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와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군대에 오면, 지금껏 살아오며 맺었던 수많은 대인관계가, 오직 가족과 타인으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가족과 타인이라.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가 타인이라는 소리였다. 지금껏 우정이니 뭐니 했던 친구들, 술마시며 아 형이 최고니 누나가 최고니 만세를 불렀던 선배들, 삐약대는 꼴 보고 싶어 밥 사주었던 후배들. 모두 모두 타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감했다. 농담인줄만 알았던 그 말이. 나에게 실감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그나큰 괴로움이었다. 씁쓸함이었다. 아아. 그래. 당신들은 모두 타인이었구나. 내가 잘못알고 있었어. 무엇을 하더라도 가족들이 내게 해주는 것, 내가 가족들에게 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가족과 차별화 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설령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고 한들 소용이 없었다.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멀어지는 것은 그들이었으니까. 어떠한 부담감으로 나를 대하고, 의무로서 대하는 것들이 같잖았다. 모두 우스웠다. 이것은 다만 나 개인의 문제일까. 나는 그토록 대인관계를 잘못 정립했던 것일까.
그러나, 글의 머리에 두었던 저 문장. 가족과 타인으로 나뉘는 인간관계가, 나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그 말을 들었던 이들의 가슴을 울렸었기에, 나는 나만이 해당되는 예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더 씁쓸해진다.

당시엔, 참 많이도 외로웠다. 살면서 이따금 느끼는 외로움과는 질적으로 틀린 어떤 외로움이었다. 바들바들 떨만큼, 인생은 외로운 것만 같았다. 내게 외로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전화와 편지. 그리고 휴가를 나갔을 때 만나는 사람들. 접촉은 잦더라도, 그것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접촉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그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만 같았다. 설령 나의 착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느끼는 바는 진실일 테니까. 그것은 나의 문제니까. 결국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문제일 터였다.
그런 어둠들을 나는 어떻게 몰아냈던 것일까. 나는 이 2년이라는 군생활 중에서, 어찌하여 외로움을 체감하였고, 또 그것을 버리게 되었을까. 이 짧은 시간동안. 고작해야 2년이란 시간 동안, 타인의 의미는 내게서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의 법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약해질 수는 없었으므로, 홀로 자는 침낭 속이 무서울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나를 못참고, 생존을 위해 강인해 졌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그렇게 강인함은 체념을 대변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차피 타인은 타인으로 맺어지기에, 나도 타인들에게 타인임을 안다. 그것은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체념의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거야. 우리는 타인이니까. 나는 타인임을 깨달았기에 슬펐고, 다시, 타인임을 깨달았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후의 타인은 다르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부정적인 어감이 다소 실린 앞의 타인은, 나에게서 제외된, 나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었다면, 후자의 타인은, 나를 이해할 가능성이 있는 타인으로 돌변한 것이다. 똑같은 어휘이지만, 그것은 이만큼이나 다르다. 지구에서 바라보기에 똑같은 별이 두개 빛나더라도 그것이 몇억광년 떨어진 사이인 것처럼.
나는, 고독에 빠져, 술렁일때와 달리, 타인에게 생명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 만큼이나, 타자의 몫이며, 나의 몫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그들을 품어야 한다. 내가 가능성을 열어주고, 나 또한 그들에게 가능성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이니까.
결국, 엄밀한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아, 그리고 내가 관계했던 모든 이들아, 미안하다. 나는 너희를 감히 타자화하고 실망하는 우를 범했다. 그것은 명백히 나의 오해였으며, 오히려 나를 욕하는 일이었다. 미안하다. 나는 너희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실망했던 것이구나. 그러니 지민아 너에게도 미안하다.
우리는 타인이기에 외로운 것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러한 부재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타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타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노력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름다움따윈 없었을 것이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타인의 아름다움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