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의 주목할 만한 젊은 글쟁이들 (3) - 노정태 편
상병 김예찬 2009-02-23 16:26:27, 조회: 222, 추천:0
- 오늘 이야기할 사람은 GQ 12월 호에서 무려 '2008년 올 해의 청년'으로 뽑은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노정태씨가 되시겠다. 선정 이유는.. 작년 6월의 일과 관련되어있으니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다른 '올 해의 청년' 후보로는 베이징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있었다.) 그의 글이 궁금하다면 마침 멀리까지 갈 것 없이 바로 책마을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 '이동석 - [내글내생각] (옮긴글) 모든 게 궁 때문일까' 라는 글이 바로 노정태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 글에 대해 책마을에서도 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기로 하고 노정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처음 노정태를 알게 된건 3년 전 盧정부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비판으로 부터 시작한 이른바 '진보 대논쟁'이라는 거창한 사건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나서부터였다. 당시 최장집 교수의 盧정부와 진보 세력에 대한 비판은 盧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안희정씨나 진보 진영의 다른 지식인 무리들이 맞불을 놓기 시작하며 크게 확대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지식계의 논쟁이 대부분 '그들만의 리그' -교수 신문 등의 한정된 지면-에서 소비되다가 끝나는 것과 달리 이 '진보 대논쟁'은 여러 언론의 관심 속에서(특히 조중동의 부적절한 관심이 크게 기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직접 코멘트를 할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정태는 이 '진보 대논쟁'을 지켜보는 사람들, 특히 이 논쟁에서 중요한 정치적 각성을 얻을 수 있을 진보적 스탠스의 시민들이 논쟁을 생산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협지를 읽듯 최장집이라는 절대 고수와 기타 논쟁 참가자들의 칼부림에 그저 '감탄'하기만 하면서 논쟁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역시 글에서 최장집 교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따위의 반응은 논쟁이 가지고 있는 참 의미를 퇴색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논쟁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내공론'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생산적 논쟁을 통한 새로운 성과가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에 학문은 학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논문은 그저 그런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란벅쩍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각계의 글들이 쏟아지지만, 시민들은 그 글들을 단지 인지하고 넘어갈 뿐, 글의 문제 의식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다. 노정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굉장히 답답해하며 '내공론'을 벗어나야한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당시 그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졌던 그 글이 그다지 큰 파급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의 이름을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2008년 6월의... 이런저런 일들과 관련해서 그가 올렸던 글들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별 명칭이 붙지 않은 '블로거'였던 그가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쓴 글들이었는데, 내용은.. 자세한 언급은 또 피해야겠지만 아무튼 막 에너지를 잃고 지지부진해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날카롭고 유효한 메시지들을 던지는 글이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그의 이름을 개인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매체에서 계속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매체는 어느 때는 경향신문이었고 어느 때는 GQ였으며 어느 때는 한겨레21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면이 어디가 되었든 노정태는 뜨거울 때는 뜨겁게, 차가울 때는 차갑게 글을 쓸 줄 아는 논리정연한 글쟁이였고, 그가 펼쳐내는 '정치적 상상력'은 때론 허황된 것처럼 보였어도 적어도 기존의 글들에서 반복되던 지루한 레퍼토리는 아니었다. 특히 그의 강점이라고 할 만한 점은 '팩트'를 토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었는데, 많은 글쟁이들이 글을 기고할 때 때로는 부실해 보일 정도로 논리 전개의 기반이 되는 논거들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곤 하는데 비해서 노정태는 구체적인 수치나 통계, 사건에 대한 명확한 증거물들을 끌어들이면서 그의 글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안타깝게도 가끔 그러한 작업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글쓰기 방법은 그가 일정 이상의 학적 훈련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는데, 뭐 그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하니 단지 이 것은 내 추측일 따름이다.
재미있게도 저번에 소개했던 한윤형과 노정태는 한 때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블로그에 남아있는 옛 글들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받았던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몇 차례의 큰 논쟁을 거치면서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할 정도로 비난한 후 결별하게 되는데, 뭐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단지 글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그 둘이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것은 최장집 교수의 고별 강연에 대한 의견 차이였는데(고별 강연에 대해서는 내가 정리해 올린 바가 있다. '[내글내생각] 최장집 교수 고별 강의 '한국 정치와 나의 정치학' pt.1'. pt2는 파일이 사라져서 못올리고 있다...), 두 사람의 생산적인 논쟁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노정태는 얼마 전 블로그 서비스 중 가장 활발히 정치사회적 논쟁(이라고 쓰고 키보드 파이트라고 읽는다)이 벌어지고 있는 이글루스로 블로그를 옮긴 후, 용산 참사에 관련한 포스트들로 '파워 블로거' 중 하나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노정태의 글쓰기가 가진 강점은 아까도 말했듯이 '팩트를 다루는 노련함'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팩트'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논거로 사용한다면, 노정태는 '팩트'가 주어지면 그 팩트를 둘러싼 상황 전체를 읽어내고 그 팩트의 이면까지 고려하여 자신의 논지를 강화한다. 최근 용산 참사를 둘러싼 노정태와 다른 블로거들 사이의 논쟁에서 노정태의 글쓰기가 가진 이와 같은 힘을 잘 느낄 수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그 역시도 한윤형처럼 스스로의 문화적 경험을 언어로 녹여내 일반적인 20대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최근 들어서 계속 날카롭고 다가가기 힘든 글들을 고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자의든, 타이든 이미 '88만원 세대' 담론 이후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20대 글쟁이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만큼, 조금은 그의 글이 더 많은 동년배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신경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글쓰기의 목적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더 많은 희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그의 다음 글들을 계속 기대해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5-15
13:45:43
일병 김유현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은 요즘들어 계속 손에 넣으려 하는데도 쉬이 닿지 않더군요. 새로운 인물들을 계속 알게되어 즐거운걸요. 흐흠. 2009-02-23
19:59:58
상병 최한들
와우. 이번 글도 유익하게 냠냠- 하였습니다.
주목한 만한 젊은 글쟁이들 - 을 읽으면 참으로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쓰고 계신 것 같은데, 그중 제가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2009-02-23
22:12:24
병장 김민규
일단 그의 글들을 좀 접해보는게 급선무일 듯 싶네요. 이거야 웹상에서도 행동반경이 좁아서야. 냠냠- 2009-02-24
22:01:00
상병 김호균
이 시리즈물에 올라오는 사람들 중 처음으로 아는사람이 나오네요.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확실히 글쓰는 훈련이 된 사람이지만 약간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위해
무리를 하는 경향이 좀 있는 듯 합니다. 어쨌든 이 사람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긴하네요. 글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움을 현실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아니면 그냥 이정도에서 흐지부지 될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2009-02-26
16:19:42
상병 김예찬
아, 노정태씨가 소싯적(?) 딴지일보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쏙 빼놓고 썼군요. 2009-02-27
07:09:55
병장 홍석기
노정태 노정태....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예찬님의 댓글 보고서야 기억이 나네요. 딴지에서 봤었군요. 지난번 총선이었나 대선이었나에도 글을 쓰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하필 그 많은 매체중에서 딴지일보로 한글을 깨우치는 바람에 어법이고 문체고 다 개판이 되어버렸다지요..(젠장)
그당시 정치부의 '술탄' 이니 음악과 세계사를 아우르던 '파토' 같은 사람들도 기억나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지네요. 2009-03-05
16:40:23
상병 김예찬
한국판 'Foreign Policy' 을 총괄하는 사람이 딴지의 최내현 씨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노정태씨가 함께한 것 같아요. 아 근데 딴지일보 때 기억은 하나도 안나는군요. 하긴 나름 2002년까지는 딴지도 가끔 갔었는데, 이미 그때 딴지는 '늙었'었죠. 그래도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