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글-일상이야기] 하늘소를 위하여
상병 윤정기 2009-08-20 16:06:46, 조회: 146,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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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윙거리며 날아드는 벌레들이 전 싫습니다. 코흘리개 어릴 적,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씩 뜯어낼 적부터 저는 벌레와의 ‘냉전’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 ‘신비한 곤충의 세계’에서는 - 정말로 수많은 곤충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왠지 그 녀석들과의 냉전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 옛적 미쿡과 쏘련의 암투가 마치 수면위로 올라와버린 듯한 당혹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고는 합니다. 왜냐하면, 그 녀석들은 언제나 저와 함께 있고, 자고, 먹고, 싸고, 간혹 이야기를 하기도 하니까요. 황당하지요. 벌레와의 이야기라니. 그, 마치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카타’상이 처음 고양이의 주절거림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마치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아니, 그것보다는 나 자신이 바로 외계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존재에 관한 의심을 사유하기에 충분한 일일 겁니다. 허.경.영씨의 ‘꼴미’를 들을 때의 그 어렴풋한 고향의 선율들(?) 같은 것을 저는 왠지 그 녀석들과의 대화에서 찾고는 한다는 것이지요. 에헴. 왠지 자폭하는 기분입니다만, 저는 여하건 그렇습니다. 자폐는 아니에요. 저는 외려 반대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저를 무한히 개방시키고 타인 속에서 기생하는 스타일이라. 어쩌면 벌레와의 대화는 그런 방식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틀에 갇혀있다는 인식에 관한 ‘무의식적 반항’같은 것이 그 기저에 박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곤충’과의 대화이지, ‘해충’과의 대화는 아닙니다. 저는 무식하게도 해충과 ‘에어리언’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는 요즘 어쩐지 친근한 말동무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날의 늦은 오후에도 저는, ‘말벌은 해충’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박멸’이라는 오토시스템을 가동시키고는, 3초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 방에 새가 날아들었습니다. 붕붕. 응? 새는 붕붕 날지 않습니다. 훨훨 날지요. 붕붕. 이것은 저의 하부구조에서 생성되는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절규 따위가 아닙니다. 붕붕. 오, 맙소사, 하늘소. 그것은 하늘소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저는 다시금 박멸시스템을 가동시킬까 하고 그 외계생명체에 대한 현 세계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참이었지요. 하지만 녀석은 그 적막한 조우와 살충동기부여의 시간을 처참히 무너뜨렸습니다. 녀석은 제게, 말했어요.
“날 죽이지마, 난 천연기념물이거든.”
아, 맞다. 하지만 그래서?
녀석은 잠시 주춤하더니, 약간 황당하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생각해 봐.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그런가? 하지만 넌 나를 위협하기에 충분한걸. 붕붕거리는 소리하며, 그 머리위의 날렵한 뿔하며, 여섯 개나 되는 다리에다, 게다가 윽, 너의 주름진 배는 마치 카프카를 떠올리게 한다구. 웩.”
“인간은 너무하는군.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응? 사람이 너희들의 생존환경을 위협한다는 소리를 하고 싶나? 그건 인간에게 아무 쓸데없는 소리인걸. 어차피 세계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환경을 빼앗으며 이루어지잖아? 가령 네가 나무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도, 나무보다 네가 강하기 때문은 아닐까?”
“강하다고? 그런 건 없어. 강자와 약자는 인간의 논리인걸. 우리는 어떤 ‘본능’을 가졌는가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갈 뿐이야. 넌 ‘동물의 왕국’도 안 봤냐?”
“그게 그런 건가? 하지만 어쨌든 잡아먹는 쪽과 잡아먹히는 쪽, 육식본능과 초식본능을 가진 것의 차이일 뿐이지 않을까?”
“아니지. 그것은 평행을 어떻게 이루느냐는 문제라구.”
“평행이라니? 평행우주를 말하고 싶은 거야?”
“굳이 그런 거창한 우주론도 필요 없어, 그건 너희들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어. 도덕이나, 예절 따위,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이라는 웃긴 낱말을 여지없이 사용 중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건 인간의 틀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너희에게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 개념은 아니잖아?”
“바보로군. 초원의 물소가 다 죽으면, 사자들은 살아남을까?”
“아, 그 얘기라면, 나도 알아. 자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하는 말이지. 하지만 너는 그저 한 마리 벌레인걸. 더불어 인간의 먹이사슬과 관련도 없는 네가 사라진다고 나와 관련이 있을까?”
“너도 벌레야.”
“뭐?”
“너도 벌레라구. 인간은 벌레야. 언제나 자신이 아닌 객체로 치환당하는 벌레. 너는 오늘 말벌을 죽였지. 그럼으로써 너는 무언가의 평행을 깨뜨렸어. 만약 네가 죽는다면, 그건 우주의 작은 균형 하나가 깨어져 기울어지는 거야. 생각해 봐. 우리는 그저 균형을 이루는 무게가 조금 다를 뿐이야. 너와 나의 무게, 말이야. 우리는 그 균형을 맞추려고 할 뿐이지. 그리고 그런 본능을 타고났을 뿐이고.”
“음, 헷갈리는데······. 뭐 좋아. 넌 죽이지 않을게. 하지만, 그럼 인간을 위협하는 해충들은 어떡해야 하지?”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래서 평행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서 대항할 필요가 있으니까.”
“죽이란 말인가?”
“널 죽이려 한다면.”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 녀석은 다시 붕붕, 소리를 내며 유유히 방을 빠져나갔고, 저는 그 녀석이 사라진, 마치 세상을 평행하게 비추는 듯한 석양을 바라보았지요. 그리고 저는 그때부터, ‘평행한 균형’ 같은게 과연 있나, 하는 생각들과 왠지 녀석에게 속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을 동시에 하게 되었답니다.
* * *
새벽이었습니다. 때 아닌 서늘함,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새벽의 공기에 잠을 깼습니다. 2시 쯤. 다시 자야 합니다. 터질듯 한 방광만 아니라면요. 궁시렁거리며 일어난 저는 화장실의 너무 밝은 빛에 불나방처럼 휘청거리며 물을 빼고는, 세면대로 다가가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비누로 닦고, 물로 헹구고, 그 밑에서 버둥거리는 하늘소를 보고, 손을 닦····· 끼야악!!
“너, 너 왜 여깃냐!”
“글쎄.”
녀석은 누군가가 거기에 자신을 집어넣어 놓았다고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왠지 저는 제가 녀석을 그 속에 집어넣어놓은 마냥, 미끌거리는 기분을 느꼈지요. 녀석은 계속해서, 버둥버둥, 미끌거리는 반구半球속을 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지요. 우주속의 인간. 예. 저는, 마치 날렵한 뿔을 가진, 다리가 여섯 개인, 벌레가 된 카프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손을 뻗어 녀석을 그 우주 밖으로 빼내어 놓았습니다. 녀석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선, 속날개까지 축축이 젖었다면서, 부르르, 날개를 털었습니다. 그리고선, 다시 만나길 기약하자며, 붕붕, 다시 밤하늘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에게도 ‘젖어오는 속눈썹을 털어낼 수 있는 기능’ 같은 것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 그 날은, 장수하늘소가 된 꿈을 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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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5:48:15
상병 정택민
우오와아으히유후헤. 너무느무 재밌게 봤습니다. 제 기준에서 말씀드리면, 하늘소에게 속으셨네요. '평행한 균형'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니까요. 세상은 거창한 원리나, 균형. 뭐 이런 것들을 세밀하게 조율하고 꼼꼼하게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어쨌거나 혹은 아무렴 끼걱끼걱-하고 돌아가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늘소. 우습게 봤는데 꽤나 달변가군요. 고학력에 유학파임이 틀림 없습니다. 눌변인 저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목이 for the skycow인 만큼, 그리고 오늘 하루 고생한 하늘소를 위해 포근한 집으로 돌려보내 줘야겠죠. 나뭇
가지로- 2009-08-20
16:39:12
병장 이 원
우왕. 재밌어요. 정말. 가지고 가고 싶은 글이예요. 귀여운 하늘소 녀석 후후
가지로- 2009-08-20
16:57:03
병장 정근영
낄낄. 이런 유쾌한 입담이라니.
그동안 정기씨가 써온 글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던 부분을 오늘 보게 되는군요.
책마당에 불시착한 장수하늘소에게 미안하지만, 책마당과는 안녕을 고해야 겠군요.
가지로- 2009-08-20
18:07:39
상병 정성근
벌레 잡는 일을 부업으로 하고있는 본인으로썬 뭐랄까 참 부러운 일이구만요.
(의녀의 부업무중엔 방역이라쓰고 네버엔딩스토리라고 읽는 일이 있지요.)
미칠것 같아요 네. 하늘소같은 고급스런 벌레는 없고
현실은 그저 나오는 건 모기와 바퀴벌래와 가끔씩 죽은 쥐의 시체따위. 우웩
가지로- 2009-08-20
18:33:53
일병 김 건
'평행한 균형'이라니, 하늘소의 달변이 부러울뿐입니다.
그 흔하디 흔한? 하늘소와의 대담을 재치있게 풀어놓으셨네요.
대세에 따르자고 하는건 아니지만. 저도..
가지로- 2009-08-20
19:24:45
상병 윤정기
택민 / 우이후헤흐히. 고마워요. 음, 결국 속은건가요.. 쨋든 저는 인간 세상의 '평등'이라는 이치, 벌레와 인간의 '평행' 같은 것들을 주제로 내세웠습니다만, 말씀대로 세상은 끼걱끼걱-하고 돌아가는지도 모르지요. 오늘도 저는 끼걱끼걱-하고 일어났으니까요. 어우 허리야..
원 / 모자란 글인데, 감사해요~
근영 / 사실 저도 이 글을 쓰고 난뒤, '과연 나란 녀석에게 어울리는 글인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크크. 전 입담과는 거리가 있는 녀석이라.. 앞으로 저는 왠지 '저만의 글'을 찾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걸 더 느끼게 될 것 같아요. 헛.
성근 / 하하. 역시 독자에 따라 느끼는게 다르군요. 사실, 저도 하늘소보다는 '파리' '날파리' 'X파리' '체체파리(?)' 등속의 파리 군집을 더 많이 보는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네버엔딩 방역을 계속하고 있으니..크흑.
건 / 고마워요, 왠지 하늘소에게 이 칭찬을 돌려야 할듯. 2009-08-21
08:36:04
병장 서지곤
읽다가 저의 하부구조에서 생성되는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절규를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도록 실실거리고 있었네요. 재밌는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8-21
09:11:57
상병 서재문
날죽이지마, 난 천연기념물이거든.
이거..왜이렇게 웃긴거죠? 빵터졌다구요 2009-08-21
09:18:16
상병 윤정기
지곤, 재문 / 고마워요, 엇 근데 지곤님은 옆에 아무도 없었죠?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