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베스트-내글내생각] 토익으로부터의 가출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9-03-01 01:42:08, 조회: 435, 추천:1 

  토익으로부터의 가출
  2009. 3. 1, Minkiw


  1. 정말 글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극도로 피곤한데다, 감기약을 두알 먹고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등을 타고 도는 약기운과 함께 어질어질한 환각적 작용마저 느껴지는 터, 앉은채로 잠시만 집중을 놓으면 그대로 잠들 자신이 있다. 그러나 한글을 켠다. 왜, 모르겠다. 하기야 언제라고 이유가 있었나마는, 감정의 언저리에서 떠다니는 사고의 편린들을 표상화시키고 부정적 변증을 거치며 시뮬라르크를 거세하는 등의 저급한 습관의 관성에 힘입어 다시한번, 그러나 오늘은 이데아의 복제물이 아닌 시뮬라르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볼까 하고, 바로 이 환각적 상태에 힘입어서.

  하루종일 김광철의 글에 빠져 그를 사숙하며 허우적거렸다. 결여의 철학 속에서 非 오이디푸스화한, 아니 대놓고 앙띠反 오이디푸스를 외치는 들뢰즈를 힘입어 부분충동을 옹호하고, 궁극적으로 거세당한 1인치의 거시기를 가진 헤드윅을 변호하는 그 감각적 필체에 완전히 매료되어버렸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너무도 빈약했고, 하루이틀의 노력으로 해결될 리 없는 거대한 지적 결핍의 결과로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었다는 것. 그냥, 묘사된 문맥 안에서 의미를 유추하고 개념을 정립하는 정도의 노력으로 처지를 합리화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는데, 얄미운 것은 읽는 그것들이 아예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저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을, 눈이 움직이며 희미하게나마 언어가 관념의 안으로 흡수되기를 원하니 그의 친절한 유도등을 벗삼아 연착륙을 꿈꿀 수 있었다는 점일게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



  “이렇게 라캉은 처음부터 아리스토파네스의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오믈렛 메타포를 구성하면서 출발하고 있다. 즉 ‘상실된 근원적 전체성’에 대한 노스텔지어로서 리비도를 규정한다. 오믈렛의 세상 첫 경험이 바로 자기 신체부분(자궁/태반)의 상실이라는 결여이며 바로 이 결여 때문에 충동은 신체 부분의 등가물로 대상 a를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핍을 메우기 위한 목적론적 운동’이라는 플라톤의 에로스론의 기본구도는 상징계에서 작동하는 욕망의 운동을 기술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라캉에 의하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시니피앙에 의해 주체는 상징계 속에서 오이디푸스화한 주체로 태어난다. 우리의 현실은 상징계로 질서지어져 있다. 즉 상징계적 분절을 통해서만 지각은 현실의 특성을 획득한다. 이 상징계 안에서 욕망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이 욕망이 근본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대상 a’이다. 그러나 대상 a 는 마치 칸트의 물자체가 현상계 안에 나타날 수 없는 것처럼, 상징계 안에서 어떤 적극적인 방식으로도 나타날 수 없다. 실재 혹은 대상 a는 오로지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상징계 안에서 나타난다. 상징계 안에서는 대상 a가 자리를 차지할 시니피앙이 없기 때문이다“ - 헤드윅과 욕망의 문제, 김광철



  앞뒤 문맥 없이, 이 두 단락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 이것은 분명 실격이다. 도대체가 의미를 추정할 수 없는 철학적 개념들의 나열. ‘상실된 근원적 전체성에 대한 노스텔지어로서 리비도를 규정’한다니, 주어는 라캉인걸 알겠는데 목적어는? 아무리 명사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동어반복을 하는 가운데 조사들이 적당히 끼어들어 구색이나 맞춰주는 한국어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바로 직전의 문단에서 <향연>을 통해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을 제시하고, 갓난아기를 특수한 개념으로서의 오믈렛(l'Hpmmelette)으로 정의한다.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알껍데기’로서의 태반을 상실하는 순간, 성이 분화하지 않은 생명체는 신체적 보완물(즉, 태반)의 대체제로서 ‘대상 a’를 막연히 추구하게 되며, 그래서 이것은 철저하게 목적론적일 수밖에 없다는 환원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즉, 자칫 지루하거나 겉돌 수 있는 개념의 재차적인 부연설명을 통하여 어처구니 없는 문장을 자연스레 납득시키는 정도의 내공, 아, 역시 나는 칼럼에 글쓰면 안된다.

  문제의 두번째 문단.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시니피앙에 의해’ 시작부터 턱 막힌다. 그러니까, 시니피앙이라 함은 어떠한 의미를 함의하는 형상 그 자체, 세밀한 기의가 개입하기 전의 맹목적 대상, 그것이 곧 아버지이고, 상징계 속에서 오이디푸스화한 주체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어머니를 생애 첫 여성으로 느끼려다 아버지라는 강력한 정적이 있음을 인식하고, 내가 감히 물리적으로나 그 무엇으로나 넘어서지 못할 벽임을 깨닫고 좌절하고 마는 유아기적 발달단계, 그게 상징계 속에서.... 무슨 소리냐 도대체. 바로 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의 현실은 상징계로 질서지어져 있다. 상징계적 분절을 통해서만 지각은 현실의 특성을 획득.... 음, 상징계, 한컴사전에도 안 나오는데, 아마도 언어적으로 정의되는 약호화된 개념체계를 뜻하는 바가 아닐지. 그렇다면 실질적 행위나 현상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 내적 사고과정에서의 어떤 흐름을 의미할 가능성이 보다 높겠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규정되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곧바로 등장하는 현상계라는 반의어. 친절하다. 상징계 안에는 대상 a가 자리를 차지할 시니피앙이 없고 그래서 부정적 방식으로만 나타난단다. 음, 다음 문단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뭐 이런 식이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탐험이기는 한데, 암호들을 해독해 가며 한발씩 조심스레 내딛다 결국은 그 마지막에 이르러 해방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그 글 역시도 나와 별반 기표적 나이차이가 없는 또래가 작성했으리라는 지레짐작때문이 아닐까. 라캉의 원전을 보면서 같은 맥락에서의 모험을 했다면 아마도 그저 좌절감에 휩싸여 졸고 말았다거나 내지는, 방금 읽던 자리가 어딘지 삼초만에 까먹고 마는 신비한 체험을 했으리라. 중간자적 입장에서의 납득할만한 설명, 그것이 바로 그 글의 가치다.





  2. 주영준은 아예 대놓고 원전 읽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베버의 ‘윤리’를 접하며 자신이 느끼는 그 먹먹함을, 아니 내게 필요한 것은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과 ‘윤리’의 주제의식인데 “루터주의, 칼뱅주의, 메노파, 메서디스트파, 경건주의, 퀘이커교도 등 청교도 분파의 출현과 그 역사성, 공통점과 차이점, 종파간 대립, 종파와 권력과의 관계, 심지어 개신교 차원을 넘어서 힌두교와 유태교까지 들이대는 부분이 책 전체의 반정도를 차지하는 책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은 안그래도 어려울 판에 1987년 번역판다운 난잡하고 낡은 번역투 문장으로 가득. 아, 짜증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전을 읽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베버 - 관념론, 보수주의, 해석의 철학, 이 세 마디로 그를 규정하고 끝내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저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다. 그렇다면 해석본을 읽어도 되잖아? 물론 가능하지. 여전히 원전은 원전이고, 파편화된 양태 이상의 설명을 얻고자 한다면, 비록 자신의 이해가 지엽에 머무르고 말지라도 맛은 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관점에서 들이대보는 저돌성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고, 말이 쉽다. 책 네권을 동시에 펴놓고 몇달째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의 꼴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사농공상중 마지막으로 친다는 상대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고싶다. 뭐, 현대사회에서는 商大가 上大라고들 하는데, 시대에 맞는 유연한 실용적 가치들을 가르쳐주는 궁극적 지식의 터전이라고, 그러나 상대생으로서 보아서도 그건 순전히 개소리다.

  학교다니면서 배운 것들을 돌이켜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BCG Matrix의 X axis상에 들어갈 요소들을 고르시오. 마케팅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인구통계학적 요소는 무엇인가? Incoterms 물품인도조건 11개중 OOO는 무슨 조건인가? 차변과 대변을 대조하여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값을 쓰시오. A회사의 2007년 당기순이익은 얼마인가. 임상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노동효율의 증진방안을 논하시오.

  비판적 접근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단순 사실의 나열체 내지는 연산값. 그야말로 사고의 흐름을 조합하는 것과는 무관한 지식의 단편을 종합하는 과정. 나는 기억을 담는 통이 되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지젝, 라캉, 들뢰즈, 심지어는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리고 박민규, 김훈, 김애란, 혹은 우석훈, 진중권, 한윤형, 또는 코엘료, 오쿠다, 쇼조, 행여나 브로콜리너마저, 오지은, 갤럭시 익스프레스까지 - 이 모든 것들은 대학생활 내내 단 한번도 내 머리속에 들어온 적이 없는 키워드들의 집합체다. 어쩌다 길을 걷다 스쳐지나간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워낙 시끄럽고 요란하길래 진중권 칼럼 한번쯤 읽어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냥 그뿐이었다. 그 이상 알아볼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 기저부에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내게 그것은, 전혀 시급하지도 않았고, 체험적으로 보았을 때에 유용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토익이 더 급한 대학생활이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스물 한살의 내가 토익점수를 따서 써먹을데라고는 가투소 지원밖에는 없었으니까 사실 700만 넘기면 그 이상은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모를 분위기에 휩쓸려 파란 해커스토익을 뒤적이다가, 어느날 915점짜리 성적표를 땄다. 포만감. Incoterms 11개 조항을 싸그리 외운 덕에 A+을 맞은, 22번의 한학기 수업중 12번을 휴강해버린 대기록을 세운 불성실한 강사의 국제무역론은 기억속 하나의 A+로 남았을 뿐이다. 순전히 점수를 따기 위해서 소위 A폭격기로 불리던 <프랑스 문화의 이해> I, II에 들어갔고, 또 두개의 A+을 제조했다. 샤르트르에 대해서는 네이버 검색도 한번 안 해보고, 들뢰즈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한채, 까마득한 과거에 주워읽은 홍세화식 톨레랑스를 우려먹고 우려먹어 4.3 두개를 얻었다. 아니,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교수는 노동조합의 형성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 대학 나온 사람이, 취직이 안돼서 기웃거리다가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충분한 일자리에 취직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여덟시간씩 쌔-빠지게 일해야 따라갈까 한 일을 이 사람은 네시간, 다섯시간이면 끝낼 수가 있어. 그러고 남는 시간에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보니 어느날 구석진 이상한 사무실이 하나 눈에 들어오네. 여기 가니까 자기 인정도 해주고, 잘하면 돈도 더 받겠고, 이제 회사생활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가 생긴거예요.’

  수업 내용의 이해도와 수용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 시험이므로, 아주 당연하게 그 문제는 기말고사에 논술형으로 나왔다. 나는 썼다. 그가 말한대로. 그리고 또하나의 A+을 맞았다.

  그게 내 대학생활이다.





  3. 비로소 지식이 무엇인지, 머리속에서 사변이 어떻게 논리로 정립되고 다른 지식과 연계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중심부에는 책마을이 있었다. 이건 거대한 지적 자극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솔직해지자,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지식 그 자체를 향한 갈망, 사고 그 특유의 경쾌한 카타르시스, 글쓰기의 참된 기쁨이 여기에 있었다. 한 분야의 개념이 어떻게 다른 분야에 적용되어 사고 분석의 틀로 활용될 수 있는지 몸으로 겪으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고, 말로만 들었던, 그저 시험 답안을 채우기 위해 암기했던 짧은 개념들이 하나의 체계로 변모하여 다가오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내 머리속에 잠재되어 있었으되 어떤 특정한 단어로 정리되지 못했던 상징계의 개념들을, 같은 고민을 했던 다른 이들의 단어로 깨우치면서 압도적인 정서적 일체감과 함께 일종의 환희마저 느꼈다. 그동안 나는 왜 그토록 외면하고 살았는가. 내 생각을 대변하여 갑론을박하고 말해줄 수많은 이들이 여기에 있었는데, 그저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별 실생활에의 도움이 될것같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왔던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나는 공부했는가. 아니, 무엇을 공부했는가. 어차피 허물어지고 말 허망한 기술논의에 빠져 그것이 성립한 이유에 대한 물음은 간과한채 대학생활을 망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기에, 이제라도 그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다행스럽다. 나는 아직 학부생이니까. 주영준의 표현을 빌려, 대학원생의 안티테제로서, 그리고 광역학부제의 광풍 속에서 - 아직도 2년 이상의 여유를 가진 학부생이기에, 학부생적인, 제네럴한 공부를 해야 한다. 비록 경영학부라는 말도 안되는 독립단위를 세워 홀로 서있는 것처럼 상징계를 호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간 사회과학의 테두리 안에 있는 배우는 자로서, 나는 사회과학 전체에 대한 제네럴한 공부를 해야 한다. Incoterms 11개 조항같은 쓰잘데기 없는 단편적 사실들은 대학원을 가더라도 안 외워도 된다. 토익 900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만들어 놓은 그 점수가 어디 가지는 않을테니 - 아, 유효기간, 젠장, 만료됐다. - 지금이라도 본질적인 공부로 돌이킬 수 있는 심리적 여유로 삼으면 되는 것 아닌가.

  너무 오랫동안 유예하며 미뤄왔다. 알아야 할 것들, 배워야 할 것들을 경시한 채로 그러지 않아도 될것에 불필요한 관심을 집중시키며 공력을 낭비해왔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이다. 배움에의 길로 나를 전향적으로 던져넣고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로부터, 그 옛날의 ‘유레카’로부터 겸허하게 읽어나갈 것이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빈 깡통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자각하게 해준 김광철과 주영준과 송희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잠시간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을 인트라넷의 작은 동아리는 내 삶을 송두리채 바꿔놓고 말았다. 나는,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세상이 아닌 도서관 한구석의 볕이 잘 드는 자리를 택할 것이다. 그 따사로운 햇살이 나의 황무한 정신마저 밝혀주기를 갈망하면서.





  0. 뒤늦게 고백하겠다. 이것은, ‘쌍둥이 형제와 춤을 -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으로’의 속편으로 이어지는, 수용자적 입장에서의 나의 책마을 수기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4-21 10:45)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25:38 

 

병장 김도환 
  솔직히 도입부부터 중간까지는 아무리 이해해 보려해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시..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되나봐요. 몇번 더 읽어봐야 할 듯 합니다. 

아직 이 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아낸 것 같진 않지만 

『또한 비로소 깨달았다. 그동안 내 머리속에 잠재되어 있었으되 어떤 특정한 단어로 정리되지 못했던 상징계의 개념들을, 같은 고민을 했던 다른 이들의 단어로 깨우치면서 압도적인 정서적 일체감과 함께 일종의 환희마저 느꼈다.』 

라는 부분에서 너무나도 큰 공감을 얻었기에....일단 댓글을 달고 싶은 충동이... 2009-03-01
02:58:39
  

 

일병 김유현 
  1. 솔직하게 인정하자. 나는, 빈 깡통이다. 

2. "당연히, 이 것은 수기手記이다." 

3. "옳게 행동하라. 언제나 그러하듯이." 

4.. 그래서 내게 있어 책마을은 창조주의 원대한 시니피앙이다. 내가 이것을 만나게 된 것은 범우주적 필연의 극치이며, 곧 그의 따뜻한 손길 - 즉 십자가의 시니피에와 다름이 아니다. 이곳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수많은 글을 읽고 누군가의 삶과 조우했지만, 결국 나는 그 수많은 기표 속 일관된 하나의 기의를 보았을 뿐이다. 

5.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1&sn1=&divpage=1&category=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5 2009-03-01
07:32:50
  

 

병장 정병훈 
  음... 

지적 호기심에 대한 사람의 끝없는 욕심은 여기서도 볼 수 있군요. 흐흐흐 
책마을에서 가끔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가끔 책을 보며 깜짝 놀라죠. 제가 갖고 있는 지식의 깊이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거든요. 누군가는 노템으로 글을 써가는데, 그 글은 한편의 논문과도 같이 정확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그런 글들을 보면 난 뭐했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그들의 전문 분야인걸요. 물론 제 전문 분야에 대해서도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 

저도 민규씨와 같이 대학생활을 아주 잘 했죠. 크크크 B+ 2개에 나머지 올 A, A+. 
그러나 그건 단지 숫자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2년동안 배우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학과적 전문 지식을 저는 서술하거나, 논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1년의 학습으로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옳지 않지만, 1년동안의 배움으로 나타낼 수 있는 깊이도 보일 수 없는 저는 큰 실망감 속에 살고 있죠. 

그러나 시작은 지금부터입니다.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반드시 제 학과적 전문 지식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학과의 개론적 지식을 습득하는게 목표가 되겠습니다. 

낄낄낄... 토익점수 저 주세요. 2009-03-01
10:23:52
  

 

병장 이지훈 
  우선 전 토익, 토플네에 얹혀 살아 봐야겠어요. 그래야 '가출'이라는 것도 해보죠(?) 

흐흐 잘 봤어요. 요즘 저도 설탕 빨아먹고 난 뒤부터 다시 명예의전당 기웃거리고 있어요. 킁 다른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군요. 오랜만에 만난 현실세계라는 녀석에게 제대로 한 방 맞은 것 같군요. 패닉 그리고 패닉... 2009-03-01
15:25:30
  

 

상병 정근영 
  젠장- 
근 일주일동안 얼굴도 내비치지 않은 주제에, 잠시 와서 읽다가 감동먹고 갑니다. 
제가 쓰고 싶던 글이란, 이런 거였는데, 우오오오- (달려나간다) 

제가 책마을에서 느끼고 얻은 것이 민규형과 그리 다르지 않음에 감사하며(비록 글이라는 불완전한 매개체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을지라도) 
그 발걸음에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가지로- 2009-03-01
16:36:08
  

 

상병 정근영 
  덧 - 
이 글이 기폭제가 되어 3~4일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뿐, 차마 펜을 들지 못했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9-03-01
16:39:06
  

 

병장 김민규 
  도환/ 저 역시도, 저놈의 문단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인쇄해놓고 하루종일 고민했더랍니다. 덕분에 말랑말랑한 대뇌의 움직임을 촉진할 수는 있었다만, 아우. 원문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명예의전당 참조) 

중요한 것은 그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저기에서 발굴해낸 '상징계' 와 '현상계'라는 두 개의 단어겠지요. 그야말로 몽매한 저의 개념체계를 깨우쳐준 약호들인 것을. 나의 막힌 말을 대신해주는듯 하여,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더 읽고, 쓰고, 대화해가야 할 겁니다. 거대한 결핍속에서 허둥대는 스스로를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유현/ 탁월한 유도등, 따뜻한 공감, 그리고 친절한 힌트까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를 확인해갔으면 합니다. 유현님의 <장미의 이름>을 더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덕분에 외롭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2009-03-01
20:52:02
  

 

병장 김민규 
  병훈/ 어떤 말로 이 배고픔을 표현해야 진실되게 전해질 수 있을까요. 참된 지식에 대한 욕망,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대한 허무감, 그리고 이제야 발견하게 된 저 먼 대양의 푯대- 얼핏 호기심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는 절박한 목마름이며 기아속 허기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반찬만으로 허기를 다 채울 수가 없어요.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확고한 배움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쌓은 기술론적 토대는, 자칫 사람을 우물에 가둬버릴 위험을 내포한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맹신이고 나무에 집중하는 협소한 시야일 수 있으리라는 겁니다. 조화되어야겠지요. 어느 한쪽의 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고, '가출'이라 표현했듯 언젠가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할 겁니다. 

아직은 아니예요.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지훈/ 당면한 입장이 다르고 현실적 상황이 다르니 어느 하나가 답이 될 수 없을겁니다. 게다가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 저의 이런 '가출'이야말로 무모하고 어리석고 물정 모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모르겠습니다 다소 배가 부르니 할 수 있는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막상 그 안은 텅 비어 썩고 있는것을, 어떻게 간과하고 내버려둘 수가 있겠습니까. 스스로가 안타까워서라도 여기서 잠시 턴-을 해보렵니다. 

그나저나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명예의전당의 저 수많은 주제중 열개라도 고민해봐야 할텐데요. 떠드는 것에만 익숙하여 지금까지 미루어왔더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이런. 2009-03-01
21:00:02
  

 

병장 김민규 
  근영/ 같은 배경,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근영씨이기에 더욱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저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으리라는, '실제로' 우리 배움의 모습이 그러해왔을 거라는 지레짐작. 어쩌면 저야말로 무의식중에 근영씨의 얼개로부터 모티브를 얻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걸 '초월적 경험론'이라고 하나. 초록색이 있기까지에는 그 안에 노란색과 파란색이 있었을 것이지만, 실제로 인지되지도 않고 경험되지도 않는다는 그런.... 

로욜라 1관 3층 오른쪽 끝자리에 터를 잡으려고 해요. 흐흐, 이제야 얼굴도 아니까, 학교에서 종종 봐요. 아, 8월에 떠나지만 않는다면 가끔 만나 토론도 하고, 공부도, 술도 한번씩 할텐데, 아쉽네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니까. 

기다릴게요. 근영씨의 또다른 글을. 고마워요. 2009-03-01
21:05:47
  

 

병장 이동열 
  으음... 점점 민규님의 글이 낯설어집니다. 난독증인가- 프린트해서 보든지 해야겠어요. 아마 그 이유는 저는 멈추어있는데, 민규님은 달려나가고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가 2학년 1학기때 부터 전공과는 무관한 수업들을 제법 들었습니다. 학점을 잘 준다는 과목을 들은것도 아니고, 제가 자신있는 분야의 과목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사회학의 이해, 문학의 이해 대략 이런 과목들이지요. 물론 학점은 조금 떨어졌습니다.(조금입니다. 조금. 낄낄)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여기에서 저는 콩트, 뒤르켕, 프로이트, 라캉, 들뢰즈를 만날 수는 있었으니깐요.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마냥 허우적거리면서도 뭔가 즐거웠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뭔가 배워간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 책마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2학년 1학기때부터 시작된 공부를 이어나갈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지요. 다행이예요. 그리고 기적입니다. 이곳을 그리고 당신을 그리고 여러분을 만났다는 것은(웃음) 2009-03-02
09:51:56
  

 

병장 김민규 
  동열/ '극도로 피곤한데다, 감기약을 두알 먹고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났'던 상태에서 깨작 깨작 갈겨서 더 그렇겠지요. 막히는 부분은 저 병든 닭의 잠꼬대 때문이겠거니- 하며 가볍게 스킵하시면 될 일입니다. 허허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해도, 수업으로서 그들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복학하는 3학년은 저쪽 학교에 있을테니 규정상의 문제때문이라도 전공과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고, 그러고 나면 4학년 1년은 그자체로 괜시리 바쁘기도 하겠거니와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해 이런저런 과목들을 벌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다행입니다. 

관심에 의해 선택한 것이 의무로 변형되는순간 순수한 의미에서의 지적 욕구는 망가지고 마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해왔지요. 그저 틈틈이,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동안, 그리고 타지에서라도 조용히 읽어 나갈 것이고, 그 과정을 시즌2와 함께 나눌겁니다. 혹은 블로깅이 될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 - 그리고 그것을 비로소 추구하게 되었다는 이 혁명적 변화가 아닐지요. 

정말로, 기적입니다. 이 까마득한 생활속 당신을, 그리고 여러분을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요. 2009-03-02
12:03:14
  

 

병장 이동열 
  민규/ 제가 관심에 의해 선택한 것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의무로 만든 것은 말 그대로 배움에 대해 의무감을 부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저 자신이 굉장히 유혹에 약한지라 여기저기 흔들리기가 쉬워 하지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기초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나아간다는 것에도 어느정도 두려움이 있었구요.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어느정도 기초를 잡은 상태에서 홀로 설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 듭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조금씩 쌓아올려봐야지요(웃음) 혹여 흔들리더라도 이제 옆에 기댈 사람들이 생긴 것같아 안도감도 들구요. 히히 2009-03-02
13:52:33
  

 

병장 안재현 
  제가 멍청한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난독증일까요...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감되는 이느낌은 또한 무엇일까요? 머리속엔 이미 물음표로 도배되었답니다 2009-03-03
01:06:20
  

 

병장 김민규 
  동열/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열심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 흐흐, 저는 동열님과의 대화에 기대를 걸어 볼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무엇부터 읽어볼까요. 

이번 출타때는, 사상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까 해요. 이상하게 입궁 이후로는 발걸음이 잘 닿지 않았었는데 금기를 깨 봐야죠. 아, 소모적인 자리들을 만들고 또 만들며 자위하는 식의 설탕, 뭐 지금까지 단 한번의 예외없이 그런 식으로 보내기야 했었지만, 이제야 언제까지고 밖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요. 곧 그것이 퇴궐 후의 나의 생활의 모습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시도해봐야겠지요. 

재현/ 첫번째 상심은 저의 더러운 글쓰기때문에 일어난 것이겠고, 난독증의 의문은 발췌한 글이 애초부터 워낙 무거웠던 까닭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을 읽어 공감해주신다니 이야말로 싸구려 끄적임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일 터, 가득한 물음표는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통해서 해결해 보도록 하지요. 흐흐흐 2009-03-03
05:49:26
  

 

상병 정근영 
  민규 / 아, 새삼 민규형과 저를 가로막고 있는 7개월의 시간이 아쉬워지는군요. 8월이면 떠나신다니, 캠퍼스에서 마주할 날은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은데 또 막상 그때쯤되면 우리들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진득하니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은 시간도 마땅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아우.. 2009-03-03
09:07:17
  

 

상병 김요셉 
  빈깡통이 뭐 어때서요.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리고 박민규, 김훈, 김애란, 혹은 우석훈, 진중권, 한윤형, 또는 코엘료, 오쿠다, 쇼조, 행여나 브로콜리너마저, 오지은, 갤럭시 익스프레스까지- 와 함께한 대학생활 덕분에, 
학고를 한 번 얻었고, 2.0은 넘으나 3.0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점을 두 번 얻었었지요. 

빈깡통으로 살아봅시다. 흐흐흐 2009-03-03
10:22:45
  

 

병장 김민규 
  근영/ 뭘 미리부터 걱정해요, 흐흐. 아쉬운 마음때문에라도 현재에 더욱 충실하면 되겠지요.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 봅시다. 퇴궐이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부정할 수가 없는데, 궁이 곧 이러한 만남과 교류를 만들어준 본질적 환경이라는 아이러니가 바로 그래야 할 이유를 입증해요. 

시즌2의 방향이 잡힘에 따라서 슬슬 움직여보려구요. 차근차근, 나름의 지식정보체계를 만들어 갈 겁니다. 히죽- 

요셉/ 어헝헝, 푸하핫 
아무래도 깡통 팔아서 공병대금이나 받아먹고 사는것이 현실적 삶의 자세인지도? 에라, 몰라요. 굶을지언정 넝마주이는 거절입니다. 못먹어도 쓰리고. 낄낄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