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주국 이야기 (1)  
상병 김예찬   2009-06-14 161536, 조회 196, 추천1 


1. 만주국에 관한 이론적 고찰

1) 통치비용

우리는 왜 일본제국이 만주 지방을 조선이나 대만과 같은 '식민지'로 점령하지 않고 '만주국'이라는 국가를 내세웠는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역시 '통치비용'의 문제다. 

'열강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통하여 본국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오히려 제국주의적팽창주의적 정책을 폈을 경우 드는 경제적 비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 학계의 상식이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월러스틴은 로마 제국은 엄청나게 확장된 영토 때문에 제국의 중심이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식민지인으로 설움의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제국주의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 나름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강들의 식민 사업도 통치비용을 고려한 나름의 다양한 방법들을 택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법인 직접통치(예를 들어, 일제의 조선 식민 지배가 있겠다.)는 식민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에 관료들과 군대를 보내야 하는, 지배 국가에게는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방법이다. 일본제국은 30년이 넘는 조선 식민 지배 기간 동안 조선총독부에 매년 평균 400만엔이라는 거금을 보내주어야했다.(이는 1930년대 일본 정부의 연평균 일반회계 지출의 1%에 해당한다.) 그냥 지배하고 수탈한다고 해서 식민 총독부가 자급 자족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따라서 이러한 직접 통치의 방법을 채택한 열강들은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식민지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에게 식민지란, 다른 열강들을 쫓아내고 제한적인 행정 사무를 두어 경비를 최소화시킨, 이득을 낼 수 있는 교역 상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식민지를 여럿 확보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많은 식민지는 제국 질서의 교란만 낳는 법이다.

영국의 경우 '영국과 토착인들 양자의 상호이익을 증진하고, 토착세력, 관습, 재판 체계를 존중'한다는 명분 하에 간접통치 방식을 채택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 지배할 때 최대한 지역 토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면서, 인도인 병사들을 통해 식민지 방위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직접적이고 중앙 집중적인 형태를 택했는데,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프랑스는 식민지 방위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 경비를 식민지에서 수탈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은 식민지 토착인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세금징수를 낳아, 결과적으로 끝없는 반란과 유혈 진압의 역사를 낳게 되었다.

직접 통치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식민지인들의 법적 지위였다. 만약 식민지가 직접 지배로 인하여 본국에 편입된다면, 프랑스 의회에 알제리 대표가 참석한 경우처럼 식민지인 대표의 선출을 허용하거나, (이론 상이라도) 본국의 헌법이나 국민으로서의 혜택이 식민지인들에게도 확대되어야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에 비하여 영국의 간접통치 방식은 본국 정부가 식민지를 상대로 징세를 하지 않고, 식민지 법령과 같은 문제는 총독부와 지역 세력 간의 협의에 맞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편이었다. 직접 통치의 경우 식민지인들이 자국 국민과 (일단 법적으로는) 같은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식민지인들이 본국으로 이주해오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었다. 이는 인구 문제, 실업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경우였다. 오늘 날 프랑스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인종주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직접 통치 방식이 가져온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주국의 경우 일본이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비용을 고려해서 선택된 형태일까 이미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기 이전부터 미츠이 물산과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라는 거대 기업들을 통하여 만주 지역에 투자와 교역을 확대하면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만주는 일본 본국에 원자재와 농산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 섬유 판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기도 했다. 굳이 만주국이라는 국가를 세우지 않았더라도 일본은 큰 통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만주 지역을 통해 이득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주국이 생긴 이후, 만주국의 설립, 유지, 발전을 위하여 들여야했던 일본의 투자 비용은 막대했다. 만주국과 일본의 역대 경제 수지 관계를 산술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만주국으로 흘러들어왔던 돈이 훨씬 많다!

만주국은 일본국의 재정 지출을 이끌어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만주국 1차 경제개발 계획(1937)과 관동군의 만주 주둔으로 인하여 일본정부가 써야 했던 돈은 막대했다. 관동군 주둔 비용인 '만주사변 경비'만 해도 6년간 13억엔에 달했으니(앞서 보았던 조선 총독부로 보내졌던 연간 400만엔이 일본 연평균 회계 지출의 1%라는 걸 떠올려보자), 어떻게 보자면 만주국 전체 역사에서 일본은 거두어 간 것보다는 넣은 것이 많았다는 지적도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일본이 만주국에 투자한 비용을 뽑아가기도 전에, 만주국이 너무 일찍 망한 셈이다. 어찌되었든, 만주국에 들어간 막대한 국가 비용은 만주국이 영국식 간접 통치와는 다른, 그리고 프랑스식 직접 통치와도 다른, 새로운 방식의 '독립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주권의 문제

오늘날, 주권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주권적 힘의 소재를 두고 갈려진다. 이는 궁극적 권력이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주권재민), 혹은 국가 그 자체(국가주권)에 있다는 논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주권이 가진 외부성의 성격을 간과하고 있다. 주권은 실제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특히 만주국의 경우는 그 극명한 예다. 만주국 정부는 1932년 3월 독립을 선포했지만, 국제 사회는 이를 외면했고 만주국은 '괴뢰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괴뢰국'은 무엇인가 통상적인 정의라면, 괴뢰국이란 주요 정책이 외세 혹은 패권국에 의해 조종, 결정되는 나라다. 또 다른 의미로는, 자주 국방이 불가능하여 외국군의 주둔을 허용하거나, 강대국과 연계를 맺는 나라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정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20세기의 많은 주권국들이 실제로는 모두 괴뢰국이라 불리울 수 있다. 특히 두번째 정의를 적용하자면,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구 서독과 같은 경제대국들도 올바른 주권 국가라 부를 수 없다. 

좀 더 약한 기준, 첫번째 정의를 정의해보더라도 20세기의 많은 주권국들은 괴뢰국의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이를테면 쿠데타나 거대한 정치적 변혁 이후 언제나 미 대사관으로 달려가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했던 '자유진영'의 국가들은 어떠한가(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차 대전 이후의 이런 주권국들과 1930년대의 만주국을 같은 종류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주권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기준은 '국제 사회의 인정'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근대 주권 국가의 형성은 1815년의 국제 협약이라고 할 수 있는 '빈 협정'을 계기로 하고 있다. 오늘 날에도 UN과 같은 국제 기구로부터 인정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가 정말로 '국가'인지 아닌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사회에서 외면받았던 만주국은 '주권 국가', '독립국'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주국은 스스로 독립국이라고 할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식민지에 거주하는 피식민 지배자들이 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가 역사에 가끔 있다. 1960년대만 해도, 백인 거류민들이 본국에 맞서 독립해 로디지아를 건국했다. 만주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도 일정 기간 유형 무형의 긴장이 존재했다. 일본의 1920년대는 보통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기라고 말한다. 메이지 시대를 지나 다이쇼 천황의 집권기였던 이 때, 일본에서는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자유주의 세력이 힘을 얻게 되면서 군부 세력이 이전의 힘을 잃게 되었다. 민간 정치 지도자들은 군대의 예산을 삭감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가속화했다. 이 때 군부의 불만 세력들이 요인을 암살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1936년의 '2.26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쿠데타 사건의 주동자들 을 제외하면 연루자들에겐 큰 처벌을 가해지진 않았는데, 이러한 불만 세력들이 만주로 전출되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의 세력 감소에 불만을 가진 군부는 만주국을 자신들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주국은 도쿄의 일본 정부에게 간섭 받지 않는 공간이라는 정서가 강했다. 이러한 정서에 의하여, 군부는 만주에 제국을 세워 외부를 향해 주권국 행세를 한다는 전략을 세운다. 만주국 황제는 일본제국의 상징적 질서에서 일본천황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높은사람이 될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민간 정치 지도자나 의회의 간섭을 막을 수 있는 상징적 방패막이가 된다.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군사적, 정치적 결정이 빈번히 관동군에 의해 거부되었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만주국은 독립국으로 보이기 위한 많은 국가적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빠른 속도로 근대 국가가 갖추어야할 조직인 관료제와 경찰조직, 만주 국군을 창설한다. 보통 근대 국가의 형성은 적어도 수십년에서 많게는 수 세기가 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만주국에서는 무력을 장악한 군부에 의하여 민간 사회가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정리되는데 까지 몇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만주제국 황제'인 푸이는 궁정 연회, 순시, 관병식, 국민 훈시 등을 통하여 만주국의 '건국 정신'을 홍보했다. 자연재해가 날 때 마다 정부 차원의 '구제 사업'이 발표 되었다. 요컨대, 외부의 인정은 없었지만 만주국 스스로는 독립국으로서 자리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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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양동훈 
  1) ‘회계 경비’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400만엔이 1년 회계경비의 1%이면 6년간 13억엔은 연평균 2억엔 이상이니 회계경비의 50% 수준이 되는데, 회계경비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혼란이 오고 있어서요. 

2) 1번을 봤을 때, 투자비용이 거두어들인 비용보다 많다고 해서 독립국이라고 말할 수가 있나요 영국식 간접 통치와도 다르고 프랑스식 직접 통치와도 다르고 또한 독일식 방임과도 다르다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쉽게 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독립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요. 뭐 물론 앞으로 이런저런 근거들이 더 붙겠지만, 일단 그렇다는 생각이에요. 독립국 하나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본이 재정적 지출을 했다는 자체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어요. 

3) 국가간의 관계라는 것은 당연히 힘의 논리가 존재하고, 다른 국가를 지배하지는 않더라도 압력을 주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합니다. 국가도 어찌 보면 많은 인간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인간과 같다고 할까요. 힘있는 자와 사회의 틀에 의해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니까요. 괴뢰국 내지는 식민지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특정한 한 국가’에 예속되어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판단해볼 수 있는데요. 이런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냉전시대에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괴뢰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찬씨가 생각하는 ‘주권 행사’ 부분에서의 독립국과 괴뢰국의 진짜 차이는 무엇인가요 주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것으로는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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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예찬 
  1) ‘회계 경비’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400만엔이 1년 회계경비의 1%이면 6년간 13억엔은 연평균 2억엔 이상이니 회계경비의 50% 수준이 되는데, 회계경비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혼란이 오고 있어서요. 

- 회계 경비란 쉽게 말해서 '출납 기록된 정부 예산'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연평균 일반회계 지출'이라고 한다면 특수 지정된 예산이 아닌, 정부의 일반 예산 지출을 뜻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만주사변 경비' 같은 경우는 군사적 목적으로 따로 설정한 특수 예산에서 나가지 않았나 싶네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명확하게는 설명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2) 1번을 봤을 때, 투자비용이 거두어들인 비용보다 많다고 해서 독립국이라고 말할 수가 있나요 영국식 간접 통치와도 다르고 프랑스식 직접 통치와도 다르고 또한 독일식 방임과도 다르다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쉽게 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독립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요. 뭐 물론 앞으로 이런저런 근거들이 더 붙겠지만, 일단 그렇다는 생각이에요. 독립국 하나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본이 재정적 지출을 했다는 자체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어요. 

- 여기서 '독립'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대한 독립 만세!) 자주적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국과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설명하듯이 만주국은 일본정부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었죠. (일본국이 아닌, 독립된 국가니까요.) 

3) 국가간의 관계라는 것은 당연히 힘의 논리가 존재하고, 다른 국가를 지배하지는 않더라도 압력을 주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합니다. 국가도 어찌 보면 많은 인간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인간과 같다고 할까요. 힘있는 자와 사회의 틀에 의해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니까요. 괴뢰국 내지는 식민지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특정한 한 국가’에 예속되어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판단해볼 수 있는데요. 이런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냉전시대에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괴뢰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찬씨가 생각하는 ‘주권 행사’ 부분에서의 독립국과 괴뢰국의 진짜 차이는 무엇인가요 주권의 행사가 제한된다는 것으로는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 아니, 사실 저의 의견이라기엔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이라는 책을 요약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 우리가 흔히 만주국을 단순히 '괴뢰국'이라 바라 볼 때, 그러한 인식에는 얼마나 많은 왜곡과 오해들이 숨어 있느냐는 점입니다. 만주국은 근대 국가를 짧은 기간에 완전히 새로 세우고자 한 거대한 프로젝트였고, 그런 점에서 '근대 국가'라는 것을 연구할 때 긴요한 분석 사례로 쓰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동훈님 말처럼 '실제로 냉전시대에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괴뢰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입장에서 나온 이론들이 80~9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적이 있었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치고 있구요.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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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양동훈 
  3)이 조금 어려운 얘기가 될 겁니다. 다만, 예찬씨의 얘기가 충분히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은 '냉전 시대에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소련의 괴뢰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입니다. 

어차피 이 부분은 예찬씨도 저도 견해가 아주 확고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중간쯤인 것 같습니다만.. 결국은 그저 괴뢰국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 다른 것 뿐이니까요. 

섬세하고 꼼꼼한 답변 감사합니다!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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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진수유 
  잘 읽었습니다. 이어질 내용도 궁금해지네요.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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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이석재 
  하지만, 만주국에 그렇게 좋은 점수를 주긴 싫군요. 인용되는 격언중에 모든 행동의 처음은 선의로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주국의 목적이 선의로 시작되었을지는 몰라도, 만주국은 일본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군부 세력의 주구였을 뿐이지요.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만주국 또한 만주지역에 있던 반 일본 세력의 절멸에 최선을 다한 점또한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지요.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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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윤현상 
  만주국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지만, 짧게 아는 지식으로 몇가지 얘기해볼게요. 

만주국의 통치방식이 직접도, 간접도 아닌 그 중간지점에 위치하게 된 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만주중국대륙에서 일본이 처해있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온 게 아닐 까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만주국에 투입된 일본의 비용이 막대하고, 그 방식이 새롭다고 해서 만주국이 괴뢰국 이상의 유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만주국에 절충적인 통치방식이 적용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일본은 조선의 식민통치 경험으로 직접통치에 드는 비용과 치안부담이 만만치 않음을 학습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일본의 상황으로는 만주라는 거대한 지역에 투입할 경찰력, 행정력을 확보하기 어려웠기에 직접통치는 무리 있음을 인식한거죠. 반면에 간접통치를 시행하기에 만주는 그리 적합한 여건이 아니었던게, 만주에는 많은 군벌들이 할거해 있었기 때문에 동업 파트너를 한정지어 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고, 그나마 관동군이 독단적으로 장학량을 죽이는 일(만주사변 이었던가요, 이 부분은 살짝 고민이 되는게 이 일이 먼저인지, 만주국 성립이 먼저인지 헛갈리네요)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그 군벌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죠. 이렇게 이쪽 저쪽 다 여의치 않다고 해서 만주를 포기할수도 없는게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북쪽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관동군을 만주에 무조건 주둔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구요. 

그래서 일본이 고심끝에 내 놓은 결론이 만주국이라는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요. 만주국은 5족공화를 표방해 만주에 사는 여러 민족들을 만주국의 깃발에 통합시키려 했고, 괴뢰 황제인 푸이가 전면에 최대한 나서서 노출을 많이하는 등, 일본의 괴뢰국가라는 인상을 지우려 무척이나 애를 썼죠. 이건 군벌과 같은 중간 지배자를 최대한 배제한 채 만주에 사는 일반 인민들의 지지를 최대한 얻으려는 제스쳐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지 않다면 괴뢰황제에 불과한 푸이를 그렇게 많이 노출 할 필요가 없지요. 물론 푸이를 정점으로 한 관료체제는 모두 일본인들이 차지해서 일본의 입김을 벗어나는 것은 막을 수 있었구요. 

예찬님의 윗 글에서 만주국을 옹호하는 최대의 근거가 되는 '만주국이 중앙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 글에서 메이지 시대를 지나 다이쇼 천황의 집권기였던 이 때, 일본에서는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자유주의 세력이 힘을 얻게 되면서 군부 세력이 이전의 힘을 잃게 되었다.는 부분을 저는 수용할 수가 없네요. 일본사 연구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지나치게 이상화되는 경향이 있는게 사실이죠.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이 시기에서 찾기도 하고.. 일본이 그동안 정상적인 길을 걸어왔는데, 30년대 후반 들어서 길을 잘못 들었을 뿐, 이라는 논리로도 사용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길에 잠시 위치했었던 하나의 변종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봐요. 다이쇼 데모크라시 때 군부세력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힘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라고 할까요. 군부세력이 힘을 잃고 밀려난 것이 아니라, 증대하는 민주주의의 요구와 국제적인 정세때문에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을 뿐이죠. 군부세력이 힘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예는 예찬님의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해도 크게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죠. 

결국 만주국이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독립적인 행동을 했던 것은, 만주국이 보다 독립적이고 기존 식민지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여서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저는 보는겁니다. 군부가 열어준 민주주의 의회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군부의 틀에서,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의 흐름 속에서 만주국을 읽자면,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의 일본 본토는 표면상으로 잠시 민주주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이었을 뿐이고, 기실 그 뒤에 위치한 군부의 배후조종하에 만주국은 군국주의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200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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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김예찬 
  '만주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만주국의 사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서있는 동아시아 체제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만주국 일본의 괴뢰국이었잖아 라는 인식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는지도 밝혀야겠구요. 

음, 자꾸 되풀이하게 되는 것 같은데 이 글은 '만주국에 대한 옹호'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밝혀두고 싶구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도쿄와 군부 사이의 알력 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만주국 건국이며, 그때 도쿄 정부가 상징하던 서구-인민이라는 가치와 군부(만주국)이 상징하던 아시아주의-국가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교접하면서 어떻게 일본제국의 담론 체계를 형성했는지.. 우리가 쉽게 '일제'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이중적인 속성을 가지고 통치 행위를 펼쳤는지 밝히는거죠. 그리고 그 당시의 역사가 지금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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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오학준 
  재미있네요. 한번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을 줄이야! 200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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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양동훈 
  예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상에 대한 재평가'는 결국 '옹호'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인 재평가라고 해도, 지금까지의 시각을 뒤집기 위해서는 결국은 옹호가 될 수밖에 없는 거라는 얘기이지요. 

간단히 말해 보지요. '단순히 괴뢰국이었잖아'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는 '괴뢰국으로 보기에는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다'라고 말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은 그 나라가 하나의 '독립된 객체'였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옹호적'인 시각을 띠게 됩니다. 예찬씨의 서술에는 그러한 뜻이 없다고 해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압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껄껄 

예전에 이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감각을 기준으로 한 이승만의 재평가' 대략 이러한 내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아래에 달린 댓글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독재자에, 살인자를 왜 그렇게 호평하느냐'였지요. 저는, 그가 한 독재에 대해서도, 살인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는 정치적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이나 타이밍을 잡는 감각이 남달랐고 정치적인 발언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정적을 제거할 줄도 아는, 타고난 '정치인'이었다.'라고 했을 뿐이었거든요. 

그런 겁니다. 

예찬씨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건 간에, 주제가 그런지라, 결국은 그런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저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런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요(웃음) 200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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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박원익 
  현상저는 만주국에서 드러난 표면상의 '자율'과 '민주주의' 그리고 '공존'의 가치들이 단순히 외관상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역사적 서술은 아주 쉽게 음모론의 아종으로 빠져들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군부'라는 배후조종 세력을 은밀하게 전능화하는 시각과 잇닿아 있기도 하지요. 가령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 18일'이라는 저서에서, 왕당파들이 단순히 마지못해 가식적으로 공화주의의 언어와 의례들을 따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역으로 공화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정립케한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군부든 왕당파든 오야붕이든 어떤 역사적 행위자도 모든 사건들에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서 개입할 수 없다는 진리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군부가 만주사변을 일으킨다든지, 만주국을 지원한다든지 하는 동기들이 우리가 나중에 손쉽게 생각하듯이, 전적으로 그들의 야욕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만주국의 설립 동기에는 그만의 진정성이 있었다고 용기있게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파시스트들이 그렇듯이 '군부'에게도 나름의 진정성이 있었겠지요. 문제는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진정성을 정 반대로 전도시켜버리는 역사적 과정 그 자체입니다. 

동훈일단, 제가 보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상에 대한 재평가'가 '옹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그러한 대상에 대해 왜 옹호해서는 안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양동훈님이 지적하신 사항은, '재평가'의 시도들이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궁극적인 지점인 것 같습니다. 해서, 저는 반문하고 싶은 것이지요. 왜, 만주국을 옹호해서는 안되는가 이 지점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만큼 저희들이 공부가 덜 되어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 이상, 저는 이 세미나가 근본적인 지점까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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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양동훈 
  원익 약간 방향이 맞지 않는 듯 싶습니다. 제 댓글이 나온 근거가 되는 것은 위쪽 댓글들의 흐름입니다. 석재씨는 '하지만, 만주국에 그렇게 좋은 점수를 주긴 싫군요' 라고 댓글을 달았고, 현상씨는 '만주국이 괴뢰국 이상의 유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찬님의 윗 글에서 만주국을 옹호하는 최대의 근거가 되는 '만주국이 중앙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라는 댓글을 달았죠. 

그리고 예찬씨는 ''만주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 되풀이하게 되는 것 같은데 이 글은 '만주국에 대한 옹호'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었죠. 

그리고 저의 말은 예찬씨에게 '그렇게 받아들여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의미로 한 것이었구요. 

사실, 저는 만주국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예찬씨만큼도, 석재씨만큼도, 현상씨만큼도, 원익씨만큼도 모를 것이라고 쉽게 추정(이라고 쓰고 판단이라고 읽으면 문제없을 겁니다)해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만주국에 대해 판단하거나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입장입니다. 옹호도, 비판도 백지 상태인 저에게는 모두 가감없이 들어오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요. 껄껄. 

그래서, 이 글이 왠지 반가운 것이구요(웃음) 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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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윤현상 
  원익 원익님이 말씀하신 문제는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진정성을 정 반대로 전도시켜버리는 역사적 과정 그 자체라는 말에 저도 강하게 공감합니다. 저 또한 여러 글을 통해서 기존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기도 했고, 그 밖의 여러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면을 들추려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예찬씨, 원익씨가 만주국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주국을 재해석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에도 공감하고 있구요. 

동훈씨와 마찬가지로 저도 만주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문의 댓글을 단 것은, 이를 통해서 만주국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구체화되고. 더불어 논의가 더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습니다. 

또 원익님이 말씀하신 보나파르트의 브뤼베르18일에서 맑스가 말한 바가 만주국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만주국의 시스템이 당시 다른 식민지들보다 민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저는 아는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논의가 더 진행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듯 하네요. 

다음 세미나글이 어서 올라오기를 기다립니다. 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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