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12 09:15:24)
상병 황민우
푸른꽃의 문학산책 1-3. 신화구조와 문예비평
1-3. 신화와 문예비평 - 캠벨, 프라이의 이론을 중심으로
이전 시간에 설명해드렸듯이 신화는 단순한 '고대인의 상상력의 보고'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제반에 남겨진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반영이자 거울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프레이저는 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의 제의현상들을 분석해내었고, 엘리아데는 현상학적 탐구로 신화의 매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성공하였지요. 하지만, 신화는 본질적으로 '이야기'이며, 그것은 '문학의 한 장르'로 포괄될 수가 있습니다. 이점에서 엘리아데나 프레이저보다는 문학적 해부를 시도한 노스롭 프라이와 융심리학, 그리고 캠벨(?)과 오든을 위시한 구조주의 문예이론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문학과 신화
서사문학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내러티브, 즉 플롯입니다. 플롯이란 개연성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있음직한 이야기"이요, 소설의 원인과 결과를 이어주는 인과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인과성을 가진 플롯과 이야기(Stories)의 구조는 조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문예이론가 쉬클롭스키의 유명한 예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예문1. -> 왕이 죽었다.
예문2. -> 왕이 죽고 여왕이 죽었다.
예문3. -> 여왕이 죽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왕이 죽음으로써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문1.은 사건(Event)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순서가 없는 단편적인 Event를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문2는 시간의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두가지 이상의 사건이 진행되는 이야기Stories입니다. 하지만, 3은 뒤의 사건의 원인이 앞의 사건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플롯입니다.
이 예문으로 이야기와 플롯(내러티브)의 차이점을 이해하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화의 이야기는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옛날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옛날이야기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데, 이렇게 되서, 저렇게 해서..... 결국 행복하게 잘살았대요."라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전혀 플롯적이지 못하여, 인과성이 없는 경이로운(이것은 나중에 톨킨에서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사건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많은 문예이론가들은 이런 플롯이 없고 '헛소리같은' 우연에 기대있는 플롯들을 그저 '상상력의 보고'로만 생각하면서 훌륭한 교양쯤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소설의 플롯구조와는 다르지만, 신화에서도 조금 다른 모양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화적 내러티브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여러분들이 잘 아실법한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를 가지고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신화와 무의식, 노스롭 프라이의 신화비평.
오르페우스는 당대 최고의 리라Lyre연주가였고, 유리디체는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유리디체가 뱀에 물려 죽으면서 하데스에게 끌려가자, 오르페우스는 아이스킬로스(맞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이스킬로스였는지, 아킬레우스였는지..)의 도움으로 지하세계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는 두번째로 (헤라클레스에 이어서) 잡입(?)하여, 하데스 앞에서 유리디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며 리라를 연주합니다. 하데스는 감동받아 유리디체를 돌려주지만, 지상에 나갈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금기를 깨어서 둘다 죽는다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물론 오르페우스에 대한 전설은 여기서 많이 갈라집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험담(Quest)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종교-신화적인 코드를 읽어내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어둠'에 관한 신화의 에피소드로서, 아주 치밀한 신화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예문으로 들어본 '소설의 플롯'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화비평의 창시자인 노스롭 프라이는 '비평의 해부'에서 융심리학과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신화분석비평을 시도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화는 은유의 집합체입니다. 따라서 그 은유의 껍질을 한풀 벗겨내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한 내용을 바라볼수 있을듯이 보입니다. 오르페우스는 Orpheus, 즉, '하늘을 노래하는자'라는 뜻입니다. (맞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하여튼 이런 의미였던걸로 기억해서) 이는 그가 리라연주자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대사회에서 노래를 '집행'하는 자, 그것은 음유시인이자 바로 제사장의 권한이었습니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종교제의적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신다면, 이 오르페우스라는 이름 자체는 '종교제사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유리디체는 "얼굴이 하얀 여자"라는 뜻입니다. 하늘을 노래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얼굴이 하얀여자. 그것은 바로 달입니다. 즉, 에우리디체, 유리디체는 '보름달'의 무의식적 표현으로 여성으로 치환된 은유이며, 그것을 사랑하는 하늘의 제사장은 종교의 의장인 하늘, 즉 인간의 정신(무의식)입니다. 따라서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러브스토리는 인간의 '무의식적 정신'과 달(무의식으로 대변되는)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조금 어렵고 재밌는 얘기로 들어갑니다. 유리디체는 왜 뱀에 물려 죽는가? 제사장은 주기적으로 달에게 제사를 지냈을겁니다. 하지만, 한달에 한번, 달은 자취를 감춥니다. 네 바로 삭.망이 3일이나 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를 여행하는 시간도 3일간입니다. 달은 바다의 조수를 관장하고 여성의 생리현상을 '지배하고 있기'때문에 달에는 '여성성'과 '물'(바다)가 귀속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달 = 무의식, 물, 여성성. 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이러한 유감주술의 원칙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달이 뱀에게 먹힘으로써 사라진다는 고대인들의 공통신앙(동양에서도 주기적으로 용이 보름달을 물고 바닷속으로 사라진다는 신앙을 생각하면- 이것을 아감주 혹은 야광주라고 하며 여의주의 기원입니다.)에 의해서, 뱀의 상징은 달의 무의식적 무정형에 합류하게 됩니다. (뱀은 물의 흐름처럼 움직이며, 물처럼 영원하고, 물처럼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제게 쪽지를 주시길. 이에 대한것은 너무 광범위한 설명이라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신화 에피소드에서도 보여지듯이 달 -> 물(바다) -> 여성 -> 뱀은 하나의 상징의 루트를 타고 연결되어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형상입니다.
달은 뱀에게 물려 죽으며, 상징적으로 삭 또는 망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때가 되서야 무의식으로 침입하여 달을 희구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희구하여 지하세계(무의식의 세계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 융심리학참조)를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하며, 그리고 그곳에서도 연주를 하여 하데스를 감동시킵니다. 따라서 연주, 즉 예술의 영역은 무의식과 닿아있다는 신화적 설명입니다. 오르페우스는 궁극의 광란속에서 죽음을 설득시키고 달을 귀환시킵니다. (상당히 쇼펜하우어적입니다. 웃음) 하지만, 이때 죽은의 신은 하나의 '금기'를 설정하는데, 금기를 깨는것은 본질적으로 무의식과 광란의 영역입니다. (타부는 이성의 끈이며, 그것으로 통제불가능한 상황의, 본질적 비극을 이 이야기에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광기와 무절제, 광란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에 의해서 디오니소스교와 대립하는 오르페우스교의 광란적 축제와의 관련성은 어찌보면 이 이야기의 당연한 귀결일겁니다.
따라서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는 하나의 무의식적 정신구조에 대한 설명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과 광기를 뜻하는 인간의 어두운 정신은 달을 희구하지만, 달은 뱀(죽음)과 맞물리는 주기적 죽음에 의해 더욱 어두운 무의식으로 끌려나가게 되며, 그것은 결국 이성(인간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어서 파멸과 무정형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구조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는 사랑했으며, 유리디체는 뱀에게 물려 죽고, 그러므로써 오르페우스는 자연히 무의식의 지하세계를 여행하며, 예술로써 보상받지만 이성의 지상인간세계로는 돌아올수 없어 둘다 죽는다는 비극Tregedy으로 끝나는)는 즉, 그저 하나의 플롯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식과 광기를 설명하기위한 하나의 '신화적 내러티브'의 단계를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야기의 공통적인 틀이며,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해서 이러한 신화적 구조속에 담겨있는 무의식적 의미가 규명되었고, 프라이나 오든, 캠벨등에 의해서 문학적 구조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프라이는 이처럼, 신화 에피소드에 담겨진 무의식적 의미들의 함수관계를 뽑아내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것은 후에 정신분석비평과 무의식비평으로 발전하며, 이 모든것을 포괄하는 개념인 신화비평으로 불리게 됩니다. 제가 지금 전공하고 있는 문예비평도 바로 이 신화비평입니다. 정중위님께서 의문을 던지셨던, "전세계 공통"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통계적으로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수천개의 '공통된' 신화들이 실재하며, 그 안의 카테고리들은 칼 융에 의해서 '무의식적 리비도'와 연결이 증명이 되었기때문에 (위의 내용처럼) 그 이야기들은 공통된 이야기구조, 즉 신화적 내러티브가 지금도 여러 신화학자와 비평가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음에 살펴볼 캠벨과 오든의 신화구조에서도 마찬가지로 밝혀집니다. (저의 경우는 한국신화에 담겨있는 이런 신화적 내러티브를 해부하는 작업이 졸업논문 주제입니다.)
(3) 캠벨과 영웅신화구조
프라이를 위시한 신화비평학자들은 이렇게 신화에 담겨있는 무의식적 리비도(에너지)가 어떻게 구조적 내러티브를 만드는지를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캠벨은 이에 더 나아가서 영웅신화의 전형적 구조, 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신화구조의 '원형상징(Prototype)'을 찾은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헤라클레스신화와 지그프리트 신화를 빌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요정과 신의 혼혈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태어날때부터 헤라의 미움을 사서 여러가지 역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태어나자마자 헤라가 그의 요람에 풀어놓은 커다란 뱀을 맨손을 찢어죽이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진정한 그레플러로서의 위용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여러 지혜의 도움과 행운의 가호, 자신의 영웅성으로 모두 헤쳐나갑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성인이 될 무렵, 헤라는 열두가지 임무를 주어주면서 이를 수행하면 자기 아들로 인정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열두가지 과제로 말미암아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히드라의 비늘을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아마조네스의 말 2-1번에서 뛰어내린..(이게 아니잖아! 퍽!) 하여튼, 열두개로 상징되는 퀘스트를 무난히 수행하므로써 신으로 추앙받고 헤라의 인정을 받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의 가죽으로 몸을 둘러서 어떤 물리적 공격에서도 절대적으로 보호받을수 있었는데, 돌아오는 귀환길에 강의 신이었던 켄타우로스 안타로스와의 한판싸움으로, 강의 신의 원한을 받습니다. 이에 안타로스는 헤라클레스 부인에게, 남편이 바람이 날것 같으면, 사자가죽의 틈에다가 이 약을 뿌리라고 하면서 히드라의 독을 건네주고, 결국 그것에 의해서 헤라클레스는 죽게됩니다.
여러가지 다 건너뛰고 헤라클레스신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만 추려보았습니다. 이에서 드러나는 영웅신화의 진행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우리가 흔히 아는 뻔한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을 '구조적'으로 공론화 시키면서 신화구조비평의 발전은 무한히 진행하게됩니다.
첫째, 영웅은 범상치 않게 태어난다는겁니다. 대개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가지게되는 설정인데, 영웅은 그 탄생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화의 경우, 영웅은 신과 인간(혹은 정령)의 혼혈입니다. 그 이유역시 신화구조적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뒤에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고난을 어릴때부터 받습니다. (이것까지는 우리나라 주몽신화와 맥을 같이하죠. 주몽은 하백의 아들이며, 왕자들의 핍박을 받죠)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영웅적인 위용으로 그것을 물리치고, 영웅임을 입증할수 있는 열두가지 퀘스트를 받습니다. 여기서 열두가지 수행 모두 뛰어난 신화적 원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짚어보자면, 바로 히드라와의 싸움입니다. 용은 영웅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이 되는 상징입니다.
히드라는 머리아홉달린 드래곤으로,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히드라라는 드래곤을 때려잡으므로써,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독(즉 죽음을 위협할수 있는 무기)를 얻기도 합니다.
용은 무의식적 원형상징으로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드래곤(뱀과 동격으로 상징합니다)은 독을 가지고 있어서 죽음과 맞물리고, 그 태생적 생태때문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비늘을 벗으면서 영원히 살기때문에 영생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화에서 드러나는 전형적인 드래곤의 경우는 뱀의 지향성(地向性)과 새의 천향성(天向性)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절대악의 권력으로서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징이 얽혀있는 독특하고도 중요한 상징이 뱀인데, 영웅은 모름지기 이 용(혹은 드래곤)을 죽이므로서(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명칭을 얻으므로써) 비로소 죽음(드래곤과 동격이라고 위에서 설명해드렸습니다)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합니다. 즉, 이런겁니다.
영웅은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신과 인간의 혼혈입니다. 따라서 신의 무한한 영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가장 태고적부터 가지고 있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그런 죽음과 파멸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줄 임무를 '영웅'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평범한 태생의 인간은 죽음에 예속되있는 존재이므로 여기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웅은 '신적' 자질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따라서 영웅의 기본조건은 '신의 아들' 혹은 '영웅의 친척'등의 설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영웅신화의 구조는 같은 그리스신화에서도 한번 더 나타나는데 태양의 신 아폴론의 '퓌톤사냥'이 그것입니다. 당시 올림푸스산에 살고 있던 무지막지하게 큰 독사였던 퓌톤을 아폴론이 활로 쏴죽이므로써, 인류의 구원자라는 명칭을 물려받고, 그는 의술의 신으로 등극합니다. 이 역시 그의 태양이 가지는 영웅적 면모로 달의 에너지인 뱀(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역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간 삼천포로 빠져서 이 두가지 이야기를 비교하자면, 한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신화에서는 한가지 의미(상징)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두개이상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타로카드의 상징구조를 연구하다보면 자연스레 알수 있는 놀라운 무의식의 질서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리스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의 히드라사냥과 퓌톤의 죽음사냥이 동시에드러나며, 같은 의미로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전수'도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이 드러나게 됩니다. 헤라클레스는 코린토스반도에서 숭배하던 영웅신의 하나였고, 아폴론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영웅이었으며,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우크라이나지방의 영웅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문화의 확장과 로마의 문화번영과 말미암아 하나의 산화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은 신화해석학에서 다루는 대용이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겠습니다.)
세계의 영웅신화의 가장 중요한 구조는 바로 이것입니다. 용(혹은 그와 동등한존재 - 이는 악 혹은 죽음으로 상정됩니다)을 죽임으로써 민족의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니벨룽겐리트에서도 지그프리트는 드래곤을 죽이므로써 니벨룽의 보물을 얻어(과거 영화의 재례, 부활) 귀환하며, 베오울프에서 역시 그렌델과 드래곤을 죽이므로써 덴마크왕국의 평화를 가져옵니다. 영웅과 드래곤은 그야말로 숙명적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의 말로는 거의 대부분 비참합니다. 특히 지그프리트 전설과 헤라클레스신화는 동등한 플롯으로 죽음을 당합니다. 아킬레스도 마찬가집니다. 영웅은 완전무결하지만 감춰진 단 하나의 작은 비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납니다. 이는 영웅이 가진 기본적인 '인간성'을 비추어주는 가장 좋은 창입니다. 영웅은 절대적입니다. 죽음도 극복하였습니다. 반쯤은 신의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이기때문에, 그것도 가장 신뢰가 가는 가까운 인간들에 의해서 (헤라클레스는 가장 가까운 부인에 의해서, 지그프리트는 그의 연인이었던 브림힐트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가장 '인간적인 영웅'을 보여줄수 있는 좋은 이벤트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웅들이 모두 비극적으로 죽거나 '승천'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헤라클레스의 경우는 둘다 적용되겠지요)
이런 신화의 구조를 이해한다면 바로 원형신화를 복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신화는 구전문학이기때문에 구전의 역사성에 의해서 훼손, 변질, 변화할 요소가 상당히 많지요. 하지만, 이 신화의 원형적 구조를 연구하다보면, 각 신화마다의 원형상징의 숨결을 느낄수 있고, 그것을 더듬어 앞뒤의 원형상징의 조각을 맞추어보면 각 민족의 신화원형을 복원할수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제주도 칠성신화의 불완전한 모습을 복원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이런 신화구조의 원형상징에 대한 이해가 커다란 역할을 했었습니다. (웃음)
(3) W.H 오든과 민담구조
민담의 구조란 구조주의와 러시아 포말리즘(형식주의)에 영향을 받아 시작했습니다만, 이 민담의 구조를 연구하는 본격적인 작업은 러시아형식주의의 창시자인 블라미미르 프로프의 '민담 형식론'과 로만 야콥슨의 형식주의, 쉬클롭스키의 구조주의 비평이 그 시초였지만, 역시 이를 '문학적'으로 가장 잘 흡수한 사람은 오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든은 톨킨의 제자로도 유명하며 뛰어난 시인으로서도 영국에서 이름을 남겼습니다.
오든이 이룩한 신화비평의 가장 커다란 업적은 '행운동화'(Lucky Tales)의 성격을 규정한 것입니다. 이는 영국신화와 민담뿐만아니라 전세계 민담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행운동화란, 본질적으로 민담과 신화의 영웅적 모험은 '행운'에 기대어 시작하고 '행운'의 도움으로 '해피엔딩'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든은 세계 공통신화모티브중 하나이자, 가장 유명한 영국 동화인 '생명의 물'이라는 동화를 예로 드는데, 이 동화의 행운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왕자중 막내왕자가 우연히 사냥을 나갔다가 생명의 물을 발견한다" -> "옆나라 공주가 병에 걸렸는데, 생명의 물이면 공주를 살릴수 있었다" -> "왕자들은 생명의 물을 찾아 마법의 숲으로 떠난다." -> "막내왕자만이 숲의 은자를 만나 생명의 물을 가져간다." (은자의 공로) -> "왕자의 형들이 공덕을 가로채어 왕자를 유폐시키고 공로를 받는다." (악한Picaresque의 등장.) -> "그러나 공주에 의해서 진실이 밝혀진다." -> "우연히 왕자를 다시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입니다. (괄호속의 내용은 모두 행운동화의 원형상징들입니다.)
이런 구조는 기초적으로 소박한 정서에 기대고 있으며, 가장 민중적 무의식을 반영하는 민담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를 극대화하여 문학에 반영한 사람이 바로 저 유명한 J.R.R 톨킨이며, 이런 행운동화를 문학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호비트'입니다. 더불어 '벨린과 루디엔'을 제외한 '톰봄바딜', '반지의 제왕'같은 작품들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행운동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운동화의 구조는 직선적이면서도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이 플롯 안에 "초월적 은총'이 '행운'의 형식으로 결부된 샤머니즘적 구복성격이 강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운동화라 불리는 '구복여행'에서도 잘 드러나는 구조라고 보여집니다. (구복여행이라는 유명한 우리나라 옛날이야기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이는 대표적인 행운동화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민담과 신화의 구조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야, 신화와 민담이 본격적 문학으로 꽃피기 시작한 중세문학이 비로소 어떻게 '문학성'을 획득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화의 시대는 '작가'의 등장으로 마무리가 되며, 작가의 등장은 '개연성'과 더불어 '개성'등 여러가지 문제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는 본격적으로 꽃피는 '문학'의 시발점 '중세문학'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화적 내러티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극대화되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보르헤스, 톨킨, C.S 루이스, 마르케스, 살만 루시디등에 의해서 사용되어왔고, 낭만주의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덧. 루카치 문예이론은 다음장에서 따로 챕터를 만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병 이건룡 (2006/07/12 10:27:31)
(여태 이루어 둔 말입니다 .)정말 흥미진지하겠군요.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런 자료를 만나 볼 수 있다니 왠지 기대가 됩니다. 이런한 노력과 수고는 굳이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쉬이 무시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라 여겹니다. 노력의 결실이 맞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상병 박종민 (2006/07/12 10:49:04)
이...이... 라플라스의 악마.
아무튼. 출력입니다-
병장 송희석 (2006/07/12 16:35:42)
홋. 잘 읽었습니다. 특히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는 저역시 읽었을때 이성과 감정이라는 2개의 코드를 가지고 변증법적인 고찰은 한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는데 말이죠. 빨리빨리 부탁드려요. 후훗.
병장 안대섭 (2006/07/12 16:55:00)
한 챕터는 다 올라오면 출력해서 한꺼번에 읽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그만...
상병 조주현 (2006/07/13 09:22:06)
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잘읽었습니다.
병장 김강록 (2006/07/13 17:13:15)
오오 루카치라.
병장 우병욱 (2006/07/14 17:23:49)
아아, 누가 스크랩해서 바깥에도 올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런 글이야말로 얼마남지 않은 게 아쉬운 이유입니다.
상병 민경국 (2006/07/17 02:25:12)
문예이론. 연극이론을 주종목의 하나로 삼고자 하는 저로서는
비슷한듯 다른 존재라서 흥미를 느끼면서도 섣불리 다가서기 힘들군요.
언젠가 연극에 대해서, 그리고 제 실제 전공이 될 연극조명에 대해서
이런 형태의 글들을 쓰려고 하는데, 참고 많이 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