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등병장 황민우 (2007-02-20 18:16:08, 조회수 : 2)
제목
[판의미로] 인간세계의 요정, 아르카디아로 귀환하다.
* 단상 하나 <미로>
미로는 고대부터 시간에 대한 가장 은밀한 상징으로 즐겨 사용되어 왔습니다. 분석심리학자인 데이빗 폰테너의 <상징의 비밀>에 의하면, 미로는 시계가 멎어있는 장소이고, 시간을 가둬버린, 그러니까 시간이 묶여서 멈춰진 영원한 장소라고 말합니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아스테리온의 집>>을 읽어보면 우리는 미로 안에서야말로 영원히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깨닫게 되는 존재의 유한함과 죽음에 직면한 고독을 감지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몇몇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는 미로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5세기 전후로 서유럽에 유입된 카톨릭 양식은 켈틱 양식과 합쳐져 켈틱 문양, 즉 올드 잉글리시Old English라 불리는 미로 모양의 복잡한 텍스타일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기하학적인 미로 도상 역시 집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시간을 가두어놓는 영원성의 공간으로 즐겨 사용되었죠. 종교회당은 시간을 초월하는 영성적인 장소이므로 미로가 그려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을 겁니다.
* 단상 둘 <동화童話 혹은 요정이야기Fairytales>
요정이야기Fairy Tale(주1)는 언제나 “옛날 옛적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납니다. 해피엔딩이죠. 구조주의 비평의 선구자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프로프는 <민담 형태론>에서 요정담Fairytale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평면적 시간 위에서 전개되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되 전후가 분명하지 않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동심적(同心的)인 시간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옛날 옛적에” 혹은 “어느날”이고, 사건이 해결되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갑자기 끝나버립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펼쳐지는 코커스Cocus 경주와 같죠.
* 단상으로부터 이어지는 <판의 미로>
왜 이 영화의 제목이 <판의 미로>일까요? 그리고 오필리아의 세가지 모험은 그 세계 밖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전쟁 이야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판의 미로>는 바로 요정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옛날 옛적에......”로 서막을 열고, “공주는 지하나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40년대 스페인 내전을 보여주면서 요정담과 리얼리즘을 이중적으로 병치시키고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 소녀인 오필리아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오필리아가 숲의 미로를 발견하면서, 그리고 그 미로에 얽힌 전설을 듣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아갑니다. 시간에 예속되어 있으며, 생이 다하면 모든 감정이 소멸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정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정나라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있는 총체적인 아르카디아Arcadia이고 그것은 그러니까 ‘완성된 세계Utopia’입니다. 완성된 세계는 초시간성을 낳고,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은 영원한 것처럼 보입니다. 옛날이야기 속 인물들은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아갑니다. 해피엔딩의 결말은 “주인공은 죽을 때 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죽을 때 까지’는 바로 미로 속에 갇혀있는 ‘영원한 행복’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인어공주>의 비극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슬픔 그 자체로 영원히 존속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정이야기의 세계입니다.
오필리아는 인간임과 동시에 요정나라 공주이기도 합니다. <판의 미로>는 현실과 요정계, 두 세계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오필리아를 통하여 이런 요정계의 영원성과 현실의 유한함 사이의 괴리를 날카롭게 그려내는 신화적 테마를 가진 독특한 영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미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며 그것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요정이야기는 모두 초시간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의 미로>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 그러니까 요정 이야기에 합류할 수 있는 - 에피소드들은 모두 미로에서 시작되며, 미로에 뿌리를 두고 퍼져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오필리아가 두 번째 모험에서 요정나라로 찾아갈 때 사용하는 분필이나, 어머니 카르멘의 병을 낫게 하는 만드라고라는 모두 미로의 주인인 판에게 받는 물건들이니까요. 미로는 인간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정이야기의 영원성을 믿는 오필리아만이 미로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미로의 초시간성과 요정이야기의 영원성은 작품 곳곳에 배치된 켈틱-올드잉글리시 문양과 관련하여 제목인 <미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되며, 이는 <판의 미로>가 시간에 대한 테마에 접근하고 있음을 암시해줍니다.
작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요정이야기는 초월적 시간 위에서 전개되고, 당연히 해피엔딩을 보장합니다.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J.R.R 톨킨의 제자이기도 했던 W.H 오든은 이런 해피엔딩을 보장하는 민담-요정이야기Fairy Tale의 특징을 가리켜 ‘행운 동화'라고 정의했습니다. 행운동화는 세계 자체가 은총으로 가득찬 당위적 세계이며 그 이야기 자체로 완전한 세상이 규정된다고 말합니다. 오필리아의 모험은 오든이 말한 행운동화의 여섯가지 서사에 따라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행운을 얻어 요정나라로 귀환하게 됩니다. (주2)
하지만 오필리아는 그러면서 카르멘의 딸이자, 메르세데스의 친구로서 인간세계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유한합니다. 그것은 존재의 유한함에 몸부림치고 삶을 열망하는 비극의 장입니다. 이 모든 비극의 탄생은, 인간이 초시간적 세계인 요정계를 망각했기 때문이고, 그런 불멸Immortal에서 떨어져나가 유한한Mortal존재임을 자인했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오필리아가 태어나지도 않은 (생을 부여받지 않아 작중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초시간적 인물인) 동생에게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험준하고 높은 절벽엔 마법의 장미가 피어있는데, 이 꽃을 꺾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도달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 장미를 꺾어보려 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대. 그래서 결국 시간이 흐르며 그 장미를 잊어버렸고, 사람은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대”라고 말합니다. 현실의 인간은 무한한 요정나라로 입성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낭만적 환상성과 이별했습니다. 근대의 인간은 신화를 거부했고, ‘거대 서사‘는 죽어버렸습니다. (주3)
오필리아의 의붓아버지는 그러한 근대적 인간성의 저주받은 운명을 보여주는 표상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죽음과 시간에 맞서 싸우려고 발버둥칩니다. 오필리아가 완전한 요정계에 안주하면서 시간에 대한 난제를 풀 필요가 없었음과 반대로, 시간과 죽음 앞에 던져진 인간이었던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현실의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불멸성Imortal이었습니다. 작품에서 그는 죽음을 극복하려하는 비극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면도날로 그어버리면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기도 하고, 전쟁 중 전사한 부친의 유품인 회중시계를 그렇게 애지중지합니다.
오필리아의 의붓아버지가 고장난 회중시계를 고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시간에게 삼켜져, 인간의 존재가 소멸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친의 죽음으로 인해 멈춰진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해야할 의무, 그러니까 유한한 인간이 유일하게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혈족 계승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시 돌아가는 시계를 자신의 또다른 자아인 아들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의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도 아들을 바라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메르세데스가 그에게 내려준 가장 가혹한 형벌이 아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계와 조상의 존재 자체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래서 환상계로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려는 오필리아를 용서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을 인간세계의 또다른 자아로서 시간을 대물림해주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시간에 속박당했기 때문에. 그가 사는 세계는 미로 안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개방된, 거대서사가 파괴된 근대의 참혹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그 세계에는 합류하려 하지 않았죠. 두 세계에 모두 몸담고 있는 오필리아는 계속해서 요정계의 진실들을 현실로 가져오려고 합니다. 어머니를 낫게 하는 만드라고라, 숲속에 숨어있는 요정들, 그리고 마법의 분필 등 처음에 오필리아 혼자 공유했던 환상적 진실들을 현실계로 하나 둘 끌어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잔혹한 인간세계에 의해 무참히 묵살되려 하고, 오필리아는 그것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그녀의 아버지와 현실-환상 사이에서 대결을 벌입니다. 딸이 미로에서 만드라고라를 가져와 어머니 침대맡에 놓으면, 아버지는 그것을 불살라버리고 의사를 부릅니다. 첫 번째 열쇠를 찾기 위해서 진흙투성이가 되면서 나무굴속으로 들어가면, 어른들은 그녀를 나무랍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이에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세 개의 열쇠를 모두 찾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지하나라로 돌아갑니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요정계의 환상과 비극적 현실이, 시간과 영원 그리고 불멸이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혈투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것은 아이와 어른이 벌이는 ‘현실’과 ‘환상’에 대한 투쟁이고, 총을 들고 피를 흘리는 참혹한 비극보다 더욱 처절하게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입니다.
* 관객들에게 던지는 현서의 질문 하나
오필리아는 과연 마지막에 죽어서 소멸해버린 걸까요, 아니면 요정나라로 돌아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어른이 되버린 여러분들이 이 영화에 담겨진 환상과 요정이야기의 진실성을 얼마나 납득하였느냐에 대한 판단에 달려있을 겁니다. 델 토로 감독도 그렇게 관객들에게 요정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사랑스런 주인공에게 ‘오필리아’라는 아이러니컬한 이름을 지어줬는지도 모릅니다.(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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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여기서 저는 동화童話라는 단어 대신에 요정이야기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동화는 키즈 문학Kids Literature이라 불리는 유럽 교양소설의 한 장르를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의역한 단어이고, 이 때 키즈문학의 상당수가 전설과 민담등 낭만주의 이전의 문학들을 모아놓은 민담(옛날이야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기 적합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동화童話라고 의역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의미로 너무 와전되어 사용되었고 키즈문학Kids Literature과의 경계가 이미 어지러워 졌기 때문에, 이 민담 본연적인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구비문학개설>(1988, 일조각)에서 정의한 ‘요정담Fairy Tale'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조금 친숙한 단어인 ’요정이야기‘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주2) 행운동화의 전형적 서사양식은 1) 돌연한 출발 -> 2)조력자의 도움 -> 3) 방해자의 출현 -> 4)주인공의 수난 -> 5)행운의 획득 -> 6)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민담의 전형적인 특성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주3)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 장 프랑수와 료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파편화된 자아 정체성을 문학적으로 복원하려 했던 리얼리즘문학, 즉 에픽Epic의 파괴와 노벨라Novella의 탄생을 말하는 루카치의 서사이론을 빌어와서, 현대에 “거대 서사는 죽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주4) 오필리아Ophilia는 셰익스피어의 극 <햄릿>에 등장하는 가장 비극적인 여주인공 이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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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음주에 동석이와 함께 환상문화 웹진을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1년을 끌어왔네요. 참 힘들었습니다. (웃음)
창간호의 주제는 '현실속에서 드러나는 환상에 의한 회복'이고, 첫번째 칼럼으로 올라갈 글의 대상은 얼마전 뜨거운 찬반열풍이 불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입니다. 동석이가 빠르면 이번주 내에 오픈을 한다고 해서 글을 하나 보내달라고 하기에, 예전에 써두었던 <판의 미로>에 대한 글을 바탕으로 하여 조금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풀어 써 보았습니다.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의 재탕)
물론 머릿속에서 꺼낸 내용을 쓴 거라 주석이나 자료가 조금 미약하긴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관람하였을때 느꼈던 핵심적인 부분들은 적당한 볼륨으로 담아놓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매주 지속적으로 음악, 소설, 영화, 공연 등 여러 주제를 가지고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예술'과 '문화'라는 매개를 가지고 생각할 거리를 올리는 것이 본 웹진의 목표이며, 1년에 한번 무크Mook지 형식의 앤솔로지도 발행할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동석이가 다섯명의 필진을 끌어들여 조금 규모있는 웹진을 만들어보자고 하였으나, 우리 둘 이외에는 마음을 같이할 사람이 없다는 좌절스런 한계에 부딪혀 그냥 우리 둘이 하기로 결정했어요.
오픈하면 사바넷 주소도 한번 올려볼게요.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단계가 되니 왠지 뿌듯하네요. (웃음)
주말에 정말 어렵게어렵게 글을 하나 썼는데, 그러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부담없이 글 쓴것도 오랜만이에요.
다음 달 안에 음악과 환상에 대한 칼럼을 하나 써야하는데, 여기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