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스포츠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며 , 윤현상>



나는 김예찬의 발췌언 <스포츠권의 종언>과 박원익의 <스포츠권의 종언에 반하여>를 읽으면서, 역시 내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글에서는 K대의 경우가 언급되었지만, 내가 다녔던 관악에서도 학생스포츠의 종언은 피해 갈 수 없는 이슈였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극복할 것인가 또한 우리가 늘 고민해왔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상당부분 공감하면서 이 두 편의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과연 ‘제도적 장치’의 보충만으로 우리의 학생스포츠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와, ‘에고이스트의 연합’이 어떤 층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지에 대해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악의 경우, 내가 입학한 05년 이래 5년 중 3년이란 기간동안 반스포츠권(이들은 결코 ‘비’스포츠권이 아니다)이 총학생회를 차지했다. 그 중 가장 최근인 08, 09년은 단일 노선의 반권이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최근 관악에서의 학생스포츠는 실질적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더구나 06년 반권의 총학생회 선거 승리 이후로 반권과 학생스포츠권의 표 차이는 해가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반권이 논리적으로, 정책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 더불어 학생스포츠권은 제자리, 혹은 퇴행적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예찬의 발췌언에서 개념을 빌려오자면, 학생회에는 ‘대내적 권리의 책임자’역할과 ‘대외적 권리의 요구자’ 역할이 공존하는데, 최근 학생들의 경향은 대외적 요구자 역할보다는 대내적 책임자 역할을 학생회에 요구하고 있다. 실제 관악에서 05, 07년 두 차례 총학생회를 구성했던 P-D계열의 경우 ‘대외적 발언’과 ‘학생의 사회권(복지)’라는 두 간극의 융u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학생스포츠계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생스포츠권이 아무리 학생의 ‘사회권’을 강조하여도, 그것이 반권의 ‘학생복지’와 맞부딪치는 순간 상대적으로 학생스포츠권의 ‘사회권’은 반권의 ‘복지’에 그 다양성이나 착상의 범위 부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학생스포츠권과 반권의 대결구도에서 학생스포츠권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받으며, 따라서 부득이 하게 ‘학생의 사회권’보다 ‘대외적 발언’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학생스포츠권이 반권과의 대결구도에서 스스로의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경직화되고 있는 반면에, 반스포츠권은 그들의 영역을 단순히 복지에만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지만‘대외적 발언’도 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06년의 반권이 “관악의 한*련 탈퇴 기자회견”이라는 해프닝으로 끝난 퍼포먼스가 상징하듯이, 대외적 발언을 철저히 하지 않겠다는 ‘탈정치’를 주장했던 반면, 08-09년의 반권은 탈정치도 정치임을 인정하고, 침묵기조를 유지하되 ‘학내의 의견이 수렴된다면’ 대외적 발언도 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광*병 *고기 파동 당시에 엄청나게 늦은 시점이기는 했지만, 기존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던 반권 총학생회에 의한 ‘쌀나라산 *고기 수입 반대 동맹휴교’가 결의되었는데, 이는 반권의 태도변화를 상당부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이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 시도를 총학차원에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스포츠권 학생들의 수고는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총학생회라는 구조 안에서 반권은 성공적으로 학생들의 요구를 파고드는데 성공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학생스포츠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게 된 것이다.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나에게 좋은 무기는 적에게도 좋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스포츠권의 종언>에서 제시한, 제도적장치의 보충을 통해 학생회의 성격을 재편해야한다는 주장을 보면서 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적 장치의 보충을 통한 학생스포츠의 부활은 학생회가 온전히 학생스포츠권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관악의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한 것처럼, 반권의 존재는 학생스포츠권이 학생회를 통해 유연성을 보일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특히 ‘정체성 논란’은 학생스포츠가 반스포츠권 세력과 경쟁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나는 학생스포츠가 ‘선출에 의해 좌우되는 공간’인 학생회의 제도적, 구조적 변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반권의 부흥과 학생스포츠의 몰락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스포츠의 재조형이 학생회라는 공간이 아닌, 학생스포츠조직 내부에서 찾아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 박원익의 ‘정당조직 외부에서 새로운 정치적 욕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 정의는 에고이스트들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박원익의 글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내 욕망은 ‘학생들의 운동이 반드시 에고이스트들의 연합이 될 것’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실천의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학생들의 운동을 재편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학생스포츠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시대가 변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피상적이지만, 동시에 의미심장한 발언이기도 한데, 이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학생운동은 그에 발맞추어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고수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사람들의 욕망은 보다 개인적인 것, 보다 미시적인 것으로 이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은 여전히 거대담론에 입각한 정의의 구현에 그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점차 대중적인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그 중심축을 거대담론이 아닌, 보다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수준에서 재구성해야하지 않을까? 이는 거대담론이 더 이상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로 표상되는 스포츠권의 ‘정의’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거대담론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다만 나는 일차적으로 표출되는 스포츠권들의 정의가 ‘사회를 위한’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으로, 투-쟁이 희생과 의무, 부채감으로써가 아닌 순전히 나의 욕망을 위한 것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대담론이 표상하는 정의는 이 일차적인 욕망의 2차적 작용으로써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학생운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오래된 위기는, 사실 학생회를 반권에게 빼앗기거나 학생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생스포츠의 인적 재생산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적 재생산이 학생스포츠에 활력을 불어넣고 동시에 차후에 학생스포츠를 지지할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적 재생산의 정체는 현재의 학생스포츠의 위기를 가장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권 성향의 과/단대/총학생회들과 동아리들이 여전히 꽤나 많은 수의 새내기들에 대하여 의식화교육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정체는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학생들 상당수는 스포츠권의 정의를 한번쯤은 피부로 접해봄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등을 돌리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학생들 개개인의 욕망과 학생스포츠의 ‘정의’담론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학생스포츠는 80년대의 그것에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학생스포츠의 담론은 여전히 민족, 이념 그리고 민주화가 그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앞에서 의식화 교육이라고 칭한 바 있는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교육의 주요 교재가 <해방 전-후사의 인식>, <다시 쓴 한국 현대사>와 같은 현대사 관련 서적이나 맑*주의 서적, 혹은 그와 관련된 유인물인 것은 학생스포츠의 주요 담론이 여전히 80년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예이다. 이 책들과 유인물들은 80년대에 읽혀지던 것들 그대로인 것이다.

80년대 학생스포츠의 담론들이 말하던 민족, 이념, 민주화라는 이슈들은 그 당시에는 충분히 충격적이고 즉시 해결되어야 할 당면한 문제들이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억압되어 있던 사상적 요구, 군사독재라는 권위의 존재는 이들 담론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학생들은 위에서 언급한 책들을 읽음으로써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고의 전환과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쳤으며, 이는 학생들을 학생스포츠에 뛰어들게 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선배 스포츠권들에 의해 이루어진 민주화와 더불어 구소련의 붕괴로 인한 탈냉전 시대의 개막, 이념적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들 담론들은 역동적인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민족, 이념, 민주화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추가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고 생각함으로써, 이 담론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같은 시기에 발생한 개인주의의 급격한 진전은 기존의 거대담론으로 묶어내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기 시작했다. 탈냉전시대의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개인화된 학생들에게, 기존의 거대담론은 더 이상 내 이야기로 와 닫지 않게 된 것이다.

학생스포츠의 새내기들에 대한 의식화 교육의 성과가 지지부진 한 것도, 학기 초면 의례적으로 벌어지는 등록금 투-쟁, 4.19행진, 메-이데이 행사와 같은 일련의 캘린더 사업들이 늘 개나리투-쟁에 머무는 것도, 이들 학생스포츠의 의식화교육이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로 와 닫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새내기들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학생스포츠에 ‘동원’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학생스포츠의 담론이 새내기들에게 와 닫지 않는 상황에서 일련의 행사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인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가 ‘동원’되었다고 생각한 새내기들은 학생스포츠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반발감을 가지게 되며, 자연스레 전선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탈을 막고 학생운동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나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학생스포츠의 중심축을 기존의 80년대적 거대담론이 아닌, 보다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수준의 욕망으로 이행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수준의 욕망으로 학생스포츠를 재조형하는 것은 학생스포츠그룹의 성향에 따라, 목표에 따라 다양한 상상력에 의존하여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개인의 욕망은 거대담론과는 달리 하나로 수렴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조직 형태와 행동 양식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다양한 욕망을 지닌 학생스포츠그룹들이 하나의 목표나 이상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사안에 따라 효과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인지가 될 것이다. 나는 보통사람 이상의 상상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담론적으로 언급된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될 지, 혹은 얼마나 다양한 운동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욕망에 관한 것인데, 나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수준의 욕망으로 재조형되는 학생스포츠의 한 가지로써 페미니즘에 입각한 학생스포츠를 상상하고 또 실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학생스포츠의 영역에서 학생들의 욕망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잡아둘 수 있는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스스로의 몸에 대한 소유권과 생활방식, 타자에 의해 규정된 억압적인 굴레를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 버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남성들에게 또한 가부장제의 과도하고 왜곡된 부담과 남성성에 대한 부담스런 사회적 요구를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로 작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개인적인 영역의 욕망을 넘어서서, 궁 가산점 문제로 표상되는 성평등 문제, 성판매 여성의 문제로 표상되는 성의 매매문제, 직장 및 가정에서의 성역할 문제 등 사회적인 영역으로의 확장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학생스포츠의 성공적인 재조형을 이룩함에 있어서, 학생운동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사회에 대해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4.19로부터 6월 항쟁에까지 이르는 학생스포츠의 신화는 더 이상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학생스포츠의 신화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억압된 상황 하에서 학생스포츠는 거의 유일한 시대정신의 표출 기제로써 작동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대학생들은 사회적 엘리트로써 지도자적 위치를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었고, 따라서 학생운동은 모든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 이를 이끌어야 할 책임과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선배 스포츠권들의 ‘신화적인’ 활동으로 인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언론, 시민운동 등 다양한 부분에서 그 책임과 권리를 나누어받게 되었다. 현재 우리의 학생운동은 더 이상 사회적 엘리트도 아니고, 시대정신의 대표성을 지니지도 못한다. 나는 학생운동이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이 젖어 있는 학생스포츠의 신화의 추억은, 더 이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부활시킬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스포츠의 주요한 역할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시민운동을 위한 전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운동은 4년에서 8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사회에 대하여 무엇을 이룩해 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은 시민운동의 몫으로 남겨 둔 채, 대학 사회 내에서의 변화와 담론형성에 그 중심축을 두고, 시민운동을 뒷받침 할 후진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새내기들을 성급하게 시위로, 집회로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욕망에 중심을 둔 사상의 내면화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그에 대한 실천은 그 이후에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시민운동에의 참여가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역할분담이 분명히 이루어진다면, 과거 학생스포츠 세대들이 학생신분을 상실한 후 급격히 현실에 타협하여 더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주체로써의 힘을 상실한 데 반하여, 보다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학생스포츠의 종착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믿고 있는 것이다.






상병 박원익 
  만일, '앞으로 다가올 학생 스포츠는 정당조직 외부에서 정치적 욕망을 창출하는 것이다, 혹은 에고이스트의 연합 수준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는 '선언', 한 마디로 선언에 불과한 그러한 제언의 피상성이 사후적으로 구원된다면 윤현상 씨의 글을 통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찰력 있는 글로 질타해준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찬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나에게 좋은 무기는 적에게도 좋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스포츠권의 종언>에서 제시한, 제도적장치의 보충을 통해 학생회의 성격을 재편해야한다는 주장을 보면서 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적 장치의 보충을 통한 학생스포츠의 부활은 학생회가 온전히 학생스포츠권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관악의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한 것처럼, 반권의 존재는 학생스포츠권이 학생회를 통해 유연성을 보일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말하자면, 김예찬님의 발췌언에서 언급된 '학생회의 재구성'이라는 명확히 부딪힐 수 밖에 없는 한계는 단연, '선거'라는 제도입니다. 게슴츠레님의 글에는 그것이 결락되어 있죠. 결국에는 운 좋게 새로운 학생회를 시도해본다 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다시 다른 학생회 선본과 경쟁해야만 하는 것이죠. S대 학생회의 광X병에 관한 정치적 선언에 관련해서도 볼 수 있지만, 앞으로 갈수록 '권-비권-반권' 간의 경쟁관계가 역으로 서로 간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결과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학생회라는, 학교와 일견 대립적인 위치에 있지만 동시의 학교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그러한 제도 외부에서 '승부'가 이뤄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생각으로는 과감하게 민X당이라든지 진X신다이라든지 하는 것과, 정말이지 '과감하게' 절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틀 안에 있게 된다면, 결국 이런저런 공약들은 결국 비권이 내세우는 공약과 차별성을 상실하겠지요. 

그런데 다만, 페미니즘 같은 요소들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오늘날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과활동에서도 결코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환영받지 않는 N*계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방'이라든지 '여성 위원회'라든지 하는 문화들이 많이 정착되어 있었지요. 술자리에서 여성비하적인 발언을 함부로 했다가는 대자보에 이름이 나붙을 수 있는... 아무래도 경쟁관계였던 다른 스포츠 선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이렇듯, 페미니즘을 도입하는 건 조금 다른 심급에 있는 쟁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이렇게 본다면, '대중의 미시적 욕망'에 주목하자는 구호도 들뢰즈/가타리의 유행 이후로 새롭지 않다는 점을 또한 지적할 수 있겠지요. 저는 현상님이 가령 어떤 집회에 강제적으로 동원당하지 않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거기에 대해 오히려 어떤 '의무감'에 부여하는 것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고이스트에게 존재하는 '부채감' 혹은 '의무감'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공감'Sympathy가 에고이스트에게 고유한 도덕적 감정이라고 말한 걸 보면, 거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겁니다(김예찬, <네이션과 미학 서평> 참조). 말하자면 또래 학생대중, 나아가 학생사회의 구성원 모두에 대한 '공감', 내지는 어떤 의무감이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다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국가나 민족 내지는 계급에 대한, (그리고 이렇게 말하긴 주저되지만) 열사들에 대한 부채감과 다른 것이지요. 

'공동생활전선'이라는(이 용어나 심지어 이 용어로 제시된 이런저런 제안들 역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어소시에이션'의 수준에서 미시적 욕망을 재구성하는 게, 혹은 그러한 욕망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히 유사-종교 동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안된 '공동생활전선'에 대한 논의가 매우 가치가 큰 것이지요. 어떤 종교적 공감이나, 이해관계도 없는 '어소시에이션'이라는 형태로 진짜로 '같이 살아보는 것', 이건 단순히 주어진 형태의 대중적 욕망에 비춰 굉장히 낯선 것이지요. 


병장 윤현상 
  원익// 
학생운동이 반드시 기성의 정치세력과 절연해야 한다는 점에는 저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운동이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서기를 통해서만이, 학생운동이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만, 제 욕망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운동에 ‘페미니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페미니즘적인’ 학생운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원익씨가 말하는 것과 전후관계가 전복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최근의 학생운동에 있어서 페미니즘적인 공약들은 일종의 머스트-헤브 아이템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이러한 상황이 방금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페미니즘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관악의 08년 총학선거때 나왔던 독*라이더 출신의 모 선본은 페미니즘 공약을 전면에 걸고 나왔지만, 알고 보니 후보는 마초였다는, 웃지못할 일화도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아직도 저는 여러 학생운동가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마초이며,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한지를 깨닫고는 문득문득 놀라곤 합니다. 결국 제가 욕망하는 페미니즘 학생운동은 ‘여방’이나 ‘여성위원회’와 같은 외형적인 무엇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페미니즘 마인드와 생활방식을 내면화한, 그런 운동입니다. 물론 이런 모임은 ‘여모’라던지 여타의 방식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는 현재의 여모의 행동양식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현재는 상상 불가능한 그 무엇도 상상 가능해 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여타의 다른 상상력들과 효과적으로 ‘연대’할 때 진정 유의미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의무감'에 대해서. 원익씨의 코멘트는 언제나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짚어주는 그런 날카로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기본적으로 의무감이 필요하며,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하고자 하는 것이 학생‘운동’인 이상, 아무리 에고이스트들의 집단이라고 할 지라도 의무감은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에 대한 논의를 저 또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또한번 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제가 ‘어떤 집회에 강제적으로 동원당하지 않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의무감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무감이 ‘에고이스트로써의 욕망’에서 자발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누군가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 다니는 것에 의해서 의무감은 형성되지 않습니다. 의무감은 오로지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서만 형성 가능하며, 때문에 우리는 새내기들을 집회나 시위현장에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내기들이 이러한 에고이스트로써의 욕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욕망에 의해서 스스로 의무감을 형성해 학생운동에 뛰어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병 박원익 
  넵, 다만 한 가지 더 보충하자면, 제가 말한 '의무감'이라는 게 단순히 심정적인 차원에서 경험되는 어떤 의무감이 아닙니다. "'에고이스트로서의 의무감'이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에고이스트의 연합'이 가능한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에고이스트들의 어소시에이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등가입니다. 

'대중의 미시적 욕망을 파고들자'는 담론이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체계적인 오독과 다시금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고진이 제안했던(정말이지 김예찬님이 정리한 <네이션과 미학> 서평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어소시에이션'이라는 형태를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오히려 저는 페미니즘이 '여방'이나 '여성위원회'와 같은 요소들의 도입만으로 충분히 획기적이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궁에 와서 남성들의 평균적인 성-정치적 상상력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하고 충격에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말입니다. 언급하신 '미스유니버시티'를 공약으로 여학생회가 내세웠다는 사례도 충격과 공포네요. 정말 머릿 속에 뭐가 든 걸까요? 부디 좋은 데로나 시집가길 바란다는 저의 마쵸적 발언으로 일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병 오학준 
  지금까지 나왔던 학생스포츠 관련 논의들 전부를 인쇄해서 봐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제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이제 거의 자기의 일을 찾아 떠나고, 남아 있는 친구들도 예전같은 불꽃 튀기는 싸움이 없어서 '공동체' 속에 산다는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어요. 오히려 여기서 제가 가장 치열한 공간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군요. 특히나 관악의 이야기, 정말 오랜만입니다... 


병장 윤현상 
  원익// 
아아, '미스유니버시티'는 기범씨의 글에서 나온 이야기에요. 저는 제 글이 과연 이렇게 오독될 여지가 있었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군요(웃음). 그렇지만 역시 충격과 공포임은 틀림이 없는 것이죠. 원익씨와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다소간의 이견을 보이는 것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다소간 달라서겠죠. 저 역시 남성들의 평균적인 성-정치적 상상력에 충격을 받았지만, 저는 그 일로 인해 '여방'이나 '여성위원회'라는 형식적인 틀/제도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성-정치적 상상력을 끌어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원익씨와 저의 의견차이를 확인하고, 서로간의 욕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소시에이션'은 이런 개인들의 미시적인 욕망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연대'를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동생활전선에 있어서는, 저는 그동안 이에 대해서 발언을 아껴왔는데, 정말이지 반드시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파장을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할 것이고, 성공한다면 그 파장은 정말이지 엄청나겠지요. 저는 대승적인 담론에는 공감하면서도, 몇가지 이유로 원익님과 몇몇분들이 그리는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는 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발언을 자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저는 저 나름대로의 공동생활전선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을 구성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준// 

최근의 관악은 정말로, 정말이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편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쳐다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구요. 언젠가 저녁밥을 먹으면, 그때는 정말로 치열하게 살아야되겠다고, 요새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군요(웃음). 2009-09-20
19:3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