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I.S - Scene Five  
상병 이석재   2009-01-13 14:45:55, 조회: 65, 추천:0 

Scene Five-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은 제국.


지금 칼럼은 이틀에 한번씩 올리고 있는데, 이거 저만 너무 빠르게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주당 2회정도로 줄이려고 합니다. 쩝. 좀 더 진중한 설명이 나올 수 있겠지요?(땀땀)
이번 시간엔, 로마의 태동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세계 제국으로서, 앞으로 서구 문명을 결정지를 나라로서의 로마는 얘기할 것이 참으로 많은 국가이죠. 암요.


이제 로마는 세계의 제국으로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통일했지만 아직 국가 자체는 다민족국가로서 분열될 여지가 남아 있었고, 북쪽에는 아직도 이민족들이 이탈리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동쪽과 남쪽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마케도니아와 카르타고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합니다.


1차포에니 전쟁의 발단은 시칠리아에서 벌어집니다. 시칠리아는 밀의 중요한 생산지로서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인들이 티격태격 싸우던 곳이였지요. 하지만 그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와 그리스계 참주간의 양대 대결 구도가 카르타고의 승리로 이어지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리스계에서 로마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시칠리아를 점령하면 우리 둘다 위험하다!’라는 것이였지요. 이미 이탈리아를 통일한 입장으로서 확장방향을 아직 못정하던 로마로서는 그리스계의 도움 요청을 환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시칠리아로 고고싱.


하지만, 카르타고는 괜히 카르타고가 아니였습니다. 무주공산이였던 지중해의 교역을 책임지던 강국이였기 때문이였죠. 전체적으로 육군국가였던 로마에게 배를 타고서 도착해야 하는 시칠리아를 공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그렇게 해군에서 족족 깨지자, 로마 입장에서는 ‘까마귀’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도구를 지참한 배를 가지고 카르타고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주1). 카르타고는 배의 원형을 원초적으로 파괴한 그 까마귀를 비웃지만, 결국 그 까마귀 전법에 당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시칠리아 근처에 있던 함대들마저 태풍으로 인해 완파되자 그 해역에서 유지하고 있던 카르타고의 세력이 일소되버린 것이지요.


결국,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나고, 로마는 그리스계 세력까지 통합하여 시칠리아를 속주로 만들어 버립니다 . 이곳이 로마의 첫번째 속주가 된 것이지요. 속주는 로마 본토에서 사는 사람들과 계급은 약간 달랐습니다만, 그것이 노예와 주인처럼 완전하게 나누어져 있는 계급은 아니였습니다. 다만 조금의 돈을 더내고 덜내고의 수준인 것이였지요. 이후 시칠리아는 로마에 밀을 공급하는 중요한 곳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투 이후 카르타고는 급속하게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군대를 ‘용병’으로 해결했던 전래의 방식에도 타격을 받습니다.(주2) 용병들이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지요. 카르타고는 그 용병들을 제압하려고 했습니다만 로마와의 평화조약에서 군사 활동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용병들의 반란을 쉽게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참다 참다 해서 나가긴 했는데 로마의 항의를 바로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이때 그 유명했던 한니발은 본토에 집중되는 로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저 먼 이베리아반도에서 카르타고의 세력을 확장시켰던 것이지요. 카르타헤나 등을 건립하고 이베리아에서 군사를 키우던 그는, 결국 로마와의 조약에서 결정한 도시 ‘사군툼’ 이북을 넘어가지 않는다. 라는 조약을 깨고 이탈리아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로마는 이제 ‘삐용삐용’- 바로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결정하게 된 것이지요.


로마는 한니발 따위는 쉽게 막을 수 있다! 라면서 군대를 북쪽으로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한니발은 프랑스에서 로마를 싫어하던 골 족을 영입하고,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로 침입하기 시작합니다. 해안가에서 적을 막으려던 로마는 졸지에 후방을 유린당했고, 그대로 질질 끌려가 흔히 전사에서 ‘포위전의 완성판’으로 칭송받는 칸나에 회전에서 대파당하게 됩니다. 이렇듯 북부, 중부, 남부에 걸쳐 유린하기도 하고, 아직 연합체에 불과했던 이탈리아 반도의 일부 도시들을 끌여들이기도 했지만, 정작 로마는 함락당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해상권은 아직 로마가 쥐고 있어 카르타고에서 오는 지원군을 오는 족족 끊어버렸던 것이지요.


결국, 한니발은 추진력을 잃고 남부 이탈리아에 거점을 잡게 됩니다. 그 틈을 타 한니발의 숙적인 스키피오는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세력을 일소하고 바로 아프리카로 건너가게 되는 것이지요. 남이탈리아에서 지구전을 펼치던 한니발은 어쩔 수 없이 카르타고로 건너가게 되었고, 결국 ‘자마’ 회전에서 스키피오가 승리. 한니발은 도망치게 되고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역시 로마가 승리하게 됩니다(주3).


이제 카르타고는 마지막 기회까지 잃고, 결국 카르타고를 일소시키기 위한 로마의 마지막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카르타고는 울며 겨자먹기 3차 포에니 전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전투에서 카르타고는 함락, 완전히 불타버리고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통해 더 이상 로마는 ‘국가 연합체’로서의 구성을 벗어버리고 로마라는 도시 아래에 있는, 통치받는 여러도시의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다양성이 사라져가게 된 것이지요. 


영토는 늘어나고 고대 국가발전에 필수적인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채택하긴 했지만(주4)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시칠리아, 이베리아 반도등 영토가 늘어나자 그 영토를 산 대지주들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그 대지주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지요. 평민들을 위해 토지를 분배하려 했지만(주5) 실패했고, 결국 여러 내전을 겪은 끝에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운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아, 물론 이 사이에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도 나타났고,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외전’형식으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저는 사람들에 맞추어진 역사보다는 국가체제와 문화의 발전에 그 중점을 두고 싶거든요. 중요한 점은, 토지개혁 실패로 인해 로마공화정은 그 정치체제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내전을 통해 ‘일인’체제의 집권적인 통치가 로마에 필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였습니다. 아직 연락체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은 상황에서 거대한 영토의 통치를 다수결로 결정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로마는 지중해 전체를 통치하는 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칼리굴라나 네로처럼 로마를 망쳐버린 황제들도 존재했지만, 끊임없이 영토는 확장되었고 5현제시대에 로마는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통해 지중해 전체에 로마의 문화를 전파한 것이였지요.


다음 시간에는 로마 제정에 관해 일부 언급한 다음 로마의 멸망, 그리고 새롭게 재편되는 지중해 세계를 다룬다음 중국쪽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Coming Soon


주1-까마귀: 뱃머리에 널판지를 돛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 돛과 연결된 줄을 끊으면 널판지가 앞으로 걸쳐지는 모양인 것이지요. 그것을 통해 로마인들은 해상전을 육전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후에 나타날 겔리선들끼리의 전투와, 해적선의 전투방식, 그리고 삼국지에서 나타나는 연환계 등등이 해전을 육전으로 바꾸어놓은 중요한 사례들이지요.


주2-용병: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던 일부 국가들이 유지하던 체재입니다. 돈을 주고 병사를 사오던 것이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던 체제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돈이 없으면 이 용병들은 반란을 일삼았으니까요. 비잔틴제국의 후반 카탈루냐에서 사온 용병들이 제국에서 돈을 지급하지 못하자 바로 반란, 그리스에서 분탕질을 벌이고 모레아 공국을 독립시킨 사건을 보면, 이래저래 돈있다고 살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였지요. 


주3- 한니발: 사실 한니발 렉터 박사 뭐 이런사람이 아니에요. 전혀! 이후 한니발은 동지중해로 건너가 마치 ‘여포’처럼 고용되기도 하지만, 로마사절이 와서 한니발을 죽이라는 압박을 해오는  통해, 결국 독약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한니발은 트라시메노 호수, 칸나에 전투 등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작은 숫자로 큰 숫자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많이 만들어낸 위대한 장수중 한명이였습니다. 애도.


주4- 중앙집권적 국가: 칼럼을 쓰면서 계속 나오는 단어군요. 하지만 로마는 제정에 들어서기 전 까지는 ‘전제주의’국가가 아닌 ‘공화정’ 국가로서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였습니다.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는 상황에서 로마인이 그 중 제일이 되는 상황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로마인’이 된 상황에서의 통치랑은 달라졌던 것이지요. 하지만 갑작스런 확장으로 인한 문제점은 공화정체제로서는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평민과 귀족의 갈등을 해결해 줄 강력한 구심점이 부재했던 것도 한 이유이겠지요. 그런 구심점이 될 만한 독재정권이 등장하긴 했습니다만, 아직 공화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독재자가 죽고 나서는 권력이 흐지부지 되는 상황이 계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주5-그라쿠스 형제: 토지 개혁을 통해 대지주의 토지를 줄이고 소농들에게 토지분배를 실현하려 했습니다만 기득권층의 반발로 실패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토지 분배에 관해서는 그렇게 쉬운 쪽은 아니였던거 같군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9:52 

 

상병 차종기 
  어어어 , 저는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하지만 공부는 해야겠고, 그러니, 
프린트로 하겠습니다. (꾸벅) 2009-01-13
15:24:50
  

 

병장 이동석 
  이미 진중함은 확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리 많이 쭉쭉-뽑아내시는지, 재밌고 쉽게 쓰실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한니발-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는것 같아요. 더 해주세요-라고 동슥 어린이가 보채지만, 발로 뻥-차버리세요. 2009-01-13
16:11:02
 

 

상병 김상윤 
  로마인이야기로 익히 접한 이야기군요, 특히 여러번 읽은 2권의 한니발전쟁에 관해서요 
흐흐 제정 로마의 성립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그리고 완벽한 사기극이 아니었나.. 싶어요 
덧붙여서 한니발도 멋지지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으면, 개인적인 팬인 제가 더 좋아했겠지만, 역시 그정도 비중은 안나오는거겠죠 2009-01-13
16:13:01
  

 

상병 이석재 
  상병 차종기/ 헉, 제글을 프린트해서까지 보시겠다니. 그럴만한 글이 아닙니다. 쩝쩝 

병장 이동석, 상병 김상윤/ 이거이거, 아무래도 로마 역사에 대해 보론을 한번 써야겠군요. 한니발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한 얘기라... 윽, 좀 쉬려고 했는데(땀땀) 이번 주말전까지 올려보도록 하죠. 휘릭 2009-01-13
16:58:43
  

 

병장 정병훈 
  아, 정말 매번 올라오는 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역사에는 정말 무뇌안이라 이거 석재씨를 내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 2009-01-13
21:02:52
  

 

상병 황동경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쭉쭉 쓰실생각이신지요? 

이 칼럼을 보고나서 저도 갑자기 역사에 관심이 생겨나는데요? 2009-01-16
23: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