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I.S - Scene 7  
상병 이석재   2009-01-18 07:18:02, 조회: 67, 추천:0 

Scene 7–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주나라가 서쪽에 있던 이민족(주1)들에게 수도를 유린당하고 동쪽으로 수도를 옮겨 다시 주나라를 다시 세우게 됩니다. 이전의 주나라를 서주, 수도를 옮긴 주나라를 동주라고 표현하는데 문제는 바로 이 동주입니다.


동주는 세력이 약화된 관계로 점차 자신들에게 봉분했던 봉건 제후들의 지배권을 점점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이 봉건제후들과 주나라의 관계는 ‘혈연’관계로서 황제의 조카, 손자, 삼촌 뭐 이런사람들이 봉건을 받은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혈연관계는 약화됩니다. 우리나라도 8촌 이후로는 혈연관계로 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백년도 넘은 그 시점에서 과연 혈연관계가 얼마나 남아있었겠습니까. 결국 봉건제후들은 동주에 과연 ‘주인국가’로서 섬겨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도는 이민족에게 유린당했지, 힘은 약화됬지, 이제 슬슬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세력권을 유지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춘추시대동안 주위 봉건 제후들은 주나라에는 ‘명목적’인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른바 ‘근왕’이라는 명분 하에 군사를 움직여서 다른 봉건제후들을 공격하기도 하고요. 이 춘추시대를 주름잡은 사람들을 춘추오패라고 합니다. 제나라의 환공, 진(晉,후에 중국을 통일하는 秦과는 다른 나라입니다.)문공,(주1-1) 초양왕, 송양공, 월왕 구천, 오왕 합려(주2)등이 있습니다.


이 춘추시대동안, 사람들은 아직까진 목재 농기구를 사용했지만 경작기술의 발달로 (청동기로는 농기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청동기가 그렇게 내구력이 좋은 물품은 아니였다고 하더군요.) 생산성은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므로 일할 남자들이 부족하기도 해서 눈에 띌 정도로 배부르게 산 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이 춘추시대에 공자, 맹자, 순자 같은 ‘제자백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해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정치적인 의견들은 각 나라에 유입되기 시작하고, 각 국가들의 정치적인 지향점이 되기도 하였지요. 예를들어 법가는 진나라에 유입되면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춘추시대가 아닌 전국시대로 돌입하기 시작합니다. 춘추시대에는 무려 100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했었지만 전국시대로 돌입하면서 점차 국가들이 줄어들어 10여개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7대 강국은 진(秦),초(楚),연(燕),제(薺),한(韓),위(魏),조(趙)의 7개국입니다. 이외에도 송, 노, 주나라등이 존재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주나라를 ‘명목상’으로 주인국으로 대접했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서로 자기들만의 이익만을 좆아 전쟁과 평화를 반복해 나갔던 것입니다. 물론 영토는 초나라가 가장 컸지만 국력으로서는 진나라가 제일 강력했기 때문에 나머지 6개국이 진나라를 상대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가 외교로서 점차 6국 연합을 무력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진나라에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여, 중국의 첫번째 통일 국가인 진나라를 출범하기에 이릅니다.


진나라는 , 중국을 제일 처음으로 통일했기 때문에(은,주나라는 중국을 통일했다기보다는 초기국가형태로서 인식됩니다.) 도량형등 모든 규칙들을 새롭게 통일해야만 했습니다. 7개국으로 나뉘어져 티격태격하던 시절이 얼마 안되었기 때문이였지요. 하지만 그 통일시도는 너무 격해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들을 ‘법가’로서 통일시키려는 노력인 분서갱유, 이민족을 막자고 시작한 만리장성등 너무 큰 역사를 통해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티격태격 싸우던 때보다 통일국가일때가 더 살기 힘드니 이래저래 반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진시황이 좀 안죽어보자고 은단 구하다가 꼬까닥 죽어버린뒤로, 국가에 카리스마가 없어지자 결국 반란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중국 최초의 민중반란인 ‘진승,오광의 난’서부터 시작하여 중국 전체에 반란의 물결이 일어나고, 진 2세황제(주3)또한 반란군을 진압하다가 내부반란으로 죽어버리자 결국 진나라는 와해되고, ‘장기’(주4)로 유명한 초나라와 한나라, 항우와 유방이 격돌하는 체계로 흘러가게 됩니다.


항우가 초반승기를 잡고 유방을 공략했지만, 유방은 고대 진나라(파촉지역, 지금은 ‘성도’라는 도시가 있지요)의 지역에서 힘을 키우다가 초나라를 결국 해하 싸움 한번에 격파해버리고 항우를 자살케 합니다. 결국 이 유방이 진나라를 물리치고 새로운 국가, 한나라를 건국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하기 시작합니다. 


한나라는 주나라가 이미 봉건제로서 어떻게 망하는 지를 봤기 때문에, 진나라가 정한 군현제를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군현제는 지금처럼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리가 각 지역을 통치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군현제는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한나라는 봉건제와 군현제를 아우르는 제도를 시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군국제의 시초인 것이지요. 초기에는 유방의 가족들을 임명하고, 군사적인 승리를 도운 신하들을 임명했지만 점차 유방이 임명한 관리들을 파견하게 되면서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단행합니다. 이에 각지역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유방은 ‘토사구팽’의 정신 아래 자신들을 도운 신하들마저도 무참하게 처형해버리지요(주5)


한나라부터 이제 ‘중원’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진나라때도 주위 국가들의 조공을 받으면서 살아왔지만 이제 한나라에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족을 공격하기도 하고 고조선을 멸망시키면서 주위 국가들에게 조공을 통한 평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른바 ‘조공 무역’의 시작입니다. 신하국가들이 조공을 받치면 중국은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내림으로서 교역 아닌 교역을 하는 것이지요. 그 외에도 한나라때부터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부서지지도 않겠다, 수량도 많겠다. 평화시대라 사람들도 늘어나겠다. 그런 것이죠. 


저번편에서 말한대로, 대대적인 이민 붐을 일으킨 한 무제를 제외하면, 사실 한나라에서 특기할만한 황제는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이 한무제는 소금과 철을 국가에서 전매함으로서 국가의 재정 또한 늘려가기 시작했지요. 소금은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데 꼭 필요한 거기 때문에 국가에서 전매하기 시작하면 그 이익이 상당했기 때문이였고, 그 이익을 통해 전쟁비용을 댄 것이지요. 물론 ‘전한’과 ‘후한’을 나누는 기준인 왕망의 반역사건(주6)이후 다시 한나라를 복귀시킬 때 빼놓고는 말이죠. 후한은 거의 우리나라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같다고나 할까요. 거의 근근하게 먹고사는, 그런 상황이였습니다. 후한 또한 건립한 광무제 이후 특기할만한 황제가 없었습니다.


이제 한나라 또한 멸망의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역시 국가에서는 농민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결국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등으로 인해 한나라는 몰락하고 말지요. 한나라는 중국 국가중 처음으로 통일제국을 길게 유지했습니다. 한나라의 문화 또한 전 아시아에 퍼져나갔으며, 그들의 행보는 유럽을 뒤집어 놓기도 했고 중국을 중심하는 한자문화권이 이 한나라 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모든것을 처음 시작한 한나라는, 나중에 나타나는 여러 통일 제국들에게 그 모티브를 던져줄 수 있었고 앞으로 중국에 등장하는 왕조들의 첫번째 모델이 됩니다. 그럼 한나라 이후의 역사는 다음시간에..으흐흐. 


주1-1-진문공: 사실 수정하면서까진 쓰고싶진 않았지만 설명하면 재밌을거 같아서요. 나중에 전국시대에 등장하는 한,위,조는 이 진나라를 한씨,위씨,조씨가 서로 나눠먹은 국가입니다. 삼국지에서 유기가 제갈량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고 난 뒤에 제갈량이 고사라고 전해준 내용이 바로 이 진문공 얘기가 있습니다. 진문공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왕위계승을 해야 했지만 계모의 계략으로 나라를 탈출해서 전국을 순회합니다. 그에반해 그의 동생은 나라에 남아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하고 처형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제갈량은 나라에 남아서 처형당하기보다는 강하로 튀어서 목숨을 보전하고 기회를 노리라는 조언을 한 것입니다. 진문공은 그렇게 전국을 주유하다가 나이 60이 되서야 진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지요.


주1-이민족: 중국은 황하유역을 ‘중원’으로 놓고 동,서,남,북에 있는 다른 민족을 모두 이민족 취급하였습니다. 북적, 서융, 남만, 동이 라고 표현합니다. 적,융,만,이 모두 ‘이민족’을 나타내는 한자어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우리 민족을 ‘동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정작 이민족을 나타내는 표현어인 것이지요. 주나라를 쳐들어온 민족은 바로 이 ‘서융’입니다”


주2-춘추오패: 춘추시대에서 패자로서 다른 나라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간 중요 군주들입니다. 하지만 이 군주들의 사후에는 다른 지역에서 패자가 등장했으므로 통일국가가 등장하기에는 아직 요원한 시기였던 것이지요. 초 양왕만 왕인 이유는, 초나라가 거의 유일하게 주나라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주나라에게 주어진 작위는 단지 ‘백작’수준에 불과했거든요. 그거에 불만을 가진 초나라는 원체 그 원류가 남만이였고 중원인이 아니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왕을 참칭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요. 송양공 같은 경우는 춘추오패로 넣는 역사가들도 있고 안넣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이 송양공이 사자성어의 ‘송양지인’을 일으킨 주범인데요. 강을 건너는 적군을 인의로 대접하여 강을 건널 때 공격하지 않고 상륙까지 다 하고 나서 준비까지 시키며 “적이 도하할 때 건드리는 것은 인의가 아닐지니”이러다가 된통 당한, 바보 같은 인의를 일컫는 말입니다. 월왕 구천과 오왕 합려는 바로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입니다.


주3-2세: 진나라의 진시황은 자신들이 죽을 때 신하들이 주는 연호를 폐지했습니다. 황제의 연호를 신하가 함부로 정할 수 없다는 자만심의 발로였지요. 그래서 그의 시호가 첫번째 황제라는 시황인 것입니다. 역시 그 후계자또한 2세 황제, 3세황제 라는 식이였지요. 다만 3세황제는 없어서 눈물이 좀 나지만,


주4-장기: 장기의 말을 보시면 초, 한이 적혀져 있습니다. 초나라가 항우, 한나라가 유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항우가 우위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초나라가 먼저 군사적인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초나라의 한자표기는 좀 이상한데, 그것이 남방지역에 퍼져있는 ‘사투리’같은 한자입니다. 중국의 언어는 북방하고 남방하고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지요.


주5-토사구팽: 한신,소하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장량은 한나라의 통일 이후 미련없이 유방을 떠나 그 목숨을 부지했지만, 한신, 소하는 유방 밑에 남아서 한자리 꿰차다가 결국 토사구팽당해 처형당하게 됩니다. 유방이 뭐 그런사람이였기 때문이였겠지요.


주6-왕망의 신나라: 왕망은 옛날 주나라 시절의 봉건제를 좋아한 나머지 모든 법들을 옛날 것들로 회귀시켜 토지가 국가에 배속되어 골고루 나눠주는, 그 시대에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법들을 제정했습니다. 물론 지주들의 불만을 사서 신나라는 금방 멸망해버리고 후한이 들어서게 되지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41:18 

 

병장 이동석 
  또 지적질, 꾸벅- 

[진중,오광의 난] (?) 

[오합려, 송양공, 월왕 구천, 오왕 합려] 
오 합려가 두번 나왔군요. 

확실히 한나라는 치세-였던지라 과하게 정복사업을 하다 나라를 파탄으로 몰고간 한무제나 다시 한나라를 복원시킨 광무제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치적이 보이지 않긴 하는군요. 역사엔 좀 안남았어도, 사람들 살기엔 좋았겠지요. 그리고 그 뒤로 이천년 가까이 유지되는 '중국'의 토대를 만들었던 시기기도 하니까요. 2009-01-18
10:24:46
 

 

상병 이석재 
  왜 난 이런 오류만 자꾸 저질르는거지..수정하겠습니다. 이거 이런 오류가 자꾸 발생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2009-01-18
10:42:40
  

 

상병 김예찬 
  엇, 진나라가 군현제를 시행했고 한나라가 군국제를 시행한게 아닌가요? 

군현제는 모든 지역을 군과 현으로 나누어 수도를 제외하고 모든 지방을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놓은 것이고, 한나라의 군국제는 공신과 황족들에게 왕의 칭호를 주어 나라를 나누어준 제도, 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9-01-18
18:00:57
  

 

상병 이석재 
  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찾아봐야 겠군요. 옛 기억에 의존해서 하다보니. 낄. 2009-01-18
18:01:57
  

 

상병 이석재 
  앗, 오류다. 이런식으로 정확도가 떨어지면 안되는데 허허. 설탕나가서 세계사 관련 책 한권 들고와야 하나...쩝쩝. 수정합니다. 2009-01-18
18:07:36
  

 

병장 이동석 
  아뇨, 뭐 저런 세세한 부분은 노템전(그러니까 참고문헌이나 검색이 어려운, 우리 상황)이니까 어쩔수 없는거지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009-01-18
19:53:12
 

 

병장 김민규 
  어쩌면 그러한 노템전다운 풋기야말로 이 글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엄청난 참고문헌을 쌓아놓고 썼다면, 그냥 잘 쓴 세계사 책 한 권 읽어보는게 낫겠죠. 그건 단지 요약-에 불과할테니까요. 도대체 뭘 하면 저런걸 머리속에 쌓아둘 수 있는지, 그냥 궁금합니다. 잘 읽었어요. 2009-01-19
02:13:57
  

 

상병 김예찬 
  노템으로 시작된 글이 여러 사람들의 참여와 보완으로 하나의 아이템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고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9-01-19
09:42:33
  

 

상병 이석재 
  모든 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낄낄. 2009-01-19
10:5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