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풀 전쟁. 
 
 
 
 
그러니까 입대하기 전에, 항상 이맘때쯤 되면 내가 과수원에서 전담적으로 하던 일이 하나 생긴다. 지금은 내가 그 짓을 할 시간이 안되서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다름아닌 토끼풀의 개체 조사와 토끼풀 종자의 파종, 그리고 옮겨 심기라는, 분명 다른 사람 눈에는 '저짓 왜하냐?'라는 생각이 드는 행동뿐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집에 있어서도, 그리고 전공에 있어서도 분명 의미가 있는 행동이다.

일단 토끼풀의 특징으로는 왠만한 잡초보다도 억센 생명력에 있다. 사실 왠만한 잡초의 경우, 한번 베어버리면 다시 원상복구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이상 줄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 토끼풀이라는 괴물은, 아무리 뽑고 기계로 갈아버린다 해도 일주일이면 예전의 영토를 고스란히 수복해 버린다. 심지어는 아예 땅을 갈아 엎어도,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버리는 기현상을 보여준다. 당연히 토끼풀을 재래전 수단을 동원하여 없앤다는 우리집 작전계획은 실행 한달만에 파기되어버렸다.

재래식 수단인 낫과 제초기, 그리고 트랙터의 무식한 진격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남은건 흔히들 NBC라 불리우는 화생방전뿐이다. 그런데 현행 법규상 방사능전을 펼칠수는 없는 노릇. 만약 토끼풀 없앤다고 방사능 물질 들고 다니는건 IAEA에서 경악을 할 일일뿐만 아니라 빈대 잡기 위해 집에 불지르는 꼴이요, 차라리 로또에 당첨되어 토끼풀이 안자라는곳에 새로 과수원을 장만하는것이 더더욱 쉬운 일이요, 더 일리있는 말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방사능전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 다음으로 추진된건 값싸고 효과만점이라고 알려진 화학전.

화학전을 위해 투입된 '식물전멸제초제'인 그XX손은 우리 인간에게 비유하자면 신경작용제인 사린에 비유할수 있을만큼, 식물에게 치명적인 화학약품이다. 일단 최고의 장점은 약 몇방울만 식물에 닿으면 세포막이 부서지면서 싸그리 죽는다는 점. 물론 실수로 나무에 뿌려버리면 나무가 죽기 때문에, 약을 뿌리는데 엄청나게 조심해야 한다. 만약 자칫 잘못하여 '흙을 통해서 흡수될수 있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을 할 수도 있는데, 걱정 마시라. 그XX손은 점토의 빈공간에 흡착되어 고정되어버려진 다음, 천천히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어버리는 기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파괴력때문에, 지금은 대량살상무기로 지명되어, 왠만한 농약사에서 팔지 않는 금기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때마침 집에 저 그XX손이 한병 있었던지라, 그걸 적당량 혼합을 해서 토끼풀 인근지역에 처절하게 뿌렸다. 물론 뿌리는건 매우 조심스레 이루어졌고, 주변지역에는 그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배나무 하나가 다량 노출되어 죽어버렸지만, 다행히도 그 배나무는 비실비실한 '도태대상'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혼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러 내년에 베어넘길거, 올해 넘길수 있어서 더 잘되었다는 말을 들을수 있었다. 물론 도끼질과 톱질은 내가 해야 했다.

그런데 얼라리요. 뿌린지 세시간쯤 지나서 잎이 푸석푸석해진거까진 좋은데,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이놈의 토끼풀은 죽을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약의 효능을 의심할수 있겠지만, 저 그XX손이라는 약은 뿌린지 다섯시간이 지나면 식물의 80%가 고사해 버린다. 그 커다란 배나무가 이틀만에 죽었는데, 코딱지만한 토끼풀이 이주일이 넘어도 죽질 않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토끼풀에 다시한번 그XX손을 뿌리고, Before샘플과 뿌린지 하루 지난 샘플, 그리고 뿌린지 며칠이 지난 샘플을 가져간 다음, 대학교 실험실 조교와 싸바싸바를 한 뒤 샘플을 현미경에 비춰봤다.
결과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이 토끼풀이라는 괴물은, 약을 얻어맏은 부위가 하얗게 타들어가더니, 거기서 반응이 멈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 부분이 천천히 회복되더니, 한달정도 지나자 아예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이른바 '저항성'까지 완벽하게 갖춰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건 생물학전뿐이었다. 과거 미국인들이 프런티어 시대를 지낼 당시, 인디언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모포를 던져서 천연두를 퍼트리고, 태평양전쟁당시 일본인들이 페스트를 사용했던것처럼, 우리도 그런 수단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선택된 존재중 하나가 바로 토끼였다. 그러나 이 토끼라는 존재는 무용지물이었다. 도통 토끼풀을 안먹는것이다. 오히러 다른 잡초를 뜯어먹으면 뜯어먹지 토끼풀은 계속 거부하는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토끼 대신 다른 존재를 물색하기로 했다. 마침 옆집에서 소를 키우길래, 소를 잠시 빌려다가 토끼풀밭에 놔뒀다. 하지만 소의 신장과 소가 좋아하는 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이 방법은 당연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도 황당해서, 곤충학을 전공하는 친구의 도움을 얻어, 토끼풀을 생활터전으로 잡는 곤충을 뽑기로 했다. 그런데 어라. 이상하게 토끼풀을 주로 먹는 곤충은 몇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선호도를 조사해보니 토끼풀은 인기도가 최악임에 분명했다.

이쯤 되니, 토끼풀이 어떤놈이길래 저렇게 엽기적으로 행동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토끼풀에 대한 자료를 몇가지 조사를 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행동은 그야말로 삽질이었다는걸 알수 있었다.
일단 토끼풀은 나무와 거의 경쟁을 하지 않는 품종이다. 나무의 양분을 가로채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토끼풀이 가져가는 양분과, 나무가 가져가는 양분의 내용은 분명 다르고, 그리고 위치 또한 다르다. 정기적으로 퇴비만 소량 뿌려준다면, 이 둘이 싸울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토끼풀은 콩과 식물이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를 키우는 습성이 있는데, 이 박테리아는 공기중의 질소를 흡수하여 땅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화학비료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이다.

화학비료가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생태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한다. 일단 토양이 계속 중성으로 유지가 가능하며, 환경오염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중 하나인 청색증(혈액순환계통에 장애가 오는 질환)의 원인을 차단할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과도한 질소계 이온은 청색증을 유발시키고, 저런 경우가 발생되는 대부분은 바로 저 화학비료때문이니까. 그리고 토끼풀이 만든 질소계 이온은 다른 양분과는 달리, 그대로 나무가 양분을 섭취하는 영역으로 내려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딱 자연계가 처리할수 있는 양 만큼.

이걸로 끝나면 그다지 재미가 없을수 있다. 토끼풀은 땅 아래쪽에 낮게 까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표토의 손실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표토가 소실된다는건, 쓸모있는 땅이 척박한 땅이 된다는 뜻과 동일하다. 수백밀리미터의 폭우가 내려도, 토끼풀이 있으면 빗방울이 표토에 피해를 주지 못한채 흘려내려가 버린다. 덤으로 촘촘한 뿌리는 이런 표토를 더 꽉 잡아주는 역할까지 해버린다.

그리고 저런 뿌리의 배치는 다른 잡초를 억제하는데 크나큰 효과를 발휘한다. 일단 싹이 올라와야 하는데, 싹이 올라왔다 싶으면 그 주변을 토끼풀의 줄기와 뿌리가 억세게 조이는것이다. 당연히 양분공급이 끊기다시피한 잡초의 싹은 그대로 말라죽을수밖에 없다. 설사 싹이 토끼풀을 뎔 올라온다 하더라도, 토끼풀은 자신은 면역이 된 성장 억제 폐로몬을 주변에 뿌려버린다. 쉽게 말하자면, 다른 잡초는 토끼풀 한가운데 자랄 생각도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저러한 전후사정을 알게된 직후, 우리집은 공식적으로 토끼풀 전쟁을 종식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토끼풀들의 거주지 이전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토끼풀의 거주지 조사와, 거주 적합지에 대한 이주 작업을 함과 동시에, 저런 파괴적인 존재들이 과수원 바깥으로 이탈하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 매우 효과적인 물리적 방벽들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일단 과수원 제초 회수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사무실 앞 화단에 토끼풀이 올라오고 있다. 이미 잦은 제초로 제구실을 못하게 되어, 빨간 흙을 내보이는 잔디 대신, 토끼풀로 화단을 뒤덮어 놓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토끼풀의 억센 생명력은 최소한 여자를 사귀는것처럼 세심함이 필요한 잔디보다는 관리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제초를 하면서 뿌리가 끊어질까 노심초사 할 일도 없어질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주적에는 토끼풀이 올라와 있고, 오늘도 몇명은 토끼풀을 색출하기 위해 이래저래 노력중이다. 

  
 
 
 
병장 김희곤 (2006/05/24 13:53:55)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그리고 군대의 위대함에도~!    
 
 
병장 김동석 (2006/05/24 17:31:27)

조용준님, 물이 오르셨군요. 이번 칼럼은 감동입니다.    
 
 
상병 조주현 (2006/05/24 17:40:14)

브라보!    
 
 
상병 황민우 (2006/05/24 17:53:26)

풀이눕는다. 

김수영의 이 시가 생각나네요. (웃음)    
 
 
병장 조용준 (2006/05/24 18:28:25)

희곤// 제가 이래서 생물학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전역날짜는 기다려지는걸까요. 
동석// 아직 물은 안올랐습니다.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 둘게요. 6월 초순에는 글쓰기 힘들어요. 
주현// 우후후. 주현님의 맛깔스러운 글. 기대하고 있을게요. 
민우// 풀은 누워도 다시 일어나죠. 그리고 도깨비건은 우스갯소리로 한거에요(웃음)    
 
 
병장 김희곤 (2006/05/24 22:20:31)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을 계속 하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전역날은 안보이니까요.(웃음) 

제가 물리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토끼풀의 유전자의 결합을 유도하는 전자들의 움직임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웃음)    
 
 
일병 이건룡 (2006/05/25 08:37:45)

일생 딱 한번 본 중국의 호태왕릉의 주위의 조경에 감작 놀랐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 주위에 잔디를 깔아 놓는데 이곳에서는 토끼풀을 깔아 놓더군요. 당시 왜 이렇게 조성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토끼풀만의 효험이 있나?' 인상만 가지고 의문은 중국에 남겨 놓았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 군요. 제발 잔디 깔돈 아껴 문화 보존에 힘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병장 박진우 (2006/05/25 11:42:33)

일전에 덕수궁 잔디밭에 잔디와 함께 잔뜩 깔려있던 토끼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던 때가 생각나네요.    
 
 
병장 주영준 (2006/05/25 14:24:30)

그야말로 브라보. 늦게 읽어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은 정도입니다.    
 
 
 병장 노지훈 (2006/05/25 19:22:38)

토끼풀이 어떻게 생겼더라... 이놈의 무관심(퍽)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