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09 15:21:44) 
 
 
 상병 황민우 
 푸른꽃의 문학산책 1-2. 신화의 구조 
 
 
 
 
1-2. 신화의 구조 - 프레이저와 엘리아데를 중심으로

 

신화의 역할과 종교학의 탄생

신화는 앞장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세상의 현상에 대한 은유적 설명이고, 종교의 근간으로서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적어도 르네상스 이전까지 카톨릭을 포함한 신화와 종교는 삶의 가장 원천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고, 그 근거는 테르툴리아누스나 아우구스티누스같은 종교철학자들의 지적처럼 ?믿음?에 기반하고 있는 설명이었기 때문에 확고하였습니다. ?철학은 종교의 시녀?라는 유명한 명제처럼 중세시대까지 신화는 코스모스(우주)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데올로그이자 확고한 사상이었습니다. 20세기의 ?혁명적인?사회학자였던 토마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종교 역시 과학현상의 일부인 ?패러다임?으로 치환될 수 있었고, 그 시대의 신학 패러다임역시 과학적 질서를 가지고 있었으며, 과학사의 발전은 ?패러다임의 혁명성?에 근간하고 있으며, 과학의 역사는 순차적이 아닌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한 ?혁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종교의 특성인 ?믿음?은 우리가 지금 맹신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이성적 맹신과 다름없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서 존재하였다고 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믿음이 깨어지는 것은 종교전쟁을 겪는 르네상스에 일어납니다. 물론 중세시대에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같은 죽음에 대한 사유는 분명 존재해왔지만, 그것은 교부들에 의해서 극복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일교로 믿어져왔던 카톨릭이 신-구교로 나누어지고, 유럽에서 첫 대규모 전쟁(30년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으므로써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고, 인문주의가 발달하는 르네상스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바로크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하여튼,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의 발달과 함께 코스모스의 이데올로기 질서(신학 패러다임)는 이성과학과 자연과학(과학 패러다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종교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철학이 그 질서에서 자리를 내주는(이성 패러다임) 포스트모더니즘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인데,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었다는 루터의 말처럼 하나의 ?회유정치책?으로서 채택된 것이 아닌 종교 그 자체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서 ?종교란 무엇인가?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패러다임에 묶여있던 시기였으므로)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시기에 등장한 후설의 현상학 (사물에는 그 내적 근거가 없으며, 오로지 현현되는 현상의 구조에 의해서만 ?보여질뿐이라는?)에 힘입어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됩니다. 종교학이란 ?종교?의 본질을 파헤침과 동시에 종교의 역할과 매커니즘을 해부하는 ?종교현상학?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맨 앞자리에는 우리의 제임스 프레이저와 마르치아 엘리아데의 이론으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신화학에서 빠지는 이유는 그의 언어적 관계에 의한 신화-인류학은 종교의 핵심에 접근하지 않고 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으로 분류, 엘리아데는 신화학으로 분류되지만, 그 시초가 되었던 프레이저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양쪽에서 모두 다루어집니다)


(1) 프레이저와 황금가지

제임스 프레이저의 업적인 이 분야에서 가히 파천황의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이저는 그의 역저 ?황금가지?에서 유럽 고대종교의 황금가지를 지키는 사제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유럽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를 위시한 유럽 신화의 중요한 본질은 바로 이점이라고 프레이저는 지적합니다. 사제는 황금가지를 지키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제가 다른 사제로 교체되는 시기는 오로지 다른 사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그 사제의 자리를 차지하므로써만이 정권교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사제가 될 수 있는 요건, 그러니까 가치의 최고인 황금가지를 가질 수 있는 최고권위의 사제 자격요건은 가장 미천한 죄인이어야만 가능하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만이 가장 위를 차지할수 있는 ?전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문화를 이해하는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장 미천한 신분이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전복되는 사례를 유럽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카니발 축제이며 (이 축제의 시작인 광란의 월요일에는 신분이 거꾸로 뒤집힘으로써 출발합니다), 중세에 등장하는 가장 미천한 광대는 유일하게 왕의 응접실까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왕을 능가하는 신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유럽의 ?칼의 역사?,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유명한 명제를 입증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군사학적으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그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더욱 뛰어난 말을 남기긴 했지만)

하여튼, 이처럼 신화가 담고 있는,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신화의 진의들을 파헤치는 것이 황금가지의 골자입니다. 왜냐면, 신화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이미 근대에 접어들면서 폐기되었기때문입니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불핀치의 저 유명한 ?불핀치3부작?이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좋은 입증이 될것입니다. 따라서 신화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할 필요가 있고, 근대화가 되가는 이성의 시기일수록 정신적인 면이 중요한 컨셉으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그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물이 바로 인류학이었습니다. 프레이저가 시도한 신화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신화속에서 인간사회의 특징과 매커니즘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신화들을 집대성하여 세계 유사신화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석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 신화들의 공통점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풍요의 신은 신화에서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는 죽음의 신인 하데스에게 결혼당하여(?) 1년의 1/4은 반드시 하데스와 함께 지하에서 살면서 상징적으로 死亡합니다, 그리스 최고의 신이자 농업의 신인 오시리스는 그의 동생인 죽음의 신 세토에게 학살당하여 나일강에 버려진 다음, 그의 아내이자 하늘의 신 이시스, 그리고 아들 호루스에 의해서 부활하게 됩니다. 한국 신화에서 역시 농업의 신인 칠성신은 궤속에 갇힌채 바다에 버려지므로써 상징적으로 死亡합니다.

이는 농업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것 중 하나가 바로 계절의 순환이었으며 가을이 지나면 모두가 수확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무(無 - 즉 죽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겨울이 오고, 다시 생명이 시작되는 봄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 풍요와 수확에 대한 사계절의 순환. 이에 대한 신화적 설명이 바로 이러한 일련의 풍요의 신에 대한 신화의 에피소드로 남아있다고 프레이저는 지적합니다. 
이 외에도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중 하나인 ?불?과 ?물?에 대한 전 세계의 신화를 비교하며 해석한 명저 ?불의 상징?에서도 신화적 에피소드가 인간 사회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화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물론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서 가능하게 된 것들이지만)은 프레이저의 가장 커다란 업적이었으며, 비록 그가 행동하지 않은 ?안락의자위의 학자?라는 비난을 면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류학을 공부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중요한 텍스트로 프레이저의 책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신화는 ?믿음?의 단계를 뛰어넘어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핵?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프레이저는 주로 제의현상에서 이러한 특징을 추출해냈고 그의 제자들이 발전시켰기 때문에 프레이저를 위시한 인류학파를 ?제의학파?라고도 부릅니다. 유감주술과 비감주술이라는 유명한 용어를 남겼지요. 유감주술이란 신화의 힘을 가진 에피소드를 인간사회에서 그대로 모방하므로써 인간 세계에서도 신화적 에너지를 내림시키는 ?주술적 효과?를 바라는 제의행위를 말합니다. 예를들면, 아프리카의 나바호 부족은 가뭄이 들 때 땅 위에다가 물을 뿌립니다. 그것은 인디언 신화에서 비의 신이 비를 내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행위를 똑같이 따라하므로써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대 원시인들은 사냥 전에 사냥감의 모습을 동굴 암각화로 그려넣고 창으로 찌르는 것을 반드시 행했는데, 이는 ?사냥의 연습?이라는 것보다는, 그렇게 가상의 제의를 행하므로써 실제로도 사냥에서 찔리게 될것이라는 주술적인 염원을 담고 있는것입니다. 주술의 기본은 ?신화세계에 대한 모방?에서 시작했다고 프레이저는 ?불의 신화?에서 지적합니다. 이제 한국의 신화-미학자인 김융희 아줌마는 주술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쾌한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주술이란 마음에 있는 이미지를 현실의 이미지로 불러오고, 그것과 교감하여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프레이저의 업적은 제의학파의 ?유감주술?의 발견으로 함축할 수 있을것입니다.

 


(2) 엘리아데의 성과 속

프레이저가 이러한 세계신화의 에피소드들에서 사회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종교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치아 엘리아데는 이 신화인류학을 ?신화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화의 ?구조?를 파헤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레이저가 신화에 산재해있는 인간정신의 진의를 엿볼 수 있는 창을 만들어주었다면, 엘리아데는 이렇게 보여지는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종교적 현상?에 대한 매커니즘 분석을 시도합니다. 즉 문을 열고 그 현상들 하나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입니다. 엘리아데의 불후의 명저이자, 20세기 100대 인문학서중 하나로 선정된 성과 속(聖과 俗)은 종교-인류학을 공부할때 절대로 빠질수 없는 명저로, 개인적으로도 종교학을 공부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엘리아데는 프레이저가 남긴 업적을 후설의 현상학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즉, 유감주술의 매커니즘을 규명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며, 그것은 성현(聖現Hierophany)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즉, 인간이 종교적인 성스러움을 경험하는 것은 어떤 불가해한 경험을 했을경우, (즉 비일상적인 체험) 그 불가해한 힘에 압도당하여 그것을 숭배하는 현상으로 정의내립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예시이니 조금 거칠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당신이 길을 지나가는데, 옆사람이 갑자기 번개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일도 또 벼락에 맞아 누가 죽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번개를 맞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 하게될것입니다.' 이것은 원인을 알수 없지만 당신이 그 번개라는 불가항력적인 파워를 인지하고 공포에 떠는 것입니다. 종교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이탈리아 학자 볼프Vollf는 이런 무지와 압도적인 힘에 의한 공포를 '누미노제'라고 불렀습니다. 하여튼, 당신은 누미노제적인 공포와 압도적인 힘때문에 당신은 '살기 위해서'번개를 숭배하고, 그 번개를 달래려 노력할 것입니다. (예를들면, 피뢰침을 가지고 다닌다던지) 이 시점에서 당신의 삶은 '번개를 숭배하기 이전'과 '번개를 숭배한 이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번개를 숭배하기 이전에 당신의 삶은 무정형으로 규정됩니다. 다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어떠한 제약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정형의 삶을 비집고 엄청난 힘이 당신의 정신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할수 없었던 압도적인 무엇의 발현입니다.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누가 죽게 됩니다. 이 두려움을 목격한 당신은 '번개'를 특별한 존재로 당신의 삶의 중요한 기둥으로 다루려 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살아가면서 항상 피뢰침을 곁에 두고서 그를 달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즉, 당신 삶의 중요한 기둥으로서 번개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을 엘리아데는 성현의 축Axis라고 부릅니다. 즉, 당신의 이전삶과 이후의 삶은 전혀 변한게 없는것 같지만, 당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번개라는 것은, 당신의 삶의 한 축을 형성하고 정신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당신은 번개와 죽음의 연결고리때문에 피뢰침을 가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 삶에 중심이 없는 '무정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눈 앞에 '번개'가 '성현'(압도적-이말은 성스럽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으로 눈앞에 보임)하므로써, 당신의 삶은 번개의 성스러운 시간과, 번개가 없는 속된 공관으로 나뉘어집니다. 

이점은 시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예컨데, 당신이 길을가는데 매일 저녁 10시에 옆사람이 번개에 맞아 죽었다면, 당신의 시간중에서도 저녁 10시만큼은 아주 특별하고 두려운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이 번개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녁10시마다 번개가 내리친 그 이후에는 저녁 10시를 매시간마다 두려워하게 될것입니다. 이 역시 시간이 '속된 시간'과 '성화된 시간'으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번개를 만나기 이전에 모든 시간은 분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이것은 당신의 종교를 뛰어넘어서 삶 자체를 관통하는 주술적 메세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랑의 경험이라고 하면, 당신이 그녀를 만나기 이전과 그녀를 만난 다음은 '성화된 시간'과 '속화된 시간'이 분리됩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매우 특별한 시간으로 성화되고, 그녀를 만나지 않는 시간은 성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속화된'시간으로 변합니다. 즉, 그녀를 만나기 이전의 시간은 당신에게 의미가 별로 없는, 일정한 '무정형'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일단 성화가 시작되면,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 '성스러운 무엇'이 자리잡게 됩니다. 예를들면, 그녀와 함께했던 장소, 이것은 모든 장소중에서 당신의 연애에 매우 특별한 장소가 될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장소보다 (적어도 당신에게만큼은) 성화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성스러움을(그녀와의 연애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 장소에 갈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제의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다른 장소들은 그녀와 함께한 장소들(성화된)보다 속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제의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의란, 프레이저가 말한데로(유감주술) 삶에서 신화적(종교적)인 에너지를 속화된 인간세계로 내림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의가 시작되는 시간은 아주 성스러운 시간으로서(신화의 현상이 인간의 세상에 그대로 투영되므로) 모든 속화된 시간속에서 '성현의 상징'을 모여주므로써 성화된 삶 속으로 인간을 던져놓습니다. 즉, 속화된 사람이 성현을 '궁극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엘리아데는 이 제의현상의 예로서 성체미사를 들고 있습니다.

성체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는 이미, 속화된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성찬으로 초대한다는, 성과 속을 분리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따라서 종소리가 울린 다음의 미사는 이미 '인간의 미사'가 아니라 성령이 거하는 자리고 '성화됩니다'(위에서 말씀드린 압도적인 성현의 경험으로 인하여 - 그것은 성경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기적이겠죠) 그리고 그 미사의 현상속에서 우린 밀떡이 예수님의 육체로, 포도주가 피로 변화는 성화의 현상을 '목격'합니다. 이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속의 세계에서 성의 세계로 진입했기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씩 성령을 모시는것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기둥으로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자리잡고 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종교체험을 하므로써, 그 성화된 삶을 갱신하게 되고, 그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이 미사가 없는 프로테스탄트를 저는 순수한 종교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종교적 제의가 빠져있는 장소이기때문입니다. 


엘리아데의 이 개념으로 말미암아 종교와 신화는 그야말로 '종교학, 신화학'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종교와 신화에 대한 깊이있고 폭넓은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엘리아데 역시 프로이트처럼 모든 현상을 '성과 속'으로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아데의 업적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아데와 프레이저를 이해한 상태에서 우리는 루카치와 프라이, 그리고 호이징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종교학적 개념들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학에 이러한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된느지를 목격할 수 있을것입니다.

 

  
 
 
 
 병장 노지훈 (2006/07/09 16:33:10)

각잡고 읽고 있습니다. 상당히 유용한 내용이네요. 
그런데 정말 변덕쟁이 황민우씨라니까~ 
제 생각에는 올해 안에 후딱하고 연재 끝내실 것 같은데... 

그런데 비감주술은 다음 편에 나오나요? 유감주술만 설명하셨잖아요.    
 
 
상병 황민우 (2006/07/09 17:37:58)

비감주술의 매커니즘은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하며 복잡합니다. 그리고 비감주술의 내용은 문학과 종교보다는 오컬트쪽에서 주로 다루기때문에 (흑마법이나, 녹마법, 에노키안 등) 여기서는 거론할 필요가 없어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대표적인것이 타로카드로 포츈텔링을 하는 점술에서 보여지는데, 타로카드의 주술적(혹은 마법적) 사용은, 우리가 경험한 사실과 우리 정신의 상태의 유감성(유사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칼 융이 점성술로 밝혀낸 아카식 레코드이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과 우주의 정신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되어있으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무의식'이라는 포탈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유감주술의 유사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 우주의 매커니즘을 사용하는 겁니다. 

또한, 정령이나 아스트랄계의 존재를 불러내는 초환 의식은 형이상학적인 정신체들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형상화'하는데, 이 방식 역시 초자아의 정신체들의 감응을 사용하므로 유감주술과는 커다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변덕이 죽끓듯 하는게 제 성격중 하나죠. 하하.. 언제 다시 중단할지도 몰라요. (먼산) 하여튼 필진의 무게는 덜었으니 더 편하게 쓰는걸지도.. 

덧. 엘리아데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종교적'입니다. 당신이 광적인 기독교신자든, 철저한 막시스트든, 문학애호가, 혹은 헤비메틀 매니아든, UFO 무브먼트를 믿은 우주의 가을이 다가오는것을 피부로 느끼든.. 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엘리아데의 명저 '샤머니즘'을 읽어보세요. 아주 재밌는 책입니다. 뭐 위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은 모두 '종교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설명했지만서도...    
 
 
상병 김현동 (2006/07/09 18:24:44)

아슷흐랄계의 존재 그 분(먼산).    
 
 
중위 정도환 (2006/07/10 13:19:08)

잘 읽었습니다. 근데 아프리카의 나바호 부족이 아니고 아메리카의 나바호 부족인것 같아요. 
히에로파니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틈틈히 동양적 히에로파니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명쾌하게 설명한 글을 읽고 감동했던 적이 있네요. 

근데, 샤머니즘을 읽을 때부터 계속 의문시되던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엘리아데는 '세상의 중심'이라든가, 신화 속의 동굴 탐험(?)등의 세계 속에 공통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하나의 신화적 구조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게 읽을때는 '그렇지.' 하고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인간의 밑바탕에 있는 시간이나 공간의 이해에 대한 면에서 완전히 다른 문화를 보면서 

'인간에게 공통된 신화적 구조가 존재하는가'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다음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상병 황민우 (2006/07/10 18:01:44)

정중위님// 그거 오타인거 알고 있는데 그냥 귀찮아서 써버린.. (먼산) 아메리카 나바호 부족 맞습니다. 정중위님이면 당연히 엘리아데의 '성과속'은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했어요. 

'세상의 중심'과 '동굴탐험'등에 대한 공통적 구조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면, 조금 더 깊이 있게 현상학을 공부하시는것도 도움이 될거에요. 왜냐면 엘리아데는 현상학을 인류학에 반영하였으니까요. 그리고 엘리아데가 말한 이러한 '공통구조'들은 다음에 등장할(?) 캠벨과 오든의 신화구조문학론에서 입증이 되며, 종교의 공통구조가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의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합니다. 특히 융심리학파가 규명한 '무의식과 신화의 관계'의 분석심리학은 이 분야에서 엘리아데에 버금가는 탁월한 업적을 쌓았죠. 

저는 그래서 엘리아데의 이런 공통신화견해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수긍하고 있습니다.    
 
 
 병장 노지훈 (2006/07/11 00:23:19)

우우, 어렵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상병 조주현 (2006/07/13 09:01:18)

어렵다.    
 
 
상병 민경국 (2006/07/17 02:10:21)

신화와 종교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성과 속'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현대 미학에서 다루는 '숭고'의 개념을 
다른 방향으로 풀어낸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참고할만한 책 이름들 많이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