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깽깽이의 재미없는 옛날이야기 - 2교시  
상병 김무준   2008-11-29 11:46:08, 조회: 284, 추천:0 

2교시다. 좀 쉬어가자.

이현세는 열심히 만화를 그리다 문득 깽깽이와 같은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아마겟돈>의 실패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현세는 이 충격으로 인해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유체이탈을 경험했고 자신의 능력을 어디에 써야할지를 찾는다. 당시 충격적이라고도 할만한 <천국의 신화>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왜 충격적이었느냐. 수렵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인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탓이다. 지금 봐도 19땡 만화에나 나올 법 한 골 때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궁금한가? 으흐흐. 직접 사서 보시라.

<천국의 신화>가 극장 애니메이션 <아마겟돈>보다 먼저 그려졌는지, 나중에 그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천하의 이현세도 쌍욕을 바가지를 처먹었으니 벽에 똥칠을 하도록 살 고 싶어 욕을 먹은게 아니라면, 이현세는 쇼크 마케팅을 통해 우리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당시 논란이 꽤나 많았던 작품이고, 현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이현세는 만화를 그리며 도입부에 반고와 여와 등의 창세신화를 집어넣는다. 그 전에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자. 창세신화란 무엇이냐.

신화란 전체적으로 세상 존재의 기원을 그린다. 신화는 세계 각지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섰느냐는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 존재한다. 이런 질문에 답을 주고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할배의 할배의 할배의 할배의 할배 쯤 되는 양반들은 존재의 기원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후대에 전해준다. 신화는 로고스Logos 그러니까, 이성과는 상반되는 부분에 위치해 있다. 신화는 현대과학으로는 도저히 입증하기 힘들다. ‘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 사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해도 세계 민족의 뿌리마저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빅뱅이나 카오스이론을 발표해도 어느 누구도 우주의 탄생을 명쾌하게 해석해주지는 못한다. 믿거나. 말거나.

신화의 진실성은 사물과 현상의 존재로 증명된다. 우주창조의 신화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우주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데서, 죽음의 기원에 대한 신화는 인간이 죽는다는 데서 진실성을 얻는다. 그러나 신화는 구전(口傳).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승의 한계 때문에 인종적, 지역적 차이를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신화를 설명하며 이야기해 주겠다. 궁금해도 좀 참아라. 다 퍼주고 나면 깽깽이는 뭐 먹고사나.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해도 각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알아가다 보면 묘한 공통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히브리 신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신화를 보면 노아가 방주(方舟)를 만들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부분이 있다. 천지가 뒤덮이는 이 대홍수는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뭐, 유사 이전의 역사를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냐는 개인의 선택이니 팽개쳐두자. 중국, 한국, 메소포타미아 (이라크, 시리아 등)같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인류 탄생설화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신이 점토 혹은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똥. 덩. 어. 리. 강마에의 Shouting에는 타당성이 있군.

썰렁한 개그는 집어치우겠다. 어쨌거나 창세신화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천지가 진동하고 변동하는 싸움터… 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깨지는 천지개벽이다. 두 번째는 태양과 달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고, 세 번째는 인류의 탄생. 음. 창조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네 번째는 국조(國祖) 나라의 첫 왕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이 누가 세상을 다스리느냐 치고 박고 싸운 통치권 쟁탈전이 있겠다.

이현세가 말한 반고와 여와는 중국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일단 중국의 창세신화를 보자. 한국은 대륙문화권에 속해 있기에 이는 필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이 혼돈은 일정한 개념이 아니라 ‘존재’였다. 혼돈의 이름은 제강이었다. 장자(莊子)는 제강을 응제왕이라고도 말한 모양인데 정확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제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엄청난 덩치에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가 있는 무면(無面)의 거대한 생물이란다. 커다란 달걀을 눕혀놓고 앞다리 중간다리 뒷다리 달아놓고, 날개를 두개씩 네 개를 달아준 뒤 얼굴을 그리지 않으면 된다. 상상이 가는가?

왜 얼굴이 없었느냐. 이걸 깽깽이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나. 그냥 처음부터 없었다는데. 짱개들에게 따지시라. 이 제강에게는 북해에 사는 홀과 남해에 사는 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한 친구들은 제강이 얼굴이 없다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제강에게 얼굴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이런 지쟈스. 일주일이 지나자 제강이 죽어버린다. 이유가 무얼까. ‘혼돈(混沌)’을 정의하려 들었기 때문이란다. 제강이 죽는다는 것은 즉 혼돈의 끝을 의미한다. 천지가 하나의 알이 되고, 이 알에서 반고(盤古·盤固)가 태어난다. 반고는 전설상의 천자(天子) 음. 황제(皇帝)라기는 좀 그렇고 하늘을 다스리던 이라고 전해진다.

이 반고라는 신은 배터리 네 칸 채우고 만렙을 찍은 관광공사 직원보다 잠이 많았다. 무려 18,000년 동안 디벼 잤다. 잠을 자는 동안 하루에 1장(약 3미터)을 자랐단다. 약 2천만미터니까, 200,000 km가 되겠다. 빛이 0.6초쯤 간 거리가 되겠다. 지구를 세 바퀴 쯤 돈 거리로 추측된다. 반고가 잠에서 깼을 때는 상상이 가나?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녀석이 되었고, 원래 하나였던 하늘과 땅이 벌어져 천지의 간격이 90만리. 약 360,000 km가 되었단다. 그짓말. 뭐 잠을 너무 많이 자서인지 반고는 그만 죽고 말았다. 반고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다. 목소리는 천둥으로, 두 눈은 해와 달이, 피는 강, 근맥은 도로로, 피부는 논과 밭이, 머리와 수염은 별이, 몸의 털은 풀과 나무가, 땀은 이슬과 비가 되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와 같은 창세신화를 거인해체신화라고 하는데, 인도 힌두교의 창세신화도 이러한 거인해체신화에 해당한다. 히란니야가르바(Hiranyagarbha)에게서 탄생한 푸루샤(Purusa)가 인신공양을 통해 그 몸이 천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면 인터넷을 이용하시라. 깽깽이의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리고 여와가 탄생하는데 상반신은 여인이요, 하반신은 뱀인 반인이었다. 이 반고의 모습과 유사한 존재가 아프리카 니제르 강가의 도곤족 신화에서도 등장한다. 붉은 눈이 있고 초록 털이 나있으며 관절이 없이 굽은 팔을 가진 대지의 여신인데,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뱀이다. 각국의 신화는 찾아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니까?

반고는 깽깽이만큼이나 심심했던지 깽깽이처럼 글을 쓰는 대신 황토를 재료로 인간을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이마저도 귀찮아져 새끼줄을 묶어 황토 그릇에 집어넣고 대롱대롱 달린 황토로 대충 인간을 만들었단다. 새끼줄에 달린 점토는 들쭉날쭉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빈부격차가 생겼다나 어쨌다나. 여기까지가 중국의 창세신화와 인류탄생신화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한국 고유의 창세신화에는 이런 반고나 여와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뒤에 이야기 하겠지만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는 부분은 한국, 일본, 중국의 창세신화 모두에서 찾을 수 있으나, <천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반고와 여와는 한국의 창세신화에 없다. 한국에는 미륵이나 천지왕 등이 등장하거나 아주 천지창조의 주체가 없는. 다시 말해 ‘신’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현세는 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한 <천국의 신화>같은 만화에 중국 창세신화의 존재를 집어넣었을까. 이것은 한국이 대륙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라는 점과 관련해 해석할 수 있다. 압록강 너머는 한 때 우리 땅이었다. 국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알고 있겠지만 고려(高麗). 그러니까 고구려(高句麗)는 수(隋), 당(唐)과 붙어도 지지 않았던 거대국가였고, 약 700년의 세월을 지금의 중국 땅을 지배해왔다. 이현세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중국의 창세신화를 우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물론 깽깽이의 판단이므로 더 궁금한 학생은 <천국의 신화>와 관련한 이현세 인터뷰를 찾아보던가, 이현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보기 바란다.

다음 시간에는 구체적인 한국의 창세신화를 <창세가>와 <셈굿>, <천지왕본풀이> 등의 부분에서 이야기해 주겠다. 중국의 창세신화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우리가 대륙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단 밑바탕이 되는 것을 알아야하지 않겠나. 깽깽이가 연말이라 다소 바쁘니, 약 한 달간의 방학을 갖겠다. 방학이다. 신나게 놀고 재충전 한 뒤에 나름 자습도 좀 하고 깽깽이의 강의를 들으러 오시라. 아무리 쉽게 이야기하려고 해도 이게 좀 어렵다. 

국사책을 한 번 다시 읽고 오든가. 깽깽이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으니 깽깽이의 강의를 듣고 대체적인 연도나 시기를 궁금해 하는 학생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귀찮다. 자습하도록. 원래 남이 떠먹여주는 밥보다 자기가 해먹는 게 뿌듯하고 맛있다. 질문은 댓글로만 받겠으나,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답해줄 수 없다. 그릇된 지식을 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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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2:35 

 

일병 조민석 
  재미있게읽고있습니다 2008-11-29
13:46:17
  

 

병장 이동석 
  고우영 화백의 만화 십-팔사략이나 이원복의 신의나라 인간나라 정도-를 자습 교재로 선정해도 되겠군요. 

무준님이 어떻게 신화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는지, 무준님이 신화를 대하는 자세도 번외-로 다뤄주셨으면 하고요. 그건 그렇고 계속 책마당에 올리실겁니까? 낄낄- 2008-11-29
13:47:10
 

 

병장 정병훈 
  전편의 칼럼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본인의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는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드렸는데 답변이 없더군요. 
[깽깽이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으니...]를 보면 무준님의 글은 단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만을 가지고 쓰는거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대단한 지식의 양입니다. 뭐 국사나, 사회공부를 하지 않은 제 입장에선 말입니다. 2008-11-29
19:37:28
  

 

상병 김무준 
  저 이과 출신입니다. 동슥씨 자꾸 귀찮게 하시면 도망갑니다. 2008-11-29
22:04:43
  

 

병장 정병훈 
  더욱 대단하군요. 2008-11-29
23:35:03
  

 

병장 이동석 
  뭐 제가 귀찮게 하건 말건 신경도 안쓰시는거 잘 알고 있으니 
전 그냥 하던대로 하겠습니다. 흐흐. 

그건 그렇고 난 이 시간까지 뭐하고 있는거지. 2008-11-30
03:44:07
 

 

병장 김현민 
  국사나 사회공부를 하지 않은 제 입장에서도 방대한 양이네요. 

크크크 대단하십니다. 2008-11-30
13:47:58
  

 

상병 김무준 
  이런건 학교에서 안가르쳐줍니다. 2008-11-30
15:08:51
  

 

병장 한지환 
  이제 와서 읽어보고 글 남기는데 

저같은경우 저희 청주 한씨의 속설???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에서 단군 왕검조 마지막 왕인 준왕이 위만에게 쫓길때 

세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아들이 도망쳐 청주 한씨를 만들었다는 속설??이 

있어서 관심이 생겨. 

중2때 환단고기를 읽고. 

나름 재야 역사서를 읽고, 

나중에 

'천국의 신화'(이현세) 를 봤는데 

아직도 집안 어른들은 뭐 단군의 후예라느니 우리 가족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게 

이런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긍지를 심어주기에는 

그동안의 우리 역사는 '국제매음부'.. 일본이라는 돌쇠에게 

따먹힌 안방마님 이라는 생각밖에는 안들정도로 지난 역사의 지배층이 

부끄럽습니다.. 2009-01-21
22:57:22
  

 

병장 한지환 
  그리고 무준님의 '이런건 학교에서 안가르쳐줍니다.' 

이런 말씀이 저는 이렇게 와 닿습니다. 

'지금 학교든 어느 기관에서든 가르치는건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을 

효과적으로 입닥치고 고분고분 말 잘들어먹게 써먹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생각되는데. '하인'으로서의 배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이 필요하다라는게 

제 지론입니다. 

에고 두서없이 쓰다가 70년대 같았으면 안기부 요원한테 끌려갈 소리를 쓰게 됬네요. 2009-01-21
22: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