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깽깽이의 재미없는 옛날이야기 - 3교시
상병 김무준 2008-12-16 17:39:23, 조회: 286, 추천:1
어느덧 3교시다. 이번 시간 부터는 방학 전에 말했던 것처럼 한국 신화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시간에는 신화의 개념을 중국의 창세신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기억나는 사람 손? 기억하고 있다면 훌륭한 학생이라 생각한다. 음. 강의실을 나간 몇몇 학생도 보이지만 어쨌거나 강의는 시작된다. 한국 신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재미없는 옛날이야기를 좀 하자. 한국의 대략적 종교 비율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이 있을지 모르겠다. 깽깽이의 좋지 못한 기억력을 되살려 보건데, 반수 이상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믿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크게 불교, 기독교, 천주교의 세 가지로 나눠진다 말할 수 있겠다. 뭐, 원불교니 대종교니 대순진리회니 통일교니 하는 알 수 없는 무리들은 일단 무시하자.
기독교와 천주교는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라면 대충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부터 깽깽이가 하는 말에는 단 일 퍼센트의 비하도 없으니 깽깽이의 스타일이라 생각하기 바란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하나님God 혹은 예수Jesus Christ라는 존재를 믿는다. 이런 지쟈스. 어쨌거나 신학에는 그다지 관심 없는 깽깽이니 가나안 땅에 이주해온 히브리 인의 신화이야기를 해보자. 히브리는 어디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정착한 이스라엘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시편 74장에 따르면 야훼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야훼, 즉 하나님God으로 추측되는 존재가 레비아탄Leviathan이란 용을 죽인 후에 시편 104장에서 낮과 밤, 천체와 계절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야훼는 바람을 날개삼아 달고 구름을 수레처럼 타고 다니는 존재라고 묘사되고 있다. 뭥미? 우리가 추상적으로 떠올리는 넉살좋은 할배랑은 다르잖아!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자. 창세기 1장을 보면 우리가 아는 인류창조신화의 이야기가 나온다. 야훼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동쪽에 에덴동산을 만든 다음 만물을 창조했다는.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나 가톨릭이 믿는 천지창조 이야기다. 짚고 넘어가자면, 창세기 2장에서는 엘로힘이라는 존재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 나오는데, 정확히 어느 것이 성서에 나오는 내용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니 이 문제는 대충 넘어가자. 성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버전 외에도 수많은 버전이 존재하니까. 주목해야할 점은 창세기 1장에서의 야훼가 히브리 신화에서의 야훼와 동일한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깽깽이는 신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으니까 깽깽이 식으로 해석해 보겠다. 가나안 땅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히브리인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인이 동시에 이주해왔고, 히브리인을 좀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이스라엘인 즉 순수 유대교도가 본디 엘로힘이 존재하던 창세신화에 야훼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닐까. 앞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파라오의 이집트 통치와 관련해 해석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종교적 논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 다음-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뭐? 제사를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의 차이라고? 어느 정도 양호하다. 기독교의 역사를 정확히는 알지 못하니 언급하지 않겠다. 천주교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처음에는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학자들에게 연구되었다. 딱히 선교사랄 것도 없는 상태에서 중국어로 된 원문을 해독했으니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명제에 대해, 제사를 지내야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심각히 고민했으리라. 이는 당시의 조선이 유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며 기존 고려의 불교를 탄압하고 공자의 유교를 받아들였다. 천주교도와 기독교도는 오백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이루어진 조상을 존경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위패를 박살내는 등 당시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동석씨가 연평도를 탈출해 부산 처자를 납치, 다시 연평도로 도주하는 정도의 일이었다고나 할까. 때문에 여차저차 용서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천주교는 이러쿵저러쿵해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깽깽이는 기억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래서 한국을 축복받은 땅이라 했다나 어쨌다나. 가톨릭이 자연발생했다는 이유로. 깽깽이는 교수가 아니라 강사니까, 틀린 곳이 있다면 똑똑한 학생들이 지적하기 바란다.
어떠한 종교든 간에, 새로운 사회에 유입되기 위해서는 순화과정을 거쳐야한다. 마호메트처럼 코란을 들고 정복국가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 호이짜!’를 외치지 않는 이상은. 가톨릭의 경우처럼 삼국시대 불교가 한반도에 유입될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제 한국 신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강의에 들어가겠다. 당시 불교가 유입되기 전 한국에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기반으로 한 토속신앙이 존재하고 있었다. 학생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무당’ 따위가 한국 전통 샤머니즘의 샤먼이었다.
불교의 사원 즉 절에 가보면 보통 용왕이 모셔져 있는 곳이나, 산신이 모셔져 있는 곳이 있다. 잉? 불교의 대빵은 부처님이 아니었던가? 그럼 부처님 밑에 산신이랑 용왕이 시다바리로 있는 걸까? 이렇게 알고 있는 학생들은 전 시간에 예습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하겠다. 방학동안 뭐했나? 또 술 먹고 아가씨 치마 쫓아 돌아다녔구먼. 부처와 산신, 용왕은 수직관계라기 보다는 수평관계에 있는 존재들이다.
불교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토속신앙과 충돌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먼 옛날 빛나는 머리를 지는 승려들께서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셨나보다. 그래서, 토속신앙과 불교를 적절히 융화시키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다. 자. 불국사를 살펴보자. 사대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서 절의 한 가운데는 도착하면 뭐가 있을까. 대웅전이 있다. 그럼 대웅전에는 누가 있을까. 빠글빠글 파마머리를 하고 요상한 웃음을 짓고 계신 부처님이 있다. 대체 뭐가 잔머리를 굴린 거냐고? 절의 구조를 보면 중앙에는 대웅전이 있지만,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이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러니까, 산신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산의 대빵은 산신이다. 절은 보통 어디에 있나. 산에 있다. 절의 중앙은 부처님에게 주는 대신, 절의 가장 높은 곳에 산신을 둬서 산신과 부처는 수평적 관계라는 걸 무언으로 전하고 싶었는지도. 불교는 기존 토속신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포용력으로 대중에게 접근하기 쉬워서 좋고, 대중은 기존에 모시던 산신을 수평적 관계로 유지해주는 데다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 또 좋은 것이었으리라. 일종의 윈윈게임이랄까.
이러한 이유로 현재 한국무속신앙백과를 살펴보면, 십이선녀, 십이선생 등 각종 장군신과 동자, 심지어는 조선 즉 단군조선의 환웅들까지도 함께 담겨있다. 법사나 무당뿐만 아니라 승려들도 이 백과를 이용해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폭 넓은 한국의 신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불교는 한국의 토속신앙을 받아들이며 한국에 유입되어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한다. 그럼, 여타 종교로 미루어 볼 때 한국에는 진짜 신이란 존재가 없는 걸까?
아니 있다. 강의가 길어져 부득이하게 다음 수업시간으로 넘기겠다. 불만 있는 학생 있으면 담배도 한대 줘서 니코틴 한탐 하고 올 수 있게 도와주시라. 깽깽이도 머리아파 죽겠다. 다음시간에는 진짜 한국 신화를 들고 돌아오겠다. 아, 맞선을 보기 전에도 밑밥을 깔아놔야 할 거 아닌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3:49
병장 이동석
음, 생각나는대로-
1.
아마 성 소피아 성당은 생뚱맞게도 이스탄불-에 있을거에요. 비잔틴 제국 시절 최고의 교회였던곳이 이슬람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그대로- 모스크로 바뀌었을껄요. 물론, 이스라엘에도 같은 이름의 성당이 있을수도 있으니, 이건 단순한 대항해시대 하며 발견한 유적 정보-정도라는걸 밝혀두지요,
2.
[동석씨가 연평도를 탈출해 부산 처자를 납치, 다시 연평도로 도주하는 정도의 일]이라면, 뭐랄까 천인이 공로-할 일이며, 사회통념을 거스르는 일이라기 보단, 대단히 일상적인 느낌이... (음?)
3.
재미있는데요? 2008-12-17
06:44:13
상병 김무준
수정완료.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라는 거. 깽깽이가 부산사람이기 때문. 2008-12-17
07:00:39
병장 이동석
부산인건 압니다.
저 부산국제영화제 할때마다 갔고, 지인들이 있어서 일년에 두서너번은 더 가고, 해운대나 서면, 남포동, 태종대정도는 알고, 주 활동무대는 영도-지만,
무엇보다 저의 '귀여운 여인이 쓰는' 부산 사투리 페티시즘... (므흣) 이번에 나가면 한분 모셔와야겠군요. 훗 2008-12-17
07:29:09
일병 장봉수
엘로힘...
그쪽 부족국가 중 가장 힘이 센 국가의 신이었다는 가설이 있죠 하하...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 그쪽 분들.. 화 내지 마시길... 2008-12-17
08:23:53
상병 이지훈
뭐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마호메트처럼 코란을 들고 정복국가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 호이짜!
정복전쟁으로 그 세력이 커져,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널리널리 퍼졌지만 종교를 무력으로 강요했다기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제제로 구슬렸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아요. '이슬람 믿으면 뭐뭐 혜택이 있어. 싫으면 어쩔 수 없고.'이런 식으로요. 어떤 책에서는 심지어 개종 시 혜택은 있었으나 개종하지 않을 때의 불이익은 없었다라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정복당한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무언의 압박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요. 개종하지 않으면 정치적 발언권도 주지 않았으니까요. 이게 무력과 뭐가 다르냐할 수도 있지만...눈가리고 아웅이라도 선택권은 주었다는 것이죠. 오로지 무력으로 힘으로 강제 개종시키고 종교를 믿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타 문화, 즉 자신들이 정복한 문화에 대한 이슬람의 포용력이 설명되기 힘든 것 같아요.
뭐 그렇다구요...노파심예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요 흐흐 2008-12-19
01:37:28
상병 김무준
표현이 그렇다는 거였는데, 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2008-12-19
08:32:23
일병 이석현
기독교, 이슬람교등 여타종교의 전개과정은 알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한국쪽음 처음 들어보네요. 스스로에 대해 반성의 싸D구 를 날리고 싶어지내요.
특히 불교얘기, 그중에서도 불국사얘기- 우오 재밌어요.
다음 글 기대할께요 2008-12-22
07:33:09
일병 윤현상
매번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관심분야인지라 온지 얼마 안된 저에게는 가장 먼저 손이 가네요. 매번 딴지걸려는 건 아니지만, 몇가지 눈에 밟히는 게 있어서 이번에도 약간의 보충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절의 구조에 있어서 산신각등 민속신앙 건물이 산의 가장 높은곳, 혹은 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진짜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가 전래되고 보급되면서 불교는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들을 불교로 흡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국가가 밀어주고 논리적으로도 민간신앙에 비하면 우세하지만, 민중들이 들러주지 않는다면 포교는 힘든 일이죠.
그래서 불교가 생각해 낸 방법이 산신각 등 민간신앙의 본거지?로 가는 길목에 절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산신각으로 오고가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절에 눈길을 주고, 스님과 만나고, 불교행사등을 보게 되면서, 산신각에는 없는 그 웅장함과 논리정연함에 매료되도록 한 것이죠. 만약 산신각이 절보다 먼저 있다면(절 아래 있다면) 달랑 산신각만 왔다가 가지 않겠습니까?
즉, 절보다 높이 있는 산신각은 부처와 산신이 동등함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불교로의 포교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아, 물론 이는 불교가 토착종교를 멸시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임에는 분명하지만요. 2008-12-23
15:04:40
일병 윤현상
그리고 이슬람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도, 댓글에서 지훈님이 잘 설명해 주셨지만, 그에 대해서도 약간만 보충설명을 하겠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 비이슬람민족의 발언권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슬람국가 초창기 비이슬람교도들이 약간은 심하다고 볼만한 경제적/정치적 불이익을 당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후기로 갈수록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이슬람세력의 절정기라고도 할 수 있을 '오스만 투르크'제국 시절에는 술탄의 주변인들은 거의 오리지널 이슬람 교도가 아닌, 비이슬람교도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개종인(kul)들이었고, 비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무역상의 세제혜택, 특권등도 굉장히 커서 "이슬람 국가에서 비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출세할 수가 없다. 출세할려면 이슬람교도여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말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2008-12-23
15:11:45
상병 김무준
감사합니다.
길목에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은 깽깽이도 처음 듣는 주장이군요. 스님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것이, 풍수적으로 좋은 곳에는 다 부처님이 차지하고 있다- 는 말입니다. 풍수지리가 불교의 유입시기보다 먼저 연구됐는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풍수지리에 대한 연구가 삼국시대 불교의 유입시기보다 먼저였다면, 산신각의 위치와 절의 상관관계 대한 설명이 어느정도 가능하겠군요.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했듯 깽깽이와 같은 식으로 산신각의 위치를 해석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 아닌, 최근에 지어진 사찰에서도 산신각의 위치를 대웅전보다 높은 곳으로 두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흠.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일지도 모르겠군요. 분명한 것은 불교가 위와같은 식으로 토착신앙에 대해 '포용력'을 보여줬다는 사실이겠죠. 2008-12-23
16:33:26
일병 윤현상
/무준님 한국에서 풍수지리가 도입된것은 여말선초(고려말 조선초)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려중기 이전에 건축된 절들은 풍수지리와는 상관없는 위치에 지어졌습니다.
부처님들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곳에 자리잡게 된 것은 한 700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최근에 지은 사찰에서도 산신각의 위치를 대웅전의 위로 두는 것은 최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월이 흐르면서 산신각이 사찰의 한 부속건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설명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이런 이유로 산신각 밑에 절이 지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그것이 관용화되고, 본래의 이유는 잊혀지면서, 사찰을 지을때는 무조건 산신각 위치를 본당 위에 짓게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려 후기 이후의 사찰들은(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찰이 고려 후기 이후의 사찰입니다) 풍수적으로 좋은 위치를 점하면서 산신각이 위에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무준님 의견이 틀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2008-12-24
07:45:15
병장 한지환
무준님의
'불교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토속신앙과 충돌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먼 옛날 빛나는 머리를 지는 승려들께서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셨나보다.'
이대목을 보니 생각나는게.
중1때였나.. 봉신연의(만화책 말고 완역판)을 읽었는데.
4대천왕(마례홍,마례청,마례?..)의 유래 였다든가.
조공명이나, 문수보살 등등등
결론은.. 지금 알고 있는게 과연 진리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알고계신걸 글로 잘 정리해서 쓰시는 능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2009-01-21
23:18:16
병장 한지환
그리고 이슬람교 관심 있으신분은.
코란까지는 못읽더라도..
살만 루쉬디 의 '악마의 시'(satanic verses)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왠지 무준님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인도, 무하마드 제대로 까는 내용입니다. 2009-01-21
23: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