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ay>안녕하세요, 빈머리뜨거운가슴 스텔스촌장 김끼룩입니다. 승일 씨와 처음 만났던 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왠지 행복합니다. 제가 승일 씨와 동기라는 사실은 축복이 아닌가 해요. 띠용띠용. </font><font color=444444>
먼저, 1에서 승일 씨가 말씀하신 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재현할 수 없는 현상(⊂ 검증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과학은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는 딱지를 붙여 그것들을 논의에서 제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분명히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과학은 세계에 대한 온전한 접근이 될 수 없는 셈이지요. 그것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요.
형이상학에 대해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형이상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왠지 조금 꺼려집니다만, 제가 이해한 대로 맥락에 따라 답변해보자면- 형이상학적인 무언가, 예를 들면 수학적 대상들이나 논리, 지식이 실재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이를테면 '바둑' 그 자체는 룰, 순수한 논리의 집합일 뿐 물리적인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둘 때에 그것은 구체화됩니다. 여전히 물리적인 실체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요. <font color=black>'인간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그 자체는 물리적인 실체를 갖고 있지 않지만, 실제 인간의 신체에 의해 이 세계에 구현되고, 그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집니다.</font> 이 역시 물리적인 실체를 직접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런 인간의 마음이 신체를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로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간의 마음이 정말로 재현불가능하고 검증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인간의 마음이 신체와 독립된 어떠한 논리 구조의 발현일 수 있고, 신체는 우리의 마음을 이 세계에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font color=black>인간이 자신의 신체 이상의 무언가, 이를테면 영혼과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신체 이외의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font color=gray>(*1)</font>.</font>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신체를 통해 구현된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라면, 인간의 신체를 그대로 컴퓨터에 구현하면 그것 또한 인간이 됩니다. 온라인 바둑이 바둑돌과 바둑알 없이, 모니터의 점들을 통해 바둑의 논리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font color=gray>(*2)
(*1: 저는 형이상학적 존재 일반에 대한 검증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영혼'과 같은 것에 대한 검증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2: 바둑과 인간, 컴퓨터와 세계의 차이에 대해서는 양자론적 불확정성이라던가, 세계의 연속성, 컴퓨터의 예측가능성 등이 반론으로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일단 이 글에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font>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기에 개별 뉴런들은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습니다. 뉴런은 단순히 세포막의 삼투압과 전위 변화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전기적 신호를 통해 다른 신경 세포로 전달, 하는 정도가 고작이죠. 개별 뉴런의 움직임은 분명 결정론적이며, 예측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냅스 연결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형성되었다면 인간의 마음 또한 결정론적이고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세한 얘기는 뒤로 미루겠습니다만, 비선형 계에서는 예측가능한 논리들이 모여 만들어진 체계의 움직임이 예측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흔한 예지만 기상 예측 또한 그렇죠. 공기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단순한 운동방정식에 의해 기술될 수 있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신경세포들의 조합을 통해 구현된 인간의 마음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무엇에 의해 구현되었는지는 변하지 않죠.
인간의 마음은 형이상학적인 어떤 체계일 수 있습니다. 아니, 저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승일 씨가 우리는 단지 다른 면을 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건 이런 맥락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font color=black>전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신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으며, 우린 그러한 인간의 신체를 연구함으로써 그에 대해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font color=gray>(*3)</font></font>.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저의 시냅스는 아닐 겁니다. 시냅스를 통해 이 세계에 구현된 무언가 찌글한 것이겠죠.
<font color=gray>(*3: 다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넘어야 할 벽이 많고, 어떤 벽은 우리가 영원히 넘지 못할 벽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괴델 식의 벽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컴퓨터 상에 동일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동일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거죠. 아마도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보다는 인간을 온전히 시뮬레이션하는 쪽이 쉬울 테구요.)</font>
+: 이전 책마을 정모 때 길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승일 씨가 지적하셨죠. 자아, 의식을 단순히 두뇌의 다른 기능과 같은 하나의 기능으로 보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요. 집에 가서 술 깨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구요. 헤헤헤 끼룩끼룩. 그리고, 신경과학이 의식 현상을 전혀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 현상은 두뇌의 여러 기능들이 총체적으로 움직일 때에 비로소 창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에 대한 접근은 역시 그런 방식으로 행해질 때에 유효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현재의 신경과학은 단편적인 행동과 국지적인 기능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고작이니까요.
책은 분명히 잉크과 종이로 이루어져 있지만, 종이와 잉크의 성분이나 구성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책의 내용에 대해 일말의 힌트도 얻을 수 없습니다. 설령 책 전체에 걸쳐 조사를 마치고, PIPPIPIPIIPIIIIPI... 이런 식으로 책 게놈 지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책의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 게놈 지도를 따라 이 책과 동일한 책을 복제해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여전히 책에 무슨 말이 씌어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font color=black>책이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신경과학이 의식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font>지금의 신경 과학은 뇌 전체에 대한 총체적 접근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단편적인 행동이나 국지적인 뇌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고작이니까요. 아마도 미래엔 이런 단편적 행동과 국지적 뇌현상의 중간 어딘가의 계층을 설정함으로써 의식에 대한 설명의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런지요. <font color=gray>(다만 두뇌가 정말로 chaos라면, 중간 계층을 설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 그냥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수 밖에요(...))</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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