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8-12-12 00:43:13, 조회: 348, 추천:1 




I a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 Romain Rolland



무엇 때문인가. 근래에 들어 나는 눈에띄게 과민해졌고, 몸 속에는 불이 활개치며 돌아다니고, 꺽어버린 담배를 다시 물어들게 되었다. 사소한 일에도 울화통이 치밀어 전화기를 붙잡고 한 마디 독설을 날릴까, 이 거룩한 사무실에 침입해 시끄러운 소음을 발생하는 저 무리들에게 옆에 누가 있는지 잠깐 모른 척 눈감고 호통을 날려줄까, 잠시간 고민하다 차마 싶어 말았다. 오후 다섯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복도에서부터 이미 옷을 주섬주섬 꺼집어내며 방에 들어가 신발도 안 벗고 누워버린다. 어둡다. 이 정적을 즐기고 싶다. 고 생각하는 찰나 한 무리의 아해들이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와 깔깔거린다. 여기까진 봐줄만 했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그 커다란 문짝을 그대로 방치한 채로 TV를 켜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좋다고 시시덕거린다. 아. 아. 머릿속에 갈등이 생긴다. 조용히 모른 척 몸을 일으켜 저 문을 닫고 냉기의 서늘함으로부터 나를 건질 것인가. 이미 몸은 바닥에 붙어버렸지만 발끝으로부터 전해오는 이 느낌은 나를 곤두서게 하고 내 몸을 직립보행의 본성으로 돌이키게 하는데 성공했다. ‘시베리아! 문 닫고 다니라고!’ 하며 쾅 닫을까 하다 괜한 성깔로 미숙한 내면을 들킬까 두려워 조용히 돌려놓고는 돌아서서 눕는다. 다시 정적. 잠이 들까 하는 그 짧은 순간 다시금 저 아래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는 영상 칠 도의 신선한 공기. 닫혀있던 귀가 열리고 잠시간 떠나갔던 의식이 돌아오는데 여지없이 누군가의 호들갑스런 그러나 지극히 평상의 말소리가 이도耳道를 타고 흐른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저놈의 문짝을 걷어 차야 하는데! 다행히 이번엔 세 살 어린 막내 동생이 나의 부들거리는 몸뚱아리를 감지했는지 뛰어와 살그머니 수습한다. 진심으로 고마워. 나중에 스윙칩으로 갚을게.

하다못해 이런 사소한 상황에서부터 평상심을 잃고 생각은 극단의 n항으로 치달아버리니 누군가 반갑게도 명시적으로 틱틱거렸다거나, 나를 지탄했다거나, 평소 같아도 하기 싫을 무언가를 강제했다거나 하는 상황을 조성해주면 그 끝은 보나 마나다. 이곳 생활동안 늘어난 잔기술은 딱 두 가지 뿐이다. 간 보기, 그리고 내 위치 자각하기. 일단 상대가 누구인지 대화가 오가는 짧은 인터벌속에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뉴런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악한다. 그의 머리위에서 반짝이는 금색 뱃지. 고개를 내려 나를 본다. 시꺼먼 줄이 몇 개 가 있을 뿐이구나. 백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다. 오케이. 오케이. 네. 네. 아. 오케이. 올라잇. 아, 알았다구요.

전화나 할까. 그에게 전화를 하려다 카-드식 공중전화기의 잔액 표시기에 잔뜩 떠있는 에러메세지에 좌절한다. 666666. 삐에로가 양손에 666을 들고 얼굴에는 피를 철철 흘리며 날 보며 씩 웃는 것 같은 섬칫함에 짜증이 또 솟구친다. 옆에 있는 161 전용 전화기에는 누군가가 붙어있고, 1633은 비어있지만 그건 늘 그렇다. 그에게 콜렉트콜을 하는건, 왠지 내키지가 않는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어차피 지금쯤이면 과외를 하고 있겠구나. 차라리 잘 된 일인가.

뻑뻑 담배를 피워재낀다. 한 대 피우고도 마음속 무언가가 가라앉지 않아 한 대를 더 꺼내물어버린다. 줄담배는 폐암의 지름길이라는데. 모르겠다. 이건 무엇 때문일까. 불합리한 처분 때문인가. 나의 발을 간지럽힌 냉기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저놈의 666 삐에로! 그래, 모든 건 저놈의 전화통 때문이야. 때려 부숴버릴테다. 씩씩거리며 그 앞으로 다가갔는데 이번엔 에러메세지가 바뀌어 있다. 아까 대강 걸어놓고 나온 전화기가 흘러내려 차가운 와이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까닭이다. 777777. 아주 대놓고 놀리는구나. 싸우자. 흐느적거리는 전화통을 들고 괜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내려치는 듯 꽂아놓는다. 다시 666666이다. 아, 상대를 하지 말아야지. 내가 괜한 짓을-

이쯤 되니 어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우울증도 병이라는데, 불과 두어 달 전에 썼던 <용서한다는 것, 그 용기에 대해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항정신성 의약품이라도 얻어다 써 볼까? 라고 생각하다 뜻하지 않은 Level Up!이 동반될 것 같아 그저 조용히 지내는 편을 택하고 만다. 거칠게 피엑스 문을 열고 들어가 코카-콜라를 원-샷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대면서도 천 원짜리 팥빙수를 집어 들고 나왔다. 젠장. 추워 죽겠는데.

멍하니 앉아 골똘히 생각한다. 설탕 먹기 전에는 괜찮았는데, 당분糖分이 과하면 사람을 미치게도 한다더니, 그래서인가? 왜, 마약 중독자들은 커피 마시는 모양만 봐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아니, 이건 인과가 거꾸로 된 예시인 것 같군? 마약하는 사람들은 당분에 집착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당분에 집착하는 인종이 마약중독자는 아니지.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단 걸 많이 먹다보면 사람은 미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아! 포도주! 십실한 와인을 아무래도 좀 높게 쳐 주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달달한 술 잘못 먹으면 정말 골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거기에서 비롯된 기억인가? 난 분명 쓸데없이 장기기억만 좋았는데. 덕택에 시험에는 아무 도움짝도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풀이 죽어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데 누군가가 귓가에서 속삭인다. ‘이거, 설탕봉지 사들고 와서부터 그런거 같은데, 유망주랑 잘 안되나보죠? 우히우헤헤-’

어, 그런가? 아닌데, 분명 나가 있는 동안 지겨울 정도로 만나 재꼈는데. 누구의 해석대로 4박 5일 동안 10번이면- 은 아니었지만, 뭐 꼭 몸으로 만나야 하는 건 아니니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낮에 실컷 만나고도 아쉬워 과외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와 함께 전철에 올라 같은 방향을 향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비록 지금 무언가를 시도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1년 반 동안 계속되겠지만-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전혀 맘 졸이고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이미 서로 알고 있구나, 라는 걸 충분히 느끼고 돌아온 나다. 향하는 행선지 방향이 같았듯 우리의 삶의 방향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곧 24살의 대학 3학년생일 그는,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그랬으니까.
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는데 한창 수업중이라 통화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아쉬움에 미적미적거리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속 기계덩이가 우리 집이 있는 13층에 도착하고, 그럼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다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핸드폰은 울리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다시 돌아올거야.’ 말로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전하고 그의 키르키즈스탄을 향하는 발걸음에 작은 노자를 말없이 스리슬쩍 보태면서 나는 행복했다.
괜한 생색이 될까 두려워 전화연락조차 하지 않고 사나흘을 보냈을 뿐이다. 월요일은 과외가 9시에 끝나니까. 화요일은 동아리 모임이 늦게 끝나고. 수요일쯤 전화를 해야지 생각을 했는데 도서관에 있었는지 잘 닿지가 않았다.(우리 학교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는 그가 쓰는 KTF가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줍게 가져온 몇 장의 사진 - 사실은 그의 사이좋은에서 내려받아 시내 사진관에서 한 장에 200원씩을 쳐주고 열 한장에 그나마도 백원 짜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백 원을 할인받아 2100원에 현상해 온 - 을 바라보며 이 생경한 기쁨에 황홀했다. 그러니까 그 역시도 용의선상에서 제해질 만한 충분한 알리바이가 성립한다.

그렇다면 책이 문제인가. 들어오면서 가져온 <신>과 김훈의 신간 <바다의 기별>(두환이형과는 간의 기별이라며 킥킥거렸던) 두 녀석밖에는, 아, 한 권 더 있다. <내가 매일 기쁘게>라는 신앙서적까지. 그리고 틈틈이 읽었던 갈라디아서와 이사야 37장이 전부다. TV는 보지 않았으니 다른 외적 자극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듯 싶다.
첫 번째 녀석. 이틀만에 허겁지겁 읽어치웠지만 꼭꼭 씹어먹었다. 미리니름 때문에 다른 이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었던 것이 이토록 한탄스럽고 외로운 일이었던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플인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가지로>를 기대하고 쓴 글도 아니었으니 그것도 아니고(자기기만이 아니길 빈다. 진심으로), 음, <바다의 기별>은, 좀 자극이 있긴 했다. 화장실에 뛰어들어가면서 집어든 것부터가 미스였다. 그를 너무 만만히 본 탓일까. 첫 장부터 숨이 턱 막혔다. 팔에서부터 어깨죽지로 타고 들어가는 동맥을 바다로부터 꽤나 떨어진 그의 소재지 앞을 지나는 강가에서 느껴지는 짠 냄새와 연관지으면서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고도의 사유를 늘어놓은 것이 미치도록 두렵고 섬뜩했다. 아, 역시 본좌는 다르구나. 정말 쫄아버렸어요. 라고 고백하는 내게 역시 본좌는 달라, 라며 공감해주는 두환이형이 있어 그 충격은 다소간 중화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역시도 100% 적합한 용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충격을 <내 안에 불이 산다>로 시덥잖게 따라하면서 어줍잖긴 해도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을 누렸던 것 같으니, 용의선상에서 제외.
<내가 매일 기쁘게>는, 보다가 몇 번 울컥했으니 가장 유력한가?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억울하고 짓눌려서 울컥했다기보다는 그저 감격에 겨워 잠시 시큰했을 뿐이다. 표출의 방향은 마이너스(-)를 향해 갔을지언정 나의 이모션 게이지는 만땅을 찍었으니 그것도 됐다. 갈라디아서? 선한 일을 향해 달려가라는 격려에 힘입어 담배를 꺾었다가 이 정체모를 울분으로 그것이 좌절되었으니 얼핏 보면 자극제였던 것 같기도 한데, 이 역시 순서는 바뀌었다. 실패해서 울컥했다기보다는, 울컥해서 실패한 것이다.
이사야 37장은 내 2007-2008년 2년간을 사로잡은 약속이었는데, 신이 적국으로부터 한방 맞고 울고있는 히스기야에게 위로하며 준 약속이기도 하다. ‘너는 앞으로 2년동안은 들에서 저절로 자란 풀을 먹게 될 거야. 하지만 3년째는 짤 없다. 알아서 가꿔서 먹어라’ 입궁을 앞둔 내게는 너무도 절실히 다가오는 한 마디였고 그것은 정말로 그러했다. 특별히 잘해보고자 노력한 것은 그다지 없는 것 같은데 거저 주어지는 최악의 불행 속 행운들이 유별날 정도로 나를 도왔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원고지 50장 분량은 쓸 수 있을듯 하지만, 이 공간에 올려놓을만한 소재는 아닌 것 같으므로 시즌2를 위해 남겨놓도록 한다. 그런데 그 약속이 왜 나를 옭아맨단말인가?

아차 싶다. 그 약속의 2년도 이제 보름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설마 이대로 광야로 던져지는 건가? 아니야, 사실은 지금이야말로 절절한 광야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다. 그러나 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끌었듯이, 그리고 밤낮으로 만나를 내려 주었듯이 나는 저절로 자란 풀을 먹으며 이곳 생활을 영위해왔다.
전에 밝혔던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궁에 오기에 적합한 몸뚱아리를 가지지 못했다. 키는 평균보다는 큰데 몸무게는 한참을 못 미치며 근력이나 지구력이나 체력이나 무엇을 보든지간에 많이 비실비실하다. 심지어 올해 2월부터는 규정이 바뀌어 내 신체조건이라면 굳이 현역으로 오지 않아도 좋단다. 이런 나를 철원까지 보낸 이 나라를 안쓰럽다고 해야 할 것인가. 얼마나 급하면 그랬겠어, 라고 합리화하자니 명분은 좀 부족해 보이지만, 어쨌거나 현실이다. 내 힘으로 부딪쳐 이룰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까지 올 수 없는 길이었다. 그 때 눈앞에서 바닷길이 열렸다. 나는 환호했다. 그것이 내 의지와 노력의 결과인 줄로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입궁 당시 적었던 노트에서 그 환상은 깨져버렸고 이제 그 생활을 서서히 정리해가며 내년을 구상해야 하는 단계에 오고 만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나는 이제 나의 의지력을 발휘하여 내년도 나의 삶을 가꾸고 꾸려가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축복이었던 약속은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며 나의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말년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그것을 흉내내고 있는, 그저 뒹굴거리는 깔깔이 아저씨일 뿐이다. 책마을을 통해서 이성의 감각을 살려 놓았는데 그사이 의지는 굳어버렸다. 그것은 침낭과 뽀글이를 친구로 맞이하며 벌어진 시대의 희극이다. 누구나 거쳐간다는, 그러나 아직 내가 거쳐갈 때는 되지 않은, 그럼에도 괜히 그래도 될 것 같은 이 불안정하고 주제넘은 방관의 사태에 비로소 그가 일침을 날린 까닭인가? 나는 비관에 빠져들고 있다. 이 생활이 끝날 수 있을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하물며 달이야 어련하랴. 집에 가기까지는 까마득한 거리가 있어 아직은 가늠할 수 조차 없고, 일단 그를 다시 보려면 적어도 50일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 50밤만 더 자면 돼, 50밤만 기다려, 아빠가, 선물 사 올게!

삐에로는 666을 양 손에 들고 나를 비웃는다. 그게 올 것 같아? 그러면 한 번 운에 맞겨 봐! 777777. 이 지극히 우연적인 에러메세지의 등장은 나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런 미X 녀석! 죽어버려라! 나는 움켜잡았던 이성의 마지막 끈을 놓는다. 실없이 울부짖으며 흔드는 내 팔뚝이 하늘을 가른다. 돌을 던지고 흙을 움켜잡고 소리를 지른다. 꺄아아아아아아아- 김경호가 머리를 흔들며 Shout를 날리고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금색 뱃지는 내 뒷통수를 후려친다. 으악, 퍽, 퍽, 퍽,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래?

비관할지언정 이성은 놓지 말자. 아프다. 많이. 아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3:31 

 

병장 정병훈 
  줄줄줄- 읽히는군요. 칼럼의 압박을 조금은 줄여줄 이런 글을 기다렸습니다. 히히 
읽는 동안 피식하는 부분도 있고,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알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개인적인 차이니 크게 들어내지 않겠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말 같은데 말이죠. 현재의 상태를 논리적으로 비관할지언정, 의지를 같고 있다면 비관하지 말아라.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허- 그냥 음- 하면 쉽게 읽히지만, 생각해보면 생각처럼 쉽지 않은 문장입니다. 그려- 

몇일동안의 방황이 보이더니, 이렇게 글로 펼쳤군요. 제가 보기에 그 원인은 현재에 있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Present is present' 성경도 보시는것 보면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것 같습니다? 저야 종교를 버렸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기독교에선 이렇게 말하더군요. '모든것에 감사해라- 숨쉬는것에서 부터 죽는것 까지.' 뭐, 그냥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전화기에 66666이 나왔다가 77777이 나왔다 치더라도, 유망주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뭐 이래저래 일이 있어도 Mind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추스르며. 
김훈작가의 바다의 기별은 저도 이번 1.2그램 먹으면서 들린 서점에서 봤습니다. 저걸 사야지하는 욕구가 강했는데, 후후후- 벌써 보셨군요. 전 김훈작가 광팬이라, 그냥 이렇게 글에 한번 출현하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하하 2008-12-12
08:40:52
  

 

상병 정근영 
  아아, 확실히 글의 길이에 비해서는 술술술- 잘 읽히네요. 

'책마을을 통해서 이성의 감각을 살려 놓았는데 그사이 의지는 굳어버렸다.' 

이 문장, 참 와닿는군요. 뭔지 모르게, 굉장히 날카롭게 머릿속을 파고드네요. 2008-12-12
09:07:14
  

 

상병 정근영 
  그러고보니, 저도 배터리 세 칸 채우기 전까지는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렸었는데, 어느새 두달째 접어든 지금, 괜히 후임프들에게 짜증내고 화내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괜히 씁쓸하더라구요. 예전같으면 마음 한번 다잡고 웃어버리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에요. 허허 2008-12-12
09:12:24
  

 

상병 김용준 
  흠...민규님의 글이 감투를 썼을 때의 저의 감정과 다르지만 짜증나고 화가 치미는? 그런 경우는 비슷하네요. 후후. 스스로 기분을 다스릴 때 전 심호흡, 구름과자, 여친과 대화, 동기들과의 대화입니다. 하하하. 공감 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즐겁게 보고 갑니다.(웃음) 2008-12-12
10:40:26
  

 

병장 김민규 
  이 심란한 문장들을 즐겁게 읽어주시니 그저 감사하네요. 사실 내글내생각으로 쓰다가, 이런 식으로 부담만 가지다간 평생 하나도 남겨놓지 못하고 떠날 것 같아- 미숙하고 아쉬운대로 그냥 써재껴버렸습니다. 죄송해요. 이곳에서 읽으며 얻고 받은만큼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뭐 그냥 딱 거기까지가 제 모습이고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설픈 것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네요. 십초도 못가 드러날 잔꾀 부려 뭐하겠어요. 그럼에도 이 가련한 비틀린 속와 공감해 주시겠다면, 그저 그것으로 더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2008-12-13
01:11:08
  

 

병장 이동석 
  칼럼은 거창한게 아닙니다. 그냥 진심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목과 서문의 인용글을 배반하는 반전스러운 본문의 위트는 놀랍군요. 흐흐. 

아 맞다.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죠? 형님. 낄낄. 2008-12-14
02:20:32
 

 

병장 장재원 
  멋진 글!! 많이 배우네요. 2008-12-14
03:49:41
  

 

상병 이우중 
  전 그람씨 그람씨 하길래 좀머 씨처럼 그람 씨인줄 알았드랬어요. 허허. 2008-12-17
10:22:44
  

 

병장 홍석기 
  '단 걸 많이 먹다 보면 사람은 미칠수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아! 포도주! 십실한 와인을 아무래도 좀 높게 쳐 주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날달한 술 잘못 먹으면 정말 골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아무런 고민 없이, 달달한 삶을 보내는 것은 이성과 의지를 모두 마비시키며 자아를 죽이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 아니라, 달콤한 인생일지도. 요즘 이상하게 아무런 생각도 없고 살짝 슬럼프 같은게 설탕봉지에 집착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2009-01-03
15:31:15
  

 

병장 김민규 
  잠과 덕의 현인의 이야기. 

'나는 허다한 명예도, 거대한 재산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비장에 염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적당한 명성과 조촐한 재산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나는 나쁜 교제보다는 조촐한 교제를 바란다. 그러나 조촐한 교제도 적당한 때에 이루어졌다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숙면에 이롭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나는 몹시 좋아한다. 그들은 잠을 촉진한다. 그들은 행복하다. 특히 그들이 의롭다고 느껴질 때에는. 
유덕한 자는 이렇게 낮을 보낸다. 이제 밤이 오면, 나는 잠을 부르지 않도록 몹시 조심한다! 덕의 주인인 잠은 부르는 소리를 싫어한다. 오히려 나는 낮에 한 일, 낮에 생각한 일을 반성한다. 나는 황소처럼 끈질기게 반추하면서 그대가 열 번 극복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한 열 가지 화해, 열 가지 진리, 열 가지 웃음은 무엇이냐?고. 
이러한 생각에 잠겨서 마흔 가지 사상에 흔들리다 보면 갑자기 잠이, 부르지도 않은 덕의 주인이 엄습해 온다. 잠은 내 눈을 두드린다. 이때 눈이 감긴다. 잠은 내 입을 만진다. 이때 입이 벌어진다. 
정녕 도둑 중에서도 가장 귀여운 도둑인 잠은 발끝으로 조용히 걸어와서 내 사랑을 훔쳐간다. 이때 나는 이 강좌처럼 멍청히 서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나는 서 있지도 못한다. 이때 나는 곧 눕는다-' 

대해서.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흔 가지 사상을 갖고 여기에 서 있는 이 현인은 나에게는 바보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이 현인의 곁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구나! 이러한 잠은 전염된다. 두꺼운 벽도 뚫고 전염된다. 그의 강단에도 마력이 깃들여 있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덕의 설교자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 그의 지혜는 숙면하기 위해 깨어 있다는 것이다. 삶이 참으로 무의미하고 내가 무의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나의 경우에도 이것은 가장 선택할 만한 무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이 덕의 교사를 구했을 때 일찍이 그들이 가장 갈망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나는 이제 이해한다. 사람들은 숙면을, 게다가 양귀비꽃같은 덕을 구했던 것이다. 강단의 찬양받는 모든 현인들에게는 지혜는 꿈 없는 잠이었다. 현인들은 삶의 보다 훌륭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 이렇게 졸음이 오는 사람들은 행복하구나. 그들은 곧 졸게 될 것이므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덕의 강좌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Friedrich Nietzsche 2009-01-06
07:40:18
  

 

병장 김민규 
  이파리는 달아 놨는데, 알 것 같다가도 지독한 오독인 것도 같고, 부합하는 듯 싶다가 완전히 엇나가는 견지인 것도 같고 해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사족마저도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양귀비꽃같은 덕을 구하지 말아야 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싶군요. 2009-01-06
07: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