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예수의 부활을 위해, <예수전>(김규항)
상병 홍명교 2009-06-03 15:43:06, 조회: 120, 추천:1
책을 읽는 것보다 책에 대한 감상을 쓰는게 백배는 더 어렵다. 1년 넘게 미친듯이 책을 읽어대고 있는데, 무언가 진짜 나의 것으로 남기고 있는건 얼만큼인지 가끔씩 의심을 품게 되는 요즘이다. ex-libris라도 남기고 싶어서, 주요한 대목이나 인상깊은 구절마다 노트에 메모를 하며 읽느라 속도가 더디긴하지만, tv도 안보고 주말이나 상황근무 시간이면 내내 책만 읽는 통에 읽는만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란. 마르케스와 뒤라스 등 일군의 작가들을 기점으로 1년여에 걸친 고전문학 기행도 거의 끝나간다. 최근에는 쉬어가며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있다. 미술사나 건축에 대한 책들, 롤랑 바르뜨의 텍스트들, 기타 등등.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예수전>을 읽었다.(5월 27일~30일) 몇달전부터 벼르던 터였다.
이 책은 김규항씨가 수년만에 내놓은 단행본이다. 아마 <나는 왜 불온한가>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열여덞살일때, 좋아하던 여자아이 J(지금은 신림동에서 몇년째 사시공부중이다.)가 있었는데 그때 J가 <B급 ㅈ파>라는 책을 추천해주었었다. 당시 유시민의 유수한 저작들로부터 자유주의자의 향기를 물씬 맡으며 영예로워하던 나로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J같은 아이가 저 불온한 제목의 책을 읽다니!" 이런 느낌이었을까. J는 잘나가는 판사 아버지의 딸이었고, 부자집 딸이었으니까. 나는 뭔가 단계적으로 홍세화책을 다 읽고, 김규항의 그 책을 읽었다. 그는 내게 홍세화를 넘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내 태도나 스타일에도 너무 잘 맞았다. 직접행동을 강조하고, 한국사회의 모든 권위에 통렬한 조소와 비판을 가하는 그의 필체는 열혈같은 열아홉 소년에겐 너무나도 통쾌하게 다가온 것이다. 아마 그즈음부터 컴퓨터 게임에 대한 재미를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김규항은 그 책에서 '어떤 대학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통렬함으로.
이 책은 그후로는 처음이다. 애초에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예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만큼 이야기꺼리, 연구꺼리가 많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이 엄청난 인물은 서양의 역사와 철학, 인문학, 예술 등 모든 것에 대한 일대변혁의 출발지점과도 같은 '모두의 고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포쓰를 지니고 있으니까. 이것은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규항의 신간 <예수전>은 예수를 온전히 "역사의 예수"로 돌려놓고서 바라본 책으로, 신약성경 중 우리가 흔히 '마가복음'이라고 부르는 <마르코 복음>을 강독 형식으로 읽으며 그의 삶을 되짚어가는 텍스트이다. 애시당초 저자의 계획은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겨냥한 것으로 "원래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는 방식의 논쟁적인 텍스트를 화두별로 작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면서 강독 형식으로 변화됐고, 한 사람의 독자인 나는 이 방식이 너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따져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가족적인 분위기와 살면서 겪은 경험과 환경들의 영향일 것이다. 게다가 난 무언가를 맹렬하게 믿기에는 너무 권태롭고 시니컬한 인간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고 문익환 목사와 비슷한 시기에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나와 목사를 수십년하셨지만, 도중에 목사하기를 그만두시고 카톨릭으로 개종하신, 정말 만나기 힘든 스타일의 삶을 사신 분이었다. 용인의 어느 시골교회 목사를 하시던 할아버지의 개종의 변은 "한국의 장로교회는 너무 썩었다"는 것이었다. 그후로 종교와 신에 대한 갈등과 고민은 우리 가족의 뿌리깊은 토픽이다. 어린 시절엔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고교시절엔 친구들 따라서 동네의 유명한 장로교회에 2년가량 다니기도 했던 나는, 종교에 대핸 무한히 열려있으면서도 씨니컬하다. 한때는 누구말처럼 "아편"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고 다녀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사회 교회의 모습은 의문꺼리만 가득 안겨준 실망스러운 모습 뿐이었다.(물론 때때로 훌륭한 목사나 신부를 만난 적도 있다. 요컨대, 생태운동에 모든걸 바치며 살아가는 문정현 신부같은 사람.) 내가 다니던 Y교회에는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한때 소통령이라 불렸던, 당시의 그는 수천억 비자금 문제의 주역이었다.)이 다녔다. 그때도 열여덞살이었나?(생각해보니 열여덞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어느날 목사가 김현철을 배웅나가며 교회밖 100미터앞까지 따라나오는 모습을 보자, 다시는 그 교회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모습이 내겐 너무 비겁해보였다. 이처럼 내가 만난 대다수 성직자들은, 예수가 전한 복음은 줄줄 외고 누구보다 자신있고 우렁차게 외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도무지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 전혀 생각치도 않을뿐만 아니라 무감각하기까지한, 현대판 바리새인과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조용기 목사와 같은 이름 높으며 돈도 많으신 성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천주교 포함) 현실에 대해서는 지독하리만치 무감각하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는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서 제자들과 함께 실천한 사회적 행동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예수는 철저히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고통받고 (성직자들로부터) 조롱받는 이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항상 현실의 문제에 대해 말하며, 노동의 비유와 성경의 비유를 들었을 뿐이다. 현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마치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랑의 가장 차원높은 실천양태인냥 행동하는 현대의 성직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예수전>은 16장으로 구성된 <마르코 복음>의 대목대목마다 읽고, 그에 따라 김규항이 강독하는 형식의 '다시 읽는 마르코복음'이라 부를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다른 복음이 아닌 마르코복음을 택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사료적으로 그것이 가장 실제에 근접해있고, 또한 덧씌워지거나 지나치게 신화화된 군더더기가 적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마르코복음>이 쓰여진 시기는 AD 70년경인데, 3세기경에 덧붙여진 부분은 따로 표시해두는 섬세함까지 보태두었다. 마찬가지로 한신대 신학과 출신(아마도 '중퇴')인 저자의 오랜기간에 걸친 고민과 연구의 흔적이 책의 행간마다 묻어있다. 책의 종반부에 저자가 예수 부활의 의미론적 해석을 붙인 점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말들 뿐이었다. 당시에 예수가 부활했다는 지점에 대해 지나치게 '실증적'이지도, 그렇다고해서 신화적으로도 해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것이 실제냐 아니냐의 판단보다 더 중요한 부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논한 것. 예수가 나타나기 전 유대인들은 오랜기간의 식민지 생활로 지치고 고통받아왔다. 그들에겐 고난의 시기에 '예언자'가 나타나는 예언자의 문화가 있었는데, 모세나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나 요셉이 그러했다. 예수의 등장은 당시에는 요셉과 같은 한 예언자의 등장과 다르지 않았다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살면서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열정적인 복음을 전파했고, 권력과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으로 맞섰다. 다른 누구보다 더 바리새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은 율법주의자들인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보여준 진리는 저항과 삶의 태도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부활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육신의 부활을 뜻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의 차원이 아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로마로 전파되면서 일종의 자기완성적인 가르침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부활'이라는 맥락을 부여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의 텍스트로서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종교적이고 체제안정화를 위한 '장치'로서 오도/왜곡되는 과정이 문제였던 것일 뿐. 저자는 이 지점에 대해 로마시기 이스라엘 민중에 대한 극악의 탄압을 근거로 든다. 예수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가난한 피지배계급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더더욱 힘든 시기를 겪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어떤 의미로 받아질 것인가.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도 해방의 그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삶의 태도로서의 죽음"이라는 은유! 그것이 살아돌아오는 예수의 모습일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역사상 가장 고결하며 자기희생적이었던 혁명가였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반대쪽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도, 어떤 의미에서 예수는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며 살아있다. 팔레스타인에서 거대한 탱크를 향해 돌맹이를 던지는 어린 아이에게서, 용산의 철거민들에게서, 폐쇄된 직장에서 출근날만 기다리는 어느 노동자들에게서.
<예수전>의 일독을 권하며.
20.19.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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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7:25
상병 김예찬
48.9.2.115 몇 년을 기다려왔던 책인지..
언젠가 제 일생(?)을 돌아보며, '압도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가정 환경에서, 역으로 기독교를 돌파할 지적 권위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김규항의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죠.. 2009-06-03
15:54:44
상병 진수유
40.6.1.143 잘 읽었는데 <예수전>을 읽지 못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네요. 흥미롭습니다. 단순한 꺼리를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진심에 대한 희망을 품습니다. 꺼내 보고 싶은 이야기들도 꽤 많지만.. 미뤄야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2009-06-03
16:14:07
상병 김태완
16.48.6.22 예수의 부활에 대한 생각이 제 생각과 꼭 닮아 있군요. 다들 신성을 강조하는데 인성적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죠. 그러나 또 인성적으로만 접근하면 신앙생활을 통해 존재 인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믿는 종교가 종교로써의 기능을 잃을 수 있으므로 인성과 신성에 대한 인식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겠죠.
잘 읽었습니다. 2009-06-04
11:02:25
상병 지민웅
5.11.11.122 멋진 후기군요. 한국의 장로교회는 썩었다는 말이 절절하게 들려옵니다. 최근 <한국 교회의 7가지 죄악>이라는 책도 나왔더랬죠.
[re] 예수 유감
상병 박원익 [Homepage] 2009-06-03 19:35:40, 조회: 120, 추천:0
글쎄요, 일단 접해본 김규항의 몇몇 단편들만을 접하면, 예수를 인류의 위대한 스승의 계열에 놓는 수 많은 진부한 시도들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가령, '원수에게 왼뺨만이 아니라 오른뺨마저 내어라'라는 것에 어떤 심오한 사회경제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해석들.
정말로 이렇게 본다면 예수여도 좋고, 부처여도 좋고, 마호메트여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예수라는 인물의 압도적인 '단독성'이 이런 가르침들로 해소되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가령 부처 자신은 훌륭한 불교도였지만, 예수 자신은 전혀 훌륭한 기독교도가 아니었으며, 그의 가르침 중에는 모순되고 허황된 게 많았다는 사실은 간과되곤 하지요. 해서, 중요한 건 그의 심오한 정신적 세계나, 가르침이 아니라, 신으로서 인간으로 죽었다 부활한 그의 '현존' 그 자체인 것이지요. 이것이 기독교의 기본 공리인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건 우습지만, 다소 '이단적' 성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진보성향의 자유주의-해방신학은 항상 예수를 어떤 혁명전사나 관용적인 자유주의적 정신적 스승으로 채색하는 경향과 함께,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 사도-바울을 근본주의적인 왜곡으로 폄하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령 강막수 씨를 위대한 참여적 휴머니스트 사상가로 찬양하는 동시에, 정말로 막수적인 개입을 행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위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 기성 교단을 지배하고 있는, '불관용적이고' '보수적인'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신앙에 예기치 못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한 상황의 비극은, 한국의 기독교 담론에서 이들이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아무런 대가 없이 사도 바울의 전복적인 가르침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저들에게 넘겨주고요.
사도 바울에게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나, 그의 가르침의 해석학적 함의들, 그가 실천하고 가르쳤던 역사적-사회적 맥락들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말하자면 예수의 행적에 관한 '후일담 문학'에 탐닉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그 주변인물과도 변별되는 점이지요. 그는 이것을 가지고서, 한 괴팍한 인물의 기행을 하나의 단절적인 '사건'으로 제시하며, 거기에서 구체적인 실천 강령들을 끌어내고, 보편 종교의 원리로 끌어올렸습니다. 해서, 결국은 로마제국의 권력과 결정적인 갈등을 일으키지요. 이럴 때, 정말 어떤 방향으로 기독교와 예수의 가르침에 접근하는 게 더 결정적일지는 분명하지 않을까요.
54.1.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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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7:35
상병 김예찬
48.9.2.115 바디우주의자답군요. 크크. 2009-06-04
07:48:48
상병 진수유
40.6.1.143 원익님께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 담론에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로부터 이끌어 낸 가르침에 대해 비판할 여지, 혹은 비판적인 입장이 있을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해하면 되는 건지요. 그러한 맥락이 마지막 문장의 답으로 이어지면 제가 맞게 이해한 건지, 궁금합니다. 2009-06-04
08:22:28
상병 박원익
54.1.19.119 아, 원래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은, 성경 무오류설을 믿고, 전도행위에 강한 중점을 두며, 각자의 내밀한 성령체험을 중요시하는, 한국 주류 교단의 경향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근거를 두는 주요 텍스트들을 보면 사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많이 참조하지요. 가령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라는 비타협주의적 자세들 같이 말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비판할 대상이 아니지요.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인데,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예수의 행적이나 가르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신으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죽고, 부활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언급되고, 거기에서 죄와 구원의 변증법을 끌어내는 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사도 바울에게 '종교적 계시자'나 '스승'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그의 삶과 죽음 자체가 진리를 계시하는 '사건'Skandalon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바울은 예수를 메시아로 모시는 종교를 비타협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성격으로 변모시킵니다. 가령 부처를 깨달음의 스승으로 생각하는 불교에서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나 참선의 방법론이 나올 여지가 있지만, 바울은 예수를 비인격화시킴으로써 완전히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지요. 이것이 앞으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결정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에 혁명가가 있었다면,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겠지요. 2009-06-04
15:43:46
상병 진수유
40.6.1.143 으음, 답변 감사합니다. 몇 가지 토를 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는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예수가 승천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한 지상 명령으로 알고 있는 바입니다(마태28:16-20,마가16:15,누가24:47-48,요한20:21). 사도행전(Acts) 첫머리에 나오는 이유는 예수의 승천 이후 폭발적으로 진행되는 복음 사역을 뒷받침하는 연결고리로써 그것이 작용하기 때문에 바울이 언급한 것 같구요(행1:8). 그것이 비타협주의적 자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타협주의적 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약간 다를 수 있겠군요. 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저는 반대로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 엄청나게 타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 더 과감히 말한다면 바울은 예수가 말한 '복음'evangel을 '타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다 바쳤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싶네요. 작년 12월부터 이번 4월까지 성경 66권을 다시 한 번 다 읽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던 것은 로마서 11장에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천국heaven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 근본적이었던 유대신앙이 훨씬 더 타협적이고 느슨하게 비-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맞게 개혁된 것입니다. 바울에 의해서 말이죠.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란 '동물은 아니고, 사람보다는 조금 못한'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제자 베드로의 소위 '부정한 음식을 싼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이루어진 로마 군인 고넬료의 영접부터 판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행10). 시간순으로 보면, 행10장 이후에 바울이 베드로의 사역을 이어받는데 그의 중점은 이스라엘 밖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로마 시민이었다는 사실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수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증거하는 내용('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은 꽤나 충격적입니다(행17:16-34). 또, 계속 이어지는 바울 서신들에서도 기존 폐쇄적인 유대신앙에 반대되는 언급을 그치지 않습니다.
원익님의 논점을 제가 제대로 파악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종교를 문화라는 큰 틀에서 이성적으로 이해해본다면, 그것 또한 인간으로 이루어져서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또 개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 개신교의 흐름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확실히 정체된 부분이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드러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더 교리적이고 원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꼭대기에 세워 놓았다기 보다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신학적인 틀은 제시하되 과거 유대 신앙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인 형태로 예수를 제시했음에 어떤 희망이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예수 자체도 그러한 존재이자 사건이었음에 분명하구요.
저는 오히려 문제시 해야할 부분을 한국 장로교라는 집단에서 찾기 보다는, 일련의 종교개혁 과정을 통해 과거 프로테스탄트적 선구자들이 이루어 낸 '텍스트의 개방' ㅡ 즉, 대중적인 번역으로 만인에게 유일신과 직접 소통하고 진리를 구가하도록 도와준 노력을 우리가 너무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고 싶습니다. 신자인지 비신자인지는 둘째이고, 유대교든 기독교든 개신교든, 관련된 문제의 발견과 해결이 기본적으로 텍스트에서부터 출발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2009-06-05
09:33:02
상병 박원익
54.1.21.53 진수유 님이 논점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여부에 대해 망설이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표현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죠. 진수유 님은 '비타협적'이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여부를 종교의 포교 대상의 외연을 척도삼아 판단하셨는데, 이는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고, 제가 그러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사도 바울이 '비타협적' 신앙을 대변할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바로 그런 기독교의 '보편성'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진수유 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성에 관한한, 로마제국을 능가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국가와 민족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들에게 저마다의 자치를 부여했고, 신앙의 자유를 주었으니까요. 이것은 사실상 오늘날의 후기-자본주의적 세계의 보편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세웠던 기독교의 보편성은 바로 그러한 제국의 보편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고 해야할까요.
사도 바울이 복음에 관한한 남자나 여자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다 평등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코스모폴리탄적인 감수성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로마 제국에 만연했던 코스모폴리탄적 감수성에 불화를 일으키는 보편적 '적대'를 불러일으킨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진리'는 예수라는 인간이 동시에 신으로서 죽었다 부활했으며, 이것을 믿는 것만이 육신의 길에서 벗어나 영생의 길로 향하는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선택 앞에서, 그러한 선택의 주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는 완전히 무관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관용'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관용'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으며, 그러한 '근본주의' 앞에서만 유효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관건입니다. 2009-06-07
14:54:04
상병 진수유
40.6.1.143 "'불관용적이고' '보수적인'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를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친절한 설명에 감사를 드립니다. 추측이지만 원익님께서는 최근 사도 바울에게 꽤 관심을 두시는 것 같습니다. 또 올리실테니, 기다려야겠군요. 히히.
[re] 일종의 해명?
상병 홍명교 2009-06-03 21:51:55, 조회: 122, 추천:0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저는 기독교도조차 아닌 종교가 없는 사람이어서, 기독교나 해방신학에 대해서 일정한 변호를 해주지 못하겠네요. 저는 종교와 신앙이라는 테마에 대해 관심이 무진장 많은 편이며, 김규항이 쓴 <예수전>을 정말 좋게 읽은 한 사람의 독자입니다. 따라서 던져주신 의문들이 저를 향한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원익님이 쓰신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밝혀봅니다.
예전에 쓴 다른 글들은 이미 8년가량 되어버려서 잘 기억이 안나구요. <예수전>에서도 김규항은 "원수에게 왼뺨만이 아니라 오른뺨마저 내어라"라는 언명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을 달아놓습니다. 흔히들 그 말은 원수를 쉬이 용서해야한다는 언명처럼 쓰인다는 거죠. 따라서 이 말에는 어떤 일정하고 오래된 권력이 정해놓은 정치적 의도가 심어져 오용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말의 전후맥락상으로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저항적 삶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죠. 억압받는 이들에게 폭력은 왼쪽뺨을 맞았을때 오른뺨마저 내놓는 자세와도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비주류적 해석이 맞아보입니다.
일단, <예수전>을 읽진 않으셨고 10여년전에 그가 써서 8년전에 책으로 출간된 글들을 읽어보신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는 올바른 비평은 많이 어려워보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단지 위의 글을 통해 저 개인의 인상비평을 남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과 공부한 바에 따르면, 저자는 원익씨 '느낌'처럼 '예수'라는 인물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의 계열에 올려놓는 정도의 시도"를 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역사 속 인물로서의 예수의 삶을 이야기한 거죠. 제가 독서후기를 쓰며 <예수전>과 <마르코복음>으로 접한 예수를 좀 위대하게 표현했다면, 그건 저의 감상적인 글쓰기 습관 때문일겁니다.
또한, 오늘날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예수에 대해 말하는게 얼마나 진부한 것인가의 문제는 별로 중요한 논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진부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원익씨처럼 '학'이 쌓이신 소수의 분들일 것이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러하진 않을겁니다.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 (책마을에서도 대다수이겠지요.) '예수'는 퓨리턴들의 신격화되었으며 융통성없는 '율법'의 '전능하신 그리스도'입니다. 도리어 해방신학은 쇠락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해방신학의 관점으로 예수를 살려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김규항이 해방신학자가 아닌건 너무 확실하구요. (책을 읽어보시면 알겁니다.) 제가 뭐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써낼만큼 시간이 많진 않아서 못썼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그렇네요. (저의 불성실함을 용서해주세요.) 요컨대, 해방신학은 예수를 "역사의 예수"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진 않습니다. 다분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바라보죠.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하는건 의미있는 작업일 것입니다.
물론, 예수여도 좋고, 부처여도 좋고, 마호메트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전>이나 <마호메트전>을 읽진 않았고, <예수전>을 읽은 것입니다. 더불어 김규항도 부처나 마호메트라는 인물보단 예수라는 인물에게 어떤 매력같은걸 느꼈으니 그 책을 썼겠죠. 그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예수라는 인물의 단독성은 물론 가르침들로 전혀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주위로 2천년간 쌓여온 신앙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그 아우라는 지금 전세계 수십억명이 호위하는 절대 아우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헷깔리게 만들고 있죠.) 이 아우라는 언젠가 아주 순식간에 붕괴되고말지도 모릅니다. 정말 우습게도 순식간에.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예수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비춰지기 시작할때일 것입니다. 그럼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돌아볼때, 아주 허무맹랑한 짓을 한 것인지 아니면 역사 속의 한 인간을 온전히 그 인간의 삶과 가르침으로 돌아볼 수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가는 누구의 책임으로 남을까요. 예수와 종교는 지식인이나 철학자들에 의해 그저 부정되어왔을 뿐이지, 대중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컨대 예수라는 인물은 대중 이데올로기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인데, 거의-항상 부정되어왔을 뿐이라는거죠. 예수를 '역사' 안에 인입할때 그에 덧씌워진 불필요한 아우라도 제거되리라 생각됩니다. 폭발적이고 절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씀하신 해방신학에 의한 '사도 바울의 왜곡'에 대한 비판이 강막수를 휴머니스트로 찬양하면서 정말 막수적 개입을 행한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위선과 같다는 말씀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언급하신 "정말 막수적"이라는건 정말 모호하기도 할 뿐더러, 애초에 "막수적"이라는게 무언가에 대한 물음이 어떤 의미가 있나 싶기 때문입니다. '막수주의'는 역사적으로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왔고 오늘날에도 그 변신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테러리스트'란 블랑키주의자들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인민주의자들을 말하는것인지, 수탈링주의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네요. 만약 정물화된 모습의 '막수적인것'이 있다면 막수가 해결하지못한 진화주의적 전통의 난제가 온전히 두 가지 뿌리로 흘러내려간 점을 말할 수는 있겠죠. (굳이, 억지로 말하자면!) 그러나 그마저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통 막수씨팬은 결코 아니고, (굳이 밝혀야만 한다면) 막수주의의 양편향(수탈링으로 정점에 이르는 생산경제지향의 서유럽 사민주의이 만들어온 ㅈ파 스포츠의 역사가 많은 부분 진화론적 한계에 갇혀 운동의 역사를 오도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보면 원익씨 말씀은 좀 이해가 안됩니다. 원익씨가 들은 비유를 볼때 뭔가 비유를 잘못들은 것이거나, 아니면 원익씨의 막수주의 역사에 대한 판단에 동의할 수 없거나 둘중 하나겠군요. 어쨌든 여기에는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나중에 얘기하죠, 뭐. 저는 궁에와서는 거의 겁쟁이라 대학시절 얘기하는 것도 무서워서 입다물고마는 스타일인데, 언젠가 자유롭게 얘기할 날이 있겠죠?
사도 바울 담론이 기성교단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신선하게 느껴졌고 다르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점 때문에 예수를 역사의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로 고찰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역사연구 방법을 얘기하는건 아닙니다. 예수를 온전히 실증적으로 밝히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입장으로 예수의 삶과 그가 전한 말들을 재구성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과 존재하는 역사의 흔적만이 그 재료가 될 수 있겠죠. 성경 위에 덧씌워진 신화적 해석들은 제거하구요. 다만 그 순전한 결과물도 온전히 '예수의 것'이라고 할 순 없을겁니다. 그저 우리들의 시각으로 겨우겨우 판단할 순 있겠죠. 그러나 그게 중요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무시간 끝나가네요. 급 마무리합니다.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더더욱 <예수전>의 작업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엄청 단호합니다. 뚜렷하게 정치지향을 밝히죠. 이런 점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단호함이 오늘날의 절망적 분위기에서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와 기독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일독 권합니다.
20.19.3.161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7:44
상병 양동훈
18.1.17.63 막수주의와 수탈링에서 정말 진짜 대폭소...
아 이렇게 웃을만한 글은 아닌데 말이죠 껄껄껄 2009-06-03
22:42:22
상병 진수유
40.6.1.143 아침부터 흥미진진.. 잠이 확 깹니다. 2009-06-04
08:31:37
병장 이동열
22.36.32.6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책마을다운 글들을 읽어내려간 기분입니다.
다만 아쉬운것이 있다면 종교에 대한 저의 역량이 부족해서 이 논의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이겠네요. 함께 이야기하면 더욱 즐거울텐데라는 아쉬움이 물씬 남습니다. 흑흑 2009-06-04
10:21:36
상병 김태완
16.48.6.22 차기 소사 후보 두분의 해박한 종교적 지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글과는 전혀 관계 없지만 소사 후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도 굳어졌구요.
그런데 두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상반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막수주의의 모호함 때문인가요.
전 그냥 예수의 인성을 밝히고 안밝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신으로만 보지 않고 한시대를 영위한 인간으로도 볼 줄 알되 너무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하면 종교가 종교적 기능을 잃어 신앙적으로 인간이 기댈 곳이 없어져 사회적 혼란이나 위협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그저 예수를 우리가 조상을 숭배하듯 '옛 경이로운 인간의 신성화'적 측면으로 찬양하고 신앙활동을 하면 예수에 대한 논쟁의 여지도 필요없고 예수에 대해 '~주의적'으로 더 파고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9-06-04
11:57:26
상병 박원익
54.1.21.55 일단 김규항 책을 읽어야겠군요.
다만 저는 다소 진보적 색채의 사람들이 가려진 '인간 예수'를 재해석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눈길을 가져서, 두서 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김규항 씨의 <B급 왼파>라든지, <나는 왜 파이어온한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초반의 박력은 어딘가 사라지고, 다소 체념적으로 정신적 자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강조점이 옮아간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2009-06-04
17:53:06
상병 양동훈
18.1.17.7 나는 왜 파이어온한가
푸하하하
야근하다가 뿜었습니다
옆에서 '왜' 냐고 물어보는데 차마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2009-06-04
18:15:27
상병 홍명교
20.19.3.173 원익/
저도 한동안 그런 우려가 있었는데 <예수전>에서 완전 불식됐습니다. 그는 더 파이어온해졌고, 더 왼스러워졌습니다. 그는 철학자나 사색가보다는 행동파이기에, 그런 점은 더 응원하고 싶네요. 그리고 수년간 열정을 쏟고있는 <고래가 그랬어>는 가히 21세기스러운 위대한 잡지이구요. 그리고 수년전 그걸 창간할 즈음에는 파이어온함의 열정을 바치기 위해 노동계의 굉장히 파이어온한 일꾼들의힘이라는 단체에 가입한거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 말하는지 아실분은 아시죠? 2009-06-04
21:45:55
상병 황호상
48.2.128.33 잇따른 세개의 글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예) 누구누구 님께서 말한 마음의 키가 자란 느낌이군요. (웃음)
일독희망서 추가 입니다.
[re] 왜 바울인가?
상병 김예찬 2009-06-06 02:21:04, 조회: 70, 추천:0
마침 명교님의 <예수전> 독서 후기에 대한 원익님의 지적과 연결되는 글을 읽고 있기에 원익님의 글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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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의 자유주의-해방신학은 항상 예수를 어떤 혁명전사나 관용적인 자유주의적 정신적 스승으로 채색하는 경향과 함께,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 사도-바울을 근본주의적인 왜곡으로 폄하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령 강막수 씨를 위대한 참여적 휴머니스트 사상가로 찬양하는 동시에, 정말로 막수적인 개입을 행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위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거칠게 봐서 예수 - 바울 / 막수 - 레밍이라는 비교쌍이 아닌가 싶네요. 예수의 귀환, 막수의 귀환은 유행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지젝은 "오늘 날 막수로의 회귀는 이미 학계에서 나름대로 유행이다. 이러한 회귀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막수를 갖게 되었나? 한쪽에는 문화연구의 막수, 포스트모던 소피스트들의 막수, 메시아적 약속의 막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늘날 세계화의 동학을 예견한 막수, 월스트리트에서조차 그러한 인물로 환기되는 막수가 있다." "이 두 가지 계열의 막수가 갖는 공통점은 '본연의 정치'에 대한 거부다. 레밍으로의 회귀는 이 두 함정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라고 썼습니다.
그렇다면 왜 레밍은 거부되어 왔는가? '레밍'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체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주의가 무엇보다도 두려운 적으로 칭해지는 세상에서, 감히 레밍을 가지고 '무언가 해보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ㅈ파들은 레밍을 우회하는 다른 무언가 - 이를테면 더욱 리버럴하게 해석될 여지의 막수라던가 - 를 찾아야했고, 그렇게 후퇴하다보니 '현실 사회'의 실패한 역사 때문이라도 '새로운 정치'를 말하기도 힘들어진 것입니다.
바울 역시 레밍과 유사한 혐의를 받아야했습니다. 먼저 레밍과 바울의 공통점부터 찾아보죠. 레밍이 막수를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 냈던 것처럼, 바울 역시 예수(원시 기독교)를 정식화된 교리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사회/기독교의 교조성의 책임자로 지탄받아야했습니다.
레밍은 막수를 계승했다는 이론/행동 '집단'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었고, 게다가 기존의 지적 자장 / 역사적 자장에서 벗어난 러시아라는 '외부'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레밍처럼 바울도 '외부인'이었죠.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바울과 예수의 두 제자 사이의 힘겨루기를 떠올려보세요. 바울은 예수의 적통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직접 만난 적도 없구요. 이러한 외부성의 위치에서만이 우리는 막수/예수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은 바울/레밍이 예수/막수를 현실로 적용하는 방법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비판할 대상이 아니지요.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인데,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예수의 행적이나 가르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신으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죽고, 부활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언급되고, 거기에서 죄와 구원의 변증법을 끌어내는 식입니다. "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건'입니다. 레밍에게 중요했던 것은, '막수 이론'이 아니라 '막수적 아이디어' 자체였죠. 레밍 역시 "막수 이론에 비추어 아직 러시아에는 혁명이 바로 시행될 역사적 단계가 아니"라는 '다수의 반대파'들을 밟아버립니다. 레밍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지 않고, 바로 현실을 이론으로 관철시켜버립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점은 이러한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자유주의적 ㅈ파들이나 자유주의/해방 신학이 저지르는 공통적인 실수는 레밍과 바울이 원래 예수/막수의 가르침을 변색시키고, 교조화했기 때문에 그들 이후의 현실사회/기독교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에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현실사회/기독교의 부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을 모두 레밍/바울에게 뒤집어 씌우고, 원래의 막수/예수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과연 바울/레밍은 벗겨 내져야할 대상일까요? 바울/레밍을 벗겨낸 사회/기독교는 너무나 '무책임한' 기획이 아닐까요?
"저는 오히려, 한국 기성 교단을 지배하고 있는, '불관용적이고' '보수적인'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신앙에 예기치 못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한 상황의 비극은, 한국의 기독교 담론에서 이들이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아무런 대가 없이 사도 바울의 전복적인 가르침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저들에게 넘겨주고요."
원익님의 지적을 제 식대로 번역해보도록 할게요.
저는 오히려, 한국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불관용적이고' '보수적인' '수구적' '비타협적' 태도에 예기치 못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한 상황의 비극은, 한국의 정치 담론에서 이들이 레밍의 방법론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확고한 보수주의자들은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기획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마치 레밍처럼. '연대', '자유', '평등' 등을 떠들지만 실지로 레밍처럼 잔인하고 현실적인 정치판에 개입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환상 속의 그대'들은 무책임하기 이를데가 없는 순진한 영혼들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나, 그의 가르침의 해석학적 함의들, 그가 실천하고 가르쳤던 역사적-사회적 맥락들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말하자면 예수의 행적에 관한 '후일담 문학'에 탐닉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그 주변인물과도 변별되는 점이지요. 그는 이것을 가지고서, 한 괴팍한 인물의 기행을 하나의 단절적인 '사건'으로 제시하며, 거기에서 구체적인 실천 강령들을 끌어내고, 보편 종교의 원리로 끌어올렸습니다. 해서, 결국은 로마제국의 권력과 결정적인 갈등을 일으키지요. 이럴 때, 정말 어떤 방향으로 기독교와 예수의 가르침에 접근하는 게 더 결정적일지는 분명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위와 마찬가지로 이 문단을 제 식대로 번역해서 읽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 와서 왜 '바울'이 들먹여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맥락'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48.9.2.7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7:55
상병 박원익
54.1.21.53 헉, 제가 굉장히 불친절하게 적어놓았다는 게 티가 딱 나네요. 저야 다만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만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밍의 비교적 초기의 저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1917년의 개입에 연루되기 이전에 작성된 텍스트랄까요. 2009-06-06
04:22:24
상병 이재용
22.49.1.162 리플을 제 글에 다셨네요.
순간적으로 깜짝놀랐다는...(웃음)
난 바울이야기를 한적이 없는데... 2009-06-07
20:37:39
상병 김예찬
48.9.2.115 아랫 글에 리플을 달았는데 위에 달린것 처럼 나오네요. 크크. 시스템상 문제인듯.
<무엇을 할 것인가?>는 1902년인가 1907년인가 쓴 책이지만, 현실에의 개입을 다룬 가장 적극적인 텍스트라고 생각해 예로 달았습니다. 2009-06-08
07:28:25
상병 진수유
40.6.1.143 오우, 예찬님 감사합니다. 대충 어떤 흐름인지 알겠네요. 워낙 본질이 다른 쪽으로 멀어져있는 인간이라서 해석없이는 아직 많은 것이 힘드네요. 근디,
"이러한 외부성의 위치에서만이 우리는 막수/예수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에서, 외부성의 위치에서만이 '충격'을 되살릴 수 있다는 말씀은 아직 잘 이해가지 않습니다. '만'이라는 한정적 조어에 제가 너무 비중을 준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예찬님의 친절한 설명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2009-06-08
11:07:46
상병 김태완
16.48.6.22 잘 보았습니다. 2009-06-08
15:25:51
상병 김태완
16.48.6.22 수유 / 제가 예찬님은 아니지만 제 나름 해석한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외부성의 위치에서만이 우리는 막수/예수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는 바울이나 레밍이 실질적으로 예수/막수의 현실에 대해 신격화가 가능했고 숭배적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교리나 그의 발자취를 보거나 들으면서 함께 그들이 있던 곳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말인것 같아요. 즉, 높으신 분을 처음 만날 때나 만나기 전에는 그저 범접하기 힘든 존재로서만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면 허물이 줄어들고 대하기 쉬워져 그를 자신과 비슷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9-06-08
16:05:41
상병 진수유
40.6.1.143 태완 / 오우, 감사합니다. 계속 명쾌해지는군요. 2009-06-08
16:45:13
상병 김예찬
48.9.2.115 수유 / 답글을 달았으니 다음 페이지를 확인해주세요.
[re] '외부성의 위치'를 생각하기
상병 김예찬 2009-06-08 16:45:22, 조회: 30, 추천:0
"바우만은 근대성이란 질서에의 강박인 동시에 '풍토적 미완성,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의 지향'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근대성의 본질은 '아직 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향해 달려가는 근대성은 매사에 '질서'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양한 질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그 질서를 제외한 모든 것들'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발상은 질서에 대한 강박을 낳고, 정해져 있는 질서가 아닌 다른 것들을 '무질서'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질서로 편입시키려고 강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근대성이란 '미완성'의 것입니다. 아무리 무질서를 질서의 공간으로 편입시켜도 그 미완성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근대성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내재된 무질서를 발견하고, 발명하고, 다시 질서의 공간으로 편입시키는 순환 구조를 띠게 됩니다. 달리 말해서, 근대의 질서는 필연적으로 무질서를 내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김예찬, [독서후기] <홀로코스트와 근대성> 中
'근대성'은 질서 지향적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속성은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그 질서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나누고, '정해져 있는 질서가 아닌 다른 것들을 '무질서'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질서로 편입시키려고 강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헤겔의 세계사에 대한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헤겔은 세계사를 기본적인 '동일성'(=질서) 속에서 이야기하며, 각각의 이질적인 세계(='무질서')를 그 동일성 안의 한 단계로 편입합니다. 즉, '외부성 또는 차이성'(='무질서')을 내부의 모순으로 내재화하고, 그럼으로써 가장 적극적으로 '외부'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헤겔의 세계사적 '정신'이란, 본래적으로 다방향적이고 다중심적인 것들을 하나의 방향과 중심에 기초한 질서로 통일해 놓는 것입니다. 이 것은 헤겔 고유의 아이디어라기 보다는, 서양의 19세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헤겔 역시 자신이 살아가던 19세기의 질서(=근대성)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겠죠.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가지 면모를 가진 '근대'의 사상들 역시 헤겔의 세계사 인식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외부성'을 사유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방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막수주의의 그 것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막수 자체는 강고한 19세기적 질서의 '외부'를 사유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수의 '외부성'은 막수의 아이디어가 막수'주의'로 확산되는 순간 바로 상실 되고, 어느샌가 '외부성'이었던 것은 이미 '당연한' 것처럼 간주 되고 맙니다.
조악한 비유를 들어봅시다. 강고한 '짬' 질서가 지배하는 생활관을 가정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종의 계기로 '짬' 질서가 마치 사회에서처럼 '나이' 질서로 바뀐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것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일이죠. 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구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신병 때부터 '나이' 질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활관의 대다수가 될 무렵엔, '나이' 질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충격'적인 일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당연한 일이 되겠죠. 그리고 '나이' 질서는 마치 지금 '짬' 질서가 불만을 낳는 것 처럼 또 다른 불만을 가져 오겠죠.
'외부성'을 상실한 막수주의 역시 막수-엥겔지수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활동하게 되었던 사람들 위주로 승계됩니다. 물론 서로 서로 수많은 차이와 갈등을 낳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레밍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당시 혁명을 생각할 수 있었던 국가들 - 이를테면, 독일 / 프랑스 / 영국 처럼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어, 막수가 말했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조건이 되어보였던 - 이 아닌 러시아에서 '개입'을 결단했고, 뿐만 아니라 레밍은 당시의 '정통 막수 이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무리 '해방'적인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완결(=자폐적)로 빠지게 된다면 그 '해방'은 '억압'의 이면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혁명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한 없이 새로워야 한다!) 레밍은 이러한 '외부성의 위치'에서 본질적인 막수적 아이디어를 되살릴 수 있었죠.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레밍은 또 하나의 자폐증으로 빠지게 되는 '소연의 신격 레밍'과는 또 다른 레밍일 것입니다.)
48.9.2.11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8:06
상병 김태완
16.48.6.22 잘 읽었습니다. 2009-06-09
13:04:51
상병 진수유
40.6.1.143 예찬님, 새로 글 작성했어요.
[내글내생각] 예찬님의 "[re] '외부성의 위치'를 생각하기" 에 대한 답글
상병 진수유 2009-06-09 14:23:48, 조회: 32, 추천:0
더 명료해지네요. 감사합니다. 페이지가 넘어가다 보니, 새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바울로 위치를 바꿔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습니다. 예찬님께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근대성’의 속성과 본질은 그대로 신학에서의 ‘구속사救贖史’적 관점 ㅡ 흔히, 난잡하고 통일성 없게 보이는 성경 66권을 일관되게 관통한다고들 하는 ‘어떤 흐름’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예찬님이 소상히 말씀하신대로 ‘근대성’의 질서 지향적인 속성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모습들은 ‘구속사’적 흐름에 또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보입니다. 실제적으로도, 그러한 인식은 꽤나 강력하게 기독교적 세계관에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우리가 진정 ‘근대성’을 탈피한 ‘탈-근대성’의 시대에 살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일단 저로써, 이것은 질문이면서 자기 정리임을 미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기독교로 돌려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그것의 역사적 뿌리가 유대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위와 같이 규정된 ‘근대성’의 성격에 의해, 거칠게 봐서, 일차적으로 이러한 도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질서), 비-유대(무질서), 메시아의 도래(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달성) -주1)
이러한 상태를 ‘근대성’의 성격을 드러내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놓고 볼 때, 예수의 출현은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출현으로 유대(질서)는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 처형시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예수가 ‘구속사’적 관점에 전혀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다윗(다비드)왕과 같이 시대의 최고 전성기, 그러나 그것이 좀 더 완전한 형태로써 이루어줄 수 있게끔 하리라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유대의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메시아의 도래(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달성) 이후에 유대(질서)가 완성이 되고 끝이 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출현 이후, 그들이 예상했던 세계는 일보一步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의미에서 ‘탈-구속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외부성의 위치’에서 바울이 남긴 행적과 텍스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예수의 승천 이후, 사도 바울은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함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합니다. 제가 원익님의 ‘[re] 예수 유감’에 달았던 댓글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구속사’에 편입시키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상 예수의 출현으로 유대적 관점에서의 ‘구속사’는 끝이 난 셈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대상에 관계없는 복음의 유효성을 증거하면서 ‘구속사’를 다시 한 번 확장시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속사’의 범위가 단순히 확장된 정도로 마쳐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속사’까지 ‘개혁’시키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가능성’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가 구약 또한 정경으로 함께 갖추고 있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겠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예찬님께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근대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 즉, “자신에게 내재된 무질서를 발견하고, 발명하고, 다시 질서의 공간으로 편입시키는 순환 구조”로 또 다시 회귀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1:8) 라는 지상명령과 이후 성령의 사역, 열 두 제자와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등으로 이루어진 교회사의 시작 등을 통해 바울은 현재까지 그 정신(구속사적 관점, 즉 근대성)을 전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정신이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예수/바울 을 통해 이방異邦(비질서)으로 넘어갔고, 지금까지도 비질서의 편입을 동력으로 기독교는 계속적인 진행의 근거, 목적 따위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2)
하지만 또한, 기독교가 넘을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가 바로 이 지점에 있을 수 있음을 원익님께서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언급했던 바울의 이러한 ‘결과’(‘시도’라는 말 보다는)는 원익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근본주의적'인 최종적 결단 앞에서만 유효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만약 예수가 유대(질서)에 허락했던 ‘탈-구속사’적인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결과’지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죠. 막수/레밍 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여기서 지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결과적으로, 문제는 근대성에 대한 것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환상 속의 그대’가 될 것인지 아닌지, 결국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1) 실제로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은 근대적인 모습으로 계속 변모되어 간 것처럼 보입니다. 당사자들은 인식을 못해도, 큰 틀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구속사’적인 관점이죠. 하지만 근대성을 갖춘 형태로 진행되어 나가는 구약의 시간을 제가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언급드리면, 사사기의 역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에서의 이방 민족에 대한 무차별적 살육도 설명이 되겠군요. 그들은 그저 무질서였으니깐 말입니다.
주2)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습니다만, 기성 교단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복음’의 서진성西進性 이라든지(H.I.S. 시리즈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던 적이 있는듯?), 혹은 예루살렘의 제3성전 재건과 계시록적 암시를 연결지어 선교행위를 지속하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일련의 양태들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따졌을 때, 기독교는 ‘종교’로써, 근대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하나의 ‘정신’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아, 이슬람을 빼먹었네요).
40.6.1.143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38:17
상병 김예찬
48.9.2.115 잘 읽었습니다. 정신이 좀 들어오면 관련 글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06-09
16:27:26
상병 김태완
16.48.6.22 환상속의 그대로 보든 다가갈 수 있는 그대로 보든 크게 상관 없지 않나요. 자꾸 여기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큰 실의에 빠질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