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의 주목할 만한 젊은 글쟁이들 (4) - 허지웅 편
상병 김예찬 2009-03-05 13:04:45, 조회: 215, 추천:0
막상 허지웅에 대해 쓰려니 생각보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강명석은 몇 년 동안 그의 글을 지켜보고, 또 대화도 나눠 본 사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소스'가 많이 있었던 것 같고, 한윤형이나 노정태 역시 그들의 개인적인 약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허지웅에 대해서는 나에게 그러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글을 쓰기도 전에 많은 부족함이 예상되지만 일단 이 시리즈의 성격은 단순한 인상 비평이고, 그리고 이 사람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써보도록 하겠다. 무엇보다도 허지웅이 주장하는 바가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먹히는' 구석이 없지 않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글쟁이'들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허지웅에 대한 정보량의 부족으로 허지웅 개인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잠깐 돌아가는 내용이 많이 섞여있고, 따라서 글에 집중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미리 사죄를 표한다..
내가 허지웅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장화 홍련>의 리뷰를 찾아 읽다가 우연히 한 공포 영화 전문 커뮤니티를 접속하게 되면서였다. (그 커뮤니티의 이름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horror.. 어쩌구였다.) 허지웅은 그 커뮤니티의 운영자였고, 나는 그가 쓴 글들을 하나 둘 읽다가 그의 블로그도 찾아보게 되었다. 공포 영화라는 하위 장르에 대한 애호가답게 그의 블로그는 일단 진보적 성향의 포스트들 - 한국의 서브컬쳐 애호가들은 많은 경우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문화적 감수성과 정치적 감수성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이야기해봐야하겠지만 - 로 채워져 있었는데, 유사한 성향의 다른 블로거들이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이론적 접근 없이 순전한 논리 전개만으로도 일정 정도의 호소력을 확보하는' 글쓰기에 실패하는 것에 비해 허지웅의 글은 그런 작업에 대한 나름의 성취를 이뤄낸 듯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후 허지웅은 'D-WAR 사태'에 끼어들게 되면서 '네임드 키워'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논쟁의 지형도에 따라 굳이 나누자면 허지웅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한윤형처럼 '디까' 진영의 논객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일부 영화 잡지에 그의 '디까' 글이 실리게 되면서 그의 블로그는 그야말로 디까와 디빠 사이의 전쟁터로 변하게 된다. 당시 '디까' 진영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진중권도 그의 블로그에서 디빠들의 폭격을 맞긴 했지만, 진중권이 그냥 캐무시하고 지나갔던 것에 비해서 허지웅은 나름 디빠들의 논리를 반박했기 때문에 그의 블로그가 유독 전쟁터로 변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우선 386세대 -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이긴 하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386세대라는 개념을 사용하겠다 - 의 대표적인 '논객'들은 80년대 중후반에 민주화 투쟁과 그 이면에 전개되었던 노선 갈등에서 촉발된 논쟁들을 통해 사회/정치적인 의식을 자각하고 글쟁이의 길로 뛰어들었으며, 민주화 이후 그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문화적 논의로 삭히고 있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안티 조선일보' 논쟁을 통해서 전면으로 뛰쳐나왔다고 정리해 보겠다. 그렇다면 그러한 틀에서 보았을 때 88만원 세대로 호명된 젊은 세대의 논객들은 어떤 '사건'들을 거치며 데뷔하고 '네임드'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그러한 방향에서 앞으로 어떤 맥락의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선 2002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하지 않나 싶다. 2002년 월드컵과 붉은 악마의 물결은 대중들의 에너지가 정말 오랜만에 사회 전반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시청 앞 몇 십만 인파'와 '온 국민이 붉은 악마'라는 현상에 대한 관점은 제 각기 차이를 보였다. (자칭, 타칭을 포함하여 어쨌든 거칠게 말해서) 한국 진보 개혁 세력에 대한 '전통적'인 분류법은 '()진보 - 민중 운동 - 민족통일'이었다. (진보 앞에 놓은 괄호 안에는 여러가지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내 생각에는 조금 어긋나긴 하지만, 아무튼 외양적으로 보았을 때 '비정치적'이었던 2002년 월드컵을 놓고 겉보기엔 같은 진영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진보 개혁 세력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게 된다. 먼저 '민족'을 강조하는(그리고 '민중' 쪽의 일부) 방향에서는 '시청 앞에 자발적인 몇 십만의 시민이 모인 것은 마치 87년 민주화 투쟁을 상기시키는 고무적인 일'로, '월드컵과 붉은 악마는 88올림픽처럼 위에서 부터 동원된 것이 아닌, 민족과 민중의 주체적인 축제'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한 민족주의와 상업자본의 결탁이 뚜렷하고 축제 분위기 속에 급진적인 문제 제기가 묻히는' 월드컵과 월드컵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자세에 대한 우려를 보였다. 그 때는 이러한 균열이 심각하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곧이어 '두 소녀'의 사고와 '서해 교전' 등의 정치적 문제가 겹치면서 진보 개혁 진영은 아직은 한 테두리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해에는 대선이 있었다. 노무현과 민주당에 대한 진보 개혁 세력 내부의 갈등은 뚜렷했고, (눈 밝은 이는 이미 대선 전 부터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젊은 세대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일부는 열광적인) 당선되면서 2002년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정치적 관심을 환기시켜준 의미를 가지는 해가 되었다.
이처럼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이 환기되었고, 때마침 인터넷의 대중적인 활성화(그리고 2002년은 DC인사이드가 대폭 성장한 해이기도 하다. DC 역시 요즈음의 젊은 세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코드이기 때문에, 2002년은 여러모로 중요한 해다.)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정치적 글 쓰기'의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고 뒤늦게 주목 받은 '두 소녀'의 사고와 2004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인한 대중 집회 등은 이러한 '정치적 글 쓰기'의 공간이 대폭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글 쓰기의 공간 확대는 대중문화의 압도적인 성장과 맞물린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자세히 쓰면 복잡하니까 여기선 소략.)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젊은 세대의 글쟁이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이야기 생략하고 아무튼) 에 대한 이러한 젊은 세대의 실망감은 큰 것이었고, 이들은 대략적으로 세 가지 길로 분화하게 된다. 하나는 '좀 더 (정치적) 진보',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 창작/비평으로 선회', 다른 하나는 '진보 정치에 대한 냉소/패배주의'이다. (이 세 가지는 뚜렷하게 구분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놔야겠다.)
몇몇 거대한 대중 집회에 힘입어 대학 정치 세력이 잠깐 반짝하는 경향이 있긴 했으나, 이들은 곧 눈에 띄게 쇠퇴하게 된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글쟁이들 중에서 '좀 더 (정치적) 진보'는 인터넷과 나름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래를 모색하게 되었다. '진보 정치에 대한 냉소/패배주의'는 그 반대항에서 상대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일부는 기성 정치 조직에 투신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대중문화로의 선회' 쪽이 주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들은 대중 문화 씬의 각계각층에서 나름의 입지를 가지고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대 초중반에 갑자기 활성화되었던 웹진이나 주간 잡지들은 이들의 발언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2005년에 '황우석 사건'이 터지고, 2007년에 'D-WAR'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전자는 한국 사회를 옭아매는 '정치 - 경제 - 언론 - 전문가 집단'의 고리를 파헤쳤다는 의미가 있다. 황우석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비록 황우석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과학적 증거'들은 BRIC 등의 젊은 세대의 과학 전문가 집단에서 제공 되었고, 논쟁의 최전선에 나선 사람들은 황우석과 애국주의, 자본에 매몰된 과학주의에 대한 관련성을 비판한 젊은 세대의 글쟁이들이었으며(그리고 진중권. 진중권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를 아우르는 지적 집단의 대중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DC인사이드는 이를 널리 널리 유포했다. (아무튼 DC가 짱이라는..) 후자 역시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 되었는데, 심형래 - 애국주의 - 영화 비평의 엘리티즘에 대한 반발(일정 정도 반지성주의)은 젊은 세대 일각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이들의 반대 편에 서있던 것도 역시 앞서 말했듯이 대중문화 비평으로 선회한 젊은 세대의 글쟁이들이였다. 정리해보자면 2002년에 '자각'을 이룬 젊은 글쟁이들은 2005년(황우석)과 2007년(D-WAR)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면서 '네임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 6월에 들어서 본격적인... 여기까지. 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돌아오다니 바이트 낭비다.
이제야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공포 영화 전문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이런저런 영화 리뷰를 시도했던 허지웅은 D-WAR 논쟁으로 '네임드'에 오르는 것과 유사한 시기에 GQ에 글을 기고하고, 영화주간잡지 프리미어에서 기자로 일하게 되기도 한다. 프리미어 기자 자격으로 주말 영화 소개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비추었던 기억도 난다. 그가 '네임드'가 되면서 이른 바 '진보'라는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의 사치적 소비 문화의 전범이랄 수 있는 GQ에 글을 기고했다는 것, 그리고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마초적 성향 등등이 키보드 워리어 세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이는 허지웅이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김규항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지웅은 그런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점차 그가 생각하는 자기 스타일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그가 '선언'한 것이 '진보 간지'론이다.
'진보 간지'론을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진보는 구질구질하고 재미없게 정치적이기만 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된다. 진보는 '간지'나는 것이고, 유쾌한 투쟁이며, (신체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젊은 것이다. 따지자면 허지웅이라는 인물 자체가 어쨌든 외견상 '진보 간지'를 표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무튼 직함은 간지나는 '영화잡지 기자'고, 영화 잡지 기자를 하며 만난 (대중적으로는 안 유명할지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문화적 인물들과 친분이 있으며, GQ에 글을 기고했을 정도로 '스타일 가이'이면서, 논산 조교를 했다는 점에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마초스럽지만 그 마초스러움을 귀여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글빨'과 센스가 있다. (그의 블로그 이미지인 소녀 허지웅을 보라!) 그는 얼마 전 자신의 글로 <대한민국 표류기>라는, 정말 20대의 감각에 맞는 책을 내기도 했고, 몇몇 강연회의 강사로 서기도 했다. (한윤형 글에서 이야기한 '키보드 워리어가 보내는 청춘의 문법'이라는 강좌에는 허지웅도 강사로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은 강연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유사한 성향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않는게 좋을 것이다. 한윤형은 얼마전 블로그를 통해 허지웅 스타일에 대한 조심스러운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그의 '진보 간지'론의 의의는 명확하다. 자기계발의 논리와 이에 대응하는 팍팍한 현실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 간지'론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유효하게 먹힐 수 있는 주장이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사회에 대응하는 현실 감각을 단순히 '나'와 '외부'의 관계로 치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허지웅의 '진보 간지'는 '연대'와 '행동', '실천' 등의 개념으로 정리되어 '외부'에 대한 막연한 적대와 불안 대신 젊은 세대 자신들이 상대해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점이 반대로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진보 간지'는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인 젊은 세대들의 급진성을 단순히 몇몇 아이콘에 대한 추종과 깊이 없는 정치적 성향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 (1968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정말 '간지'나는, 정치적 함의도 풍부했던 다양한 문화적 운동들이 어떻게 흐지부지 되고, 오히려 체제 강화의 한 도구로 이용되어버렸는지 생각해보자.)
허지웅의 글 쓰기는 치열한 지적 작업이 뒷받침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논리적이고 호소력 있는, '진보적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좋은 사례이다. (물론 허지웅 나름의 '공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허지웅의 글은 대부분 앞서 소개한 강명석, 한윤형, 노정태의 글 보다 더 뜨겁고, 강렬하고, 울림을 주는 글이다. 그야말로 '청춘의 글 쓰기'라고 불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글 쓰기가 결국에는 '각개전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진보 간지'가 과연 실질적인 전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젊은이다운 치기를 가진 내가 그의 '진보 간지'에 솔깃하면서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5-15
13:46:00
병장 이지훈
저에겐 그동안 너무나 생소했고 낯선 세계에 대한 글이군요. 그래서 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흐 2009-03-05
14:06:38
병장 이동열
예찬님 덕분에 사바넷에서 검색해야할 것들이 너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막상 검색할 짬은 없으면서...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한번에 갈증을 해결해야할 것 같네요.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인물뿐만 아니라 추천해주신 블로그들 까지... 감사합니다.(웃음) 2009-03-05
15:50:03
상병 김예찬
전 단지 우리 세대의 지형도를 보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사람들의 글은 물론 좋긴 합니다만, 저는 책마을의 몇몇 분들은 이 사람들 보다 더 훌륭한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글 쓰기가 어떤 식으로 세상과 소통해야하는지 이 사람들의 선례를 보고 그 방향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03-05
16:15:38
상병 김예찬
참, 허지웅(ozzyz)의 블로그는 http://ozzyz.egloos.com 입니다. 아마도. 2009-03-05
16:51:52
병장 이창섭
좋은 글이네요. 블로그 한번 들어가봐야겠어요. 2009-03-05
17:07:56
상병 배지후
허지웅의 글은 GQ에서도 본적이 몇번 있고, 블로그는 링크되어 자주 찾고 있기도 합니다. 소녀 허지웅이라해서 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습니다. 논산의 마초출신은 처음 듣는 얘기라서 흥미롭네요. 2009-03-11
15:24:40
상병 박원익
올려주신 '글쟁이들 시리즈'들은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