.
으으음. 예. 이병,
용준아. 나야. 화룡이.
어. 화룡선배
화룡은 자던 용준을 깨워 내일은 주말이니까 분대장의 권한으로 푹 자게 해준다는 약속을 하며 같이 구덩이 파는 작업을 마저 하자고 꼬드겼다. 잠이 덜 깬 용준은 기합이 들어있는 이병답게 옷을 갈아입고 화룡이 쥐어주는 삽을 받아들고 생활관을 나섰다. 불침번 당직자가 둘의 행처를 물었다. 화룡은 니들이 파기 싫어 안달 난 구덩이 우리가 파러 간다고 쏘아붙였다. 마침 불침번은 아까 화룡을 욕하던 후임들 중 한명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불침번을 뒤로 하고 화룡과 용준은 화장실 구덩이로 향했다.
선배. 제가 지금 도와주는 이유는 단지 선후배로 엮인 과거의 인연때문이라는거 명심하십시오. 제가 화룡선배의 두 번째 구원론을 지지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마침 비도 그쳤고, 달도 밝고, 내일 수면시간을 보장해준다기에, 그 말에 혹해서 도와드리는 거란 말입니다. 선배의 두 번째 구원론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는 차원의 구원에 도달하신 거 같습니다. 부럽긴 하지만 그래서 믿지 못하겠어요. 선배.
알았으니까 잔말 말고 파기나 해. 이게 다 생활관 사람들을 위한거야.
잠이 덜 깨서 횡설수설하는 용준과 하는 작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한참을 파내려가도, 어른의 어깨높이만큼은 파야한다던 구덩이의 적정 깊이까지는 도달할 수 없었다. 삽질을 하다가 정신을 놓아서 졸아버리는 용준도 늦어지는 작업에 한 몫을 보탰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삽질에 용준의 머리를 쳐버릴 아찔한 순간이 몇 번 계속되고 나자 화룡은 용준을 올려 보냈다. 시계를 보니 슬슬 기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총 기상 전까지는 일을 끝내야만했다. 화룡은 피곤한 팔과 어깨를 주무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필승! 조별과업정렬 인원보고! 현재 소재 미파악된 일명 외에 모두 집합 완료하였습니다. 이상! 필! 승!
소재 미파악 누구야
화룡입니다.
뭐 또 화장실 지렁이야 화장실 찾아봤어
예. 그렇습니다.
찾아봤는데 없었습니다.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누구 어디 갔는지 아는 사람 없나
어제 새벽에 화장실 구덩이 마저 판다고 나갔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밤새 주춤했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당직사관은 말년에 큰 사고 치겠냐는 설마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동안 사고를 많이 친 화룡이라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가중되어 구덩이로 뛰어갔다. 조별과업을 위해 정렬해있던 생활관의 총원 역시 당직사관의 뒤를 따랐다.
구덩이 안엔 과연 화룡이 있었다. 구덩이에 어깨를 기대고 삽을 손으로 받친 채 서서 자는 화룡을 보며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의 이유로 놀랐다. 어제 절반도 못 팠던 구덩이를 밤새 혼자 다 팠다는 이유로 놀란 대부분의 부대원들. 어제새벽 분명히 둘 다 확실한 작업복을 입고 작업한 줄 알았으나 화룡은 맨손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일을 했다는 것에 놀란 용준. 급기야는 혼자 총대매고 일을 다 해놓은 것에 대해 놀란 강두수. 이상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실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놀란 화룡을 비난하던 후임 둘. 설마 화장실 구덩이에 있을까 싶어서 찾아간 구덩이에 화룡이 진짜로 있었다는 진실에 놀란 당직사관.
그날 화룡의 화장실 구덩이 사건은 부대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9.
화장실 구덩이 사건 이후로도 장마는 근 일주일동안 계속 되었다. 그러나 정작 화룡이 생활관 사람들 모두를 위해 판 구덩이위에 세워진 공중화장실을 생활관 사람들은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오 분 거리에 있는 식당화장실에서 용변을 해결했다. 아니, 이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용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적절했다. 화룡이 지은 공중화장실엔 어김없이 화룡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용준을 올려 보내고 밤새도록 화장실을 쟁취하기 위해 홀로 구덩이를 다 파낸 기적을 행한 화룡은 화장실 구원론의 마지막 단서인 종교적 계시에 눈을 떴다. 마치 흐린 낮처럼 휘황찬란하게 밝았던 교교한 보름달빛, 때 마침 그쳐준 장마, 화룡을 혼자 있게 한 졸린 용준, 유독 오지 않았던 잠까지. 일상의 모든 것이 구원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계시와도 같았다.
화룡의 전반적인 삶은 이제 화장실 구원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배열되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이 각 일상은 화장실 구원으로 통했다. 그것이 바로 화장실 구원에서 마지막 차원의 구원을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최후의 단서인 종교적 계시였다. 종교적 계시를 깨닫게 된 화룡은 희한하게도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는 것과 같은 힘을 얻어 구덩이의 끝까지 파내려갈수 있었다.
종교적 계시를 받은 화룡은 이상해졌다. 마치 정신병자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전보다 더 화장실에 집착했으며, 혼자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본 채로 생활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생활반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아픈 환자가 있으면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쳐댔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불뱀을 쳐다본즉 살리라!
아픈 사람들은 화룡을 쳐다보는 게 무슨 대수랴 하는 생각으로 미친 사람처럼 불뱀을 외쳐대는 화룡을 스윽 쳐다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렇게 화룡을 쳐다봤던 사람들은 다음날 아팠던 게 싹 나았다는 사실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환자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정신병자 같은 화룡을 쳐다봤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프던 것은 거짓말처럼 나았다.
화룡선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
화장실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능력이라.
갑자기 신유의 기적을 베푸는 화룡을 신기하게 여긴 용준은 화룡이 두 번째 화장실 구원론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갔음을 느꼈다. 그 비결이 궁금해졌다. 엄청난 기적을 행하는 화룡의 마지막 화장실 구원론을 배우고 싶어졌다. 용준은 한참을 눈치보다 화룡과 둘이 남았을 때 기회를 잡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나 화룡은 이전보다 더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가장 깊은 진리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는 격언을 드러내듯 화룡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의 조합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화장실 구원임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와 같이 화장실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화장실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화장실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화장실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화장실을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화룡은 더 이상 용준이 알던 존재가 아니었다. 화룡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높은 구원의 차원으로 성큼 올라서 버렸다. 용준이 보지 못하는 구원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화룡에게 화장실 구원론의 보편성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자기 구원을 이룬 화룡에게, 타인의 시선에 무관심 하고픈 화룡에게, 가장 완벽한 사적 공간을 바라는 화룡에게 전도라는 행위는 무의미했다.
부대원들에게 구원이었던 지루한 장마가 끝이 났고, 다시 여름답게 무더위가 찾아왔고, 고장 났던 생활관 화장실은 고쳐졌다. 하지만 화룡은 자신이 이룩한 구원의 표증인 공중화장실에 집착하고 있었다. 생활관 화장실이 고쳐진 이상 공중화장실은 반드시 철거해야했기에 공중화장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반쯤 실성해 있는 화룡을 밖으로 끄집어냈고, 부대원들은 신속히 공중화장실을 철거했다. 마지막으로 똥구덩이를 파묻고 그 위에 똥구덩이 조심! 이라는 푯말을 꽂아두었다. 용준은 철거 내내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같이 눈물을 흘리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화룡을 붙들어 놓느라 진을 뺐다.
공중화장실을 철거하는 부대원들에게 울부짖으며 외치던 화룡의 강한 그 한마디를 용준은 병장을 달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절했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던 화룡의 쉰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담겨진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무엇이었다.
인간들아, 나는 너희를 세상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신이로다!
시간이 흘러 용준도 어느덧 전역을 했고, 똥구덩이의 푯말은 누가 뽑아갔는지 아무런 표식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이름 모를 이병이 우연히 그 똥구덩이 위를 지나가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도 구덩이에 한쪽 발이 빠지고 말았다. 이름 모를 이병은 구덩이에 침을 퉤 뱉고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아. 젠장. 똥 밟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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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작품론은 내일쯤에나...
병장 김동석 (20060727 125420)
소설이 대세인가.
상병 조주현 (20060727 143817)
난 내일을 기다리겠슴
상병 김청하 (20060727 171401)
주현 왜요
상병 조주현 (20060727 173326)
청하작품론을 올려준다길래 그만
병장 조용준 (20060727 194556)
크흐흐. 내가등장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병장 고계영 (20060727 214129)
대세는... 두둥.. 병영문학상! 이제 돌아오는 것입니까. 진우님 저도 작품론 기대하겠습니다.
아! 프린트~ 몇장이나 나오려나. 흠.
병장 엄보운 (20060731 094837)
분량은 길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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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매끄럽지 못한 문장 구성과 '2.' 부분에서는 '세 가지 단서'에 대한 부족한 설명이 아쉬웠지만, 진우씨가 표현하시려는 부분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관계로 패쓰. 하겠습니다. 좀 더 뚜렷한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이하 마무리 부분도 진우씨 정도라면 좀 더 강렬하게 마무리하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이것 모두 진우씨의 프로적인 글쓰기에 비하자면 그런 거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품론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나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수긍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진우씨. 좋은 결과 있으면 꼭 냉동 돌려요!
병장 주영준 (20060802 092035)
1. 일단 재미있게 읽었음(예술에서 재미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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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신종교의 창립-반대하던 젊은 친구의 열성 전도사化-창립자의 종교적 상승고양으로 인한 전도사의 실망. 둘 간의 불화'는 꽤 이름이 알려진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도 등장하는 구성인데. 전도사화전도사의 불화야 네 말대로 현대 종교의 진행에서 일반적인 패턴일지도 모르겠다만, 그 원인에 창립자의 종교적 상승고양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걸릴 수 있는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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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화룡의 구원은 화장실인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사실 구원은 페니스에도 있을 수 있을 거고, Brother 프린터의 토너 속에도 있을텐데. 왜 화장실인가. 이에 대한 소설적 이유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1.철학종교의 차원에서 합리적인 구원론 2.어린 시절의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 3.사적인 자유와 평안(1과 약간 다른 차원에서) 그리고 또 몇 개 더 있을텐데. 사실 인생의 사건들이 하나의 이유에 단선적으로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식으로 다층적인 이유를 던져 놓는 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이게. 지금 내가 새로 쓰고 있는 소설에서 무한히 어긋나고 있기에 아예 폐기하고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 내게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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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런데 3에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불충분해. 삶의 원인들이야 물론 다양한 만큼 불충분한 건 당연하고,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설명을 군데 군데 방기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전반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스트릭트함'과 설명의 방기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처음 용준과 화룡의 논쟁이나, 구원의 순차성에 대한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보다 구체성을 가지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보운 씨도 부분적으로 지적한 문제인 듯). 트라우마에 대해서 보다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준다거나, 논쟁의 철학적 면을 좀더 부각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이 부분에서 화룡의 성격 묘사는 논쟁 전의 상황들에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해). 아. 그게. 내 '폴라로이드'에서도 해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노는 장면을 많이 그렸고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랑 이거랑 작품 전반 분위기가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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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철학적 사변-개인적 고통-신적 구원의 3단계가 소설의 핵심적인 무엇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화룡용준 외의 누군가 인물 추가를 통해서 소위 구조주의적 방식으로 3단계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트릭이 가능했을지도. 아.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내 작품에 대한 네 평이나 네 작품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역시 네가 절제된 형식미를 중요시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만일 그렇다면 굳이 그래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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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혹시 하반기 문예지 공모전 일정 아는거 있냐. 나도 좀 같이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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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정적으로 이거 니 이야기잖아. 에세이라고 읽어주겠다.
병장 박진우 (20060802 151314)
3,4. 정공법을 쓰면서 약간의 어긋남도 시도해보고싶은 개인적 욕심에... 그냥 시간적 순서로 배치할걸 그랬나. 게다가 기승을 쓰고있던 당시의 나조차도 화룡의 개인사에 확답을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 휴... 이제야 몇개 보이네.
5. 아... 그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런 방법이 있었네. 체크체크.
7. 빙고. 사실 에세이. 사소설주의로 돌아서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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