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주국 이야기 (2)
상병 김예찬 2009-06-30 221025, 조회 75, 추천0
그간 바삐 지내느라 글을 작성할 시간이 나지 않았군요. 앞 글에 많은 분들이 알찬 리플을 달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먼저 현재 글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할 것 같네요.
저는 - 그리고 세미나 텍스트로 삼고 있는 한석정 교수는 - '만주국'은 과연 무엇이었나 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하여 먼저 만주국이 왜 '국가'의 형태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번째 이유로 통치 비용의 문제를 짚고 넘어갔죠. 그리고 두번째로는 주권의 문제입니다. 주권의 개념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만주국과 같은 '식민 국가'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권 국가'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특히 만주국은 급속한 '국가 만들기' 가 이루어진 곳인 만큼 우리가 '국가'라는 주제를 사유할 때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제공해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우리가 만주국을 단지 '괴뢰국'이라고 인식하고, 단순히 일제 군사 통치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만주국 건국기에 존재했었던 어떤 역사적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지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역사적 가능성'이라는 것은 긍정, 부정이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하나의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는 이야기지요. (간단한 예로 잊어버릴만 하면 등장하는 '동북아시아 허브'나 '유라시아 어쩌구'하는 이야기는 하루 이틀에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3) 식민지 통치성
앞에서 살펴 보았던 것 처럼 만주국이 다른 식민지들과 달리 국가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식민지' 연구, 혹은 '국가' 연구라는 각자의 영역에 치우쳐 '식민 국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춘 경우는 드물다. 이제까지 '식민 국가'들에 대한 서술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토착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강압 기구(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통치), 토착사회 위에 군림한 초월적 존재(조선총독부), 토착인들에 대한 폭력(독일의 토고 지배), 차별적 통치(인도의 영국 총독부), 열등한 토착 문화를 찍어 누르는 문화적 실체(영국의 아일랜드 통치), 식민지의 원자재나 기계류에 대한 약탈(나치 치하 폴란드)…
이러한 서술로 식민국가를 정의한다면 단순히 외래정복자의 이익을 구현하는 도구, 본국과 수직적으로 접합되는 조직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들은 사실 '경제적 착취'나 '식민 지배'라는 주제로 식민지 시대를 묘사하는 거대담론의 한 얼굴에 지나지 않다. 이러한 거대 담론은 비록 대단한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따금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신화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대분할을 '독점 자본의 운동'이라는 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피지배 민족의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는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사회주의로 투신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제국주의는 레닌이 말하듯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인 독점자본에 의해 펼쳐진 것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정치 상황에 맞물려 때로는 왕실 단독으로, 혹은 군부 단독에 의해, 아니면 지배 엘리트와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까지 다양한 정치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진행된 모호한 성격의 것이었다. (갤러허 & 로빈슨. 1983)
거대담론에 의한 서술은 주로 그 내용이 '어떻게 되어야한다'는 필연 혹은 당위로 설명하고, 역사적 팩트들을 비슷비슷한 동질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제국주의의 모든 과정을 단일 주제로 설명하는 것은 실제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식민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식민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면서 '제국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며('제국주의자'라는 통칭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사실은 각기 얼마나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때문에 제국주의적 의도가 굴절되거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1930년대 영국령 피지 제도에서 시행되었던 의료 사업들이나, 1910년대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토착 문화를 존중했던 총독 랴우티- 그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식민지로 오는 유럽인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의 건축 사업에서처럼, 식민국가가 예기치 않게 폭력과 억압대신 부성애적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식민국가는 토착인들의 생존 수준이 위협받게 되면 외래 거류민과 토착인 사이의 조정자가 되기도 했다. 이는 식민국가가 항상 외래 정복자나 거류민들의 이익을 위한 편파적인 기구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식민국가가 제국 본국의 수직적인 명령하에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자본주의 국가든, 주권국가든, 혹은 식민국가든 '국가'는 그 신민의 생산력과 안전에 대한 관심에서 면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는 이를 통치성(governmentality 인구와 안전에 대한 관심사, 정치경제학적 지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푸코는 종종 거칠게 보아서 전기 푸코(권력이 그 대상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것에 주목)와 후기 푸코(권력이 훈육하고 감시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대상을 유지하고 보존한다는 것에도 관심)로 나뉘어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국가의 통치성은 일반적인 주권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국가에도 적용되는 것이며, 따라서 식민지 신민들은 권력의 감시와 훈육 대상일 뿐 아니라, 동시에 보존 대상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식민 통치의 '폭력성' 역시 식민국가 뿐 아니라 주권국가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국가는 (현재 같은 국민 국가의 형태가 정립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변을 잔인하게 복속시키는 폭력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이러한 주권국가의 폭력성은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지 않은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91308
상병 박원익
한 가지 걸리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간다면, 레닌의 글에 관해서 1917년의 편지들(Zizek on Lenin, 1917 Writings) 중에서(제가 레닌의 텍스트 중 읽은 게 그것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독점 자본의 식민지 분할 운동으로서 제국주의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그가 그러한 독점 금융자본에 의한 식민지 분할 과정에 유럽 왕실 뿐만 아니라, 지배 엘리트들, 심지어 문인들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등 각종 이질적인 세력들이 연루되어 있는 복합적인 과정임을 분명히 간파하지 않았던가요 그가 그것을 '정치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를 다소 거친 이분법적 대립으로 표상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감안해야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레닌에게 있어서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정치적 언어로의 '번역'이야말로, 최종적으로 이질적이고 다양한 팩트들의 검증과 비교의 끝에서 얻어져야만 하는 최종적 목표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식민국가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폭력적 배제와 착취의 과정들을 서술하는 사회정치적 조류 가운데, 거칠게 말해서 민족주의 쪽에서는 그것을 단순히 '주권'의 결핍으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권을 담지해야할 분명한 실체는 '한민족'이고요. '우리'()가, 응당 향유해야할 민족적 주권으로부터 소외될 때 일어나는 모순들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만주국'을 보았을 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주'라는 동아시아의 주변부에는 거기에 본질적으로 배태Embedded되었다고 할 수 있는 주권적 실체라 할만한 게 없는 가운데서, 다시 말해서 일방적인 착취와 억압의 특권적 희생양이라는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 가운데, '주권'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발현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주국이야말로 주권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사례라는 데 동의합니다.
다시 말해서 온전한 주권국에 대비되는,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형태를 띠는 식민국가의 위상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비춰봤을 때, 만주국은 그것에 한 술 더 뜨는 '비정상성'과 '일탈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주국은 애초에 어떤 주권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볼 수 있는 특권적 주체 자체가 부재한 가운데서 식민국가가 수립된 이상한 경우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우리가 '온전'하고 '정상'적으로 수립된 주권국의 이면을 폭로하는 '거울상'으로서 기능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식민국들은 온전한 주권국가의 모순들과 결핍이 전치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름 아닌 주권국 자체의 모순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식민국의 상태를 어떤 온당한 주권이 결핍된 상태로만 규정하는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만주국이 어떤 학적 '대상'으로 다뤄질 때, 분명 이런 함정에서 자유로운 유리한 지점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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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이석재
잘 봤습니다. 역시 세계사의 일반론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문제겠지요...
사실 저는 일반사회학쪽의 인물은 거의 모릅니다. 미셸 푸코도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고, 사르트르, 헤겔, 칸트 등등의 이름들 또한 그들의 텍스트는 커녕 교과서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을 뿐이지요.
사실 이런 식민국가에 관한 논의와 더불에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민족국가에 대한 주제인데 말이죠. 근대 식민지를 결정짓는 '수탈'과 '민족'의 개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흐흐. 주제를 넘어간 내용이지만 언젠가 민족국가들에 대한 얘기또한 해보고 싶어요. 만주국은 만주민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니까요. 만주국 자체가 '직업 정치가'들의 행위. 구조적인 해결법이 통용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후에 아프리카의 독립중 아프리카 각 국가들이 직업 정치가들을 고용한 상태에서 강대국에 세운 구조적인 면을 본따기만 하려다가 독재국가로 변한것을 본다면, 민족적인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또한 같이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흠. 좀 두서없긴 하네요. 흐흐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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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윤현상
거대담론이 당위, 역사적 필연성에 집착하여 역사적 팩트들을 비슷비슷한 동질성으로 묶어 해석함으로써 실제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원익님의 댓글에서처럼 그것이 정치적 언어로 발화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해를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단순화 되어 그 의미가 왜곡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거대담론이 가지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글의 말미에 거론된 폭력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히 한마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국가나 폭력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폭력성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폭력성의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식민통치지역에서 벌어지는 폭력성은 보통의 경우, 주권국가에서 벌어지는 폭력성보다 강도면에서, 빈도면에서 더욱 잦다고 생각됩니다. 식민통치지역에서 벌어졌던 각종 만행들은 본국이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죠. 200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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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예찬
원익 확실히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가지고 있는 '거친' 부분이 이후에 중점적으로 이해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일제 시대만 해도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겠죠) 뿐 아니라 보통의 학술적 논의에서도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그런 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만주국을 괴뢰국이라는 한 단어로 편리하게 이해하는 것의 이면에는 어쩌면 주권국가의 두려움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석재 그 민족 국가라는 상상적 개념 자체가 식민(수탈)의 역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겠죠 발리바르의 글을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현상 식민 통치 지역에서 유독 '만행'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 하나의 역사적 상식처럼 되있습니다만, 글쎄요.. 과연 일제 시대 때 '빛고을'과 같은 일이 있었는지. 프랑스의 식민 통치기에 크메르 루즈의 비극과 같은 일이 있었는지. (물론 크메르 루즈가 서구 언론 매체에 의하여 부풀려지거나, 심지어는 조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어쩌면 이 것을 손쉽게 '비극'이라 인식하는 것도 너무나 리버럴한 자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물론 그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가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극한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식민 통치에 그 원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구요. 200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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