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스크롤 그 덧없음에 대하여
의사소통 방식이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 상당부분 전환됨에 따라 우리는 입을 열고 책장을 넘기는 대신에 타자를 치고 마우스를 딸깍 누르는 경우가 많아 졌습니다. 물론 지금에도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고 흥미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이미 ‘오프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부터가 ‘온라인’이라는 그물 망 안에서의 소통이 차지하는 부분이 거대해 졌음을 이야기합니다. 누구나가 당연한 것처럼 싸이월드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게시판에 올리곤 합니다. 과제를 할 때도 뉴스가 보고 싶을 때도 우리는 네이버 뉴스나 지식in에 가서 해당 주제에 관한 페이지를 클릭하고 스크롤하곤 합니다.
그리곤 가끔씩 길고 복잡하다 싶은 글이 나오면 한 두줄 훑어본 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마우스 휠을 드르륵 굴려 페이지의 맨 끝으로 내려가곤 합니다. 그리곤 달려있는 리플을 재빨리 슥 하고 훑어본 후에 또 다른 글로 넘어가곤 합니다. 넷에는 너무나 많은 글들이 있고 우리는 굳이 한 텍스트에게만 매달릴 이유도 없고 또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주변에는 얼마든지 저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줄 글과 자료가 많이 있을뿐더러, 네이버 뉴스나 다음 뉴스를 비롯한 수많은 인터넷 매체들은 우리 네티즌들의 관심을 한 눈에 끌만한 자료를 언제든지 제공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거죠.
“연정훈, 한가인과 함께 잡은 잠자리(?)”
연정훈이 갑자기 날아든 잠자리에 놀란 한가인을 위해 잠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흔히들 낚였다고들 표현하는 이런 배설물에 가까운 기사들은 우리가 가장 즐겨보는 각종 포탈 메인페이지 정면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죠. 조금이라도 진지한 태도나 성찰을 요구하는 성질의 글들은 다른 수많은 자극적인 텍스트들의 홍수에 묻혀 빛을 보기도 전에 뒷편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글을 음미할 여유라는 건 이미 현대인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가치인 것 일까요. 때때로 넷을 대하는 우리의 이러한 ‘가벼운’ 태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지만, 정보의 바다와 홍수 속에서 그 한줄기 산들바람이 대세를 바꾸기란 요원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건 저 역시 다를 바가 없어서, 이렇게 책 마을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나오는 수많은 글 중에서도 보다 자극적인 제목, 재밌어보이는 글을 찾아서 클릭해 봅니다. 그리곤 얼마간 읽어보다가 ‘에이. 좀 어렵다’ 거나 ‘귀찮다. 좀 길어보여’라는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휠을 굴려버립니다. 드르륵. 드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굴러간 휠은 어느새 화면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리플이 달려있는 부근에서 멈춥니다. 그리곤 리플을 한 번 훑어보곤 반응이 ‘참 좋은 글입니다.’이런 식이면 저도 그냥 ‘잘 읽었어요. 참 좋은 글이네요.’ 하며 읽지도 않은 글에 대해 댓글을 달고, 아니면 그저 다른 글을 찾아 마우스를 버튼을 클릭해 버리고 맙니다.
가끔 그런 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할 때 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수영아 넌 도대체 어디까지 가벼워 질 작정이냐. 마음을 다잡고 방금 전에 ‘흥미를 끌지 못해 지나치려고 했던 글’을 다시금 읽어봅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이로울 정도로 저에게 무언가를 선사해 주는 책입니다.
얼마 전에 이승일씨의 ‘완전성과 세계’란 글이 저에게 그런걸 안겨 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몇 줄 보곤 어렵다 싶어서 드르륵 굴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승일씨가 제 글 ‘쉬운 천문학 – nova’에 달아주신 답글을 보고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금 ‘완전성과 세계’란 글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렵고 딱딱한 글이라고 생각했던 그 것은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메타논리학에 대해서는 완전한 문외한이지만 ‘일관성’ , ‘완전성’ 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유한적인 공리계에서 완전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일관적인 체계라는 전제하에) 라는 것을 알게되고, 때문에 완벽한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가 없을 뿐더러 거기서 더 발전해 이 우주의 ‘불확정성 원리’까지 나아가는 건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충격이었던 건 이 글이 저의 ‘가벼운’ 클릭과 스크롤로 인하여 뒷편으로 묻힐 뻔했다는 사실입니다.
서점에 가서 제목이 끌렸건 배스트셀러였건 그 책을 돈을 주고 사면, 최소한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번쯤은 읽게 됩니다. 그것은 책장을 넘기는 행위에 어떤 ‘무거움’이 담겨져 있다는 거죠. 하지만 그에 비해 넷상에서 저희의 클릭과 스크롤은 너무나도 가벼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데 제가 지닌 어떤 ‘가치와 대가’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선택하고 지우는데 있어서 우리는 아무 꺼리낌도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최소한 그 텍스트가 어떤 이유로든 일단 저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일단 ‘클릭’하여 선택한 이상에는 그 텍스트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봐야 하는 것이겠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