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9-01-08 01:39:21, 조회: 413, 추천:0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2009. 1. 7, Minkiw



#1. 초콜렛 눈사람은 누가 먹었나

하버드 대학 교수인 Greg. Mankiw의 베스트셀러 ‘맨큐의 경제학’은, 열명 중 예닐곱명은 경제 혹은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는 우리 학교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집어들고 탐독했을만한 ‘졸업 필독서’다. 개론수준의 강의에서 교재로 많이 쓰이는 이 책은, 미시와 거시를 망라하며 기초적 토대를 쌓기에 딱 좋은 책으로 별다른 이견 없이 그 자리를 굳혔다. 그야말로 ‘경제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경영학과 초년생이었던 나에게는 - 비록 1년 내내 이 책을 ‘뽀대용’으로 들고 다니며 수업시간엔 졸다가 시험기간에서야 밤을 새긴 했었지만 -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권위처럼 느껴졌었고, 그것은 실제로 그러했다. 저자의 탁월한 명성과 깔끔한 설명은 교수들도 무어라 입을 대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파이가 먼저일까, 칼질이 먼저일까? 케익 위의 초콜렛 눈사람은 누가 먹게 될까? 경제학자는 최대한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것 안에서 가장 큰 파이를 만들 방법을 모색하고, 부스러기를 만들지 않으며 칼질을 할 수 있을 방법을 찾으며, 접시로 옮기다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심성을 견지한다. 어차피 초콜렛 눈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을 원하는 이는 많다. 배분의 문제는 필연적이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가능한 여러 조합을 제시할 뿐 어느 것이라고 감히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학문이 현실의 여러 조건들을 무시하고 먼저 결론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그렇게 강요된 결론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답이 될 수 없음을 강박적으로 의식하는 까닭이다. 답을 찾는 것은, 결국 그 상황 안에 있는 각자의 몫이다.

현대 주류경제학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론적 경향이 있다. 시카고 불스(가 아닌가)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학파와 케인즈로 대표되는 최근의 -라고 해봐야 일이년 내의 일은 아니지만- 움직임이 그것이다. 케인즈는 시카고가 보이지 않는 손에 흠뻑 빠져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사이에 비명횡사하는 미시적 존재들(내지는 경제상황)에 주목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정책자들이 적극적인 시장에 대한 개입을 통해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경국가론의 작은 정부로는, 시장이 지닐 수 있는 각종 모순들을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 스미스는 패배했는가? 처음에는 이러한 인위적 개입이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난 후의 장기적 상황에서는, 기껏해야 기존의 악화일로로 회귀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나쁜 길로 가더라는 것이다. 침체(recession)가 오고 실업률이 증가해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시장에 돈을 풀어 놓았더니, 처음에는 다소 약발이 듣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풀린 자금이 부메랑이 되어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오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잠시 인위적으로 생겨난 건설현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개인들은, 그 붐이 끝나고 나니 직장을 잃었고, 이제는 수입은 없는데 물가만 올라가 예전만 못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경색된 자금흐름에 따라 명목환율은 기축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였을 것이고, 자연스레 수출이 증가하면서 선순환을 이루었을진대, 이제는 오히려 악화된 상황에서 그 과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바야흐로 신고전주의가 등장하고 경제학의 진리로 받들어지는 순간이다. 케인즈가 스미스에게 중지를 내밀고, 시카고가 다시 받아 돌려 쳤는데 리시브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스매시로 받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는 내게 거기까지를 가르쳤고 어쭙잖은 개입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으로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확실한 카운터 스매시의 증거가 제시되었다면 오히려 나는 파멸했을 것이다.


#2. 2점짜리 문제의 기억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었다. 밥상에 앉아 할 말이라고는 ‘밥묵자’와 ‘물’ 밖에는 없다는 그 무뚝뚝한 모습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나는 장남의 장남이라는, 열 살에 지기 힘든 무거운 숙명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고, 의미를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공부 잘 하는 큰 아들에 기대를 걸고 외롭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믿음은 확고한 것이었다. 교육만이 답이다. 될 것 같은 한 놈은 건져라.

신념은 가문의 내력이 되어 아버지에게로 그대로 전승되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이 흔히 그렇듯, 자수성가를 한창 이루어가는 중에 있었다. 사박 오일씩 술을 마시며 회사로 출근하고 무교동으로 퇴근하는 삼십대적 방황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어느 날인가 교회에까지 나가기 시작하면서 천명된, 높은 도덕적 기준과 기대는 나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했다.
기대치는 높았고 그것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목표로 생각되었다. 잘 하면 더 잘할 것을 요구받았다. 400점 만점이었던 어느 해 <경기도 교육청 주관 초등학교 일제 학력고사>에서, 398점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받아 신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을 때, ‘2점짜리는 왜 틀렸는데?’ 라는 서늘한 한 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게다가 하필 그 문제는 진정 쓰레기였다. 초등학교식 영어노트 -마치 음악노트처럼 줄 서너개를 그려놓은 양식- 를 제시하고,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어느 줄에 맞추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묻는 치졸한 문제였단 말이다. 아직까지도 그 위에 배열해야 했던 단어가 ‘Kg'이었던 것을 기억하는 나다. 그게 왜 수학문제였는지는 지금까지도 풀어야 할 의문으로 남아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현재의 결벽증은 아마도 이때의 여파로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방황은 거셌다. 외국어 고등학교 시험에 아버지의 오랜 동창 아들과 함께 응시했다가 나는 떨어지고 그는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그 시험 자체가 나의 객기의 표현일 뿐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알았지만, 더 이상 그런 객기를 부릴 힘조차 잃어버렸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반에서 절반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기록으로 찌끄리고 시내를 전전했다. 우울증과 강박증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마침 적당한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감행했다. 그리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까지 출석해야 했다. 사이버 범죄의 (비교적 유죄가 입증된) 혐의로.

바닥에까지 떨어지고 나면 만회의 시간은 찾아오는 법이다. 아버지가 미워서라도 신을 극렬히 부정했지만(덕분에 사춘기의 반항으로 간주되어 많이 맞았던 것도 같다) 우주적 존재는 나를 건져내어 씻기고 돌보았다. 앙금들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쉽사리 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고통과 번뇌 속에서 그 하나하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마주해야 했다. 용서한다는 것은 분명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1)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절대 합의란 없다며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아저씨들을 용서하는 것보다도, 혼자만 떵떵거리며 외고에 들어간 그 동창 아들을 인정해주는 것보다도 가까이에 있었다. 2점짜리 문제를 틀린 나를 용납하는 것, 성적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모두가 수군대는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흡사 자아에 대한 사형선고였지만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천천히, 그러나 섬세하게 나는 나의 내면을 보았고 그 하나하나에 얽힌 오해와 고통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아버지의 간섭은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 당신의 기대치를 처음으로 뛰어넘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진학 과정에서 또 한 번 기대치에 2% 부족한 결과를 얻은 것이 2점짜리 문제를 틀린 것과 같은 심정으로 다가와 진드기처럼 끈질기에 달라붙었고, 그래서 찬란하던 스무 살 대학 첫 학기, 그 어디에서도 만족과 안정감을 찾을 수 없던 나는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당시엔 술도 먹지 않았으니, 남들 다 즐기는 시즌에 유난을 떤 성적이 나쁠 수가 없었다. 경영대학 전체차석, 학년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아버지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런 묘한 안정감이 결국은 허물어져갈 모래성임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충분히 매혹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깊이 매달렸던 것 같다. 그만큼 아버지의 훈계를 떨쳐버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틈틈이 과외와 조교 생활로 모아 방학마다 집을 떠나 여행을 다녔다. 그 역시도 ‘잔소리’로부터 벗어나 나 스스로 어떤 것에 부딪혀보고자 했던 의지와 다름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통장 카드는 잠기고, 비는 오고, 대중교통은 파업에 밤 아홉시가 넘도록 호텔 방은 잡지 못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이 곧 나를 증명하는 일이니까. 아버지, 당신이 그토록 타박하던 내 모습을 좀 봐요. 이렇게나 잘 하고 있는데.


#3.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

홍세화가 그토록이나 칭송한 프랑스 인들의 ‘똘레랑스’는, 어떤 측면에서 보아서는 소극적 자기방어의 방편일 수 있다. 내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에 대해 가타부타 토 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권리에 대해서 타인들이 동일하게 인정해 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수가 허망한 것임은 현재에 와서는 만천하에 알려졌다. 오랜 모순에 분노한 이민자들은 용납 받지 못한 자신들의 분노를 거리의 차들을 불태우며 사회에 알렸고, 강아지를 사랑할 권리를 인정받겠다면서 정작 타인의 취향 -표현이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런 작은 지엽에까지 완벽을 추구하기에는, 일단 나는 지금 화가 나 있고, 게다가 나는 허원영이 아니다- 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말하자면, 황금률 위반이다. ‘남이 네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너도 남에게 해주라’는 적극적 포용은 사실은 그들에게는 없었다.

이론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의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좋은 부분은 떼어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과감한 지혜다.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 반드시 실패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후세의 수용자들에게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불만 가득한 내 속을 합리화할 수 있는 하나의 명분으로 끌어다 쓰기에 충분한, 솔깃한 제안이지 않은가. 내 침해받고 억눌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숭상해야 마땅했다.
갇혀있던 감정은 본래의 명제를 강화하고 키웠다. 남이 내게 무어라 지적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그에 대한 합리적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남의 영역에 침입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아섰다. 내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굳이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나름의 재해석을 하면서, 나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의 준거를 세웠다.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일단은 가능하다2) 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었다. 그건 나를 위한 최소한의 숨통이었다.
그神가 나를 건지고 믿음의 체계를 세워가면서 율법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돌아보게 되었으나, 바울이 나와 만나는 자리에서 그것은 이미 폐해진, 과거의 법칙일 뿐이었다. 가장 고결한, 그래서 최상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사랑은, 적극적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리라고 알아왔으나, 막상 바울은 통념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냅니다”(Ch.13 1Corinthians, Paul, 쉬운성경)

한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이토록 -하지 않는 것이라고 부정어를 반복하는 경우는 참 드물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사랑은 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차가움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객체일 뿐이다. 그것은 열의 부재를 표현한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치 그렇게, 사랑이란, 어떠한 실체들이 모여 이루어진 상태라기보다는,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이 결핍된 부재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재하는 것은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성뿐이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행위의 지침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


#4. 下高忍能大

당신이 그토록이나 깊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나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진작에 주었더라면, 내 속이 이토록이나 검게 타지는 않았으리라고, 떼를 쓰고 악다구지를 하며 불효자식이 되고 싶었다. 유아기적 성장통에 불과한 것이기는 했으나 경제학 원론을 듣고 있던 당시의 내게는, 신고전주의 학파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 자체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감히 부모를 부정하며 망나니로 나설 수는 없는 것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만큼이나 나는 무기력했고, 지쳐 있었으며,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입궁을 하고, 썩은 내면은 바쁜 현실에 가려 잊혀진 듯했다. 그러나 이등병의 생활은, 온간 간섭과 억압과 통제가 버무려진 최악의 조건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려야 했다. 선배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했고, 사사건건 한 마디를 덧붙이려 애썼다. 그것이 권위를 표현할 그들 나름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잔혹해서, 그중 가장 악질이었던, 나보다 한살 어리기까지 한 딱 한달 고참 녀석은, 매일같이 나를 불러세우고 느슨하게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니가 그 따위니 내가 어떻게 너를 교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설파했다. 악몽은 되살아났다. 눈치 보는 시간은 늘어나고 2점짜리 문제를 틀릴 때 마다 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굳게 다짐하며 이를 악무는 수밖에 없었다. 후에 내가 윗선에 들어가면, 절대로 저딴 짓은 하지 말자, 하고 있는데 이러쿵저러쿵 조급 떨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하고인능대下高忍能大라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참으면 능히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며 개그콘서트의 그가 장난스럽게 떠드는 말을 작대기 네 개 달고 들으면서, 그 시간들이 떠올랐던 건 억지로 갖다 붙인 결과인 것일까. 나는 내 노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문해보건대, 침몰하는 자아에 안타까워 고통스러워하며 침상을 뒹구는 깔깔이 아저씨가 되기는 했지만, 그 화를 타인에게 전가하려 한 적은 없다. 미숙은 타도해서는 안 된다. 그가 해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것이 진정한 길이다.

이런 나의 진심은 사실 행동과 태도의 표면만 보아서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어서, 몇몇 사람들은 내가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무관심하게 후임들을 대한다고 지적했다. 관계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전면전으로 나서며 반박할 수는 없었으나,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말이었다. 누가 누구를 계도하며 각성시킨다는 것인가. 내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다. 그건 나의 지난 악몽들을 되살리는 폭력이었으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복잡해서 반드시 미숙만으로 모든 불완전한 결과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극도의 이기심이, 때로는 조화되지 못한 욕망들이, 또 때로는 악의적 무관심이 3점, 4점짜리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아무런 애정도 로열티도 갖지 못한 조직의 일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모양으로 굴러가게끔 내버려 두는 것은 나의 결벽증적 양심이 용납하지 못하는 바다. 홀로 발 빼겠다는, 회피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자기비판이 맴돌았다.

극도의 모순에 봉착하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하고 있는데’라고 합리화하면서, 타인의 과정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오판하고 지레짐작하는 짓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맹목적인 태도로 갈굴 수 있었다면, 파편이 튀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살벌한 세상을 만들지언정 ‘나’는 지킬 수 있었을진대, 사실 저 모든 사고 역시도 나를 방어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었나.
희망은 어디 있는 걸까. 네버랜드를 찾아라. 피리를 불며 걸어가면 그 뒤로 쥐떼든 사오정 나방이든 간달프의 유령군대든 따라오지 않을까.


#5.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제 꿈에서 깨어나서 세트장 끝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날이 아주 많이 남지는 않았다. 지금은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차근차근 정리해 가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다. 많은 주제들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막상 명확한 답이 나오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일상이 여전히 나를 옭아매고 있는 까닭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한 나의 판단은 섣부른 것이었다. 누군가는 스물네 살에 이미 학문을 이루었다는데 내면을 보고 그것을 다스리기에도 급급한 나의 어리숙함이 불쾌하도록 부끄럽다. 다행인 것은, 비록 이런 나의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이들이 주위에 있다는 점이다. 샤워장에서 내게 바디워시를 빌려 달라고 거리낌 없이 물어오는 이등병이 있어서,(그 옆에는 일병도, 상병도 열 명은 족히 있었는데 그는 최고참인 나를 택했다. 남기기에 부적절한 말이기는 하나, 이런저런 말도 탈도 많은 그는, 많은 이들이 막 대하는 소위 고문관이다.) 복잡한 가정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선뜻 나눠주는 해맑은 동생이 있어서, 삼주 연속으로 설탕을 준비하는 이들의 옷을 다려주면서 주말을 보내며, ‘그래도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가 보다’는 안도감을 갖는 것마저 지나친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잠시간 흔들렸던 나의 신념은 그런 소소한 계기들로 인해 더욱 굳어지고 명확해지고 있다. 그 누구도 누구를 계도할 수 없다. 힘들어하는 누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라는 거칠고 세세한 ‘조언’ 따위가 아니라, 그냥 곁에 서서 함께 울며 들어주는 것임을. 비록 완벽하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임을 인정해주는 것임을. 때로 서글프고 무상해 무엇에도 의지를 가질 수 없을지라도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돌아올 자리를 남겨놓는 것임을 굳게 믿고 긍정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더욱 포용하며 사랑하는 방법이고, 가장 솔직하게 진짜 나를 조우할 유일한 대안이다.

그래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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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후기] 용서한다는 것, 그 용기에 대하여 참조.
2) 역시나 바울의 말.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 여러분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또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들 그러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고전 10:23, 쉬운성경)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8:06 

 

병장 손정우 
  멋진걸요. 
상처라는 - 어쩌면 핑계에 지나지 않을 - 울타리에 파묻혀가는 저를 울리는 문장입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2009-01-08
02:28:48
  

 

상병 김무준 
  음 경제학 이야기인줄 알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읽었는데, 낚였습니다. 쩝. 2009-01-08
02:37:52
  

 

병장 정병훈 
  대박. 
푸하하 자고 일어나니 칼럼이 두편이나 나왔군요. 오늘저녁 당근인데 곱씹어 봐야지. 2009-01-08
07:18:45
  

 

상병 차종기 
  어엇 , 오랜만에 출력을 해야겠습니다. 
가지로는 읽어 보고 나서 , 
지금은 바쁜 관계로 흙흙 , 2009-01-08
09:35:15
  

 

병장 문두환 
  어떤의미에서 보면 이건 가장 인간 김민규적인 글이로군요. 

(이게 자랑이 될지는 의문입니다만)참 말을 잘 들으며 자랐고 부모님 말에는 토를 달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덕에 저는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는 모든 것을 저의 선택대로 했던 것 같습니다.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어릴적부터 별다른 터치 없이 살아온 저로서는, 가끔은 너무 방생이 되어 가야할 곳을 찾지 못해 조금쯤이라도 나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길 바랬었습니다. 

그대의 선배들을 내가 안다고 하기는 조금 그렇고, 후배들을 가르치라는 말을 했을 법한 한명이 내가 예상하는 사람이 맞다면, 그리고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의 의미라면 그것은 계도나 선도의 의미가 아니라 관심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아이들에 대해 일체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어차피 무언가를 요구하는 조직이고 함께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 공동체라면 억울하고 분하더라도 내가 그 공동체를 통째로 바꿔내지 못하는 이상 그곳에서의 룰을 알려주기는 해야 하니까요. 요지는 생각이 갈리는 부분에 대해서 선을 긋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 혹은 제가 했던 말의 의미는 그랬다-라는 것이지요. 

경제학(은 물론 쥐뿔도 모르지만)의 의미가 되었든 일상이 되었든 저는 인간이란 결코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에는 시행착오가 있고 시행착오로 인해 생긴 부스러기를 부단히 쓸어담고 가다듬어야 하는 노력은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고요. 

덧 - 한 겨울에 언 도로를 걸으며 들었던 이야기를 이리 들으니 느낌이 새롭군요. 밤새 잠 못 이루었는데, 이제 편히-쉬어요. 편히. 2009-01-08
11:21:10
  

 

병장 정병훈 
  두환님이 먼저 댓글을 만들어 줬군요. 
저보다 민규씨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제가 적는 것 보다 현실적인 첫 문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민규씨와의 쪽지를 통해 얘기를 하지만 그런 제가 느끼는 느낌도 '이건 김민규적인 글이구나.'였습니다. 아, 정말 그말 그느낌 그대로입니다. 
밤새 글을 만들었다는 얘기에 또 한번 열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읽는 동안 제가 아는 성경 구절이 나와서 기쁘기도 재밌기도 하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글이란 생각도 들고, 흠... 
개입과 미개입의 차이와 어떤 것이 더 우월한가, 그건 모든 면에서 달라질거라 생각합니다. 한번 읽었는데 일단은 좀 먹먹합니다. 더 깊은 얘기를 하려면 역시 술한잔이 필요 하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2009-01-08
11:34:57
  

 

병장 김동욱 
  처음에는 경제학에 대한 글인가 하다가, 2로 넘어가서는 지난번 베토벤바이러스 이후 이번에는 아버님 이야기인가 하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그저서야 깔끔하게 5를 읽었습니다. 저는 4를 무슨 한자 성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두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글에서 그랬던 것보다 조금더 민규님의 이미지가 살짝쿵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한" 저 자신 역시 오늘도 복잡하게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5 부분 몇번씩 읽어봅니다. 저조차도 다른 이념, 사상 그 어떤 것보다고 우선 나 자신과 조우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1-09
00:49:06
  

 

병장 김민규 
  정우/ 그 문장, 어떤 맥락에서는, 그냥 스스로의 치부를 감추고 가식적인 외형으로 포장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돌아 돌아 왔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보려구요. 저, 애덤 스미스를 계승한 손 페티시 맞습니다. (헉. 이게아닌가) 

무준/ 경제학 이야기는, 아는 바가 도통 없어서 말이죠. 끽해야 겉핥기 수준의 싸구려-밖에는 드리지 못하니, 우리 동욱님께 희망을 

종기/ 어이쿠. 이거 증거물이 잡혀버리니 밑장 빼기도, 패 바꿔치기도 못 하겠는데요? 고맙습니다. 2009-01-09
01:24:25
  

 

병장 김민규 
  두환/ 어느 방향으로 가든, 막상 다른쪽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려나요. 부스러기는 필연적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저감방안과 처리대책을 찾아 보겠답시고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 있는 것이겠지요. 막상 강조점을 두지 않아 흐려지긴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저도 두환님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닿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막상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싶군요. 

"아무런 애정도 로열티도 갖지 못한 조직의 일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모양으로 굴러가게끔 내버려 두는 것은 나의 결벽증적 양심이 용납하지 못하는 바다" 

문제는 방법론이고, 접근의 지혜 아닐지요. 사실은 근데 제가 무관심하다는 지적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했었어요. 스쳐 지나가는 말로 주워들은 것까지 포함하면 기 십여명은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딴 이야기는 다 접어놓고, 아직도 그런 구체적인 상황들에 대해 어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막상 결론이 나지 않는 스스로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2009-01-09
01:31:07
  

 

병장 김민규 
  병훈/ 쪽지로 이미 이런저런 주접을 떨어대고 나니, 무어라 더 적는것이 민망할 지경이로군요. 낄낄, 술 먹고 개가 되어 충격요법으로 이런 미숙한 내 모습이 별것 아닌것처럼 느껴지게끔 만들어 볼까요. 

동욱/ 그게 순전히 더럽게 써서 그래요. 야밤에 앉아서 자라는 잠은 안 자고 되는대로 써재끼다가, 세시간쯤 되니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어지럽고 열은 받고 눈앞은 캄캄하고 매듭은 지어야겠고! 어디서 주워들은 이상한 3류개그나 끌어다 놓고, 칼럼이랍시고 잘 하는 짓입니다. 낄낄낄 2009-01-09
01:34:45
  

 

상병 차종기 
  밑장 빼기 하려면 손모가지 정도는 걸고(쩜쩜) 2009-01-09
10:39:44
  

 

병장 이우중 
  아, 정말 좋네요 2009-01-09
18:03:11
  

 

병장 이동석 
  이제 좀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난독증이 그나마 가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지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도 무관심-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반응은 이리 다르군요. 

쪽지로 많은 이야길 하면 이거 하나는 좀 않 좋아요.(그렇다고 쪽지를 싫어하는건 아니에요) 중언부언을 피하려다보니, 댓글이 짧아진다는거지요. 

정모를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2009-01-10
02:10:02
 

 

병장 이동석 
  (민규씨 개 만드려고-는 아닙니다) 2009-01-10
02:10:22
 

 

병장 김민규 
  월월, 왈왈, 멍멍- 
이 개자식이 왜 오밤중에 짖고 난리야-깨갱깽깽깽 

정모때 뵙겠습니다. 허허 2009-01-10
18:31:06
  

 

병장 김상민 
  오늘 저두 당근입니다. 2009-01-16
1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