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병훈 - 후출사표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8-12-17 09:27:50, 조회: 416, 추천:0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주(主)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민(民)의 신분인 그를 세 번 찾아가 그를 손에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 불리옵니다. 그런 제갈량은 유비의 죽음을 예지(叡智)하고 하늘의 별(星)이 지는 것을 보며 유비의 죽음을 한탄(恨歎)하였습니다. 제가 유비도 아닐 진데 별(星)에 비유하여 제 가는 마지막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당신(當身)에게 심심(深心)한 사의(謝意)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일은 모두 본인의 불찰(不察)로 인해 벌어진 일인데 본인의 책(責)을 당신의 실(失)이라 덮어주시는 모습에 그 따뜻한 정 잊지 못합니다. 더불어, 함께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꿨다고 믿어 의심치 아니하셨는데, 본인의 섣부른 망언(妄言)으로 큰 실망을 안겨 드렸으니, 떠나는 이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고, 남은 이에게는 상처만 줘 사유(赦宥)의 길 면치 못합니다. 

이제 주말동안 탄 불씨는 본인의 예견(豫見)에 비쳐 꺼진 듯 싶고, 그 남은 재만이 책마을에 황망(慌忙)히 남아 바람에 흩날리옵니다. 이제 그 잿 바람 또한 넓디넓은 책마을의 모퉁이에 안착하여, 지난날의 좋지 않은 기과(記過)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사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톱니바퀴를 이룬다고 말하면 조소(嘲笑)를 불러올지도 모르겠지만 그 마저도 사유(思惟)했을지는 본인과 하늘만이 알 것입니다. 물론 당신(當身)의 특별한 행동으로 인해 본인이 톱니바퀴를 돌렸으며, 이 행동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을 했사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해봤자 조소(嘲笑)만 불러올 뿐이니 없는 시간 허비하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본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넓게 책마을이 지적(知的)인 사유(思惟)의 장(場)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런 내용의 글을 쓰고 싶었고, 너무 진지해 진다면, 참여 또한 생각보다 없을 것을 염려(念慮)하여, 조금 쉽고 엉성하게 쓰였습니다. 

쉽고 엉성하게 쓰인다고 하여 논지(論之)가 날카롭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그들에게 반감(反感)만을 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본인이 주장한 지적(知的)인 책마을을 지향(志向)하자는 말이 어떤 이에게는 책마을의 높은 벽을 만들자는 말처럼 들린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단 말이옵니까. 본인이 어디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것을 가로막으려 했다 생각하시옵니까. 이것이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첫(一) 번째 일입니다.

책마을에는 꽤나 많은 분들이 공존(共存)한다는 것을 본인은 느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책마을의 성격(成格)을 지적(知的)인 책마을로 정의(情義) 하고 그 부분에 대한 강조만으로 본인의 책마을을 만들려 했다는 질책(叱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책마을이 그것만 존재한다 하겠습니까. 흐릿한 논지(論之)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혼란(昏亂)을 겪고, 말장난 같은 글재주로 그들에게 얘기하려 들었습니다. 지적(知的)인 책마을과 소소(疎疎)한 책마을(편의便宜상)의 이분법(二分法)적인 생각을 만들게 하여, 지난날의 귀족(貴族)과 평민(平民) 같은 단어선택의 우(愚)를 다시한번 범하게 되었으니 이는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두(二) 번째 일입니다.

흐릿한 논지를 바탕으로 무수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으며, 뭉뚝한 창은 많은 사람들을 자극(刺戟)하였습니다. 그로 소통(疏通)의 책마을에 관한 상반된 의견이 나왔으나 본인의 깊은 한탄(恨歎)을 어찌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소모임 가입에 대한 관리와 무차별적인 회원승인에 관한 이야기는 주민들에게 또 한 번의 혼란(昏亂)을 야기하게 하였으며 다시 책마을의 높은 벽을 만들자는 귀족주의(貴族主義)를 형상화(形象化) 시켰다는 평(平)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글을 읽고 지켜보기만 하던 분들의 원성(怨聲)을 듣게 되었으니, 이는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세(三) 번째 일입니다.

오랜 시간 책마을과 함께 하며 교우(交友)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작은 씀씀이로 인해 함께한 많은 분들의 장난스러운 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니 실로 본인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사옵니다. 이성(理性)이 감성(感性)보다 앞에 존재해야 할 터인즉 감성이 앞선 그날의 돌이킬 수 없는 글은 모든 이들에게 공개가 되었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치욕(恥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욱 한(恨)스러운 것은 그것이 잘못된 감성(感性)의 끝자락인 것을 알면서도 끝을 보아야 하겠다는 어린 마음 씀이 모든 이들에게 상처만을 남겨 주게 되었습니다. 굳이 서로에게 상처(傷處)가 되지 않고 원만(圓滿)하게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헛된 객기(客氣)와 오기(傲氣)는 이성(理性)의 문을 여는데 실패(失牌)를 맛보게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본인 뿐 아닌 오랜 시간 교우(交友)하며 지낸 벗(友)님들께 상처만을 남겨 주게 되었으니, 이 또한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네(四) 번째 일입니다.

본인의 삐뚤어진 글을 바로 잡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글로써 소통(疏通)을 시도했으나, 본인은 그 또한 또 다른 공격(攻擊)의 형태로만 생각하여 정확한 논지(論之)를 파악하지 못하고 악의(惡意)적인 글로서 받아 칠 생각만을 하여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그들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이는 형편없는 본인의 안목(眼目)이 들통 난 일일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치욕(恥辱)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본인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어릿한 행동을 하여 깊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그에 합당한 욕을 먹으며, 갈기갈기 찢겨도 일언(一言)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다섯(五) 번째 일입니다.

굽힐 줄 모르는 목 때문에 이제껏 몸담아 놓았던 그 곳에 잘린 목을 나두고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것과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것이 본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값으로 굽혀지지 않은 목은 많은 분들에 의해 잘리고, 다신 살(生)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제껏 생(生)동안 손에 꼽을 수 있는 큰 실수(失手)중의 한 건 입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해왔으나, 이 한 번의 기회로 많은 사람들의 등을 돌리게 하였으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비겁(卑怯)하게 떠날 필요 또한 없었을 거라 생각도 해보았지만 물은 엎질러졌고, 이제 남은 건 남겨진 잿더미 속에서 타나 남은 본인의 흔적을 향유(享有)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 뿐이옵니다. 이것이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마지막 여섯(六) 번째 일이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니, 미리 헤아려 살피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본인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애쓸 뿐 그 이루고 못 이룸,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는 미리 내다보는 데 밝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아직 희망의 불빛을 버리지 못하옵니다. 분명 제가 본 책마을의 모습은 당신과 봤던 책마을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기에 그 모든 것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없어진 시간 속에서 마지막으로 펜을 들어 충신(忠臣)의 정(情)을 올리옵니다.

그 하나로, 이 공간에 대한 정의(正義)를 내리는 것 자체가 배척(排斥)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분명한 목적(目的)이 없는 모임은 뜻하지 않는 결과(結果)를 불러올 뿐입니다. 그것이 언제 나타난다고는 장담(壯談)을 할 수 없지만,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아닌 저마다 다른 사유(思惟)로 채워진 이 공간은 우주(宇宙)일 뿐입니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별(星)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은하계(銀河系)가 존재하옵니다. 지금 추진하는 문집과, 새로운 시즌에 관한 이야기 또한 높은 참여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겉(外)과 속(內)이 다른 것을 당신(當身)또한 느낄 수 있을 바, 이는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 것 중 한 가지 옵니다. 서로 다른 사유(思惟)에서 비롯된 괴리(乖離)로도 생각해 봄직함을 잊지 말아주옵소서. 이는 새로 만들어질 다른 공간과 매체의 형성에도 큰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사옵니다. 지금부터 아끼고 힘쓰지 않고 사람만을 모은다면, 앞으로의 모습은 밝은 날만이 계속되리라 장담할 수 없사옵니다.

진정한 소통(疏通)의 책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와는 또 다른 모습의 소모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봐오는 사람들과의 얘기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를 만드는 것일 뿐. 이는 서로 다른 사유(思惟)에서 비롯되어, 관심 없는 논쟁(論爭)에 대해서는 소통(疏通)자체를 경시(輕視)하는 현상까지 야기하는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1500명에 다라는 소모임에서 50명 정도가 소통을 참여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다양성(多樣性)을 추구하는 이곳에선 더욱이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이 되옵니다. 일전에도 언급하였듯 글로써 소통(疏通)을 하는 이 공간에는 분명 읽어주는 분들 또한 고마운 일이긴 하나, 그것만으론 이 공간을 채우기엔 너무 가볍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본인만의 생각이 될 수도 있으나, 분명 한 단계 성숙(成熟)한 소모임의 지름길이 되리라 본인은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소통(疏通)의 모습은 그것이 논쟁(論爭)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소소(疎疎)한 일상 속에서의 경험(經驗)을 나누는 것 또한 소통(疏通)의 한 모습임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지적(知的)인 책마을이 되자고 하는 본인의 생각과 상반(相反)되는 것이 아닌 것을 어찌 알아봐 주시지 않사옵니까. 모임의 성격상 주체적(主體的)으로 활동하는 집단이 있다면, 당연히 새로운 그들은 정신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 또한 이 공간에 처음 발을 드릴 때 그러했으며, 그런 본인을 따뜻하게 받아 준 것 또한 소소(疎疎)한 일상이야기였습니다. 지적(知的)인 책마을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소소(疎疎)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입을 열고 생각을 깨우쳐 자신감을 심어줘야 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한 발짝 나아간 책마을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소통(疏通)에 관하여 항상 아쉬움을 보여드렸으나, 어찌 쉽게 그렇다 단정짓고 생각하십니까. 본인 또한 보통 소소한 글을 쓰지만, 가입인사, 일상 야이기 같은 처음 보는 그들의 글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있는 시간 활용하여 손을 잡아 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명뿐이옵니다. 잡아주는 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이 적응하는 데는 큰 힘이 되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책마을의 소통(疏通)을 얘기했으나, 이 또한 얽힌바 눈물을 아니 흘릴 수가 없습니다. 

글로써 소통(疏通)하는 것은 주체적(主體的)으로 활동하는 우리들끼리의 활동일 뿐입니다. 그들은 무리지어 항상 얘기하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글이 반위(巖)같은 존재로 느껴질까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아 옵니다. 그럴 때 마다 본인은 안타까움을 감출수가 없사옵니다. 한명이 아쉬울 때입니다. 분명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자신감(自信感)을 심어주고 그들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마땅한 줄 압니다. 그들의 글에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어렵다면, 칭찬 한 줄이라도 적어주어 그들에게 힘을 나눠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함을 잊지 마소서. 첫 번째 글이 마지막 글이 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 또한 소통(疏通)의 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사회는 이미 이십대를 버렸다 말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길들여진 대로 사회에 적응(適應)을 하고 반항(反抗) 없이 성장(成長)할 뿐 그들만의 무기(武器)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십대의 겁(怯)으로도 표현되고, 자격지심(自激之心)으로도 표현이 되옵니다. 우리는 모두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이며, 우리들만의 색(色)을 갖길 원합니다.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우리들의 색(色)을 그들에게 표출(表出)하길 바라옵니다. 그러한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지혜(知慧)로 맞서는 방법입니다. 지혜가 없이 어찌 사회와 싸우자 말할 수 있사옵니까. 젊은 청년이 길러야 할 것은 객기(客氣)와, 부질없는 반항심(反抗心)이 아닌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임을 잊지 말아주시옵소서. 이는 'VANK'(Voluntary Agency Network Korea)라는 예를 통해서도 보인 바, 우리의 색(色)과, 우리의 젊음이 지향(志向)해야 할 좋은 예라 생각 하옵니다. 그리하여 지적(知的)인 책마을을 소리쳐 외쳤습니다. 그것이 학문적인 지식(知識)을 말하는 것으로 풀이 될 수도 있으나, 본인은 사회를 살아가는 힘(力)을 얻자는 뜻을 말하고 싶었음을 어찌 몰라주시옵니까. 우리의 모임을 어찌 그리 가벼이 생각하시옵니까. 마땅히 정진(挺進)하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성인(成人)으로 성장(成長)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을, 그리 가벼운 생각을 본인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사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집의 형태도 조금씩 모양을 들어내는 듯 하다 보였고, 우리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우리들만의 색(色)을 띄길 바란 것 어니였사옵니까. 이 또한 뚜렷한 목적이 없는 소통(疏通)의 원인(原因)에서 비롯되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충신(忠臣)의 예(禮)를 쉬 생각하지 마시고 곱씹어 살피옵소서.

이제는 다시 설수 없는 그 공간에 어찌 이리 상관하느냐 물어 대답을 원하신다면, 어찌 그리 사람이 매정할 수 있느냐 대답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애정(愛情)을 많이 갖고 누구보다 관심(觀心)을 많이 기울였다고 단언(斷言)하고 다녔습니다. 그것 마저 어리광으로 비쳐보였거나, 가식(假飾)으로 비쳐보였다면 더 이상 입을 열수가 없습니다. 

이제 까지 말씀 올려 드린 것이 제가 바라보는 책마을의 작은 방향성이 옵니다. 이것이 본인이 생각하는 책마을의 모습일진데, 허황(虛荒)된 글재주로 많은 사람들의 반감(反感)만을 사는 것이 되었으니,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사옵니다.

본인이 그곳을 떠난 것은 당신의 술주정 같은 언행(言行)때문도 아니며, 본인의 글에 대한 무관심(無關心)의 투정 또한 아니옵니다. 당신의 폭력적인 말투가 발화되어 본인을 내 쫒았다 생각하지 마옵소서. 그런 생각인 즉 본인을 소인배로 떨어드리는 일 밖에 안 됨을 어찌 모르십니까.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것이 아니었다 말할 수 있었으나, 지쳤다 표현하는 본인에게는 정말 힘이 없사옵니다. 더욱이, 본인은 본인이 생각하는 소통(疏通)을 통해 부단히 노력을 했으나, 본인과 소통(疏通)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들의 입에서 본인에 대한 실망(失望)과 더러움을 듣는 것은 당신의 난폭(亂暴)한 언행(言行) 보다 더욱 상처(傷處)가 되었습니다. 본인의 학업(學業)을 전패(全敗)하게 하였고 독서(讀書)를 방해(妨害)하면서 까지 버리지 못한 이 공간이옵니다. 본인의 힘으로는 떠날 수 없음에 이번 기회를 통해 공간이 본인을 버리는 길을 택하였으니, 이를 어리석다 여기여 꾸짖으신다면 본인에겐 달갑게 다가옴을 알아주소서. 갑작스레 떠난 이유는 이제 본인에게도 여건(與件)의 변화(變化)가 생겼다 말씀 올립니다. 이는 작게는 문자의 생성이 불가능 한 것에서, 크게는 다시는 이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이라. 글로서 이를 표현하면서도 가슴이 아려옴을 가리지 못하옵니다.

더럽게 끝나버린 이 자리에 왜 다시 돌아왔냐는 질문에는 뚫린 귀가 있다고 밖에 말씀을 못 올리겠습니다. 오해(誤解)와 비난(非難)들에 대하여, 본인이 생각했던 논지(論之)를 다시 들고 한판 붙어 보자는, 그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타들어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입을 열어 봤자 더욱 추(醜)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임을 아는 본인은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금 쪽지로 보내는 것은 그동안의 정에 사무쳐 돌릴 수 없는 등을 이젠 정말 돌리려 함입니다. 더 이상 본인의 힘으로는 아름답게 돌아설 능력 또한 없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또한 가식(假飾)적인 글이라 바라보신다면 그것만큼 슬픈(哀) 일은 없습니다. 이 또한 어리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다면 흐르는 눈물을 뒤로 한 채 돌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마저 추잡한 행동이라 보인 다면 이제 남은 연의 끈을 놓으렵니다. 

그동안 후임의 입을 통해 몇 가지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좋은 이야기는 극히 드문 것 또한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관심도 이젠 사라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꺼진 불꽃이기에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몇일만에 찾아온 이곳은 새로운 활기로 넘쳐남을 느낍니다. 본인의 사건으로 인했다고는 입을 열지 못하나, 확실히 늘어난 그들의 모습을 보면 본인 또한 웃는 얼굴로 등을 돌릴 수 있사옵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 책마을 또한 항상 그러하길 바라옵니다.

이것이 본인이 생각하던 책마을의 모습이며, 당신을 향한 제 마음입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올수 있으나, 더 이상의 오해가 생기길 바라지 않습니다. 

벗(友)님. 이제 돌아서나,
쉬 잊지 마옵소서.
길지 않은 시간 그대와 나의 열정(熱情)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벗(友)님. 별래(別來) 무양(無恙)하시옵소서.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4:19 

 

상병 김무준 
  깽깽이한테도 쪽지가 오긴 왔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올리시는게 어떠했을지. 2008-12-17
09:32:50
  

 

상병 김무준 
  그리고 이게 칼럼으로 향할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2008-12-17
09:34:27
  

 

병장 김민규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올려주기를 바랬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굳이 칼럼에 올린 것은 성격을 떠나 묻히게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싶으면 동석님 알아서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파링 안 받습니다. 지지든 볶든 마음대로 하세요. 2008-12-17
09:45:27
  

 

병장 박윤수 
  저한테도 오긴왔었는데, 음. 음. 음.. 2008-12-17
09:52:57
  

 

병장 조현식 
  떠날 사람은 그냥 말 없이 떠나라기에는 제 마음에 정병훈씨의 많았던 글과 활동이 생각나서 아쉬운 마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병훈씨의 말에 동의하는 면이 있기도 했구요. 그 표현 방법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었다 치더라도...(저는 잘 모르겠지마는) 

이전에 정병훈씨는 필진이었고, 이것은 정말로 마지막 글이라고 하고, 올려달라고 부탁까지 하셨으니 개인적으로 보낸 쪽지를 올려 답답한 마음을 갖게 한 이전의 쪽지글보다는 오히려 이 글이 공개적으로 올라올 만한 글이고, 현재의 책마을에 대한 '시사'를 말하고 있으니 칼럼이라고도 포괄적으로 너그러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지금의 책마을 주민들에게는 있어야 할 겁니다. 2008-12-17
09:56:03
  

 

상병 김무준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동석씨 말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물어 뜯기든 어떻든 나와서 직접 하고 해명을 하던가. 깔끔하지가 못해서 답답하다는 말이 하고 싶네요. 

서민적인 글을 쓰고 싶다 했으면서, 제갈량의 후출사표를 차용해 온 것은 좋은데, 굳이 이렇게 의미가 분명한 단어에 한자어를 집어넣으면서 글을 써야했는가도 의문이군요. 글에서 한자어를 쓸 때는, 의도적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갖게 하지 않는 다면, 글쓴이의 명확한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만 한자어를 붙이는 것이니까요. 

왜 이렇게 꼬투리를 잡냐고요? 불 붙던 자리에다 불 끄려고 열심히 물 퍼다 날랐는데 홀라당 타버리고 재만 남아서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혹여 이양반이 정신 차리고 다시 올까봐.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필진 '이었'고 자신이 받은 자리를 책임감 없이 사과 한마디 없이 던져놓고 튀었습니다. 그런 그가 쓴 글이 '칼럼'에 올만한 성격인가요? 모르겠군요. 책임도 없이 튀어버린 필진이 칼럼에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요? 그 글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책마을 칼럼란에 올라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병훈씨가 돌아온다면 다시 받아줄 아량이 이곳 주민들에게는 넘치고 넘친다 생각하지만, 책임을 저버리고 튀었으면 그만큼 대가도 있어야겠죠. 글이 묻히든 말든, 책마당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렵니다. 

아, 요새 말 많아졌네. 답지않게. 2008-12-17
10:17:59
  

 

병장 문두환 
  내가 쓴 글이 상대에게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더불어 옛 기억이 떠올라 몹시 괴로운 지금입니다. 

제가 병훈씨에게 한 이야기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 하니, 사이좋은 세상에서 더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친밀히 교재하던 이들에게 보낸 쪽지이고, 민규님이 하는 말을 보면 글을 올려달라고 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간 이후에도 당사자도 없는데 그에 대해 나왔던 후속 글들을 고려해볼때 칼럼 게시판 성격을 떠나 그간 우리가 가졌던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글이지 않나 싶습니다. 2008-12-17
10:21:04
  

 

병장 양 현 
  난 내멋대로니까, 내멋대로 올리렵니다. 

마치 달밤에 할일없어 쓴 변명같군요. 그저 변명밖에 되지 않는 글은 나는 왜 읽고 있는걸까요. 수두룩한 한문과 해석과 함께 있는 이 글을 난 왜 읽고 있을까요. 

이해하기도 힘들고, 어렵고, 복잡하고. 난 이런글을 보려고 있었는게 아닌데 말이죠. 
벗님이라고 해서 뭔 얘긴가 했어요. 뭔 이야기인가 하고 쭉 보았지요. 머릿속에 들어오지가 않더군요.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질 않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로만 계속되어있지 않나. 모르겠네요. 
단순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변명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여느 댓글에서도 달려있었지요. 한대 툭 치고, 한대 툭 맞고나서 '어이쿠 내가 졌다' 
이런거같은 모습이에요. 도망가는거죠? 난 마지막을 조금이나마도 아름답게 보여준 건 아니에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고, 내가 생각한 것을 말했을 뿐이에요. 그런 것 뿐이죠. 아하하. 무언가 안되겠다 싶으면, 되게 만들면 되는거에요. 궁에 입궁하고나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무엇이냐, 

안되면 되게하라. 이거에요. 그리고 안되는것도 어떻게 하다 보면 되게 된다 이겁니다. 뭐죠? 지금은. 안되는걸 그저 안된다라고 판단하고서 도망치려 하고 있잖아요. 에반게리온에서도 신지가 외쳐대죠.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도망치면 안되 . 뭐 이런거. 

여하튼, 군대라는 사회보다 사회라는 사회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래요. 그렇게 마주보고 얘기하고, 그러는게 어렵나요. 그냥 한번 정모자리같은데 나와서 얘기 나누고 친해지고. 친구란, 술로 친해지는 친구가 친구이다라는 말처럼. 한잔의 술로 목에 낀 기름끼를 흘려버리고, 두잔의 술로 코에 막힌 콧물을 풀어버리며, 세잔의 술로 가슴에 막힌 이야기를 해대는게. 그렇게 어렵나요. 안어렵죠? 나도 곧 있으면 가요. 곧이 한 4개월-정도긴 하지만, 그 사이에도 책마을은 돌아가겠죠. 마치 밖에서 나 하나의 존재가 부대찌게집에에 입궁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돌아가는 것 마냥 말예요. 그렇게 돌아가고 돌며 돌아가겠죠. 

맞아요. 전 그냥 별거 안되는 인물들 중 하나에요. 그런 인물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적어도 난 거기에서 살아있다고 아둥바둥 발치레 하고 있는거구요. 

우리 병훈씨, 
병훈씨는 어때요. 어떤거죠? 적어도. 정병훈씨 얘기는 듣고 싶기도 하네요. 

거기다가, 
우린 아직 끝내지 못한 얘기가 있잖아요. 지금은 내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란게 있지만서두요. 

이상 전달 끝. 2008-12-17
10:21:22
  

 

상병 김무준 
  이미 말은 뱉어버렸지만서도, 본인이 올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게 아니라면, 더이상 물어 뜯는것도 예의는 아닐 것 같네요. 퇴장- 2008-12-17
10:42:11
  

 

상병 정근영 
  여태까지의 병훈씨의 글중 가장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형식이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할 수 있다면,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지요. 

허허, 민규님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을진대, 다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군요. 
요 며칠간 지난 일주일간의 글들을 다시 읽고 씁쓸해하던 저는, 새삼 제 무책임한 댓글들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깔끔하게 떠나시지 못하고 이런 쪽지라도 남길 거였으면, 그 용기로 직접 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쯤의 책마을의 분위기라면 침착한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오해했던 점을 보듬어줄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2008-12-17
11:06:13
  

 

병장 이동석 
  벗님. 

2008년 12월 17일 04시 34분 

많은 얘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침묵 속에서 갈고 닦은 글입니다. 이것이 진정 본인의 마지막 글이 되겠습니다. 저는 책마을의 애정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버릴수 없다 한들, 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미리 예견되었기에 크게 낙심은 없습니다. 형식은 제갈량의 후출사표를 따랐습니다.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그리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개를 하시던, 상관이 없습니다. 다분이 몇분을 생각하며 작성한 글이기에, 모두에게 보일까 했지만, 몇분을 위한 글이니 이리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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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거 다 제쳐두고, 병훈님이 새벽 네시까지 고민하며 쓴글입니다. 저는 이 쪽지를 받고 저의 과오도 있고해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제초를 하면서도 똥을 누면서도 생각했지요. 그런데 겨우 반나절-입니다. 

지난번에는 어찌되었건, 이토록 긴-글이라면, 꼭 나에게만 하고 싶은게 아니라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개인적인 쪽지지만, 담고 있는뜻이 저 혼자 볼 성질의 것은 아니라 생각하여 공개했는데, 

사실 그건, 모두 알다시피, 미친짓이었습니다. 

이번엔 단어 몇개나 뭐 그런것때문에 모르는척-하지 않으렵니다. 표현이 어떻고 한자가 어떻고, 그런건 중요하지않으니까요. 

좀 더 읽어보렵니다. 2008-12-17
12:56:24
 

 

상병 김지웅 
  그래요, 저한테도 왔드랬죠, 

이건 한 4번 읽어본거 같아요, 

오해의 소지를 풀려 친했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이었을테니깐요, 

아 몰라요, 난 몰라요 머리아파와, 흘흑 2008-12-18
01:25:22
  

 

병장 이동석 
  우중님 댓글이 사라졌군요. 뭔가요? 2008-12-20
16:17:09
 

 

상병 이웅재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것이라는 말을 하고싶은데 

제가 하긴 좀 그런가요?(멋적음) 2008-12-20
21:03:48
  

 

병장 이동석 
  웅재님은 멋적음쟁이로군요. 지금도 늦은게 아닙니다. 2008-12-21
00:42:53
 

 

일병 이석현 
  보고싶습니다- 2008-12-21
23:25:04
  

 

병장 정병훈 
  무분별한 한자어 사용은 일부러 그렇게 한겁니다. 한자 사용법을 몰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면 참. 

제 손에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들려 있었고, 숱한 한자 사용과, 고대 중국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살려볼까 하는 생각에 한자어의 한자를 많이 표기 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몇가지 오류가 난것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누군가 말햇듯 이 글은 책마을 주민 모두를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몇몇 분들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이마져도 빛을 바라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상의 A/S는 사절입니다. 2008-12-29
19:4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