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주국 이야기 (0)  
상병 김예찬   2009-06-14 143304, 조회 119, 추천0 


저번 나들이 때, 동양사를 전공하는 과 선배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제법 즐거운 술자리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분과 학문으로서 '동양사'가 가지는 위치에 대한 나름 격렬한 토론이었습니다. 네 사람이 동석한 술 자리였는데, 명청대 사회경제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1인과 중국 고대사를 전공하려는 학부 졸업생 1인(선배들) VS 주로 서양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학과 학부생인 저와 사회학과 학부생인 친구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되었죠.

먼저 저와 친구가 유럽의 정치적, 역사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또 그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학술적으로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동양사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원론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담론들은 주로 유럽의 역사적 상황을 그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관심을 동양사 쪽에도 확장해서 연구를 진행시켜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분과 학문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에서는 '동양'은 동양사학과, 동양철학과, 동양어문학과(이하 편의를 위하여 '동양학과')를 제외하면 이론적인 접근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물론 그 틀 안에서도 서구의 이론 틀을 빌려와 연구를 해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이후 동양사 관련 논문에서도 월러스틴이나 푸코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동양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편입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었죠.

먼저 동양사를 전공하고 있는 입장의 선배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는데, 그 골자는 어떻게 보면 그 주장이 '서양 학문'의 관점에서 동양을 해석하고자 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입장이 아니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애초에 '근대 학문'이라는 것이 서구적 전통에서 생겨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학과는 전근대부터 진행되었던 전통적인 '학'으로써 나름의 연구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것으로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 나가야할 것이지 서구적 관점으로 동양사를 연구해 나간다는 것은 너무 기계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였습니다. 

이처럼 다른 입장에 서 있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모두가 동감했던 것은 이른바 동양학과의 연구 방법론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동양사'의 경우, 연구의 목적이라는 것이 보통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 혹은 '근대라는 기준에 비추어 기존의 동양사가 어떤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양사의 연구들이 다른 분과 학문들(철학사회학 등)과의 이론적 연관 속에서 '근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서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할 수 있겠죠.

저와 친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 연구되고 있는 '근대'에 관한 분석 틀들을 활용하여 지금 우리가 서있는 동아시아(좁게 말해서 한,중,일 3국)라는 공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현대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립될 수 있도록 했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만주국'에 대해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선 만주국은 일본의 1930년대 경제 기적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곳입니다. 일본제국은 만주국으로 부터 원자재의 상당량을 충당할 수 있었고, 각종 중공업화학 단지를 건설하여 이후 태평양전쟁을 가능하게 만든 '엔 블록'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주국이라는 신생 국가를 기초부터 만들어 나가면서 쌓았던 노하우 들은 만주국 관료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 수상을 중심으로 전후 일본의 재부흥 시나리오에 그대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패전 후 일본이 만주에 남겨놓았던 경제적 유산들은 중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했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일본이 남겨두었던 만주 지역의 경제력은 1950년대 중국 총생산의 14%, 공장 생산의 33%, 철도 수송의 부가가치로는 45%에 달했다고 합니다. 만주국은 중국이 요새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게 했던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죠.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중국에서 벌어졌던 국공 내전은 만주에서 그 승패가 갈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호가 이끄는 홍군 부대가 만주에서 이뤄낸 결정적 승리는 이후 대륙의 전투에서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에게도 만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토지 조사로 인하여 토지를 잃게된 많은 농민들이 만주로 흘러갔습니다. 총독부 치하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성공하기 힘들었던 조선 엘리트들은 만주국 정부에 봉사하거나, 그 적대자가 됨으로써(독립군)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광복 이후 남북한 지도층들을 형성하게 되었구요. 북한 권력의 핵심은 만주국의 소탕 작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남았던 한만국경의 게릴라 출신입니다. (이른바 빨치산 세대) 남한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국 군관 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국군 장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만주국 인맥들이 건국 이래 한국 군부에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이끌게 됩니다. (일례로, 만주국의 경제 개발 계획과 남한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만주국에 대해서 우리는 보통 '일제의 괴뢰국'이상의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 조선과 대만을 직접 식민 통치했던 일본이 유독 만주에 대해서는 만주국이라는 국가를 세워 놓아야 했을지, 당시 만주국이 표상했던 가치들이 한중일의 지적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만주국이라는 국가가 이후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 체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기 어렵죠.

마침 만주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영화나 문학 작품들이 한창 인기를 모으고 지나간 시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놈 이상한 놈이나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 열차를 타라, 소설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모두 만주국을 주요 배경으로 합니다.) 저와 제 친구는 만주국에 대한 얄팍한 인식에서 벗어나, 만주국을 우리가 서있는 지금, 여기를 탐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만주국과 국가 형성에 대한 잘 쓰여진 안내서인 한석정 교수의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괴뢰국의 국가효과 1932~1936을 텍스트로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칼럼은 세미나를 통한 공부를 공유하는 장이자, 저와 여러분이 만주, 만주국과 '국가라는 괴물'에 대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단초로 쓰여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칼럼이 책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중 궁 생활이라는 퀘스트를 마친 후 앞으로 함께 공부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5741 

 

상병 진수유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9-06-17
085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