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I.S - Scene Zero, One  
상병 이석재   2009-01-05 23:10:33, 조회: 160, 추천:0 

Scene Zero- 서론

얼개를 썼습니다만, 모든 글에는 서론이 들어가야겠지요? 사실 글을 쓸데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의 서론을 쓰는 거라고 어떤 분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듯 싶습니다.



이 칼럼의 이름은 ‘히스’입니다. ‘히스테리’의 그 히스가 아니라 History In our Story이라는 얘기지요. (남자중심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His는 ‘그의 것’ 이라는 소유격, 소유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아 영어공부하자고요? 그런건 나중에 다른 굇수분들한테… 다른 분들이 더 잘할거 같군요.



History는 그런 His 와 Stor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이래저래 같은 의미들이 겹치죠? 이런거 생각해내느라고 얼마나 머리가 터졌는데요. 안돌아가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이지요. 이제, 저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우리 이야기 속의 역사.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어떻게 완결될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해보는 데는 해봐야겠지요?



P.S:역사와 역사학에 대해서 저에게 설명을 해달라는 분이 있으셔서, 역시 서론에다가 첨부합니다. 제가 이지훈님의 글을 읽어본 바로는 ‘역사’란 현재 사실, 기록되지는 못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총칭한다고 보고, 역사학이란 그런 여러 사실들중 취사선택해서 한 집단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 그것을 역사학이라고 보시는 것이군요. 맞으려나 모르겠군요.



만약 그렇게 구분한다면, 역사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복잡한 것’이겠지요. 그 복잡한 것에서 역사학이 바로 집단의 역사를 차출해 내는 것이겠지요. 물론 제 졸작인 ‘역사론’에서는 그 점을 깨닫진 못했군요. 하지만 수많은 ‘역사’라는 사실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역사학을 알지 못해도 그 수많은 역사들을 체로 거르고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얻어냅니다. 배우지 못해도 자연적으로 하는 행위들에 속하려나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행동이라면 굳이 역사와 역사학을 나누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만의 ‘체’는 모두와 똑같이 흘러갈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 체가 아날학파일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실증주의적인 체일 수도 있을테고,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아날과 실증주의 뭐 이런걸 구분해가면서 ‘역사’를 판단해 가겠습니까. 결국 자연스럽게 구분해 가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에 역사와 역사학이 다른 단어로서 구분되어지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Scene One, 세계 4대 문명



첫번째 시작은 세계 4대문명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역사의 시작은 사람들이 거주지를 잡기 시작하고, 거기서 좀 먹을 문제가 풀리는 바로 그때부터이니까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 참 명언인거 같습니다.  물론 그 전에 역사를 휘어잡은 유대, 앗시리아, 페니키아 등등이 있지만 그건 4대문명을 중심으로 가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4대 문명의 위치 이집트의 나일강, 이라크의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하강이라고 합니다. 그 ‘강’에서 문명이 시작된 이유는, 경작이 쉬웠기 때문이지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갈 때 인류는 이제 창으로 ‘우가우가’하면서 곰을 때려잡기보단. 조용히 씨를 뿌리면서 결실을 맺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보니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농사는 편하고, 그러다가보니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도시를 방어하려면 성벽도 생기고 이제 많은 생산물이 나오다보니 남는걸 힘센자가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보니 계급도 생기고 이렇게 도미노식으로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복잡하죠?


그렇게 ‘경작’이란 것이 인류에게 중요해지다보니, 그 경작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강 주위가 되는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집트의 나일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여름에 한창 범람합니다. 강 주위의 있던 땅이 모두 강으로 변해버리게 되면서 다시 비옥한 땅으로 변화되고, 그 비옥한 땅에서 가을내내 농사지어 추수하고 나면 다시 여름이 되어 강 범람후 비옥한 땅으로 가게 됩니다. 왜 비옥한 땅이 되냐구요? 상류에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들이 같이 떠내려오거든요. 물론... 땅도 다시 측량해야 하지만 말입니다.(주1)


이집트문명은, 아시다시피 지금의 시리아까지 확장한 나라였습니다. 람세스 2세 시절에 가장 최고의 영토를 자랑하였지요. 물론 북쪽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인들(주2)에게 견제당하기도 했고, 힉소스 인들(주3)에게 이집트 전체가 뒤집히기도 했지만, 중동에 이집트를 건드릴 수 있을만한 나라는 별로 없었지요. 이 이집트 문명이 이렇게 일정한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방어가 편리했고 ‘고대 역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지역에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죠. 그쪽에서 내려오려면 길이 좁은 시나이 반도를 지나와야 하니까요.



그러나, 지금부터 말할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얘기가 좀 다릅니다.지금의 이라크 땅에 있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 지역은 제대로 된 ‘국가’ 가 ‘오랫동안’ 버티지를 못했습니다. 바빌론에서부터 앗시리아까지. 이 지역에 특징은 계획적인 도시 발전입니다. 완벽한 개수시설을 통해 강의 범람을 최대한으로 막고, 거기서 고효율의 경작을 시행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개방적인 위치로 인해 북쪽과 동쪽에서 끊임없이 오는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이집트문명은 내세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이 많지만, 메소포타미아문명은 현세적이고, 실질적이였습니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음력 등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요. 또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의 문제 또한 두 문명이 달랐는데, 이집트 문명은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문자를 사용하였지만, 메소포타미아는 간단한 쐐기문자로 현실성과 편리성을 동시에 추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일단 적의 침략이 있으면 “신이시여” 보다는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되니까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전한 나라로는 앗시리아(주4), 바빌로니아(주5) 뭐 이런나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소소한 나라들의 역사는 지나가도록 합시다. 이게 학술서는 아니니까요. 


그럼 이제 동쪽으로 눈길을 돌립시다. 인도의 인더스문명이 있군요. 제가 맨처음 역사를 배울때는 ‘왜 갠지스강이 아닌 것인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여러분들은 안그러셨는지 모르겠군요. 인더스강이 갠지스강보다는 경작하기다 더 편했다고 합니다. 갠지스강은 게다가 주위가 밀림이기 때문에 그 밀림을 벌채하고 사람들의 거주지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시간이 더 걸렸던 거지요. 게다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이 세지역간에는 무역루트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까운 루트를 만들어 무역을 쉽게 하기 위해서라도 인더스강이 더 편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더스문명은 북쪽에서 내려온 ‘아리아’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고, 인도 문명 자체가 아리아인의 역사로 시작됩니다. 지금 인더스문명을 가리키는 수많은 도시들(모헨조다로 등등)은 남아있고, 그 유적또한 남아있긴 하지만 다른 4개 문명에 비해서 남아있는 것들이 없다시피 합니다. 야만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인이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지요. 그 덕분에 아리아인은 인도에서 지배계층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인도의 계층 계급이 바로 이 아리아 지배계층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크샤트리아, 수드라 뭐 이런것들이요.


인더스문명의 특징은, 도시 계획이 메소포타미아처럼 정확했다고 합니다. 공중 목욕탕도 존재했고, 하지만 인더스문명에 대해 알 수 있는게 도시 유적과 조그마한 토기, 뭐 이런것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래저래 파악에는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아리아 문명의 침략 이후 인더스 문명을 이루었던 ‘원주민’들은 동부와 남부로 피신해서 그곳에서의 다른 촌락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인도의 북부와 남부는 서로 사이가 안좋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도 인도 북부와 남부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수준은 아니지만 서로 문화가 상이하기도 하고, 북부에서 통일왕국이 나타나 남부를 정복하려고 하려면 반란, 반란, 반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인도의 마지막 제국인 무굴제국이 점차 무너진 이유도 이 남부에서의 반란이 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산맥을 하나 넘어 중원으로 들어가봅시다. 중원! 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중국의 황허문명입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하,상나라->은->주나라로 이어지는 이곳에서 중국인들의 문명이 태동했다고 볼 수 있지요. 지금이야 중국 남부가 식량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더욱 발전해있지만 고대에서는 황허유역이 쌀 생산의 중심지였습니다. 


하, 상나라는 황허유역의 개수시설을 확립했고, 은나라는 중국의 초기문자라 할 수 있는 갑골문자(주6)을 개발해냈으며, 주나라는 고대 중국을 결정지을 ‘하늘의 뜻’을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이기도 합니다(주7). 또한 서양과는 다른 ‘봉건제’(주8)을 시작한 나라이기도 하지요. 황허에서 시작한 문명이지만 점차 중국의 중심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아주 멀고먼 후의 이야기니 나중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4대 문명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쓸 내용은 더 불리면 불릴수는 있긴 한데 그렇게 되면 양이 너무 많아지게 되니까 간단한 개요? 정도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4대문명은 인류문명의 태동을 도와준 위치에 있기도 하니까요. 비록 4문명 모두 여러 부침을 겪기도 하면서 나중엔 그 중심지가 이동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명의 시작점, 이라는 데에는 전 세계인들한테서 이의가 없습니다.


다음 이시간에는, 잠시 자리를 축소시켜서 고대 중동의 역사에 대해 잠깐 훑고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Coming Soon.


주1-나일강의 수학: 자, 범람을 했습니다. 강이 휙 쓸고 지나갔더니 자기 땅이 어딘지 모르겠단겁니다! 그래서 측량기술은 바로 이 이집트 문명에서 제일 먼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3대 문명에서는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거든요. 거긴 열심히 공사하면 범람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였지만 나일강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옛날 파피루스에는 나일강의 범람 후 토지를 측량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고 하더군요


주2- 히타이트: 히타이트 인들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됬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이 철기문화를 발전시킨 최초의 민족이라는 데에만 역사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역시 멸망 원인또한 불분명한데, 초원에서 건너온 어느 민족이 히타이트를 멸망시켰다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1을 해보신 분이라면 히타이트 인들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주3- 힉소스인들: 역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이민족으로서 이집트에 최초로 ‘전차’라는 무기를 들고 와 이집트 왕조를 전복합니다. 힉소스 이전의 이집트를 고대 이집트 왕조, 힉소스인들이파 파라오가 된 때를 중 이집트 왕조라고 합니다. 람세스 2세는 이 힉소스인들을 쫒아낸지(약 2세기만에) 얼마 되지 않을때에 집권합니다(상 이집트 왕조라고도 합니다)


주4-앗시리아: 아시리아, 라고도 부릅니다만 성경에는 앗시리아라고 표기되어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동 전체를 지배한 첫번째 국가입니다. 강력한 무력통치로 인해 중동의 패권은 잡을 수 있었지만 여러 나라들의 반란으로 인해 메디아, 신 바빌로니아 왕국등의 나라들이 독립하게 되고 결국 금새 역사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주5-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등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바빌론이 수도였다고 하지요.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한 이후 다시 독립, 신 바빌로니아 왕국이 건설됩니다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에게 다시 합병당하고, 더 이상 ‘바빌로니아’ 왕국이라는 이름은 역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6- 갑골문자: 거북이 등에 불을 지펴 나타나는 문자를 가지고 점을 친 방식입니다. 은나라는 이외에도 순장풍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중국 내 다른 민족들 한테서 불만이 좀 많았습니다. 아, 갑자기 태공망님이 보고싶어지는건 왜일까요. 껄껄


주7- 하늘의 뜻: ‘천명’이라고도 합니다. 그 천명을 통해 중국의 왕조는 끊임없이 변화해왔지요. 이제 하늘의 뜻이 저네들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다! 라는 식입니다. 중국 왕조들의 기반이 되기도하고 무너트리는 단초가 되기도 하는데, 주나라가 은나라를 무너트릴떄 “이제 하늘의 뜻이 이렇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지요.


주8. 봉건제: 세계 처음으로 창설된 봉건제지만, 그 특성은 유럽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유럽의 봉건제는 똑 같은 녀석들끼리 끼리끼리 모여 나라를 구성하고 왕을 떠받드는 체제지만, 중국의 봉건제는 왕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신하들에게 분봉하고 그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조금 더 왕권이 강한 그런 봉건제였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저보다는 이중톈의 ‘중국을 말하다’라는 책에 더 잘 나와있는듯 하니 부연 설명은 나중에 나올 Scene으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6:42 

 

상병 이지훈 
  석재// 

개인적인 요청을 서론에까지 추가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감히 또 댓글로 답글을 끄적끄적 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싶군요. 조만간 저 또한 글로 찾아뵐게요. 

참고문헌을 옆에 끼지 않고서 이 정도 지식의 양을 뿜어내시는 거라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군요. 고마워요. 잘 읽고 있습니다. 2009-01-06
03:48:44
  

 

일병 한강수 
  오! 
이런 칼럼을 기다려 왔습니다. 

세계사를 도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 모양으로 
즐겁기 한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글 부탁드립니다. 2009-01-06
10:33:56
  

 

병장 이동석 
  역시 성실한 석재씨- 
앞으로 더욱 기대기대하겠습니다. 2009-01-06
15:15:25
 

 

병장 김민규 
  오호, 좋아요. 글은 차근차근 냠냠 먹어 보겠습니다. 
석재님의 버닝만큼이나 더 분발해야 할 이유가 생겼군요. 이거 참 큰일인데- 2009-01-06
16:14:09
  

 

상병 김예찬 
  History, 하니까 생각나는건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저희 아버지는 History를 "He + Story", 그러니까 유일한 '그'인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해석하시더군요. 2009-01-06
18:23:17
  

 

병장 이우중 
  아, 얼마만에 들어보는 '모헨조다로'인가요. 중학교 때 시험 문제로 나왔던 것 같은데, 답이 두 개였어요. '모헨조다로'와 뭐 세글자짜리였는데 기억은 안나네요. 허허. 
이거 뭐 기대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예찬님/ history = he+story, 혹은 his+story란 말은 교회 오랫동안 다니다 보면 한두번씩은 설교 시간에 꼭 듣게 되는 말 같아요. 허허. 2009-01-07
14:32:11
  

 

병장 이동석 
  푸하하, 신학대학 교수들의 레퍼토리이기도 하죠. (비웃는건 아닙니다) 단지 신학대를 다니는 친구에게 뭘 배우는지 물었을때, 씨-익 웃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궁을 두번 가는 운명임에도 자신의 소임을 저버리지 않더랍니다. (군종병으로 한번, 군종장교로 한번-이라니) 2009-01-07
14:50:52
 

 

상병 이석재 
  상병 이지훈/ 껄껄, 답글, 기대하겠습니다. 
일병 한강수/ 감사합니다. 접근에 도움이 된다면 대환영이지요. 
병장 이동석/ ...사실 어느샌가 보면 성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시게 될겁니다. 아니 그런데 궁을 두번 입궁하다니... 암울합니다. 허허 
병장 김민규/ 소화가 잘되도록 냠냠. 그런거 큰일이라고 보면 안되요. 
상병 김예찬/ 아... 그게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군요. 몰랐던 사실인데. 
병장 이우중/ 사실 '모헨조다로' 라는 뜻은 죽음의 도시, 뭐 이런 뜻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의 흔적은 없다시피 하고 오직 유물만 남아서 그렇게 붙었다고 합니다 2009-01-07
18:31:35
  

 

상병 황동경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란 게임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요? 
초창기만해도 문명별로 선택해 플레이가 가능했었는데.. 
전역후에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나 다시 해볼생각이 드네요. 2009-01-16
00: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