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웅예찬  
상병 김무준   2009-01-13 22:43:52, 조회: 254, 추천:0 

기존의 영웅은 위기에 처한 공주나 악마를 처단하는 기사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영웅이 변화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슈퍼 히어로는 초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기존의 작품에서와 달리 영웅이나, 영웅답지 않았다. 냉혈하게 범죄와 싸우며 고독을 즐기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회사와, 도시의 이익을 위해 싸웠고 조커나 투 페이스 하비와 싸우면서 고뇌하고 아파하다 끝내 좌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평단은 이러한 다크나이트의 변화에 극찬했고, 여태껏 처참하게 무너졌던 배트맨 시리즈 중 흥행 면에서도 굉장히 성공했다.

영화 속 히어로는 해가 변하며 더 인간적이 되었다. 스파이더맨은 사랑과 배신, 갈등 사이에서 고뇌하며 점점 더 약한 영웅으로 전락했다. 슈퍼맨도 약점아래 때로는 패배했고, 엑스맨은 인간들의 차별과 스스로에 대한 증오에 맞서 싸워야했다. 핸콕은 또 어떠한가. 실수투성이에 서민들에게조차 외면 받는 슬픈 히어로였다.

그렇게 환상 속 히어로가 인간으로 당연히 가져야 할 고뇌와 문제들에 직면해 변화할 때, 사람들은 다시금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간일 수밖에 없는 히어로들에게 동정했지만, 열광하지는 않았다. 최고라고 믿었던 슈퍼맨마저 그 힘을 잃고 비틀거리자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웅을 그리워한다. 이제는 그 염원이 가수들에게 전해졌는지 음악에서도 영웅을 찾는다.

이승환의 슈퍼히어로를 시작으로 원더걸스의 텔미, 노라조의 슈퍼맨과 마리오의 슈퍼맨까지. 음악은 히어로를 부르짖는다. 일종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최근 몇 년 새에 대중문화에서는 히어로의 출현이 빈번해졌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라 영웅으로서의 빛을 잃었다 해도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필요를 대변한다. 상업성과의 밀접한 관련을 접어두고서, 시장은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여 상품을 낸다. 게임회사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부르짖으며 ‘영웅이 되고 싶은가?’라는 문구로 대중을 자극한다. 수많은 이들이 영웅을 꿈꾸며 키보드와 마우스 앞에서 씨름한다.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더 강하고 더 빠르며 더 완벽한 싸움꾼을 원한다. 박지성은 아시아의 희망이자 자존심으로 떠올랐다. 대중은 영웅을 원하고 문화는 영웅을 생산하고 있다.

왜 영웅을 노래할까. 현실은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 세계경제는 침체기에 빠져들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가 시작되었으며, 가자지구에는 이스라엘의 폭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위기상황에 사람들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다. 영웅이 너무나도 간절한 대중은 인간적인 영웅을 원하면서도,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영웅이기를 바란다.

모순된 현실의 요구 속에서 영웅이 될 법한 이들은 나타나지만, 정작 영웅은 없다. 노라조의 슈퍼맨 뮤직비디오에서 남자는 죽음 앞에 슈퍼맨을 불러보지만 슈퍼맨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 속 영웅은 점점 더 스스로에 대해 고뇌한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던 격투기의 싸움꾼들도 충격의 패배를 겪는다. 가자지구의 폭격은 계속되고 있고, 경제에는 먹구름이 가실 줄을 모른다. 어떻게야할까. 슈퍼맨 구해줘요. 슈퍼맨 지구를 부탁해요. 그러나 번개처럼 날아와 추락하는 비행기를 구할 슈퍼맨은 없다. 사람들은 불가능을 알고 있기에 영웅을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영웅은 없다.

현실을 직시했다면 이제는 스스로가 영웅이 되어야한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했다. 영웅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힘들지라도 우리 스스로가 영웅이 되어야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이에게, 지켜야할 무언가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영웅이 되어야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히어로가 되어야한다.

영웅을 바래도 영웅이 없다면, 영웅을 꿈꿔야한다.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구원자를 찾기 전에 우리는 영웅이 되려 노력해야한다. 이승환은 노래했다. 그댄 슈퍼히어로.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이 시간 제철소에 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원도 영웅이고, 불철주야 음주단속으로 바쁜 경찰도 영웅이다. 삼남매 어린 식구들을 남편 없이 홀로 김밥을 팔며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도 영웅이고, 남의 술주정을 받아주며 대신 차를 운전해주는 아버지도 영웅이다.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도,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격투가도, 먼 타국 이방인 사이에서 공을 차는 축구선수도 영웅이다.

그리고 이 시간. 추위와 싸우며 투덜거리는 이 땅의 모든 군인들도. 모두가 영웅이다. 당당하자. 우리가 꿈꾸는 히어로도 스스로에 대해 고뇌하며, 현실과 싸운다. 우리가 영웅이라면 그들과 같아야한다. 그리고 우리를 보며 살아가는 또 다른 영웅이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두 다리는 힘이 풀려 흔들거릴 지라도 추운 벌판 위에서서 마지막 힘을 짜내 다시 일어서야한다.

우리는 모두 영웅이니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40:43 

 

상병 김형조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은 치열하게 싸우고도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진 못하죠. 
현실 속 우리도 그런 모습은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ps.노라조 뮤비 제대로 봤는데 아주 물건입디다. 키득키득 어쩜 그래. 2009-01-13
22:48:59
  

 

상병 김정용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였나요? 정윤철 감독이 작년에 만든 영화도 무준님 글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현실은 점점 고담처럼 되어가는데 히어로는 없으니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밖에요~ 2009-01-14
05:11:39
  

 

병장 김민규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는 나라, 국민이 만듭니다. 맞나요? 광고카피. 
머리속에 계속 맴돌고 있네요. 허허 

영웅이 절대적 초월자로부터 대중적 인간이 된 이후에, 문화가 끊임없이 영웅을 생산하고 대중이 그것을 갈망하고 있다는 인식에는 저도 생각을 같이 합니다. 다만, 뭔가 찜찜한건 소시민적 성실한 삶이 영웅론과 연계될 때, 물론 그런 삶의 자세야 고결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언가 계몽적인 메세지가 깔리게 된다는 점이겠지요. 그동안 참 많이 해 온 짓이잖아요. 저 높으신 나리꽃께서 

음. 좀 헷갈리는건, 이게 그냥 마이너적 기질의 발로인지, 아니면 어떤 미명하에 강요되는 가치에 대한 거부감인지 - 생각 좀 해 봐야죠. 

잘 읽었습니다. 2009-01-14
09:04:18
  

 

상병 이지훈 
  민규// 

'소시민적 성실한 삶이 영웅론과 연계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만 생각해왔는데, 민규님 댓글을 읽고 계몽적인 메시지만 가득찬 모습을 그려보니 별로 탐탁치는 않네요 

'계몽'이라는 말은 누군가에 의해, 그러니까 주체적인 자각이 아니라는 것이죠?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에(예를 들면 누군가의 평전이나 자전적인 글)어느정도 서려있는 계몽의 색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흠흠 

그리고...저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2009-01-14
10:13:07
  

 

상병 김형태 
  영웅예찬, 

자기자리에서 자신이 영웅이되려는 그 모습이 더 멋지고 영웅답지않나 싶습니다 흐뭇 2009-01-14
15:25:24
  

 

병장 김민규 
  생각해보니까,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는 나라, 였군요. 
영웅은 1등이 맞는 것 같은데, 1등은 영웅일까요? 2009-01-14
16:50:08
  

 

병장 홍석기 
  음음. 약간 다르고도 같은 의견을 하나 내 봅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라는 말에는 동조하기 어렵군요. 좀 나이드신 분들 사이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젊은 세대는 그다지 영웅을 동경하는 것 같지 않아요. 사실 슈퍼맨이건, 스파이더맨이건, 박쥐맨이던 -맨 시리즈가 드러가는 영화에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요. 그것들을 보러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영웅을 보러 가자~ 현실에서는 되지 못하는 대리 만족을 해보자', 보다는 '에이 또 할리우드 치고부수는 영화 나왔구만. 그래도 심심풀이로는 제격이겠는걸. 여자친구나 불러서 보러가야겠다' 와 같은 반응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생활태도를 보아도, '아~ 영웅이 와서 내 삶의 고민들을 모두 해결해 주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텐데'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좀 사정이 거시기해서' 같은 반응이 더 많죠. 거의 모든 문제가 개인화되어있다, 는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이죠. 워낙 과거에 철권통치니 일당독재니 왕조니 하는 일종의 '슈퍼 히어로' (정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도) 의 계몽 프로젝트에 크게 데여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요. 민규님의 댓글과, 사실 무준씨의 이 글을 보아도 누군가의 등장에 기대기 보다는 나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필요를 대변하여 대중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 낸다. 이거 벤야민때부터 나오던 지적이지만, '슈퍼 히어로'는 대중이 원한다기보단, 대중이 원하도록 하게끔 일정하게 주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2009-01-14
16:52:53
  

 

상병 김무준 
  우선 이 텍스트를 쓰게 된 계기는 노라조의 슈퍼맨 때문이었지, 다크나이트 때문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영웅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묘사하고서 텍스트를 풀어나가려 했기에 다크나이트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최근 가요에서는 히어로가 약간의 코드처럼 자리잡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원더걸스의 예를 집어 든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게임이나, 격투기, 축구와 같은 문화를 텍스트에 넣은 것도 대중문화가 영웅을 원하고 있는 까닭으로 해석해서입니다. 폭 넓게 보아 코드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음악이 예술적 성격을 띄든 그렇지 않든, 가락이 좋아서일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노라조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다니는 건. 어쩌면 영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2009-01-14
20:41:10
  

 

병장 김민규 
  그래요. 박태환과 김연아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과거의 슈퍼히어로를 보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겠죠. 열광할 수 있는 완벽함을 갖춘 맹목적 대상을 이 시대의 대중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그가 나의 삶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도, 어떤 구체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겠지만요.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넓게 보아서는 영웅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확실히 대중이 잘게 쪼개지기는 했는데, 그 안의 개인화 못지 않게 퍼진 몰개성화의 추세는, 일종의 모델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2009-01-15
13:34:36
  

 

상병 이지훈 
  왠지 20세기소년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사람들은 믿고 싶은게 필요할 뿐이야" 였던가요? 비슷한 대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2009-01-15
15:25:24
  

 

병장 이동석 
  아놔, 이거 보고 댓글 거짐 삼십분동안 썼는데, 아놔, 요새 왜 이렇게 아마추어같지? 2009-01-18
20: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