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I.S - Scene 9  
상병 이석재   2009-01-28 20:15:53, 조회: 3, 추천:0 

일단 고대의 아프리카, 아메리카 역사는 간단합니다. 아시아나 유럽 등 티격태격 싸웠던 나라들에 비해 이 두지역은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키며 따로따로 발전해 왔으니까요. 


북아프리카는 저번에 설명드렸던 데로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국가인 ‘카르타고’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우측엔 리비아인(주1)들과 이집트가 있었지요. 모로코지역은 ‘누미디아’라고 하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아프리카의 역사는 사하라사막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와 중,남아프리카가 다른 식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북아프리카는 현재까지도 이슬람 문명이 중심인 반면에 중,남아프리카는 기독교와 원시적인 문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지리적인 차이는 이렇듯 한 대륙에서도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 누미디아, 이집트 등이 로마제국에게 정복당한 이후에 북아프리카 해역은 모두 로마의 마레 노스트룸, 즉 내해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북아프리카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로마가 점차 약화되면서 북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에 사는 여러 사막민족들에 의한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북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은 점차 지중해를 건너 이주하기 시작했지요. 그 틈을 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튀니지 지역에 정착한 이후 ‘반달’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독일쪽에서 튀니지니까지 가로질러 이동하다니, 먹고 살기 위해선 뭔 짓을 못하겠습니까만은.


반달왕족은 북아프리카에서 번영하기 시작했지만, 유스티니아누스(주2)의 공격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북아프리카의 영토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로 귀속되게 됩니다. 그 비잔틴 제국의 중심은 바로 ‘카르타고’였지요. 고대 로마가 이 도시를 완전하게 파괴합니다만 그 지리적 위치는 어디서도 무시하기 힘든 지역이였으니까요. 카르타고-시칠리아-칼라브리아로 이어지는 지중해의 중심은 서지중해와 동지중해를 나누는 경계선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간 기착지로서, 또 지중해 함대의 감제지역으로서 그 효용성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도시위치를 그 누가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로마가 파괴해도 그 이후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시대까지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의 중요 도시로서 활약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카르타고가 점차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그 몰락의 기점은 바로 이슬람의 침략이였지요. 이슬람은 비잔틴제국을 공격, 중동과 아프리카를 이슬람의 영토로 편입시킵니다. 비잔틴제국은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로 그 영토가 축소되게 되지요. 그렇다면 카르타고랑은 무슨 관계냐하면, 이슬람의 기반은 ‘중동’ 즉, 다마스쿠스나 바그다드였습니다. 후에 나타나는 파티마, 아이유브 왕조(주3)는 이집트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고, 카르타고를 점령한 우마이야 왕조 또한 북아프리카가 기반이 아닌 스페인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후에 튀니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리드’왕조가 탄생하기까지 카르타고는 이슬람의 바깥지역으로서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 사하라 사막 남부는 어떻게 되었느냐하면, 만사무사가 다스리는 황금의 왕국 등 ‘금’으로 유명한 여러 왕국들이 발흥했습니다. 특히 이슬람인이였던 이 만사무사는 이슬람인들이 메카로 인생에 한번은 와야한다는 그 철칙에 따라 사하라 사막과 이집트를 건너 메카로 들어갔는데, 들어오면서 황금을 마구 뿌려대어 서아프리카 왕국의 부를 마음껏 발산했다고 하는군요. 왕국 이름들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서도, 서아프리카에 존재한 왕국들은 그 부가 장난 아니였다고 합니다. 발전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후에 포르투갈, 스페인등이 참여한 아프리카 정복전쟁에 희생되어 멸망하고 결국엔 노예공급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떤 아프리카 왕국은 자신들의 국민들을 노예로 팔아치웠다고 하니 그 상황을 알만 하지요. 


아메리카 지역은 북아메리카, 중남미 아메리카, 남미 아메리카 이렇게 3지역으로 나뉘었습니다. 북아메리카는 주로 ‘인디언’들이 자기들만의 문화를 키워가고 있었고, 중남미지역은 주로 멕시코 중부와 동부에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화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피라미드인데,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무덤의 용도로 쓰인 피라미드와는 다르게 하늘에 제사지낼 제단으로써 쓰인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주4)


남아메리카는 주로 안데스산맥 주변에서 문명이 발전하였습니다. 아마존강유역은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했고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지역또한 방목하기에는 적당하지만 사람이 경작을 하면서 살기에는 좋지 않았으니까요. 뭐 물론 사람은 많이 살았지만 특기할만한 문화는 없었다고 볼 수 있지요. 결국 아메리카의 3대문명이라 할 수 있는 마야, 아스텍, 잉카문명은 각각 멕시코 중부, 동부와 안데스산맥에서 발전했습니다. 안데스산맥에서 문명이 발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메리카 동부와는 다른 서늘한 기후등이 사람이 살기에는 더욱 적합했다고 하는군요. 


이제 인도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도는 저번에 4대문명에서 말했던 대로 아리안이 인더스문명을 침략한 이후 암흑기에 빠져듭니다. 문명 자체를 거부하는 이민족들은 문명을 파괴하고 약탈할 뿐이지 그 문명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원주민들은 인도의 남부와 동부로 도망쳤고, 아리아인들은 인더스강 유역에 남아 자신들만의 통치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대 인도까지 이어지는 ‘카스트제도’입니다. 카스트제도와 인도 신화의 시작이자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신화책이라고 할 수 있는 ‘리그 베다’등을 통해 아리아인들은 인도 북,동부에 도시국가를 건국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도시국가들은 처음으로 통합되게 되는데, 인도 첫번째 통일국가라고 할 수 있는 마가다 왕국입니다. 이 마가다 왕국은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아리아인들의 첫번째 중심 왕국을 세웠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마가다 왕국은 서쪽에서 들어온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의 침략에 의해 약화되었고 인도는 왕조가 교체, 마우리아 왕조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 마우리아 왕조는 갠지스강 유역까지 통치하여 인도 북부를 통일하게 된 것이지요. 아소카 왕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인도의 고대문화가 최고조로 발전하게 됩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 시절에 그리스와 인도 문화가 섞인 헬레니즘 문화가 인도땅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우리아 왕조도 몰락해가기 시작하면서 인도는 이제 그리스의 헬레니즘문화가 아닌, 불교와 힌두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왕조가 교체되어 ‘굽타’왕조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인도의 고대 역사는 이 굽타왕조까지입니다. 이후에는 ‘이슬람’의 세력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힌두문화가 섞이는 양상을 보여주게 되지요. 사실 인도의 왕조들은 중국, 동남아가 아닌 서쪽에서 오는 세력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물론 영국이야 예외가 될 수 있지만 말이지요. 인도의 문화는 아리아인이 구축한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그 제도가 계급별 사회를 구축하게 되는 단초가 되지만, 인도의 특수한 신화, 문화또한 아리아인들이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건 조금 내용이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제 지식의 한계다보니, 쩝쩝. 다음 이시간에는 잠시 또 중국쪽으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지요. 헉헉, 지금 제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보니 이번 칼럼은 영 퀄리티면에서 부족하군요. 원래는 주석도 이정도로 끝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음 작품은 더욱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지요.


주1-리비아인: 리비아인들은 후에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울때까지 이민족으로서 활동합니다. 주로 이집트지역을 많이 공략하긴 했지요. 이집트 관련 소설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주2-유스티니아누스: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로마인 황제라고들 합니다만, 사실 로마를 ‘꿈꾼’마지막 황제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의 영토는 이탈리아, 북아프리카를 거쳐 남스페인까지 점령했지만, 이 영토 모두 랑고바르드인들이나, 이슬람인들에 의해 정복당하게 됩니다. 하여튼 그의 왕비인 테오도라와 함께 세운 비잔틴의 영토들은 비잔틴 제국의 최대 영토로 지금까지도 기록되어 오고 있습니다.


주3-아이유브 왕조: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세운 이집트 왕조입니다. 후에 ‘노예’왕조라고 불리우는 맘루크 왕조로 교체될때까지 이집트와 중동 지역을 통치했는데요, 사실 살라딘 빼놓고는 얘기할 만한 국가는 아니여서.. 하여튼 중세의 중동통치는 모두 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이란이나 이런데는 좀 따로 놀긴 했지만… 후에 오스만 투르크 인들도 이집트의 노예왕조에서 ‘술탄’과 ‘칼리프’의 칭호를 얻어내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이슬람을 얘기할때에 따로 얘기하도록 하지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19:09 

 

병장 이동석 
  여기까지 백업했습니다. 헉헉. 2009-01-28
20: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