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꽤나 힘들다. 어쨌든 논의가 어긋나니까, 토론이 붙는 거니까. 게다가 상당수의 경우에서는 논지조차 서로 이해 못하면서 토론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자신의 의견을 성심껏 믿기 때문에 납득시키고자, 최소한 자신의 의견이 지지 않길 원하기 때문에 토론을 하는 것인데 논지조차 서로 이해 못하고 자기 말만 하는 경우에는 상호가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 논의가 짜증스러워지는 가장 흔한 이유다. 

논의를 보다 생산적으로 해낸다는 것은, 논의의 과정에서 서로가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고 논리의 구조를 보다 완벽히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적이지만 실제로 거의 나타나기 힘든 유형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한 쪽이 자신의 부족했던 논리를 깨닫고 다른 쪽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게 될 수만 있어도 생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대놓고 말한다면, 누구 말마따나 권총을 손에 들고 상대의 안면에 쏴버리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의 논의가 계속 어긋나는 이유는 논리의 부정합 때문인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애초에 서로의 논리가 기반한 맨 아래 사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설명해낼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욕망에서 차이를 빚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이데올로기적 바탕에 논의의 차이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논의가 전개되기 때문에, 논리의 대립만으로는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다. 서로가 자신의 바탕 위에서는 나름대로 완벽한 논리를 세워놓았는데 왜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질 않는 것인지 이해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따라서 논의를 하는 도중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현상을 목도했다면, 우선 상대방과 나의 욕망을 분석해낼 필요가 있다. 나는 모두의 권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데 다른 상대방은 권위주의적 사유로 효율성을 중시하고 있다면 애초에 논의는 그 지점부터 시작해야한다. 즉,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보다 심층적 욕망인 행복의 개념 규정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이데올로기적 분석을 통했을 때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이는 논의할 필요를 박탈한다. 논의를 통해 얻을 것은 신경질이요 잃을 것은 참을성뿐이니까. 

그러나 그런 심층적인 욕구는 유사하나 논의가 좁혀지지 않는 현상은 또한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추상적 어휘의 개념규정의 차이가 그렇다. 문예를 멋들어진 고전투의 문학작품이나 클래식 연주로만 한정지어 생각하는 이와, 임수정양의 한스러운 표정연기까지를 문예로 생각하는 내가 개념 규정 없이 논의했을 경우 의론은 평행선을 달리기 마련이다. 논의가 평행선을 긋는데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다면, 개념 규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서도 논의가 평행을 달린다면, 이 다음엔 자신의 논리적 능력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단순한 오류로서 서로의 의견이 납득할 수 없는 논리적 차이를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둘 중 한명의 논리적 능력이 부족하여, 납득할만한 이데올로기적 기반 위에서 세워진 논리 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논의의 매너에 입각해, 이 경우 자신의 논리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논의를 조금 늦추는 것이 따라서 옳을 수 있다. 자신의 논리를 점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장 적합하며, 이때 논의를 잠시 끊고서 진행되는 논의를 정리하고 자신의 논리를 통합하여 일괄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논의에 따라 변동한 자신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부족한 부분, 결함이 있는 부분이 보다 명확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리 과정을 거쳤는데도 논의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다면, 논의를 접어라. 상대의 논리가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고등한 것이거나 상대가 개념이 없을 확률이 높다. 이 경우 당신이 논의를 통해 배울 것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폐관하고 수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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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이글루 블로그에 거주하는 여러 사람들이 작통권에 대해 논의하는 것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나 자신은 신분이 신분인 이상, 그다지 끼어들지는 않았습니다만,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지요. 논의는 지속적으로 파행으로 치달았고, 그럼에도 토론이 아직 끊기지 않는 것은 아마 논의의 일방인 한 사람의 인내와 성실함,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무지함 덕분일 것 같습니다. 

바깥 사람들 논의를 주욱 훑어보면서 생각한 건, 뭐랄까, 역시 개와 고양이는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어요.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치켜드는데 고양이는 그걸 싸우자는 걸로 받아들인다던가. 언제나 그렇지만, 화법의 차이는 치명적이죠. 군국주의라는 걸, 보통 진보 계통의 세례를 좀 받은 계열의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광의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사유의 틀 위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의미로 군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죠. (병영사회라거나) 뭐 그런 식의 논의들이랄까. 

이글루 내에서 세부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라면 다 읽어는 봤고, 색다른 얘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만, 사실 뭐 이 주제가 까질 것 다 까졌고, 더 나올 게 없다는 점에서 별 수 없다고는 생각했지요. 뭐 대충 그렇습니다. 중요한 깨달음은 화법의 차이일 뿐이고, 사람들은 그 '차이'를 미리 일찌감치 설명해둔 다른 부연들은 보통 읽지 않지요. 그렇기에 또 다른 어휘를 개발해서 말하는 태도가 아마도 필요한 모양이고, 혹은 읽거나 내 의미를 강제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출 필요가 있을테지요. 

사전, 의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씁쓸했습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사전에 나오지 않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며, 너 혼자의 멋대로 발언일 뿐이고 거기에 의미를 우리가 두는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지적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최소한 내가 논의에 끼어 말할 때에는, 의미를 확장할 슬롯은 항상 남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알지 못하는 저기 어딘가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방식의 담론이 형성되어 있을 수 있을테고, 그렇게 기상천외하거나 강렬한 방식이라면 그 기틀을 이루는 단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던 것과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꽤나 높으니까요. 

권력, 이라는 단어를 정의함에 있어서 행정학, 정치학, 사회학, 경영학, 국문학, 사학, 언론학, 그리고 일반인들은 제각기 꽤나 다른 지점을 지목합니다. 조직 내 상하 관계에서 초래하는 명령권을 말한다면 행정학일테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을 규정할 수 있는 힘에 주목한다면 정치학일테지요. 타인이 원하지 않는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 이라는 식으로 보다 추상적인 개념에 중심을 둔다면 사회학이고, 기업이나 부서 내에서의 선택권과 사조직 내에서의 결정권을 혼재한 복합적인 개념에 치중한다면 경영학입니다. 왕조나 민주제 등 정치권력에 집중한다면 사학일 가능성이 높고, 정치인과 정부로부터 야기되는 압력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를 지적하려 한다면 언론학에서 권력을 보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전에서 말하는 권력의 규정을 일부 담고 있는 동시에 서로간에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지요. 

원래 그렇습니다. 학문들은 제각기 특성에 따라서 기존의 단어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최소한의 의미만 살려둔 채로 어마어마하게 다른 방식으로 키워나가기도 하지요. 보통 이슈에 대한 토론들은 그런 사회과학의 제 분야들이 혼재되어 거론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단어에 대한 규정성은 어떤 토론에서든 중요한 절차여야 합니다. 미리, 자신은 이 단어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말하고 넘어가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라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절차를 무시한 상대가 있다고 해서, 그걸 구태여 내가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한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학술적 기반을(혹은 예지를) 바탕으로 사고하고 있을 확률이 높고, 따라서 그의 논리는 나의 사유에 큰 보탬이 될 수 있겠죠. 우선은 듣고자 해야할테고, 그것은 논의를 위해서나 토론자 양방을 위해 언제나 도움이 되는 태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적합한 태도란 '당신이 말한 논리는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이러저러하게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뭐뭐 어휘는 이러저러하므로 적합하지 않아보입니다. 당신이 어떤 이유로 그런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