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를 만난 곳은 탄자니아의 아루샤였다. 야생 동물 사파리를 하기 위해 막 아루샤에 도착한 날이었다. P는 그곳 대학에서 2년째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는 봉사 단원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망원경과 물휴지, 직접 담근 김치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계산 없이 주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에게 마음을 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떠나던 날, P는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리영희 교수의 자서전 <대화>였다.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질문과 느낌이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진지하고 치열한 사유의 흔적이었다. 킬리만자로를 향하는 길에서 나는 이런 청년이 있어 우리의 미래가 밝음에 안도했다.

망고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P의 집에서 점심을 먹던 날이었다. 부엌 냉장고에 붙어있는 종이를 봤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전 세계 13억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대 오늘, 배불리 먹을 만큼의 일을 했는가?"

성실하고 진지한 삶의 자세와 남다른 배려와 나눔의 태도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는 날마다 그 문구를 보며 자신을 바로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루샤에 머문 한 달 동안 나는 그와 밥을 먹고, 그의 학교를 구경하고, 그의 친구와 제자들을 만났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체득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낯선 땅에서 가르치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생활의 조직화를 놀라울 정도로 잘 해내고 있었다. 그가 말했듯 "제일 먼저 눈뜨고, 가장 성실히 일하며, 맑은 미소와 낙관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세상을 품고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P는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남을 위해 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청년이었다.

아루샤를 떠나던 날, 작별의 포옹을 나누며 P가 말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만났을 때, 제가 많이 변해 있으면 리영희씨의 <대화>를 다시 건네며 준엄하게 꾸짖어 주세요."
세월이 흘러 P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P가 변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더 멋진 청년이 되어 나타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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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인상이 깊은 글이라 주민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리영희씨의 <대화>라는 책에 저도 모르게 그 청춘(젊음)의 청춘(푸른 삶)이 부럽게만 느껴졌습니다.

보수를 바라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것을 봉사라고 합니다. 봉사는 인간이 타인에게 대해서 가질 수 있는 태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태도입니다. 인생에는 주고 받는 원리가 있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거나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롭고 섭섭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주는 만큼 받아야 하고 받는 만큼 주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서로 균형을 얻을 때 인간관계는 원만하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88만원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해외봉사 마저 취업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봉사는 보수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남에게 무엇인가 줄 때에 으례 보수를 바랍니다. 준 만큼 내게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섭섭한 마음과 불평불만의 감정을 느끼기 쉽습니다. 여기에 봉사의 높은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넓은 마음의 표현이요, 순수한 심정의 산물입니다. 봉사에 있어서는 봉사 그 자체가 하나의 보수입니다. 남을 도울 때 우리는 마음 속에 기쁨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 기쁨과 만족감이 곧 봉사의 보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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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급 하지연  
 P처럼 빛나는 청춘이 있는가 하면 몸도 마음도 저보다 더 늙어 버린 청춘도 있습니다. 
청춘의 깊이는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청년은 빛나는 이유는 날카로운 시대감각을 가지고 날이 서있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까닭이겠지요
2008-01-31 14:18:07 | ipaddress : 52.2.2.80  
  
 '내 나이는 묻지마라. 나이가 젊다고 청년이 아냐. 푸르른 삶을 배우고 하루하루 실천하는 내가 바로 이땅에 사는 푸른 나이 청년.'
제가 좋아하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지요.(웃음)
2008-01-31 14:22:29 | ipaddress : 54.1.35.179  
  
 ..멋있는 청춘이네요..사서 하는 고생인만큼..
정말 인생의 색을 예쁘게 채워나가는거 같습니다..

저도 저렇게 살고 싶네요..
2008-01-31 15:31:59 | ipaddress : 38.9.5.74  
03|병장 김상열  
 고등학교때 봉사활동 20시간을 채우기위해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녔던게 생각나네요(땀). 봉사활동 이라는 영역에까지 성적, 취업 이라는 얼룩진 것들이 침범하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해외봉사가 취업에 꼭 필요한 조건이라니.. 이제는 봉사활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세상이 오는건가요.

2008-02-04 17:00:17 | ipaddress : 52.2.8.232  
  
 그...봉사활동의 폐해는 이번 S중공업 기름 유출 사건(태안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여러 단체에서 찾아와서는, 기름 닦아낼 생각은 안 하고 사진만 찍고 간다나..

...그네들에게는 입장료나 활동료를 받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자연 환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건 관광지에서나 하는 짓이니까요. 

제대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사진 프레임 밖에서 묵묵히 기름을 걸러 내고 있을 겁니다.

2008-02-07 08:35:04 | ipaddress : 52.2.6.64  

  
 굉장히 독선적인 말이지만 상당히 와닿는 말이네요.

2008-02-19 08:14:27 | ipaddress : 22.1.5.56  

  
 그렇지요.
주는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섭섭한 마음은 가슴 한켠아나마 남아있습니다.
아직까지 봉사하는 마음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겠지요.
가슴 어딘가에 응어리져 있을 미련을 털어내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실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진정한 봉사에 마름을 갖기 위해서 말이죠. (웃음)
2008-02-08 18:22:33 | ipaddress : 5.1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