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키스

몇 달 전에 너무 글이 안 나와서, 살기 위해서 억지로 쥐어짠 글입니다. 비가 오니 떠올라 올립니다. 비 오는 날. 좋아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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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하나만 하자."
"뭘?"
"동전 던지기. 내가 이기면 니가 나한테 키스해줘."
"그러면 어디 한 번 해 보시지."

주머니에서 오백 원 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 학 그림에 행운을 걸고 동전을 던진다. 손 끝으로 튕기는 것이 아니라, 던져버린다. 은빛 학 한 마리 새까만 밤 하늘로 날아오르고, 떨어진다. 예쁘게 반짝이면서. 이래서 백 원짜리 동전보다 오백 원 짜리 동전이 다섯 배나 더 가치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와 가로등에서 떨어지는 빛줄기 사이로 묘한 궤적을 그리며 솟구친 동전은 그렇게 팅,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빗방울이 떨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의 미세한 균열을 채우는 가녀린 그러나 풍만한 실로폰 음색. 이래서 백 원 짜리 동전보단 오백 원 짜리 동전인 것이다.

도르르, 굴러가는 동전을 따라 나와 그녀 걸어갔다. 나란히 고개를 숙인 우리 앞에는, 은빛으로 양각된 500이라는 숫자가 금빛 가로등 불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홀로 밤에 어울리지 않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리고 그녀, 비웃음. 히히. 실패했네. 어쩌면 좋아 이거.

"아까 말 안한 게 있는데."
"응? 진 녀석이 할 말이 뭐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기면 니가 나한테 키스하는 거고, 내가 이기면 내가 너한테 키스하는 거야."
"웃기시네."

정적. 웃기면 그냥 웃을 일이지. 왠 정적일까 이건.

"동전, 안 주워?"
정적이, 동전과 함께 떨어진 빗물에 씻겨 배수로로 흘러 사라질 때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응. 말 안 듣는 동전은, 필요 없으니까."
"푸하. 그래."

다시 정적.

"집에, 데려다 줄래?"
배수로로 흘러간 빗물이 광막한 바다에 섞여 사라질 때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집이 어딘데"
"여기서 정확히 두 시간 걸으면 나와."
"...미친. 아가씨 누구세요?"

숲 좋아해? 약간은 묘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응? 좋아하는 편이야. 그런데 갑자기 숲은 왜? 하고 역시 약간은 묘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숲. 숲이라. 응. 좋아. 나쁘지 않아. 그녀는 내게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이야기했다.

"집에 가는 길에 숲이 나오거든. 숲은 남자가 여자한테 슬쩍 키스하기 좋은 장소잖아"

그렇게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두 시간 하고 십칠 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