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함에 대하여 (병장 이준영/051116) 
 
 
 
 
  나는 아직도 쿨하게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해온 것인지 모른다. 주변에 넘쳐나는 수많은 쿨함  속에서 나만 이제까지 그걸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사회는 과학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많은 전환을 맞게 되었다. 물론 21세기가 되었으니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손에 손잡고 한 순간에 바꾸어버린 것은 아니다. 변화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그 무렵부터 있어왔던 변화라고 생각해두자. 밀레니엄이라고 불렸던 그 <2000년>의 이듬해부터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서 내가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으니, 개략적인 나의 감상만을 이야기하자면- 세상은 확실히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는 것이다. 여러모로 경량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수많은 도구들의 경량화부터 시작하여, 비대했던 사회조직 역시 경량화에 총력을 경주하였고, 그 때문인지 거리를 활보하는 수많은 처자들의 몸무게며 옷차림도 상당히 경량화 되었으며(이 경우에는 수많은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감상하는 측면에 서있는 나로서는 순기능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덕택인지 사람들의 마음 또한 경량화되었다. 가벼움의 미학, 이라는 책을 한 권 써도 꽤 잘 팔렸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책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내가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지 않아서 지금 현재 상태로는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전무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각설하고, 그 경량화의 가운데 <쿨함>도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껏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서양의식이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슬슬 제자리를 찾아 안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쿨하다는 표현이 안착하기 쉬웠던 환경은 사회가 경량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일단 가벼워졌으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방식이 예전의 <인맥 혹은 준비된 자리>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일부 전이된 탓도 있을거라고 본다.
  대중매체는 쇼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그 중에서도 짝짓기 프로그램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가족단위적 쇼를 벗어나 초점을 <가족 전체>가 아닌 <젊은 남성과 여성>으로 좁혀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들은 시류에 맞아떨어진 탓인지 상당한 성공을 보였으며, 결국 현재까지도 공중파의 주요 방송시간대를 점하고 있다. 고민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일단 마음에 드는 사람을 향해 손을 뻗고, 너무도 쉽게 그 손을 잡고, 더 좋은 사람(인듯한)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손을 놓고, 빼앗긴 사람도 그다지 아쉬운 기색 없이 웃고 만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쿨함의 표본이다. 쿨함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정과 시간 등에 가려진 이면을 아주 쉽게 내버린다. 사랑의 본질이 쌍방의 감정적이며 이성적인 타협점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쪼록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그 충실한 쿨함의 표본을 자습서 삼아 쿨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 모든 사람들이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 쿨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쌍방의 관계에서 남녀상열지사든 혹은 다른 관계이든 간에 쿨한 쪽과 쿨하지 않은 쪽이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비참해지는 쪽은 쿨하지 않은 쪽이기 때문이다. 쿨함은 그런 면에서 대범이나 점잖은 척과 맥이 통하기도 한다.

“우리 그냥 이쯤에서 헤어지자.”
“난 널 놓을 수가 없어!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왜 이래, 귀찮게. 서로 쿨해지자구. 이래봤자 너만 힘들어.”

혹은

“이젠 학점에 대해서도 좀 쿨해질 필요성을 느껴.”
“잘났어, 정말.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학점이 전부는 아니고, 그만큼 다른데서 점수 따면 되지 뭐. 그까짓 학점이래야.”

  이상의 대화들이 쿨함의 전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쿨한 쪽과 쿨하지 않은 쪽이 대화를 하다보면 쿨하지 않은 쪽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찌질이’가 된 기분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만이 속 좁고 못나 보이기 마련. 그래서 간간이 찾아오는 그런 경험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쿨해지기 마련이다. 마치 그것은 신종 페스트와 같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어느새 지금은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버리게 된 것이다. 어느 안방 드라마 오프닝 송에 나와도 의아스럽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방식 중 의외성에 기반한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일회성 만남에 익숙해졌으며, 그런 만남을 주선할 수 있는 장소도 예전에 비해서 많아졌다. 일단 일회성 만남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 마음에 드는 누구에라도 접근하기가 용이해진 것이다(그 사람이 만일 화를 불같이 내고 가버린다면 어깨를 가볍게 한 번 으쓱해주는 것도 쿨한 사람의 센스이다). 또 예전의 나이트클럽과는 다르게, 클럽 등의 놀이문화가 폭 넓게 대중에게 어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좁은 공간 속의 많은 사람들의 부딪힘은 필연적으로 만남을 유발하게 되고,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어울림 이후에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쉽다. 왜냐하면 그 때는 서로가 평상심을 잃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쿨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대사회는 가볍고 쉽다. 충분히 쿨할만큼 쿨해졌다고 생각한다. 만남도, 사랑도, 섹스도, 이별조차 쉽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별이 쿨해야 한다는 것은 구차하게 서로 눈물 쏟으며 질질 끌지 않는 것, 깔끔하고 뒤끝없는 완벽한 감정 정리를 통해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 위에서도 다른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이라고. 이틀 후  마주친, 서로 다른 커플 - 나와 전 애인 - 의 어색할 법한 상황에서도 안녕, 하고 생긋 웃으며 손 흔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매번 가슴팍을 세게 한 번 차인 기분을 버릴 수 없다. 그럴거면 연애를 하는 목적,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사람을 만나는 목적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쿨함들은 내게 있어서는 도무지 감정의 질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질식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렵기 때문이다, 애써 강한 척 하는게 무너져버린다면 더 이상 잡을 곳이 없잖는가. 그래서 적당히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적당히 만나고 사랑도 적당히 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이미 이별의 대사가 마음 속에 준비되어 있다. 이별을 전제하고 고려해둔 사랑이다. 쿨하기 위해서는 예비동작이 있어야 한다. 헤어져도 깔끔할만큼, 상처받지 않을 만큼 적당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아야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겁기 위해서> 만나는 시간이고, 굳이 힘들게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이 사회에 끓어 넘치는 멜로영화들은 모두 멸종된 공룡들에 대한 추모 내지는 그리움과 같은 맥락인가. 몇 백만이 넘게 봤다고 하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 같은데 나왔던 인물들은 과연 몇 퍼센트나 쿨했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서는 찬양하면서 아직도 쿨하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참 갑갑할 따름이다. 





상병 지건형 (2005-11-16 10:57:25)  
이런 글은 어떻게 쓰시는 건가요?? 정곡을 찌르는 논리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제 후임중에
이런애가 있습니다. 어찌나 쿨한 척을 하는지 지 멋대로 해가지고 우리 부대원을 너무 피곤하게 하는애가
있는데 이런애 대처방법도 몇자 적어 주시는건 어떨까요..??  

상병 박동현 (2005-11-16 11:06:39)  
쿨 하다는 것. 
얼마전 책을 읽다가 이런 비슷한 내용을 봤습니다.

그 책에서 그러더군요.

" 현대인들은 너무 쿨한 제스쳐에만 심취해 있다.

쿨 해도 결국 상처는 받는다.

- 쿨하다 ; 상처받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의 슬픈 방어기제. "


한번쯤은 무모해 지는 것도, 상처도 제대로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사는 스타일인데 뭐라 그럴 순 없지만,
확실히 무슨 트렌드처럼 쿨한 제스쳐에만 익숙해져 가는 현실이.
이 도시 만큼이나 슬프네요~  

병장 이정수 (2005-11-16 12:21:40)  
WWE에 보면 칼리토라는 레슬러가 나온다지요. (군대와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만.) 전혀 쿨하지 않아요. 입으로만 떠들어대고, 생각없이 행동하고, 가볍게 말하고. '가벼움 = 쿨'이라는 공식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만일 그렇다면 차라리 '웜'스러워지마! 라고 생각해요.(굳이 이걸 영어로 '쿨'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 안가지만 굳이 이렇게 영어로 표현해야한다면.)
전 이 겨울처럼 추운건 싫어요. 흥!  

병장 임현우 (2005-11-16 12:28:01)  
좋은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감사감사합니다.
아울러 앞으로 쓰실 칼럼도 많이 기대할게요.  

병장 백윤화 (2005-11-16 13:40:24)  
변명이죠
쿨하다라는 이유를 앞세워 자기맘이 조금이라도 편하면 정말 다행일꺼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대해 쿨하다는말은 안좋아합니다.  

병장 박대열 (2005-11-16 14:24:35)  
쿨하다 = 귀찮다(귀찮아서 신경쓰지 않는다)
는 좀 아닌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병장 이준영 (2005-11-16 14:30:23)  
쿨하다와 귀찮다는 동의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글쎄요, 제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쿨하다는 것은 생활양식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의 인간의 행동양태를 결정하는 사고방식적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쿨함으로 인해서 모종의 과정을 거쳐서 귀찮음이라는 양태가 나타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쿨함이라는 이름으로 현실도피를 계획할 경우 귀찮음이라는 부가항이 따라올 수는 있겠지요  

병장 정구일 (2005-11-16 14:47:06)  
감사합니다.
쿨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쿨하다' 어쩌면 힘든것을 피해 가기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닐까요?  

일병 안대섭 (2005-11-16 15:27:57)  
쿨함은 쿨할 뿐이지 별 죄는 없어요.

언제나 그래왔듯, 많은 인간이 쿨함이라는 양식에 적합하게 성숙하지 못할 뿐이지요.  

병장 박대열 (2005-11-16 16:11:39)  
아니, 아니오
제 말은 그런뜻이 아니라
"훗, 귀찮군" "귀찮아서" "요즘 귀차니즘이라니깐" "아, 귀찮아" "귀찮게 하지마" "......(귀찮아서 아예무시)"
이런 말들을 주의에서 자주 듣다 보니 그런 모습이 왠지 쿨하다고 생각해본적 있거든요
생각해봐요 영화에서 정말 쿨하게 생긴 카리스마 주인공이 "훗, 귀찮군" 이란 대사를 날리며
어떤일에도 괘이치 않아하는 모습을요
그게 정말 귀찮기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귀찮아하는 모습도 쿨할수 있다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한데 지금보면 아닌것 같아요가 결론이죠
한데 제 망상이었던 것 같군요  

병장 이준영 (2005-11-16 16:20:51)  
안대섭님//

맑스의 코뮤니즘 같은 사상도 이데올로기 자체로는 온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코뮤니즘이 적확히 구현된 사회라면 참 살만한 사회겠지요. 
하지만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실패한 것은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쿨함이라는 전제 역시 사람들이 받아들여 사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작용이
이제껏 발생해왔다고 생각하므로 이런 글을 쓴 것입니다.

반공에 관한 많은 글들이 이제껏 쓰여왔듯이. 쿨하지 않은 반편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의 항변이지요.  

상병 류경철 (2005-11-16 16:32:48)  
쿨함이란 말조차 이제 촌스러워.
진짜쿨한건지, 거짓말쟁이인지,
아님 거짓말쟁이 마저 쿨한건지, 

마지막 문단 좋네요.  

상병 손동철 (2005-11-16 20:05:02)  
이 글을 보니 왜 공수부대를 전역한 제 친구가 생각나는지...... 그 친구 전역할 때 서로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였다고하더군요. 투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군에 입대한 남자라면 누구나 바랬던 소박한 그것이니. 어쨌든 그에 비하면 우리 부대 사람들은 너무 쿨해서 가볍군요. 어느 겨울 오후 하번 길의 상쾌함처럼. 저도 그게 좋고요(웃음)  

상병 김명도 (2005-11-17 10:30:25)  
좋은글입니다. 옮겨갑니다.  

상병 김상희 (2005-11-17 11:06:32)  
그런데 이거 말머리가 '칼럽'인데요!!  

병장 박대열 (2005-11-17 13:59:27)  
쿵! 그렇네요  

병장 하성욱 (2005-11-17 14:52:2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쿨함`이란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병장 한상천 (2005-11-17 16:17:46)  
이런 수정하겠습니다.  

병장 김경훈 (2005-11-18 10:50:35)  
예전에 신문보니까(매일경제) 요즘에는 'cool'함 보다는 'warm'이 뜨고 있다던데요.
드라마도 그렇고 자기감정에 솔직하면서 숨기지도 않는 뭐그런..  

상병 안준원 (2005-11-19 07:42:49)  
그럼 나는 대체 어떠한 개체란 말인가! 이 지독히 느린 사내란 어떠한 온도를 지녔느냔 말이다!  

상병 김강록 (2005-11-20 11:35:37)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모 음악잡지 인터뷰에서 '쿨'을 남발할 때부터 그 단어가 웬지 싫었습니다.
이쁘장한 당구장 알바생이 아무리 500cc 맥주잔에 얼음 동동 띄워 쿨한 냉커피를 건내줘도
저의 당구는 여전히 찌질이 같고 진흙탕을 뒹구는 두꺼비 하마 악어 톰슨가젤 같습니다.  

병장 김동환 (2005-11-21 08:46:28)  
강록님 말씀하신 찌질이에 한표.
좋은 글 잘읽었어요.(웃음)  

병장 김대현 (2005-11-21 13:27:38)  
"나는 내가 쿨하다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 조한혜정.  

상병 오철수 (2005-11-21 17:15:10)  
쿨함에 대한 정말 쿨한 생각를 갖고 계시군요!!(쿨하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