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I.S - Scene Three  
상병 이석재   2009-01-09 00:33:20, 조회: 170, 추천:0 

Scene Three – Chin, Chin, China


세번째 칼럼의 무대는, 고대의 중국입니다. 뭐 물론 그때사정으로서 ‘중국’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애매하긴 하지만(주1) 역시 저번에 얘기했던 ‘중동’, ‘오리엔탈’ 이라는 이름처럼 다른 단어를 대체해서 쓰기도 애매하니 그냥 ‘중국’으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문명은 토기로 구별하는데, 먼저 중국의 황하 문명에는 ‘채색도기’라고 하는 토기가 발전해 가기 시작하다가. 양사오 지역에서 발견된 칠흙색 토기와, 중국 룽산지역에서 발견된 흑색 토기로 인해 ‘양사오 문화’ , ‘룽산 문화’라고 하는 것이 발전해 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때 중국의 황허강 지역에서는 쌀농사가 안되었고 인도, 베트남지역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쌀농사가 아직 중국 남부 운남지역에서만 퍼지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중국의 황허유역에서는 쌀농사가 불가능했고, 더욱이 황허 유역은 강의 범람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황허 본류보다는 지류 근처에서 살면서 도시를 세우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지요. 쌀농사가 불가능할 경우 사람들은 대체로 조, 기장등을 심었는데 중국 황허문명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양사오 문화와 룽산 문화가 퍼지고 있을 때는 전체 역사에서 봤을 때 신석기 시대(주2)에 불과합니다. 토기잖아요 토기.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제 중국에는 어엿한 왕조, 은나라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은나라는, 이른바 ‘갑골문자’로 유명합니다. 갑골문자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따서 그 곳에 불을 붙이고, 거기서 나오는 형태를 보며 점을 치는 형태인데요. 이 갑골문자에서부터 중국의 문자인 ‘한자’가 나왔다고들 합니다. 수도는 ‘은허’인데 이 은허의 발굴도 우리나라 ‘무령왕릉’처럼 ‘어쩌다가보니’ 발견했다고 하더군요(주3)


하지만, 저번편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은나라는 순장풍습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신라가 지증왕 시대에 와서야 전체적으로 폐지된 풍습이기도 하지요. 은나라 자체는 도시국가가 연합한 연합체였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왕조국가’로서는 좀 모자른 나라였지요. 그러다가보니 중앙정부가 도시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도 했고, 순장풍습을 수도에 살던 사람들만으로 할 수는 없다보니 다른 도시국가들의 사람들을 끌어다가 순장시켜야 했기도 했고, 그래서 불만이 점차 쌓여나가기 시작한거죠.


그래서 은나라 마지막 왕인 탕왕때, 은나라 주변의 도시국가중 가장 세력이 큰 주나라가 은나라를 뒤집어 엎게 됩니다. 은과 주가 싸울 시기만 해도 주가 은 영토의 2/3를 차지한 상태였을 정도라고 하니 이미 대세는 넘어간 상황이였지요. 물론 태공망이 조그마한 막대기 하나 가지고 바람을 불어서 뭐 달기를 휘어잡고 뭐 이런스토리까지는 아닙니다만은… 이 탕왕에게서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가 ‘주지육림’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세운다. 라고 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얘기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활을 했으니 문제가 됬음은 당연지사.


은이 주로 바뀌기 시작할 때, 중국 왕조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명’이란 단어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역시 저번편에서 약간 설명했는데요.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지요. 은나라를 멸망시킨건 주나라의 욕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나라에게 시킨것이다! 라고 애둘러서 말한겁니다. 그러다보니 주나라는 정당성을 얻게 되고, 왕또한 하늘이 중국을 통치하라고 했다. 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나라때부터 청동기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농사기구들은 청동기로 만들지 못했는데, 청동기로 농사기구들을 만들면 쉽게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농사기구들이 철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려면 춘추전국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했고, 농사기구들은 주나라때까지만 해도 나무로 만들던 시기였기 때문에 생산성 면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그다지 늘어나는 쪽은 아니였습니다. 은, 주시기에 청동기는 대체로 제사때에 자주 쓰이는 물품이 된 것이지요.


주나라때부터 중국의 통치제도 중 하나인 ‘봉건제’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은나라 자체가 도시국가로 시작했고, 주나라도 비슷한 체제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중앙집권보다 분권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런 분권적인 도시국가들을 잡아두기 위해 뭐 통치는 지네들이 하지만 그 권리는 우리가 줬다. 라는 식의 봉건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주4) 왕이 천하에게서 통치권을 받았고, 그 통치권을 주위 제후들에게 임시적으로 분배해준다. 라는 것입니다.


주나라의 역사는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눕니다. 서주시대와 동주시대의 중간지점은 바로 이민족의 침략인데요. 이때부터 중국에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민족이 끌어온 이유는 집안싸움이였지만, 어쩌다가 보니 주나라 수도가 함락당하고 수도를 이전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서주시대에는 그나마 주나라가 주인이라는 권위가 살아있어서 제후들이 그럭저럭 따르기는 했지만 이민족에게 수도가 점령당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보호받는 처지가 된 동주시대는 얘기가 달라져서 이때부터 춘추시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주는 그렇게 서쪽에서 쳐들어온 이민족마저도 봉분(땅을 내주고 그 땅의 제후로 삼는 것을 맗바니다)해줬는데, 그렇게 서쪽에 눌러앉은 세력이 진(秦)이 되어 나중에 중국 전토를 통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 중국의 역사편은 약간 짧았습니다. 원래는 이 상태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넘어 진나라까지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다른 쪽과 매치가 잘 안되니까요. 다음 시간에는 고대 그리스로 넘어가 서양 문명의 태동을 다룬 다음, 그리스-로마의 발전기를 다룬 다음에 춘추전국쪽으로 넘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등 기타지역에 대한 역사도 같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적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하하



주1-중국: 중국이라는 단어를 쓰게된 때는 한나라때부터라고 합니다. 한나라 때부터 주위 국가들을 복속하고, 조공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기 나라가 최고. 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중국’이라는 나라가 황허유역 정도에서 놀던 때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애매하다고 한 것입니다.


주2-신석기시대: 사실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시대 이렇게 셋으로 나눕니다만은, 중석기를 없애는 경우가 대세임으로 구석기, 신석기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신석기는 대체로 신화적인 부분이 많은데 이른바 ‘치우천황’, ‘황제’ 서부터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요-순시대까지를 중국의 신석기시대라고 합니다. 의외로 좀 된 내용인거 같은데 실제는 꽤 오래된 신화역사이지요. 원래 중국의 역사는 요-순이 있는 상나라를 중국의 시작으로 보지만, 은나라는 은허가 발굴되어 그 실재가 나타난데에 반해 상나라의 물건은 아직 발견되지 않아 학술적으로는 은나라를 중국의 시작으로 봅니다. 


주3-무령왕릉: 어떻게 발견됬냐구요? 하수도 공사하다가.


주4-봉건제: 서양의 봉건제는 말 그대로 협약이였습니다. 우리는 병사를 제공할 테니 왕은 우리가 위험하면 보호해주시오. 라는 상호계약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나 제후 둘 중 하나가 그 약속을 어길경우, 다른 상대방한테도 파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애초부터 저쪽이 약속을 안지킨 셈이니까요. 하지만 중국의 봉건제는 약속이 아닌 명령이였습니다. 자치정도는 허용해 줄 테니까 내 말은 들어야 한다라는게 중국의 봉건제였지요. 그래서 서양의 반란은 쉽게 쉽게 뜻 맞는 제후들끼리 퍼져나간 반면 동양의 반란은 거의 원맨쇼로 진행된게 많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8:49 

 

일병 한강수 
  오늘도 즐거운 세계사 시간이었습니다. 후후. 

달기가 은나라 말기라는 것이 이제 정리되는군요. 
춘추의 시대적 상황도 이제 알겠고요. 

감사합니다. 2009-01-09
10:13:37
  

 

상병 이석재 
  ...저기있는 책마을의 댓글은 뭘까요.냐하 2009-01-09
11:41:17
  

 

상병 이지훈 
  '중석기를 없애는 경우가 대세임으로' 에 대하여 

더 구체적인 설명부탁드려도 될까요? 2009-01-09
12:13:51
  

 

병장 이우중 
  저도 중석기 관련 문의드리려고 내려왔는데. 헤헤헤. 2009-01-09
17:58:58
  

 

상병 이석재 
  상병 이지훈, 병장 이우중/ 중석기 시대는 구석기와 신석기의 과도기적 기간입니다. 구석기떼 열심히 돌과 돌을 서로 마주쳐 깨트리는 '뗀석기'를 썼고, 신석기때는 돌과 돌의 마찰을 이용해서 열심히 갈아댄 '간석기'가 주요한 물품이였습니다. 또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부지역에서는 쌀농사가 시작되었고 농경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조, 기장등을 재배하여 터를 닦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석기시대는 일부지역에서, 그것도 구석기의 도구들보다 약간 발전된 형태로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도기적이고, 그것도 신석기 시대에 포함해서 계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석기 시대를 없애고 구석기와 신석기, 두개의 시대로만 나누어서 계산하고는 합니다. 2009-01-09
19:26:07
  

 

병장 이동석 
  그러게요. 뭐죠? 2009-01-09
20:02:27
 

 

병장 이동석 
  아, 기억났어요. 아침에 다 읽고나서 댓글을 다려는데 갑자기 일이 생긴거죠. 
그리고 잘 읽었습니다. 역시 재밌어요. 허허. 2009-01-09
21:09:07
 

 

병장 이동석 
  은허-를 발견하는 과정의 일화인데, 얼마만큼 사실이고 얼마만큼 과장인지는 확인한바 없습니다. (무...무책임하다-) 

한약방 중에 유독 영험하다고 소문난 집이 있었답니다. (은허의 위치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군요. 암튼 황하문명이니 화북인근이나 되려나요. 역시 무책임하다) 그 약방주인을 왕서방-이라고 하죠. 암튼 경쟁 약방 주인-장씨라고 해두죠-이 왕서방의 비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약재를 훔쳐보거나 하는둥의 이것 저것 해보는데도 도무지 왕서방만의 특별한 비법을 찾을길이 없더랍니다. 결국엔 왕서방 약방 근처에서 잠복하는 장씨- 밤마다 왕서방이 어디론가 행하는 걸 알게됩니다. 

왕서방이 밤이슬을 맞는 이유는 바람이 나서도, 마작에 미쳐서도 아니었고 고을 인근에서 땅을 파기위해서였습니다. 왕서방은 땅을 파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더니 손에 움켜쥐고는 달빛에 비쳐보며 씨익-웃더랍니다. 장씨는 왕서방이 무덤이라도 파헤치는건가, 야밤에 무덤을 파고 웃는다니- 그러나 그 섬뜩함도 궁금증은 이기지 못했지요. 장씨가 왕서방을 덮치고 보니 왕서방이 들고 있던건 무슨 뼛조각도 아니고 나무토막도 아닌 기이한 조각이었습니다. 그 뒤로 왕서방은 항정신성약물취급법 위반에 약사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뤘고, 장씨는 그 조각들을 모으러 길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었답니다. (뭐여 이건) 

그 조각이 갑골문자가 새겨진, 거북이 등껍질이었다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2009-01-09
21:22:05
 

 

상병 이석재 
  아, 그 갑골문자가 나온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본 바가 있군요. 사실이라고 한답니다 [수근수근수근] 2009-01-09
21:44:03
  

 

상병 이지훈 
  석재// 

'중석기에 대하여'가 아니라, '중석기를 빼는 것이 대세'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것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구석기, 신석기로 크게 나누는데, 중석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많고 중석기를 또 유물에 따라 전기, 후기로 나누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흔하지는 않지만... 
석재님께서 중석기를 제외하신 것이 본문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중석기 제외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으셨는지 궁금했던 거랄까요? 주석이라면 이러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오해를 살만하다고 생각해서요. 

그나저나 석재님한테는 마구 질문만 하는 느낌이네요. 재밌게 보고 있는 독자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석// 

오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항정신성약물취급법이라니 흐흐흐 거기에 제조법이 써있던 걸까요? 흐 2009-01-10
07:15:25
  

 

상병 이석재 
  상병 이지훈/ 본문상의 편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좋겠군요. 사실 신석기-중석기-구석기를 따로따로 설명하면 좋겠지만 그러자니 시간이 오래걸리고, 제가 또 선사시대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말이죠. 2009-01-10
21:21:29
  

 

병장 이동석 
  음, 그냥 재미로 쓰다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은 왜곡이로군요. 왕서방은 그 거북이 등껍질을 약재-로 썼답니다. 그 등껍질이 비법이라는걸 알게된 다른 사람들도 너도 나도 그 등껍질을 찾아 땅을 파헤쳤고, 그러다 그 곳이 유명해지게 된것이죠. 그 등껍질에 새겨진것이 문자-라는걸 안 그 지역 학자가 저명한 역사학자에게 (역사학자인지는 불확실) 알림으로써 은허-는 발견되게 되었답니다. 2009-01-11
16:26:35
 

 

상병 이지훈 
  동석// 

오호 그렇군요. 그나저나 왕서방은 왜 이리 많죠? 여기 저기 흐흐 2009-01-12
08:45:18
  

 

병장 홍석기 
  은나라 부분에서....은나라 마지막 왕은 탕왕이 아니라 주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탕왕은 은나라의 시조로, 그렇기에 '성탕' 이라고도 불리죠.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은 체격도 무쟈게 크고, 머리까지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비범한 인간이었다고 하더군요. 2009-01-14
09:38:42
  

 

상병 이석재 
  병장 홍석기/ 아앗, 이런 최대의 문제점이. 이거 크군요... 수정하겠습니다. 머리까지 기가 막히게 돌아가긴 했지만 결국 나라를 멸망시키는데에 일조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군요. 2009-01-14
11: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