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일상이야기] 헌책방 가는 길
병장 최원호 2009-03-05 03:40:45, 조회: 491, 추천:2
나는 핑계가 필요했다. 수학도 작업도 정석이 있는 법이지만 둘 모두 서툴렀던 나는 다만 하루를 같이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같이 영화나 한 편보다 덜 노골적이고 만나자 밥 사줄게보다 더 긴 시간을 약속해줄 수 있는 말이 간절했던 때. 그 시점에서 그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굉장한 정보였다. 서울 놀러오면 연락해. 같이 헌책방이나 돌아다니자. 염불도 물론 좋지만 잿밥에 훨씬 더 비중을 둔 이 낚시에 다행히 그는 넘어가 주었고,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에 나는 나를 선배라 부르는 참한 부산 아가씨를 데리고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서울에는 생각보다 헌책방이 많다. 그것도 곳곳에 퍼져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처럼 일종의 ‘성지’로 구성된 곳이 있다면 우리의 데이트는 짧게 끝났을 것이고 그는 나를 책 좋아하는 선배로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처럼 밥만 많이 먹는 곰 취급은 당하지 않고 있겠지. 어쨌든 나는 심혈을 기울여 동선을 짰고, 처음 방문할 곳으로 홍대의 ‘숨어 있는 책’을 선정했다. 낭만적인 이름이 아닌가. 헌 책은 새 책과 다르다. 고객용 검색대에서 탁탁탁 검색하면 기다렸다는 듯 책이 꽂힌 위치와 그 위치로 가는 길까지 뱉어내는 서점들과 달리, 모든 헌 책은 ‘숨어’있다. 발견을 위한 노력 없이, 연륜처럼 쌓인 먼지를 뒤집어쓰며 다가갈 용기 없이 찾아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숨어 있는 책’은 헌책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는 이름이다.
그렇게 멋대로 상상해버린 나는 진짜로 ‘숨어 있는’ 이 서점을 찾기 위해 다리품 꽤나 팔아야 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서, 홍대 쪽으로 일단 올라간다. 홍대 정문이 나오면 왼쪽 미술학원 많은 길로 방향을 틀어 ‘산울림소극장’이 나올 때까지 간다. 산울림 소극장이 보이면 길 건너편에 삼겹살집이 늘어선 골목이 보이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선다. 가다보면 철길이 나오는데(아마 지금은 사라졌을 듯) 그것도 건너 계속 가면 작은 슈퍼마켓 하나가 정면에 나온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조금 가다가 처음 나오는 점집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면 ‘숨어 있는 책’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사실 가깝기로 치면 신촌역에서 더 가깝지만 거기서는 도대체 찾아 가는 길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건물이 없다.)
그러나 그 다리품이 아깝지 않은 곳. 서울 헌책방 중 단 한 곳을 가라면 바로 여기다. 후미진 만큼 조용하고 책방 안에 나지막이 흐르는 음악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돋운다. 가격도 훌륭하고 책 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 보유된 책도 많고 정리도 잘 되어 있다.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있는데, 인문사회 서적은 지하에, 문학은 지상에서 판다. 오후 한시인가 두시부턴가 문을 여니 일찍 가서 허탕 치지는 말자.
여기서 나는 하나의 징조를 발견했다. 별자리로 서로의 궁합을 보는 책이 있다. 1월 1일에서 1월 7일에 태어난 사람을 위해 한 권, 8일부터 15일까지 한 권, 그렇게 일주일 단위로 한 권씩 꾸려져 모두 52권인데 헌책방 서가에는 그의 생일과 내 생일이 든 책만이 사이좋게 두 권 꽂혀 있던 것. 살까. 사서 한 권씩 나눠 가질까. 그러나 관뒀다. 사춘기 여고생도 아니고 별자리 사랑점이나 믿는 모습을 보여서 지적인 선배의 이미지를 깨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대신 ‘넘어넘어’ 초판을 그에게 양보함으로써 너그러움을 한껏 내보였다.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와 온 길을 되걸어 용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다음 목적지는 뿌리서점이다. 용산역 푸드 코트에는 꽤 괜찮은 곳도 제법 있으니 저녁까지 해결 가능.
용산역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오른쪽으로 간다. 달 주차장이었나 해 주차장이었나. 하여튼 주차장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궁궐과 관련 있을 법한 건물이 하나 있고 그 건물을 스치듯 지나면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길이 보인다. 한밤중에는 주황색 가로등이 유행가 가사라도 한 줄 적을 수 있을 법한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그 골목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만 가면 책 무더기가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간판이 걸려 있다. ‘뿌리서점 - 책이 주인을 기다립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은 아닌지 미안할 만큼, 지하 서점은 책으로 가득하다. 대미궁 지하 그랑엘베르의 도서관이 아마도 이런 모습이겠지. 이미 책꽂이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정리를 바랄 상황도 아니다. 서가는 이미 꽉 들어찼고, 서가들 사이는 수평으로 바닥부터 내 눈높이까지 쌓인 책들로 인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뿐이다. 그래도 그때는 책을 ‘찾는다’는 행위가 가능했다. 책이 더 늘어난 지금은 뭐 답이 없다. 괜히 찾는 책 있나 본다고 뒤적거리다 행여 책더미를 넘어뜨려 거기에 깔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만큼, 책방이라기보다 책의 무덤에 가까워져간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여기가 맘에 들었다. 교제하게 된 뒤로도 이곳을 가장 많이 찾았는데, 책 상태는 솔직히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을 빼놓지 않고 들르는 현실적 까닭은 심각하게 낮은 가격이고, 감상적 까닭은 주인아저씨가 내미는 커피 한 잔에 매인 정이다. 계산대 그득 책을 쌓아두고 얼마인지 우리는 추측과 고민을 나누었고, 그의 유창한 부산 사투리를 들은 주인아저씨께서는 차비는 좀 빼준다며 (꽤 높은 숫자였던) 천원 단위를 ‘쿨하게’ 툭 털어내셨다.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이후에도, 우리는 심심찮게 헌책방을 돌아다녔다. 사당역 ‘책창고’는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다. 헌책방 헌터들에게는 이미 헌책방의 교보문고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위치를 몇 번 옮겨서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 중에는 틀린 것도 꽤 되는데 현재는 확실히 사당역 근처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쪽 출구로 나와 계속 걷는다. 미술관을 지나 TGI를 지나 아웃백도 지나면 꽤 큰 빵집이 있다. 그 빵집을 지나치지 말고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간다. 약간 오른쪽으로 굽어진 시장길을 걸어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족발집이 나오고(쟁반국수가 일품) 더 가면 ‘영화당약국’ 이라는 간판이 있는데 그 간판 앞 오른쪽 길로 꺾어 들어가면 책창고 간판이 보인다. 책방은 건물 지하에 있다.
헌책방이기도 하지만 재고서적도 파는 만큼 책 상태가 일반 서점에 버금갈 만큼 좋다. 가격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종류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천천히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시집은 별로 없고 국내소설의 비중이 높다. 언론이나 역사 쪽 책도 제법 되고, 가끔 보기 힘든 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함께 간 그는 이곳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창간호를 구하기도 했다. (가격은 자비도 애정도 없이 자그마치 5만원) 시립미술관 분관에서 괜찮은 전시를 할 때마다 덤처럼 들를 만한 곳이다.
책창고가 인터넷 검색과 예약이 된다지만, 인터넷으로 가장 유명한 헌책방은 신고로닷컴, 즉 신고서점이다. 지하철로 찾아가기엔 교통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외대역에 내려 외대쪽으로 올라가서 외대를 만나고 오른쪽으로 좀 많이 걸어가면 나온다. 왼쪽으로 가도 작은 헌책방들이 몇 곳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신고서점 한군데만 못하다. 규모는 지금까지 언급한 헌책방 중 가장 크고, 만화책도 많이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기가 맘에 드는 것은 1층과 2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회전식 계단이다. 고풍스럽기까지 한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책을 고르다보면 중세 성의 도서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70~80년대를 뜨겁게 달군 ‘스포츠’서적과 전공서적들을 많이 구할 수 있다. 책 상태도 깔끔한 편. 가격은 평범하다.
퀴퀴한 냄새가 그득할 것 같은 이미지만 벗기고 보면, 데이트 장소로 헌책방은 꽤 괜찮은 곳이다. 조용하고 끝없이 이야깃거리가 있으며, 대화가 끊겨도 부자연스럽지 않은데다가, 문을 나설 땐 서로에게 작은 선물도 부담 없이 안겨줄 수 있으니. 게으른 애인인 나는 데이트 코스를 짤 때(대체 이건 왜 항상 남자가 짜야 하는가?) 별 고민 없이 집어넣었고, 우리는 그때마다 먼지투성이가 되어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헌책방을 데리고 간 건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홍대 근처를 지나며.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3-06 07:2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21:40
병장 김훈
헌책방 가는 길이라.. 여러군데의 헌책방이 있는것 같네요..
책을 보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참 좋은 소식인거 같네요(웃음) 2009-03-05
03:46:55
병장 송영남
외람된 말씀이지만
산울림소극장에가시려면 신촌역에서 내리시는게 다리품 덜 파셨을텐데,
홍대입구역에서 산울림까지라, 상당히 다리품 좀 파셨겠는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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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과 홍대, 산울림소극장이란 단어에 흥분한 나머지 리플부터 달았네요.
밑에, 부연설명해주신지도 모르고...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2009-03-05
06:21:25
책마을
아 따스합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2009-03-05
07:55:54
병장 고승철
주말 나들이가 있으면 나가 보려고 몇군데 찾아 두긴 했는데 새로운 곳도 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퀴퀴한 책 냄새가 좋다는 여성분이 있어서 다닐 수 있는 것 같네요. 2009-03-05
07:59:39
일병 신재호
헌책방 한번쯤은 가보고 싶지만 아직 한번도 못가본 곳입니다 설탕먹으면서라도 한번 가봐야겠내요 2009-03-05
08:01:18
병장 배성도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헌책방을 데리고 간 건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홍대 근처를 지나며.
라고 끝을 맺으신 이유는... 설마? 2009-03-05
08:11:22
병장 안재현
신당동이 던가요? 동묘쪽에 있는게? 뭐 청계천이라고도 불리지만 그런쪽에서 헌책방이 몇군데 있습니다. 2009-03-05
08:12:54
상병 강정훈
책도 와인같이 세월이 흘러 갈수록 숙성되는것 같습니다. 익으면서 향도 나고 색도 깊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조금 찢겨 나가는 건 천사의 몫이라고 생각하면...(먼산) 2009-03-05
08:16:44
상병 차종기
얼마전에 네이놈에서 헌책방 소개하던게 생각나네요,
저도 정기 설탕 발동 되면 가봐야지 , 후후 2009-03-05
08:42:40
일병 최광호
음... 간만에 훈훈해 졌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도 헌책방이 있는데 소설이 있다기 보다 참고서, 자습서 위주의 헌책만 있다보니 제가 생각해왔던 헌책방과는 다를꺼라고 한번 생각해봅니다 (웃음) 2009-03-05
08:45:22
병장 이동열
이거 프린트해서 간직해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따스한 이야기 감사합니다(웃음) 2009-03-05
08:59:31
일병 안재영
이번 휴가에 저도 헌책방을 다녀와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신림동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왔는데.. 읽고싶었던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글쓴이와 달리 혼자 구경다녔다는 것...... 갑자기 슬픕니다. 2009-03-05
11:18:17
상병 정근영
아, 너무 좋군요.
이 글 가지로- 가면 안될까요? 2009-03-05
13:43:21
병장 손정훈
왜 저희동네에는 헌책방이 안보이는지 모르겠네요.
초등학교때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권을 구입할 능력은 있었는데- 어느순간 안보이더군요.
그 책 다 나주지. 2009-03-05
14:27:24
병장 이지훈
다음 설탕때는 헌책방 꼭 가봐야겠군요
가지로! 2009-03-05
14:34:21
병장 홍석기
정겨운 이름들이군요. 숨책, 신고서점, 책창고...저도 설탕때마다 찾아가 보곤 한답니다.
몇가지 뱀발을 달자면,
'숨책'은 윗분이 말씀하신 대로 신촌역에서 가는 것이 훠얼-씬 가깝습니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조금 가다가 '공씨책방'(여기도 헌책방이긴 한데, 저는 안가봤으므로 패스-)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표는 홍대의 '철길'. (5분 거리) 장점은 위에서 설명해 주셨으므로 패스하고, 단점이 있다면 일단 자연과학/이학 분야의 책이 너무 없다는 것, 그리고 입문/교양서를 찾기는 힘들고 대부분 원서 중심이라는 것. 정도가 있겠군요. 특히나 역사 분야-세계사든 아프리카사든 러시아사든- 의 원서는 서울 시내 헌책방 중에서 이 곳이 최고인듯....아 그리고 저는 여기서 "IF" 창간호를 발견했다는....아 쓸데없는 잡담이었구요.
'신고서점'의 경우는, 외대앞 이라는데, 외대앞 이라는데...'오른쪽으로 좀 많이 걸어가면'이 괜히 나온게 아니므로 일단 이 점 알아두시면 좋을 듯 합니다. 신고서점은 전공서-가 가장 많았던 것 같고, 의외로 만화책- 구입에도 상당히 유용할 듯 합니다. 김영하 소설부터,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 거기다가 '생의 한가운데' 같은 고전도 있고, 음악이론, '스포츠'와 book 한 (권) 에 대한 책들, 마케팅 전략....등등 다양한 범주의 책이 있으며 재고도 상당한 편이긴 한데, '신간' 을 찾으시는 분들은 못 찾을 가능성 농후함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안 읽나, 신간이 안들어와- 라는 아주머니의 푸념이 들리더군요). 게다가 숨어있는 책에서는 볼 수 있었던 '창비' 같은 계간/월간지 역시 찾을수 없음, 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당역의 '책창고'. 참, 여기도 위의 두 서점만큼이나 찾기가 징글징글하게 어렵습니다. 골목에 골목에 골목을 넘어....자세한 설명은 패스. 그런데 여기가 헌책방의 '교보문고' 였다니....일단 재고도 위의 두 서점에 비해 떨어지고, 특히나 자기계발서와 무협지, 판타지 소설이 삼분의 일, '스포츠'관련 책이 삼분의 일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이기 때문에 근거는 안드로메다로. 이곳의 장점이라 하면 아마 온라인으로 예약- 후 픽업- 이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신간- 특히나 위의 두 서점에서 절대로 절대로 찾아 볼 수 없었던 하루키/다자이 오사무/아쿠타카와를 제외한 일본 소설이 있다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그 외 특이점으로 어린이 코너-가 있습니다. 2009-03-05
15:24:34
병장 이동열
석기님의 뱀발까지- 더욱 이글을 간직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려면 가지로-를 외쳐야겠지요? 가지로- 2009-03-05
15:52:47
병장 홍석기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헌책방 몇 군데를 더 소개해 보자면,
광화문 교보에서 영풍문고 쪽으로 가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 (상호명은 확실하지 않음) 이라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몇번 잡지에도 나고 신문에도 났던 '아름다운 재단' (역시나 이름은 확실하지 않음) 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사실 저도 아직 가보지 못했고 주변에서 제보-만 받았습니다만, 위의 언급된 곳보다는 조금 더 세련된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 음악이 있고, 커피가 있고, 눅눅한 공기는 조금 덜-한 곳이겠지요. 그리고 매달 2일이던가-에 인터파크에서 책이 날라옵니다. 그러므로 월초에 설탕 또는 옹박이 있으신 분께 추천. 평소에 가면 재고가 적다는 불만이 조금 있더군요.
또, 신림동 녹두거리 '그 날이 오면' 옆에 '도동도서' 와 '할' 이라는 헌책방이 있고, 그 맞은편에 '책상은 책상이다' (역시 상호명이 불분명..) 라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세곳에서 가장 많은 책을 건졌는데요, 이 곳의 장점이라면 일단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이 탄탄하게 구비되어 있다는 것, (위에서 언급된 곳에서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것도 개정판 말고- 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이후로 거의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래서 굴드니 도킨스니 '카오스' '링크' 등의 저작들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첫번째 장점. 두번째로는 '페미니즘의 도전', '당신들의 대한민국', '철굴' 같은 교양서를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세번째로는 샛노란 표지에 '읍니다' 체, 온갖 한자어의 압박에서 좀더 자유로운 신판 내지는 개정판으로의 니체나 비트겐슈타인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이 되겠네요. 물론 아직까지 책 내용이 아닌 디자인에 끌리는 저같은 된장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감성' 공학이니 경영이니가 여기저기 깝치는 시대이니...아 또 잡담이군요.
막장테크 탄 김에 뱀발 하나 더 보태자면, 헌책방에서 얻는 가장 큰 재미 하나가 옛 주인의 추억(?) 을 발견하는 것이겠죠. 예를 들면, 전에 기시 유스케였나 마루야마 겐지의 책 맨 앞장에 '무더운 여름, 자동차를 타고 빗 속을 시원하게 질주하고 싶다' 같은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이라든가. 심지어는 노골적인 러브레터 전용 문장들까지.
간만에 즐겁게 나불대어 봤습니다. 흐.
가지로- 2009-03-05
15:58:07
병장 최원호
송영남님 // 나중에서야 그 길을 알고 이젠 좀 덜 걷고 있습니다. 그날은 헤매기까지 해서 다리가 많이 아팠어요.
배성도님 // 설마 뒤에 쓰시려던 말씀이 제 추측과 같다면, 지금도 잘 사귀고 있습니다. 다만 그날 좀 구박을 많이 듣긴 했지요(쓴웃음).
홍석기님 // 공씨책방도 좋습니다. 저는 헌 책 사러 갈 때면 숨책에 들렀다가 공씨책방도 들르고, 이어서 연대쪽 정은서점까지 한 바퀴 돌아오곤 합니다. 정은서점은 연대 정문에서 왼쪽으로 좀 걸어가면 나오는데 책값이 약간 비싼편이지만 들를 만한 곳입니다. 생각해보니 숨책에 자연과학과 이학쪽 책이 확실히 별로 없던 것 같군요. 그러나 그쪽에 대해서는 제가 검은 게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는 점 말고는 아는 게 없어서……(웃음)
신림동 쪽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할'과 '책상은 책상이다'가 좋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09-03-05
19:53:50
병장 김동욱
원호님의 글을 '좋은 정보'로 전락시켜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긴 하지만.....
공씨책방이니, 숨어있는 책이니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니 반갑군요.
석기님의 말마따나 '숨어있는 책'은 신촌역에서 그랜드백화점 쪽 출구로 나온 다음에 홍대쪽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횡단보도 반대 편에 '공씨책방'이 보일 즈음에 왼쪽으로 펼쳐진 골목으로 들어가서 슬쩍 방황을 하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숨어있으니 그 재미도 쏠쏠합니다. 얼마 전에 가보니 근처에 조그마한 카페들도 생기는 것 같던데 말이죠. 월요일은 가게 문을 닫고, 평일날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숨어있는 책 지하에 뭔가를 열중해서 공부하고 계시는 주인 아저씨(?)가 매우 인상적인듯 흐흐. 음악도 잔잔하고.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헌책방이란 이름에 잘 어울리는 듯 해요. 소설가 김영하의 홈페이지에서였나, 그가 숨어 있는 책에 종종 들른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어요.
언젠가 어떤 소개글에서 '공씨책방'은 미술-디자인 관련 쪽을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근야 지나치기만 했다가 얼마전에서야 처음 들러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특이했던건 예전 음악 테이프나 씨디, 클래식 씨디과 lp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는 것. 출판평론가로 이름이 알려진, 표정훈씨의 <탐서주의자의 책>에서 그가 학교다닐 적에 공씨책방에서 한질의 책을 사들고 헥헥거리며 그 고개를 넘어갔단 에피소드를 소개했던 게 스쳐가네요.
공씨책방에서 신촌역 방향으로 걸어내려오다 보면 골목 2층에 '신촌 헌책방'이란 곳도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번번이 문이 닫혀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는데, 이 곳을 추천해주는 분들도 여럿 있더라구요.
원호님말처럼 거기서 연대쪽으로 오면 눈에 잘 보이는 도로가에 '정은서점'이 있어요. 우표수집, 이 붙어있는 약간 나이들어보이는 간판을 달고 있지요. 흐흐. 어떤 책이든 술술 찾아주시는 주인 할아버님(?)이 계시지요. 요즘에는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한 듯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이대 쪽 근처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뿌리와 새싹'이라는 헌책방도 있답니다. 메가박스 근처 김밥천국 뒷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어요. 약간 숨어있어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깔끔하게 정리된, 기존의 칙칙한 헌책방스런 이미지와는 다른 공간을 만나실거에요ㅡ 흐흐. 그리고 주인 아저씨(듣자니 래퍼였나 운동가였나)께서 가끔 쿠키도 구워주시고, 모임 공간으로도 대여하기도 하니 알아주면 좋으실 듯. 여기도 음악 테이프랑 만화책(!)까지 찾아볼 수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책이 많지 않았고, 주로 소설류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거라서 관련 이벤트 도서들도 입고되고, 기부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는 듯하니 그동안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흐흐.
이정도가 신촌 근처 헌책방 정리! 라고 하기엔 또 어디 숨어있는 지 모르겠군요. 저 역시 '숨어있는 책'이 가장 좋았어요. 요즘에는 숨책도 알라딘 중고샵과 연결해서 도서를 팔기도 하더라구요. 그 말고도 인터넷에서 '북코아'나 중고책 통합 검색사이트인 '고고북'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면 간편하겠지만.
그래도 헌책방은 그보단 발품 팔면서 비로소 책방을 '발견'하는, 그래서 헌책 냄새 맡는 게 제 맛이죠.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책들과의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옆을 둘러봤을 때 석기님이나 김영하를 만나는 감격을 경험할지도 모르잖아요, 흐흐. 2009-03-06
01:44:37
병장 양 현
(대체 이건 왜 항상 남자가 짜야 하는가?)
전 이것 하나를 가지로!보내고 싶습니다. 가지로! 가지로!! 우오!! 2009-03-06
02:45:48
일병 김유현
가지로.
보내버리자구요. 2009-03-06
06:10:23
병장 이우중
저도 신고서점 찾고 싶었는데 통 못찾겠더라고요. 외대 근처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근처가 아닌가 보군요.
아.. 얼마만에 들어보는 헌책방 이야기인가요. 가지로. 2009-03-06
06:58:37
상병 장형순
행복한 정보 입니다. 히히. 2009-03-07
13:46:51
병장 이창섭
참 담백한 글이네요. 따스해졌습니다.
글에나 댓글에나 헌책방 얘긴데 서울커가 아닌 저로서는 난감하군요.
대전이나 대구에는 그런 곳이 없을까요?
헌책에 취미는 없지만 그런 분위기라도 느껴보고 싶네요. 이 글 때문에. 2009-03-08
04:58:06
병장 윤영준
아아- 귀중한 정보 산뜻한 내용 감사합니다.
저는 헌책방이라고는 광화문/신촌/강남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밖에 안 다녀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헌책방이 있을줄은 몰랐네요. 2009-03-09
23:57:37
상병 최준우
부산에 살면서 어릴적에 부모님따라 보수동엘 자주 갔었는데,
요즘들어서는 가본적이 거의 없는것 같아요.
갑자기 궁금해진건데 헌책방의 책가격은 보통 얼마정도 하나요? 2009-03-11
08:21:19
병장 최원호
최준우님 // 대략 본래 책 가격의 절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책 상태에 따라 많이 달라집니다. 2009-03-12
1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