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깽깽이의 재미없는 옛날이야기 - 1교시  
상병 김무준   2008-11-29 00:45:10, 조회: 490, 추천:0 

한반도는 어떤 모양으로 생겨먹었을까. 아주 개념이 무지몽매한 어린이들이라면 깽깽이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고 ‘토끼모양이요!’ 하고 생글생글 웃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교육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받은 학생이라면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라는 제법 준수한 답을 내놓겠지. 하지만, 한반도는 어디까지나 툭 튀어나온 지극히 반도스러운 지형을 지니고 있다. 한국지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라면 산맥의 형태와 연관 지어 볼 때 이것이 토끼의 척추면 척추였지, 호랑이의 줄무늬라는 추상적 추측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 어린이들은 토끼모양이라고 말할까.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민족의 자긍심을 깎아내리기 위한 쪽바리들의 개수작 때문일지도. 누군가 지적했듯 다소 민감한 문제일수도 있으나, 한국은 프랑스와 달리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친일세력을 효율적으로 숙청하지 못했다. 교복과 두발검사 등 현 시대와 맞지 않는 교육당국의 정책은 역사를 재정립하지 못한 할배들의 탓도 있으리라.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다시 한반도의 지도를 살펴보면 앞발을 들고 뒷발로 앉아있는 토끼라면 토끼였지, 웅크린 채 포효하고 있는 호랑이라고는 도통 추상화가 불가능하다. 깽깽이의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일찍이 이 사실을 알려주셨으나, 머리가 크고 나서 호랑이의 구체적인 모습을 볼 때까지 깽깽이는 한반도는 토끼모양이라 생각해왔다.

그럼 이 지형을 대체 왜 호랑이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느냐. 식민사관으로 인해 어그러진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함이리라. 호랑이는 먹이사슬의 피라미드만을 놓고 보았을 때도 토끼보다 훨씬 상위 계층의 짐승이다. 호랑이의 이미지와도 연관이 높다. 호랑이는 강하고 용맹하다는 이미지를 풍긴다. 조선 말기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 한성, 지금의 서울 부근에서 호랑이가 잡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호랑이는 한반도 생태계에서 최상위층을 지배하던 짐승이었다. 쉽게 보기는 힘들었으나 근대까지도 마을에 출몰했다.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는 등 사람의 힘으로 호랑이를 막기는 힘들었고 때문에 오랜 세월 자연스레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토끼가 되어버린 한반도를 돌려놓기 위해 이러한 호랑이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더 민족과 국가에 부여하려는 목적에서 한반도를 호랑이라고 주장하는지도. 국가대표 축구팀의 마크가 호랑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단군신화를 살펴보자. 민족의 뿌리이자 최초의 왕조라는 고조선. 단군은 고조선의 첫 번째 왕이었다. 헌데, 왜 민족의 첫 번째 왕이 호랑이의 아들이 아닌 곰의 아들이 되었을까. 굉장히 궁금한 부분이다. 호랑이는 육식동물이고 곰은 잡식동물이라 쳐도 백일동안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어야 했을 존재는 호랑이가 되어야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문제는 당시 첫 왕조를 세운 단군이 곰을 숭배하는 부족 출신이기 때문이란 설이 있다. 인류는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집단의 화목과 안녕을 위해 부족이 화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인간은 자연현상, 강력한 짐승 등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숭배하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생겨난다. 숭배의 대상을 찬양하고 부족의 갈등을 중재해주기 위한 존재도 당연히 필요했으므로, 이위치는 명망 높은 자가 차지한다. 우두머리는 족장과 사제의 역할을 수행하며 ‘제사’를 올렸다. 다양한 부족의 개체 수만큼 다양한 숭배의 대상이 있었는데 해, 비 등 자연물뿐만 아니라 호랑이, 곰 등도 그에 포함됐다. 위의 학설은 마침 곰을 숭배하던 부족이 지역을 통일했고, 부족의 정통성과 통치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화가 창조되며 단군이 곰의 아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집트의 경우를 보자. 이집트 창세신화에서는 빛의 새인 태양신 [라]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나온다.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들은 모두 [라]의 아들이라고 기록된다. 문화가 탄생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부족 집단이 농경을 시작한 시기와 비교적 맞아떨어진다. 나일 강의 수위 조절은 그 해의 기온이 높은가 낮은가 의해 결정됐다. 한 해의 수확량은 태양과 나일 강의 범람과 관련이 높았고 자연스레 태양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지역을 통일한 왕조의 수장은 마찬가지로 부족 통치의 당위를 입증하고자 태양의 아들임을 자처했던 것이다. 어렵나? 깽깽이도 머리 터질 것 같다.

단군이 도읍으로 했다는 아사달(阿斯達)은 현재 평양 부근의 백악산(白岳山) 또는 황해도의 구월산(九月山) 근처라고 추측된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농경을 바탕으로 한 부족사회의 출발은 힘들었다고 보여 진다. 국토의 70%이상이 산이다. 때문에 생존수단은 수렵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곰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위치한다. 한반도를 지배하는 세력 중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집단의 크기가 매우 거대했고, 부족 간의 충돌에서 곰의 부족이 승리했을 것이다. 왕조를 건립한 단군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4,500년의 시간이 흘러 이는 신화가 되었으리라. 그런 고로 우리는 곰탱이의 후손이다. 미련하고 둔한 후배 직원들 괴롭히지 말자. 타고난 천성이니 어쩌겠나.

단군신화를 깽깽이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해 보았다. 사실 위의 해석은 이미 잘나신 할배들께서 해놓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먹고 살기 바빴던지라 이러한 학설이 있는 것조차 모른다. 신화라는 게 다 그렇듯이 믿거나 말거나. 곰에게서 어찌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는 가지 않으나, 반만년의 역사동안 그렇다고 우기는데 우리 선조들이 이건 뭐 (자체검열)도 아니고 허접한 이야기를 긴 세월동안 전해준 이유가 있겠지. 뭐 비틀어 생각해보면 웅녀라는 여자가 너무 뚱뚱해서 환웅이 어째 결혼은 해야겠고, 보다 못해 마늘&쑥 다이어트를 제안했을 런지도. 웃자고 하는 소리다.

근데 왜 깽깽이에게는 늑대의 피가 흐르는지 모르겠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려나? 다음 이 시간에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모르는 한국의 창세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인구의 절반이 하느님을 믿는다니, 뭐 창세신화에는 아담과 하와가 뛰놀고 일곱째 날 영감님이 파업에 들어가는 등의 이야기를 써야할지도 모르나 깽깽이는 나머지 절반의 인구를 위해 우리 고유의 창세신화를 이야기하겠다. 거기 졸고 있는 학생. 수업 듣지 말고 그냥 자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의실을 나가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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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2:16 

 

병장 이동석 
  칼럼은 가지로-에 쓰셔야죠. 이사람아- 2008-11-29
00:51:04
 

 

상병 김무준 
  나를 귀찮게 한 죄로 동석씨는 앞으로 내 글들을 손수 옮기셔야 할 겁니다. 2008-11-29
00:52:04
  

 

병장 정병훈 
  제가보기에는 무준님은 필진이 되고싶었던거 같습니다. 흐흐흐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말이죠. 아닌척하더니, 필진승낙을 하고 바로 달려드는군요. 크히히 2008-11-29
00:52:19
  

 

상병 김무준 
  편하신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2008-11-29
00:53:26
  

 

병장 정병훈 
  시크하군요. 2008-11-29
00:53:59
  

 

병장 이동석 
  이런 번거로운 무준씨- 이하나님 때문에 참고 

적절한 시기에 책가지-로 보내겠습니다. 크크. 2008-11-29
00:54:10
 

 

병장 이동석 
  단, 내용이 구리면 그냥 페이지 넘어가건 말건 냅둘겁니다. 낄낄낄- 2008-11-29
00:54:40
 

 

병장 정병훈 
  일단 시간내어 읽을수 있을때 읽어보겠나이다. 2008-11-29
00:54:53
  

 

병장 이동석 
  음, 이건 거의 얼개-이자 예고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일단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앞으로가 기대되기에 조회수 100을 찍으면 가지로 보내는 서비스-를 해드리겠습니다. 2008-11-29
00:57:07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조회수는 7인데 댓글이 9개, 이거 까지 하면 10개... 무슨 메신저도 아니고... 전 이하나님-을 보며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를 듣고 있습니다. 술도 먹었고 타자는 안쳐지고, 생각은 안나고, 옛 여친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하는 구질구질한 마음을 담배로 누르고 있습니다. 2008-11-29
00:59:32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꼭 책가지에 쓰인다고 전문성-에 목맬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무준님 본연의 글쓰기에 반한 사람들이 무준님을 추천한거니까요. 무준님 본연의 글쓰기라면 누구나 만족할겁니다. 2008-11-29
01:00:15
 

 

상병 강수식 
  여기들 계셨군요(땀땀.웃음) 2008-11-29
01:03:15
  

 

상병 김무준 
  얼개는 아래에 있습니다. 자러갑니다. 퇴장 2008-11-29
01:17:38
  

 

병장 정병훈 
  얼개라고 하긴 좀 그렇고 흥미를 끌어들이는 도입부 정도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흥미진진하군요. 무준님의 필력이 극상에 다가섰다고 보여집니다. 크흐흐 글중간중간에 보이는 쎈스 하며 말이죠. 

기본적으로 위에 설명되어있는 단군신화와, 이집트신화의 내용은 저도 알고 있으나, 이렇게 술술 풀어낸다는게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무준님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식만으로만 풀어내려가고 있으신지? 아니면 참고자료를 보시며 풀어가고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이번편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다음편이 더욱 기대가 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역시. 2008-11-29
05:12:40
  

 

상병 이석현 
  재밌게 잘 보고싰습니다 2008-11-29
07:18:30
  

 

일병 송기화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렀었던 국사시간에 들어본 이야기군요. 
유체이탈 상태였음에도 이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건 이 얘기가 흥미로워서겠죠. 

2교시 기대하고있습니다. 2008-11-29
08:23:37
  

 

일병 조민석 
  미련하고 둔한 후배 직원들 괴롭히지 말자. 타고난 천성이니 어쩌겠나.(웃음) 2008-11-29
12:45:32
  

 

병장 이동석 
  음, 밑의 얼개는 강의 계획서-라면 이번 강의는 말 그대로 첫교시-답다는거죠. 2008-11-29
13:54:18
 

 

책마을 
  얼개는 국어사전에도 있는 말입니다. 흐흐 2008-11-29
14:11:03
  

 

상병 이바름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풀이하셨네요. 2008-12-14
02:10:54
  

 

일병 윤현상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풍부하신것 같네요. 다만 한가지만 보충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단군이 곰의 아들이 되었다는 부분을 설명하시면서, "첫 왕조를 세운 단군이 곰을 숭배하는 부족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꼭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사실관계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 부족과 단군과 같이 '천손강림'을 모태로 하는 부족은 그 형태도 시기도 완전히 다른 케이스 입니다. '천손강림'이란 자신들이 하늘의 후손이라고 보는 것인데, 환인을 상정하는 단군신화, 일본의 창세신화 등이 이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샤머니즘 사상을 신석기- 청동기 초기 간에 나타나며, 천손강림 사상은 청동기 중기- 철기에 걸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008-12-23
04:36:17
  

 

일병 윤현상 
  단군신화는 이런 천손강림 신화를 보유한 선진 부족(외부 유입 민족: 환웅족)과, 지역 토착세력이면서 다소 낮은 발전수준을 가지고 있던 토템부족(곰족)의 결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웅족을 외부 유입 민족이라고 하는 까닭은, 단군신화에 보면 환웅은 '높은곳'에 살다가 아랫세계가 그리워 내려왔다고 하는데 이는 본래 환웅족이 한반도에 거주하지 않다가 건국 즈음에 이르러 한반도로 이주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판타지 소설가 이우혁도 이러한 이야기를 퇴마록 등 자신의 소설에 유용하게 써먹곤 했었죠. 
그리고 신화속에서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으며 사람이 되기위해 동굴속에서 고투하는 이야기는, 보다 선진문명을 지닌 환웅족의 이주로 인하여, 기존 지역의 토착 경쟁세력이던 곰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이 환웅족과 동맹을 맺기 위하여 애쓴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8-12-23
04:46:59
  

 

일병 윤현상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애시당초 환웅족은 호랑이 토템족을 배척하고 곰토템족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신화속에서 환웅은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속에서 100일을 버티면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호랑이가 못 견디고 뛰쳐나가자 마자, 시작한지 22일만에 환웅은 냅다 곰을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환웅이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가 봅니다. 신적인 존재가 약속기간의 1/4도 안지났는데 덜컥 사람을 만들어 주고 말이죠. 애초에 환웅은 곰에게 호의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동굴'이라는 공간 자체도 호랑이보다는 곰에게 유리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습니다. 다시말하면, 되도 않는 조건을 걸어놓고 호랑이가 포기하자마자 곰을 사람 만들어준거죠. 결국 지역의 경쟁자이던 곰토템족과 호랑이토템족의 대결은 외부 선진부족(천손신앙족)인 환웅족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곰토템족의 승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따라서 '곰을 숭배하던 부족이 지역을 통일했고, 부족의 정통성과 통치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화가 창조되며 단군이 곰의 아들이 된 것' 이라기 보다는 '천손신화를 가지고 있던 환웅족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곰토템 부족과 연합하였고, 그 결과 신화에 웅녀가 추가되었다.'는 식으로 보는것이 보다 옳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근데 제가 다들 아시는 내용가지고 주저리 주저리 떠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2008-12-23
05:02:28
  

 

상병 김무준 
  기원전 2,500년 경이 청동기시대와 철기의 중간지점이었던가요? 기억이 확실하지 않군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한반도에서 문명이 자연발생했는지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었는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국가를 설립할만한 부족이 탄생했다면, 타 문화와 달리 어째서 그 기록이 대부분 유실되었을까요. 타 문화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역사를 겪어 왔는데 말이죠. 2008-12-23
16:47:04
  

 

상병 이지훈 
  기원전 2500년 경은 아직 한반도 및 만주지방에 청동기가 등장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요. 한반도, 만주지방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청동기가 기원전 1700년의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뭐 물론 더 발견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요 
모 국가의 경우 민족 최초 국가의 건국년도를 기원전 2333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게 맞다면 모 국가의 최초 국가는 청동기문화 이전에 국가의 모습을 갖춘 셈이 되죠. 허허 우습게도 이것을 짜맞추기 위해 모 국가의 북쪽지방에서는 발견된 청동기의 연도를 더 오래된 것으로 발표하기도 한답니다. 뭐 남쪽지방도 그렇게 따지면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를 교과서에 버젓이 싣고 있으니 할말은 없습니다만. 

한반도, 만주의 고대사에 대한 기록은 멀리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에만 해도 꽤 많이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고대사를 기록한 책이 소장되어 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등에 남아있고요. 신채호도 많은 사료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지만 지금은 그가 참고했던 사료조차도 많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제시대가 36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이었죠. 36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고 일본은 철저히 한반도를 일본화했죠.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 식민지의 정신마저 지배하려고 했죠. 이 때 굉장히 많은 역사적 사료가 소실되거나 사라져 버렸죠. 한반도 역사 연구만을 책임지는 기관을 만들 정도였으니...말 다했죠. 
이런 말도 있지요. 815가 몇 년만 더 늦게 왔다면 과연 우리가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고요. 일본의 지배도 지배이지만, 누군가 우리 역사를 나서서 책임지지 않아도 역사가 흘러간...그런 탓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상님의 해석은 요즘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단군신화(혹은 환웅신화)의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옳은' 해석이라기보다는 그 신화가 의미하는 바를 본래 뜻했던 것에 가장 근접하게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까지는요 2008-12-24
06:35:14
  

 

일병 윤현상 
  /지훈님 '옳은'이라는 말을 섵부르게 사용한 것은 확실히 제 실수였네요.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 옳고그름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알고는 있는데, 글을 쓰다보면 종종 깜빡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역사관에 대한 확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타나는 거겠죠.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2008-12-24
07:35:47