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냐 개혁이냐?_마르쿠제·포퍼 논쟁 
 병장 강세희 03-20 15:15 | HIT : 172 



 혁명이냐 개혁이냐?_마르쿠제·포퍼 논쟁

1971 년 1월 5일, 남부독일 바이에른에서 일백만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네오마르크스주의자인 마르쿠제와 (신)자유주의자인 포퍼는 세기의 대담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와 그것의 극복방안에 대한 각기의 입장을 밝혔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을 강조하며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강조한 마르쿠제와 혁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억압을 염려하며 열린사회 실현의 필요성을 역설한 칼 포퍼. 힘들게 성사된 이 논쟁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석학들 사이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들여다보자.

 마르쿠제_후기자본주의는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고 이것이 자신의 욕구라고 믿도록 함으로써 인간을 물신숭배에 빠트리고 그들 스스로 자본주의체제를 재생산시키게 한다. 결국 자본주의사회 구성원들간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는 결국 노동자 내부대립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상대적 번영을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 체제의 모순 즉 빈곤, 낭비, 자원의 파괴행위 등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결정하는 생활형태를 발견하고 실현시켜야 한다.

 포퍼_국가는 법제도와 사회제도를 통해 야만적 폭력, 경제적 폭력에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빈부의 대립보다 더욱 나쁜 것은 부자유와 자유의 대립이며 민주주의를 위장된 독재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서구에서 부활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충분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마르쿠제_물론 개혁을 포함한 빈곤과 불행, 억압을 감소시키는 모든 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주의는 충분히 열려있지 못하다. 어떠한 주장이나 행동이 기존의 사회질서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되면 직접적 제재가 가해진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검열을 통해 충분한 자유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착취와 억압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이므로 그것은 이 사회구조의 철저한 변혁에 의해서만 지양되며 이 과정에서 저항적 폭력은 불가피할 수 있다.

 포퍼_폭력적 체제 전복에서는 독재가 뒤따르기 쉽다. 비폭력적 변혁은 그렇지 않다. 정부에 일체의 폭력적 공격을 하지 않고도 정부를 해산시킬 수 있는 제도들이 존재하는 열린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현존하는 사회의 공개비판이 억압받지 않는 분위기와 그 이상의 개혁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골격을 구성할 수 있다.

 나는 책을 덮으며 마르쿠제와 포퍼가 되어 서로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해본다. 개인이 의식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가? 진정한 의미의 열린사회는 가능한 것인가? 열린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억압적 폭력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항적 폭력인가 열린사회의 포기인가? 새로운 사회의 정당성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거기에 엘리트주의나 독단주의는 없는가?

 현실 사회주의가 그러했듯 특정한 이론에 절대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을 수반한다. 그러나 개혁을 핑계로 사회 변화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 또한 진정한 의미의 열린사회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개혁과 혁명이라는 단어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순과 문제들을 철저히 인식하면서 개혁을 통한 혁명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필요한 모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토론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내가 춤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혁명이라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병장 강세희 
 두 논자의 주장은 인용된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화자의 원래 의도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밝힙니다. 웃음. 03-20   

 상병 진규언 
 포퍼라는 이름은 들어(만)봤고, 마르쿠제라는 이름은 세희님의 독서후기를 통해 처음 듣습니다. 이것 또한 닫힌사회의 전형일 수 있겠지요.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담중.. 포퍼의 첫번째 말이 조금 이해가 안됩니다. 민주주의를 곧 자본주의와 연결시킨 것이라고 보이는데, 이것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를 강조하는데.. 마르크스주의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토대에서 발생했다는것이 전혀 역설적이지 않아보입니다. 
 끝으로 세희님의 글 마지막..내가 춤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혁명이라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에서 확 감명 받았습니다. 03-20   

 상병 황성규 
 제가 보기엔 포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 그 정도의 차이는 달라도 -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되어 있지만, 사회주의의 경우 그것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어떻든, 실제적 민주주의는 커녕 절차적 민주주의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듯 싶습니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곧 열려있지 않은 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볼 수 하는것 같네요. 03-20   

 병장 강세희 
 규언 / 역시나 저의 재구성이 내용을 명확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군요. 울음. 물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포함하거나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포퍼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겠지요. 칼 포퍼의 지적은 민주주의가 오로지 자본주의 하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말한다기보다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민주주의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에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문제에 선행해서 억압의 발생 여부라던가 자유의 문제가 중요했는데 당시의 미국은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국가들에 비해 자유스러웠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서구의 민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음에도 그러한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03-20   

 병장 김민성 
 책 제목이 "혁명이냐 개혁이냐?_마르쿠제·포퍼 논쟁"인가요? 
 읽어보고 싶은데... 03-21   

 병장 강세희 
 민성 / 예 제목이 '혁명이냐 개혁이냐'이고 부제가 '마르쿠제 포퍼 논쟁'입니다. 홍윤기 편저로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긴 한데 아마 절판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좀 변색되긴 했지만 제 책이라도 빌려드릴테니 쪽지 주세요. 웃음. 03-21   

 병장 김민성 
 음..학교 도서관에 있나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