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 윤현상   2009-09-01 17:05:03, 조회: 233, 추천:0 

먼저 밝히는 점.

1. 이 글은 내 친구가 보내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대한 독서후기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글은 박원익의 <대한민국의 88만원 세대여 단결하라!>에 대한 독서후기이기도 하며, 그 글의 오마주이자, 동어반복이자, 확장이기도 하다.

2. 이 글은 책을 보내준 친구에게 되돌려 보내준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이 글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지칭하는 것은, 포괄적 범위의 우리라기 보다는 20대, 진보주의자로써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이다.

3. 이 글에서 나는 고의적으로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는 극히 의도적인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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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프레임(frame)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인 구조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접하는 정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거쳐 추상화, 상징화되어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변용된다. 그렇기에 개개인이 어떠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는 그들 개개인이 세상을 어떠한 형태로 이해하고 있느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지금부터 언급할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코끼리를 상징물로 가지고 있는 미국 공화당이 어떤 식으로 프레임을 재구성해 왔고, 그로 인해 어떠한 이득을 얻었으며, 미국 민주당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놓은, 진보주의자를 위한 실용서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프레임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책에 있는 예를 인용하여 보자. 세금 구제(tax relief)는 부시 행정부가 감세를 지칭하던 용어이다. ‘세금’이라는 말이 ‘구제’ 앞에 붙게 되면서, 그 결과로 세금은 고통이며, 그것을 없애주는 사람은 영웅이고, 그를 방해하는 자는 나쁜 놈이라는 은유가 탄생하게 된다. 이 은유가 만드는 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세금 구제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들음으로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금이 인하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밀접하게, 우리의 주변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까? 2년 전, 2MX가 큰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조, 중, 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ㅈ파 정권 10년’이 끝났다고 소리 높여 선언했다. 이는 나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것이었는데, 그들이 ㅈ파정권 운운하는 그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DJ와 盧는 자유주의자(liberal)였을망정 ㅈ파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중동이 만들어낸 ‘ㅈ파 10년’의 은유는 강렬한 것이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10년을 ‘ㅈ파 10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조중동에 의해서 사람들의 프레임이 DJ, 盧의 10년이 ㅈ파의 10년이었다고 생각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2. 20대, 우리에게 가장 지배적인 프레임 : ‘88만원 세대’에 대하여.

자끄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실로 의미심장한 것인데, 거칠게 표현해서, 세상은 묘사하는 텍스트 속에만 존재하며, 텍스트를 통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레이코프가 말하는 ‘프레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텍스트를 통하지 않고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텍스트의 구성을 통해 프레임이 형성되고, 바로 그 프레임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인식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프레임은 무엇인가? 그 지배적인 프레임은 누가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09년 여름 현재, 20대인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프레임은 단연 ‘88만원 세대’이다. 이 은유는 무척이나 강렬한 것이어서,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학점관리에 들어가고, 인턴사원을 통해 경력을 쌓고, 고시공부를 준비하는 수많은 친구와 후배들을 접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들은 취업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기도 전에, 이미 88만원 세대로 규정된 프레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은유를, 프레임을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동인은 ‘공포’다.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은 끊임없이 우리가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를 주입한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IMF로 인해 막막한 새 출발을 시도하는 부모세대를 목도한 현 20대에게, 비정규직의 범람과 그로인한 실직의 위험, 그를 통한 주류사회에서의 도태에 대한 공포는 추상화된 이미지를 넘어 경험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현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의 공포가 가장 효과적으로 먹혀드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는 입시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매달 토익시험을 보고,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도 않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경쟁적으로 인턴 일을 하는,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기실 스스로의 꿈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에 다름 아니다. 끊임없는 경쟁과정을 통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확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토익 만점을 받고, 인턴쉽을 수료하고, 학점 올A를 받아서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 다음은 승진을 위한 새로운 경쟁에 돌입해야한다. 여기에서 도태되면 실직이라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그 형벌은 우리 부모세대가 경험했던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에 도전한다.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높은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이 ‘공포’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공무원도 이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공무원도, 그들 나름대로의 경쟁체제 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끝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음을 깨달은 햄스터는 우울하다.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이 규정하는 세대에게,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들이 우울한 이유다. 우리는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는, 또 다른 경쟁을 위한 연습이었을 뿐이다. 21세기를 뜨겁게 달구는 우리들의 우울증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은 누가 만들어 냈는가?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은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자유주의적’인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은 경제체제로써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는 점차 486, 586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386세대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20대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형성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보수적 기성세대와 협소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보다 넓히려고 노력했던 386세대의 끊임없는 우경화가 결합하면서 만들어 진 것이 ‘88만원 세대’의 프레임이다. 386세대는 90년대 이후 진행되고 21세기 들어 본격화된 스스로의 현실 순응에 대한 자기합리화 작업과 더불어 진보세력의 약화로 인해 발생되는 지지기반의 축소를 사상적 우향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다. 말하자면 온건해졌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우경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오른편에는 여전히 ‘한*라’라는 넘볼 수 없이 오른쪽 끝에 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진보’임을 자임할 수 있었다.그러나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경진압하고, 자영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F*A를 체결하면서, 비정규직 특별법을 통해 수많은 비정규직들을 나락으로 밀어 넣어 버리면서, 겉으로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농민, 노동자,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언어는 얼마나 자기 기만적인가! 386세대의 우경화는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88만원 세대의 프레임을 작동시키는데 일조해 버렸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386세대가 盧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다시 재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심히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386세대가 盧를 정치적 아이콘으로 삼으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는 정치의 영역에서 특정 인물의 아이콘화, 우상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스탈*, 히틀러와 같은 역사적 예가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盧가 우경화한, 현실 타협적인 386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盧가 집권했던 5년간 그의 모순적인 행보는, 현실에 타협하고 우경화한 진보주의자가 얼마나 패악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것은 아닌가? 盧의 행보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행보가 보이는 것이 비난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盧는 어떤 의미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실패한 판본이었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3. 결론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기존의 프레임, 우리를 속박하는 그릇된 프레임을 걷어내고 보다 진보적이고 올바른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프레임은 88만원 세대이기도 하고, ‘경제를 위한’ 미*어 법이기도 하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쌍화차이기도 하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결국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지는 않으며, 프레임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를 수반할 것이라는 점이다. ‘양극화’라는 단어 하나가 진보진영에 얼마나 많은 힘을 실어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분명하다.

우리는 더 이상 88만원 세대에 대해서 언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침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양성 평등한 언어를 사용하고, 노동자의, 농민의, 서민의 입장을 반영하는 언어들을 사용한다면, 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유하고, 행동하고, 발성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우리들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프레임에 변화를 줌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올바름’이라는 명제는 항상 상기해야할 무엇이다. 프레임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실체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 언어적 수사에만 골몰할 수 있다. 행동은 천생 마초인 사람이, 여/남 혹은 그녀/그남의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는 변화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우리는 단순화되고 상징화된 프레임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사실의, 의미의 은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데리다를 굉장히 거칠게 읽은 바 있는데, 이는 그 표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의 미분화, 관계성, 차연등의 개념을 필요에 의해 상당부분 은폐한 것이다. 프레임은 이와 같아서 의미하는 모든 것들을 프레임 안에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은폐되는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 진보주의자들의 의무이자 숙제다. ‘정치적으로 올바름’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호도와 왜곡이라는 편리한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결코 우경화해서는 안 된다. 보다 많은 지지를 명분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자기기만이다. 오른쪽으로 이동한 우리는 본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우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오직 경계할 뿐이다. 우경화는 오히려 기존의 지지층마저 떨어지게 만든다. 386세대와 盧 전 대통령이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던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오게 만드는 것은, 프레임의 전환을 통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10-21 10:5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10-01-27
13:27:31 



병장 양동훈 
  지금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먹진 못했는데, 

"우리는 더 이상 88만원 세대에 대해서 언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침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를 대신할만한 새로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만큼은 눈에 들어오는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88만원 세대라는 일종의 도식화는 20대가 아닌 기성세대에 의해 규정되어진 도식화이고, 저것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20대의 무력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꼭, 저것을 대신할 만한 20대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겠지만요. 2009-09-01
20:08:10
  



일병 지승인 
  제목보고 책을 짐작할 때의 통쾌함이란. 본문내용을 좀더 발췌했어도 재밌었을 테지만, 한국내에서 보수진영이 취하는 전략적 언어프레임의 공격에 대한 예시도 꽤 적절한걸요? 
저 역시 '로'가 실족했을 때,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말이죠. 이미 기존에 파놓은 좌파 정치인- 휴머니스트- 진보적 이라는 상에 적절하게 얽혀들어가지나 않을까 하고요. 뭐 그 결과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경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 맥락적으로 우스운 이유는, 스스로 뭐라고 떠들든간에 사실 좌우를 분간할 능력도 없으니까요. 이토록 막막하게 말하면서, 또다시 같은 방식의 오류까지 접한다면. 자칫 방향을 벗어난 (그리고 다시 답습하는) 서툰 선동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가. 온탕이나 냉탕이나 사실은 똑같이 목욕탕안임을 감안해보면, 언어적 프레임에 대한 지적이 조금더 명확하게 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꼭 한번쯤은 누군가 꺼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이었어요. 잘읽었습니다. 2009-09-02
09:28:10
  



병장 이기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기억해 두어야 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9-09-02
13:51:54
  



병장 윤현상 
  동훈/ 새로운 20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은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을 잊기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니까요. 우리가 '사과'를 더이상 '사과'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결정하더라도, '사과'라는 물질적/상징적 존재가 여전히 존재 하는 한 우리는 빨갛고 동그란 그것을 볼 때 마다 '사과'라는 프레임을 생각하겠죠. 그를 대신할 새로운 프레임만이 기존의 프레임을 잊게 만들어 줄 수 있는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승인/ 너무 스스로를 지나치게 까발린 느낌이랄까요(웃음). 의도를 너무나 가차없이 파헤쳐주셔서 저로써는 발가벗겨진 느낌이네요. 사실 마지막문단은, 넣을지 말지 무척이나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승인씨 말처럼, 이 글이 언어적 프레임에 대한 것임을 감안해 본다면, 우로 이동하지 말라는 말은, 자가당착적이죠. 그래서 넣지 않을까도 여러모로 고민해봤지만, 서두에 밝혔듯이 이 글은 제 친구에게, 동지에게, 후배들에게 읽히고 싶어서 쓴 글이에요. 마지막 문단은, 스스로에 대한 결의이자, 승인씨말처럼, 동지들에 대한 선동적 의미를 담고있어요.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 서툰 선동을 자제할 만큼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미숙한것 같아요(웃음). 2009-09-02
17:35:53
  



병장 양동훈 
  현상// 제 댓글이 조금 가볍게 쓰여진 면이 없지않아 있는데, 아. 저 댓글이 이 글을 다시 먹어보니 부끄럽게 보이는군요. 크큭... 

이제 댓글에 대한 댓글을 다시금 달아보자면, 정말 재미있는 것은, 절대 다수의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것의 개념조차 모릅니다. 이 책마을에서의 20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모든 20대들 말이지요. 어렴풋이 들어만 봤거나, 것도 아니면 사실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거나 말이지요. 그리고, 정작 88만원 세대라는 일종의 프레임에 대한 인식과 고민과 사색이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 속의 내용을 '부정'하려고 하거나 최소한 '불만'을 가집니다. 그 프레임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점들 때문이겠지요. 이 문제점들은 현상씨가 너무도 잘 지적해 주었기에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이 많지 않을 듯 싶구요. 

제가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을 '굳이 대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것은 이러한 맥락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20대는, 그들이 88만원 세대라고 여기기 때문에 스펙을 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거나 혹은 기성세대의 압력에 의해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20대에 대한 비하가 아니고, 저 역시도 포함되는 20대가 모두 내포하고 있는 단면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현상씨가,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보다는 오히려 다른 프레임들에 대한 대체를 주장했다면 조금은 더 우호적인 댓글을 달 수 있었겠지만, 제 생각은 대강 이러하네요. 

제가 하고픈 말은- 

'정작 절대 다수의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단어 따위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라는 절망적인 현실이지요. 2009-09-02
20:30:25
  



상병 정성근 
  동훈 // 그렇지요. 사실 이데올로기라던가 사상의 한계는 절대적 다수는 그것에 신경쓰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던져진 현실에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부터 신경쓰는 겁니다. S모국이 망해가는 모습은 현실에서 눈을 돌린 이상의 세계가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드러내는 아주 명확한 예시지요. 참 무서운 겁니다. 굶주린 위장이란 것은. 군사, 사회, 국가를 불문하고 굶주린 채로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요. 2009-09-02
22:46:23
  



병장 윤현상 
  동훈//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동훈씨의 글 속에 이미 다 드러나 있네요(웃음).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은, 프레임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그러한 것이겠지만, 표상일 뿐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20대들이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를 아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진정 88만원 세대라는 프레임이 지칭하는 것은, 동훈씨가 말한 것 처럼, 먹고살기위해서/기성세대의 압력 이라는 작동기제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88만원 세대를 대체할만한 프레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포에 시달리며 끊임없는 자기개발에 매달리는 행동양식이 아닌, 또다른 20대의 행동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변화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러한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2009-09-03
08:47:45
  



일병 지승인 
  현상님, 우로 이동하지 말자라는 선언적인 어투는 되려 확신없는 포지션에 대한 시인이 될 수 있겠죠. 그만큼 우리의 지반은 견고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불안해하니까요. 그렇지만, 시대정신이라는 표상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현명한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납득시키는 건 중요한 문제겠죠. (물론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단순한 덫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그것 역시도 곤란하고요) 2009-09-03
09:18:13
  



병장 양동훈 
  현상// 말이 맴도는 것 같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껄껄. 

"우리가 프레임에 변화를 줌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올바름’이라는 명제는 항상 상기해야할 무엇이다. 프레임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실체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 언어적 수사에만 골몰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오게 만드는 것은, 프레임의 전환을 통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기존의 프레임, 우리를 속박하는 그릇된 프레임을 걷어내고 보다 진보적이고 올바른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임에도, 저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으악. 
너무 회의주의적인가요. 아니면, 극한의 무력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현상씨의 말 자체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읽어내는 내내 가슴이 아팠던 건, 아마 그런 이유일까요. 허허허.. 2009-09-03
09:25:34
  



병장 윤현상 
  동훈, 승인// 동훈씨의 말처럼, 저도 끝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승인씨가 말하는 것처럼, 저는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기반을 지니지도 못했죠(웃음). 이건 무척이나 슬픈 일일까요.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이상을 꿈꾸는 한 가져야 할 필수적인 무엇인 걸까요. 그렇지만 확신없는 포지션에도, 끝이 모이지 않는 무력함에도, 제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한가지 확신은, 끊임없이 발성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성하고 행동하다보면, 발성하다보면 '대체 이런생각은 내 어느곳에 숨어있었는지'를 생각하게끔 하는 생각들도 나오고, 행동하다보면 도저히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던 문제들도, 마치 거짓말처럼 해결되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지 않던가요. 
그리고 승인님, 제 쪽지 받으셨나요?(웃음) 쪽지 쓰는게 처음이라 그게 제대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받은 쪽지는 한번보면 원래 안보이는건지도요. 2009-09-07
05: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